(작은리뷰) 치트키 인생은 없어! 우울을 이기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법
여행자 메이의 솔직담백한 우울증 극복기 <내 장례식에는 어떤 음악을 틀까>
제목은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제목만으로 독자 아니 책을 꼭 읽진 않더라도 표지만 훑어본 사람일지라도 이 질문 앞에 잠깐 멈추어서서 10초씩은 생각해 볼 것이다.
"그래, 내가 죽으면, 내 장례식에는 어떤 음악을 틀지?"
사실 이 질문은 의미가 없다.
내가 죽고나면, 이 세상은 내 의지, 권한, 욕심, 소망 밖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 장례를 치뤄줄 다른 사람들의 세상이다.
장례식 분위기까지 생각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어쩌면 오지랖 넓은 행동일 수 있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 장례식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공간과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주장 정도는 해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책 제목 때문에 서설이 좀 길어졌지만, 이 책은 책 제목처럼 죽음이라거나 장례식에 목숨을 매고 있는 책은 아니다. 제목은 자극적이고 무거워보이지만, 책은 여느 에세이처럼 발랄하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추세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아직 젊은 주인공. 여행을 좋아하는 메이는 서른 문턱에 찾아와 자신을 옥죄고 있는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명상, 요가, 클라이밍, 춤, 먹기, 여행하기, 향기 수집하기, 음악듣기, 이름 바꾸기.
그는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만 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스스로에게 시도한 것. 그녀는 인생이 치트키로 속일 수 없는 것임을 알았기에, 우울과 맞짱을 뜨기로 했다.
"불행을 잊게 해주는 치트키, 행복을 찾게 해주는 치트키, 영감을 주는 치트키, 관계를 만들어주는 치트키 ..... 그런데 치트키를 쓰는 일에만 익숙해진 이에게는, 치트키 없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일이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미처 몰랐다."
(여행자 메이, 내 장례식에는 어떤 음악을 틀까, 25쪽)
그녀는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며, 밖에서 우울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밖에서 온 것들은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추천받은 명상을 시도해본다.
어쩌면 이 책은 자신이 경험한 명상의 세계를 안내해주는 책인 것처럼, 명상에 긴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명상을 직접 해보지 않았지만 이 부분이 가장 아쉽다. 뭔가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선 명상을 꼭 해야만 한다는 어떤 압박 같은 것을 주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분량을 여기에 할애하고 있어서, 꼭 명상 소개서 같다는 생각도 든다.
독자들이 그저, 아 저 작가는 저렇게 우울을 헤쳐나갔구나, 그렇게 스치듯 읽고 말 책이라면 괜찮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조금 더 다양한 경험치들을 분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든다.
"클라이밍의 본질이 뭔지 알아?
음, 글쎄요. 오르는 것 아닌가요?
클라이밍의 본질은 수직의 벽에서 균형을 맞추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힘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힘이 없어 못하는 게 아냐. 균형을 못 맞추는 것뿐이지."
(121쪽)
균형. 클라이밍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균형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겠지.
이런 통찰의 문장 하나가,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중요한 건, 힘이 아니라 균형이야!
(황정민 배우가 광고에서 말하는 느낌?)
그렇다면 어느 균형을 맞추어야 할까.
일과 휴식?
가족과 일?
자신과 가족?
나와 나?
나는 인생에서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나와 나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단양 고택에서 수백 장 LP 음반을 발견하고 음악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곳에서 만난 투숙객에서 명반의 정의를 듣는다.
"보통 한 장의 LP에 세 곡이 좋으면 명반이라고 해요. 하지만 이 LP는 전곡이 다 명곡이라 레전드라고 불리지요." (138쪽)
꽃중년 남성이 골라준 레전드 음반은 이승철 LP였는데, 나라면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LP 를 골라줬을 거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명반 인생을 발견한다.
"인생의 세 챕터 정도 멋진 순간으로 가득 채웠다면, 설령 나쁜 일이 더해진다고 해도, 그런대로 명반인 삶인 거다." (141쪽)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얼만데, 세 챕터 정도 명곡이 없었을까?
예전 행복가정상담센터를 개소하고 심리상담을 진행할 때, 그 요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지독한 우울감에 빠져 있던 분이었는데, 인생 명반을 찾아가는 과정을 시도했다.
자신은 지금껏 한 번도 웃어본 적도, 성공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담자를 초등학생 시절로 끌고 갔다. 1학년부터 차근차근 위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운동회 하던 기억이 났고, 달리기에서 상을 받았던 기억을 찾아냈다.
달리기를 잘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얼굴은 달덩이처럼 환하게 피어올랐었다. 하나의 명곡을 찾아낸 것이다.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근육이 필요하다. 근육이 없으면 걸어 다닐 수도, 음식을 소화할 수도 없다. 같은 충격을 받아도 근육이 받쳐준다면 덜 다치게 된다. 마음의 근육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근육을 잘 가꾸어야만 삶이 주는 수많은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나로 살아갈 수 있다." (158쪽)
예전 척추디스크로 고생할 때, 의사 선생님 말이 생각난다. 내 척추는 완치 불가하지만, 주변 근육을 강화시키면 약한 척추를 받쳐주어 척추가 할 일을 대신해 줄 수 있다고. 수술을 안 하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근육이 강화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척추디스크는 수술을 하지 않은 채 잘 버티고 있다.
이 책은 서른 문턱에 찾아온 우울감에 패배하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과의 싸움, 자신과의 대면, 자신과의 침잠을 통해 우울을 극복해낸 참 야무진 젊은 인생 이야기 책이다.
요즘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사는 게 우울이다. 시시때때로 우울은 찾아온다.
그러니, 이 책, 가볍게 읽고, 이 따위 우울, 날려버리겠어!
다짐하면 좋겠다.
마음의 근육, 잘 키워서, 우울을 몰아내진 못해도, 버텨낼 수 있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장례식장에는, 베토벤 9번 교향곡, 코랄 버전으로 틀어주길 바란다. 울 가족, 알겠지? 내 장례식은 우울하지 않게, 참 잘 살았다. 소풍 잘 하고 갑니다. 축하해주길 바란다.
우울증...
어릴 적엔 그저 기분이 가라앉는다...라고 느꼈지 딱히 '난 우울증이다'라 단정 짓지 않았었지만...
30에 접어들고 임신을 하고 나서 우울증이란 것을 제대로 맞이하게 되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 속에 조금씩 나아지곤 했지만 요즘도 어느 순간 찾아오면...
그래서 이와 관련된 책을 외면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될까 봐...
솔직히 이 책 역시도 조금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에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울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찬란하잖아."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느 서른 살의 솔직하고 용기 있는 고백.
저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볼까 합니다.
"초콜릿케이크가 눈앞에 있든 아니든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야 해요." ?
『내 장례식에는 어떤 음악을 틀까?』
인기 유튜버이자 작가인 저자 '여행자메이'.
그간 산티아고 순례길, 인도와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을 그만의 감각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내러티브로 많은 구독자를 불러 모았고, 영상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냈던 그녀가...
어느 날 우울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해일처럼 다가왔습니다.
나는 서른의 문턱에서 완벽하게 길을 잃었다. 목적을 잃은 상실감, 대상이 불분명한 환멸감, 후회 섞인 자괴감...... 순서조차 알 수 없이 일순간 불어난 눈덩이는 채 대비할 새도 없이 나를 깔아뭉갰다. 나는 그 무게를 들고 일어설 힘이 없어 쥐포처럼 납작해진 채 가만히 누워 빗소리만 들었다. 아마 그즈음 우울증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 page 12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눈덩이를 굴리며 키우며 덮쳐왔던 우울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다짐했다. 내 이십 대를 세상을 여행하는 일로 찬란하게 물들였다면, 내 남은 시간은 나를 여행하는 일로 채워가겠다고. 내가 가장 알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고, 사랑하는 그 여행지, 내 속으로의 여행을 이제라도 시작해야겠다고.
그렇게 나는 나를 여행하기로 했다. - page 32
명상을 통해
"사실 저는......, 평생을 함께 한 사사로운 감정들이 사라진다는 게 좀 무서워요."
"이해해요. 그 사사로운 감정에는 행복하거나 기뻤던 순간도 있을 테니까요."
"맞아요."
"하지만 그런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이 오늘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나요?"
"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 때문에, 그에 대해 더 집착하게 되고, 또 그렇지 못한 오늘과 비교해 오늘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 못하고, 오늘을 그저 행복하지 못한 날로 여기고 있지는 않나요?" - page 39 ~ 40
행복한 지난 순간들을 완전히 놓아주어야 내게 찾아오는 모든 오늘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우연히 접한 클라이밍으로부터
이 행위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던 나의 어떤 시기에,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속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었으니까. 추락을 해서 피 좀 보더라도 균형만 잘 잡으면 다시 오를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죽음이 아닌 삶에 더 가까워졌다고, 맞다. - page 121
추락을 했더라도 다시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삶을 살아가기 위한 근육들을 키워나가면서 수많은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빛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아주 평화로운 일상...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만은 기필코 나의 영원한 구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직 나만이 가능하다. 당신 역시 당신만이 당신의 구원이 될 수 있다. - page 100
어쩌면 한없이 어둡게 그려질 수 있었던 우울.
저자는 자신이 겪은 우울과 실패, 그리고 이를 이겨내는 과정을 진솔하게 그려서 적잖이 위로도 받았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에 대한 해답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럼에도 겪어본 사람이 그 고통을 알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마주하게 되니 한 줄기 빛을 찾게 된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삶의 고통을 유쾌하게 넘기는 주문도 얻게 되었으니
"멈춰! 과몰입!"
저도 유연하게 흐르는 대로 균형을 잘 잡으며 찬란히 살아보겠습니다.
참!
저자는 자신의 장례식장을 입구부터 일생을 담은 사진들이 줄지어 걸려있고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소주보단 와인을 마시며 기려주면 좋겠다고 했는데...
난...
천천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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