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전에 위안부에 대한 책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 책의 저자 역시 일본인이었다.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던 것 같은데, 다른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책들은 여러종 나온 듯 한데 국내 저자가 이 사건을 다룬 책은 내 기억엔 없는 것 같다.
"1부 '징용자 문제'와 한일관계의 행방"에서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다룬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중 소수의견의 논리가 일본에서 주장하고 있는 논리와 유사한 듯 하다. 이 책은 2021년 1심 각하판결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는데, 아마도 책의 출간 시점에서는 판결이 나오기 전이기 때문이 아닐까.
1972년 일중 공동선언 전문에는 "일본 측은 과거에 일본국이 전쟁을 통해 중국 국민에게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반성한다"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반면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청구권협정은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대일본제국과 대한제국 사이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미 무효임이 확인된다"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한일 양국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중 공동선언에서 명확하게 기술된 일본국의 전쟁을 통한 중국 국민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한 "책임과 반성"이라는 문구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중국와 일본의 사기업 간의 분쟁과 갈등해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2부 중국인 강제연행 강제노동" 부분에서 수 개의 재판과 재판관의 부언을 통해서 갈등 해결 구조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재판관의 부언 부분은 특히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 간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까지 무지할 수 있었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 어쩌면 한일간 갈등을 해소할 팁을 얻을 수도.
"3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부분이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지 않을까.
일본, 중국, 한국,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형성을 위해서는 일본이 진지하게 자국의 근현대사를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일본인 저자가 일본에게 책임을 돌리고 해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부분은 대단하다고 여길 수 밖에 없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은데 2019. 11. 8., 2020. 1. 6. 한일 법률가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나 보다(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중 2020. 1. 6.자 공동선언의 경우 읽어볼 필요성이 있다.
이 책의 특성상 내용을 나열하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볼 것을 촉구하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니 시간이 허용한다면 꼭 읽어보시라.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이 글의 제목으로 삼은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으면, 이를 잘못이라고 한다.”는 2016년 6월 1일, 베이징에서 체결된 미쓰비시 머티리얼 중국인 강제연행 강제노동 사건 화해에서 이 회사의 업무집행 임원인 기무라 히카루씨가 회사를 대표해서 중국인 수난자 유족들을 대표한 옌이청(86세), 장이더(88세), 간슌(95세, 딸이 대리 참석) 씨 등 생존 수난자들에게 얘기한 ‘사죄문’ 중의 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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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사정과는 무관하고도 서늘하게 흐르는 시간은 멈추지 않아 오늘은 광복 76년을 맞는 날이다. 홍범도 장군은 유해로 101년 만에 귀국하신단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정원이 일본 극우와 부당거래를 했다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아베 전 수상은 올 해도 전쟁 범죄자들이 봉안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두터운 비구름보다 어둡고 차가운 현실이다.
양국 간에 쌓인 원한으로 따지자면 한국 못지않은 중국과는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 해결을 보았다는 내용을 만난다. 피해 규모는 한국이 훨씬 크지만 극우보수가 장악했을 가능성이 큰 일본 법정에서 이런 판결이 나왔다는 것이 한편 반갑고 다른 한편 고통스럽다.
일본의 극우보수 정권이 거침없이 한국을 모욕하고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배경에는 돈 받고 자국민의 정보를 팔아넘기는 국정원과 같은 행태를 내내 해 온 이들이 있을 것이다.
“X년 팬티까지 뒤지라 해!”라는 반감과 적의가 가득한 지시는 일본 극우가 아니라 한국 국정원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일본 공항에 도착한 위안부 진실 규명 활동을 하는 여성들의 속옷은 모욕을 주라는 목표에 충실하게 모두 공개되었다.
일본인 변호사이자 지식인인 저자 우치다 마사토시는 ‘중국 강제동원 피해 해결’을 주도했던 변론 당사자이며, 한국의 강제 동원 피해자 문제도 역시 해결 가능하다고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어쩔 수 없이 일본 극우의 자금을 받아 <반일 종족주의> 따위를 출간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주장하는 이들, 학자의 타이틀을 가진 이들이 불쾌하게도 떠오른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요정에서 일본전범에게 술과 요리를 접대하고 한국 육군 사열식까지 받게 해준 박정희 정권의 실세 김종필도 떠오른다.
“ 청구권협정에는 무상 3억 달러, 당시 환율로 1,080억 엔 상당의 금액을 (...) 10년에 걸쳐 분할되어, 그것도 ‘현물 지급’ 형태로 지급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신일철주금 등의 국내(일본)기업으로부터 플랜트를 사서 이를 한국에 제공했습니다. 이처럼 청구권협정은 일본기업에 이익을 안겨주는 일석삼조의 협정이었습니다. 배상금 지급이 모두 이런 현물배상 형태로 이뤄짐에 따라 일본기업들이 다시 아시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식민지 당시 친일파들은 할 수 있다면 조선인의 피도 모두 갈아 바꾸고 싶다 했다던데, 광복일 이후 내내 온존했던 친일파들의 행적과 그들의 후손인 21세기의 친일파들 역시 그런 심정으로 황국신민으로 제 머리를 조아리며 살고 있는 듯하다.
사는 일은 늘 어려운 일투성이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것들 중 하나인, 친일파를 제대로 처벌하고 정리하지 못한 시간은, 말끔하게 제거하지 못한 종양처럼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현재에도 끈질기게 사회와 사람들을 괴롭히고 병들게 한다.
“일본 국내에서 예전의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나아가 미화하려는 세력이 시종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년에 이런 움직임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피해국 인민에 대한 또 다른 가해이며, 일본이 아시아 이웃 나라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동으로 반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국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세력들이 더러운 거래로 얽혀 양국 모두를 망치고 있다. 일본의 길거리 극우단체들이 한국의 태극기 집회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것을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다. 애서 찾아 볼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미움과 혐오로 자칫 감정이 커지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되는 저자이고 책이라 마음을 다독이며 감사히 읽는다.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 청구권협정의 오류를 일본이 변호사가 파헤치고 해법을 제시하는 귀한 내용이다.
-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과 청구권협정은 애초에 재검토되어야 할 협정
“한일 청구권협정은 미국의 압력 아래 한국 측이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 문제를 제대로 추궁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응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일본 측에서 보자면 ‘싼값’에 식민지배 청산 문제를 처리한 것입니다.”
-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에 관한 조약은 국가 간의 ‘외교보호권 포기’에 관한 내용이었을 뿐, 개인의 청구권 자체는 살아있는 권리(과거 일본 정부도 인정)
“1991년 8월 2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시미즈 스미코 의원의 질의에 대해, 한일 청구권협정의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라는 구절의 해석과 관련해 “이는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지니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서로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른바 개인의 청구권 그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에서 소멸시켰다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문제 해결 방식을 한국의 강제징용자 문제에도 적용 가능
“‘화해’에는 다음의 3가지가 불가결합니다. ① 가해자가 가해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한다. ② 사죄의 증표로 피해자에게 화해금(실손해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음’)을 지급한다. ③ 장래에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역사교육, 구체적으로는 수난비 건립, 수난자 추도사업 등을 진행한다.”
- 한국 뉴라이트 학자들이 쓴 <반일 종족주의>에서 언급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관한 거짓 주장을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비판
“일본의 “한국인 징용자들은 강제 동원된 적이 없다”는 주장은 거짓이며, 1938년 국가총동원 체제가 만들어진 뒤 처음에는 ‘모집’, 다음에는 ‘관 알선’, 마지막에는 ‘징용’이라는 형태로 조선의 젊은이들을 일본에 강제 동원한 것이 맞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전후의 국제 정세를 교묘하게 이용해 본래는 졌어야 할 전쟁 배상 의무와 식민지배 배상 의무를 모면해왔다. (...) 일본은 강제징용의 역사 자체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 한국은 ‘적’이 아니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쪽은 일본이라는 것 (...).”
- 한국어 판에는 당시 조선인의 현실에 관한 일본 측 자료들 인용
“합병 뒤인 1912년에 발령된 ‘토지조사령’은 조선인의 토지를 큰 뱀처럼 삼킨 교활한 법령이었습니다. (...) 토지조사령으로 ‘무주지無主地(주인 없는 토지)’가 된 땅은 총독부가 취득해서 조선에 이주해온 일본인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토지를 빼앗긴 수많은 조선인들은 유민이 돼 결국 일본 본토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이것이 ‘강제징용자’의 기원이 됐습니다.”
일독으로 다 배우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다. 자료에 충실하고 논조가 선명한 글이라 내용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관련법들, 증인, 증거, 역사적 자료들이 충실하게 제시되니 잘 아는 사실은 확인하고 잘 모르는 사건도 더욱 집중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래도 노력이 즐거운 것은 사실성을 충분히 갖추었고 신뢰할 수 있는 책을 만났다는 반가움 때문이다.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부정의함에 폭력에 전쟁이라는 범죄에 전후 이어진 관련 범죄와 협잡들에, 반성이 없는 범죄자들과 그걸 정신적 유산으로 자랑스럽게 이어받은 이들의 뻔뻔함과 무참함에 분노하며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일본인들’을 미워하고 혐오하지 않으려 힘껏 노력할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오늘 새로 생긴 이유도 있다. 대통령 연설 중에 1945년 8월16일 독립운동가 안재홍 선생이 우리 동포를 향해 한 방송연설이 언급되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선생은 패전한 일본과 해방된 한국이 동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 “식민지 민족의 피해의식을 뛰어넘는 참으로 담대하고 포용적인 역사의식이 아닐 수 없다.” 2021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연설 중에서.
이 책을 읽고 우리가 겪은 근래의 시간을 몇 해 되돌아본다.
2018년 10월30일 한국대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제철 원고가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이런 판결이 가능한지 무척 궁금했다. 무려 1941~43년 일본제철 공장에 강제 동원되어 노역을 하며 임금을 받지 못한 엄청난 임금 연체 사실 - 그 이상의 의미가 있지만 -을 이 판결을 계기로 자세히 알게 되고 목록에서 계속 밀려난 현재도 마무리 되지 못한 근현대사에 대해 다시 관심을 나눴다.
일본제철은 배상금 지불을 거부했고 법원은 한국 내 일본 제철의 자산을 압류했다. 일본 정부는 그것을 기다려온 절호의 기회인 양 한국을 상대로 수출규제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결정에 대해 "대단히 무모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어려움이 더해졌지만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물 밑 작업으로 무마하고 거래하는 외교가 아니라 대통령의 연설로 외교의 방향을 제시한 일을 처음 목격한지라 놀라고 떨렸다. 그 덕분에 관심을 두고 추이를 지켜보다 이제까지 모르던 민간외교에 대한 내용도 알게 되었다. 한일 양국만이 아니라 한중일 삼국에서 우호적인 민간 교류와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들은 길게는 40년간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러니 요란하고 목소리가 큰 폭력적인 이들에 겁을 내고 위축될 필요는 애초에 없을 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늘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문제를 똑바로 보고 옳은 일을 옳다고 하고 이해와 우호와 협력과 연대에 힘쓰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이런 활동에 국적은 문제가 안 된다.
저자에게 깊이 감사하며 마치려한다. 생각도 감정도 복잡한 날이라 그것을 동력삼아 읽고 쓴 어수선한 글이 이 책의 함의를 흐렸을까 염려한다.
“이 책의 주제는 역사에 유린당해온 개인들에 대하 위로와 사죄, 배상, 보상에 관한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보상을 논하면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모색하는 마당에 과거를 직시하며 역사에 유린당해온 사람들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일본인 변호사가 분석해서 제시하는 일본내에서의 언론과 소송 판결에 기록된 내용과 한국내에서 판결과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중국 강제징용자와 일본 가해기업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 사례를 통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비추고 있다. 물론 우선되어야 하는것은 가해자로써의 사실 인정과 사과일 것이겠지만 피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을 때 작은 성과인 화해라도 진행된다면 마음의 짐을 조금을 내려 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일본과 일본의 가해 기업만을 생각했었는데 한국내에 수해기업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책에서는 특정기업이나 자세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진 않지만 그들도 적극적으로 피해 당사자들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통해 강제징용자,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왜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고 서로 다른 주장과 결론을 내는지, 그 근거로 한국(조선)은 빠진 여러 조약들을 제시하며 한국과 일본의 해석과 판단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리를 추구하는 미국의 태도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의 강제징용자들도 법이 아닌 개인과 기업의 민간 차원에서의 화해를 이루어 진전을 보였으나 유독 한국 강제징용자와 일본군'위안부'들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나서서 화해조차 차단을 하고 있는 상황에 어이없을뿐이다.
정부차원에서 사과와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피해당사자들은 물론 국민들도 기쁘겠지만 당사자간의 화해 형식의 해결이라도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나의 일한역사 인식> 나카무라 미노루
"도대체 우리나라 공사의 지시로 다른 나라 왕궁에 침입해서 왕비를 살해하는 따위의 상궤를 벗어난 폭력 행위에 대해 우리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에게 어떤 보상을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겐 아무런 변명의 여지도 없다. 민비가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했든 말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무법 무모한 짓을 한 우리 조부들에 대해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 p50
그러나 지적해야 할 것은, 일본 국내에서 예전의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나아가 미화하려는 세력이 시종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년에 이런 움직임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피해국 인민에 대한 또 다른 가해이며, 일본이 아시아 이웃 나라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p111
독일에서는 전쟁범죄의 시효가 연장됐으며, 나아가 그 뒤에 전면 폐지돼 전후 70여 년이 지는 지금도 여전히 나치 전쟁범죄자 추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변국들로부터 신용을 얻지 못합니다. p121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으면, 이를 잘못이라고 한다." p154
이처럼 다양한 직역, 지역에서 한일 민중끼리의 교류를 통해 한국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악화된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가들 간에는 어찌 되든 민중끼리는 우호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p268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광복일이자 일본의 패전일입니다.
그로부터 76년이 지난 오늘까지 한일의 역사인식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평행선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줄여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일 양국에게 남은 과제, 식민 지배와 강제징용으로 얼룩진 과거청산 문제를
당사자인 강제징용자분들이 생존해 계실 때 마무리 짓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2019년 일본은 일방적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행하고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나라 또한 일본에 결코 우호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일본 변호사가 한국 강제 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날카롭게 제시한 <강제징용자의 질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일본인인 우치다 마사토시가 일본 정부가 소송 기각 근거로 주장하는 한일 청구권 협정의 오류를 낱낱이 파헤친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변호인으로서 '중국인 강제 동원 피해와 배상 문제'를 처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인이 조약의 오류를 찾고 해법을 제시해 주었다는 책 소개에 강제징용에 대한 역사적 지식은 얕고 감정적인 반응이 우선이던 저는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품고 우치다 변호사가 들려주는 강제징용 문제에 귀 기울였습니다.
우선 한국과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한 인식이 달랐습니다. 한국이 요구하는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를 일본은 식민 지배는 '합법'이라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인식 공유가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의 개입으로 맺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청구권 협정은 그 한계가 명확하고 여러 상황들이 변하여 수정·보완이 요구되는 조약입니다.
저자인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는 '중국인 강제 동원 피해와 배상 문제'를 처리한 일련의 과정을 정리해 줍니다. 중국인 강제 동원 피해 역시 1972년 일중 공동성명으로 국가의 외교보호권은 포기되었으나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원칙 아래 당사자들 간의 화해를 재판부에서 권고하였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권고와 부언을 통해 당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하나오카 화해(가시마 건설), 니시마쓰 건설 화해, 미쓰비시 머티리얼 화해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도 이 결과에 주목해서 실현 가능한 차선책을 이룰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가야 할 듯합니다. 일본 정부가 독일처럼 과거 식민 지배와 강제징용 등 전범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와 배상을 하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교육을 실시하는, 확실한 해법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인 강제징용의 경우 불법적인 노예노동이라는 점에서는 한국인 강제징용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지만, 기간과 수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인 강제 연행·강제노동은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약 1년간 발생한 피해자 수가 약 4만 명입니다. 한국인의 경우는 기간도 길고 피해자 수도 20여만 명에서 수십만 명으로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한일기본조약과 일중 공동성명 또한 일본의 역사인식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인 강제징용 문제 해결까지는 더 많은 산들을 넘어야 할 것 같네요.
전후보상 청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3가지 원칙이 필수적입니다.
① 가해 사실 및 그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다.
② 사죄의 증거로 경제적인 수당을 준다.
③ 추도 사업을 하고, 동시에 미래의 교훈을 위해 역사교육을 실시한다.
중국인 강제징용 소송 관련하여
하나오카 화해(가시마 건설) - 히로시마 야스노 화해(니시마쓰 건설) - 미쓰바시 머티리얼 화해로 이어지는 흐름을 살펴보다보면 위 3가지 기본원칙을 이뤄내기 위한 노력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재판소가 노력해서 이뤄낸 하나오카 화해,
최고재판소 판결의 부언에 기초하여 피해자와 가해자 양 당사자들이 자발적인 교섭을 통해
화해의 내용을 정리하고, 그것을 가해자인 니시마쓰 건설이 신청인이 돼 재판소로 가져간 야스노 화해,
당사자들 간의 자발적인 교섭을 통해 화해의 내용을 정리하고,
회사 책임자가 베이징으로 가서 직접 수난자들에게 사죄하여 성사한 미쓰바시 머티리얼 화해. 』
점진적인 변화로 가해자 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달라져 서로 양보해서 싸움을 그만하는 1차원적인 화해에서 상호 의사가 누그러지며 격의 없이 어우러지는 진정한 화해의 길로 들어선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오다테 시 주최로 매년 시행되는 추도식, 그리고 그 추도식에 참석한 중국에서 온 생존자·유족 또 퇴임한 재판관, 직접 찾아뵙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회사관계자. 이렇게 이어지는 민간 외교 교류로 하나둘 신뢰가 쌓여 양국 관계의 개선과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아쉬운 점은 이런 화해의 장에 강제 연행·강제노동의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한국인 강제징용 문제에서는 개인의 청구로 보지 않고, 일본에 대한 도발로, 조약을 어기는 행위로 간주하여 기업의 자발적인 행동을 가로막고 사태를 더욱 곤란한 상태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이 정치적인 이유로 과거를 직시하지 못하고 권력의 기반으로 사용하는 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는 흔들리지 않고 강한 의지로 식민지배·강제징용 등 과거청산 및 경제 회복에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자 우치다 변호사가 제시한 당사자들 간 개인적인 교섭을 통한 화해와 독일형 기금(기억·책임·미래) 창설로 한국인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 기금 마련 형식의 제안을 일본 정부에 한차례 했다가 거부당했지만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납득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조약·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있는가? 강제징용 관련 소송들이 패소한 이유는 무엇인가?
책에서는 1) 법률의 벽 2) 조약의 벽으로 설명하고 있네요.
전쟁 전 일본의 헌법에는 국가배상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조항이 없기 때문에 국가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더라도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무답책'으로 국가 및 공공단체는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있는 것으로 몹시 난폭한 생각입니다. 국가무답책 때문에 국가가 일으키는 가장 큰 불법행위인 전쟁과 관련된 불법행위의 배상을 국가에 청구하기 어렵습니다.
또 민법에는 '시효', '제척기간'이 있는데 기간과 관련된 사항입니다. 그렇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역사 문제 해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독일의 경우 전쟁범죄의 시효가 전면 폐지돼 전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치 전쟁범죄 추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 자세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조약의 벽은 한일 청구권 협정처럼 정한 것 이외의 배상청구권은 협정에 근거하여 포기되었으므로 해결이 끝났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책에서도 서술된 것처럼 조약과 법률이 어떠하든, 피해 사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그것에 대한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 피해자에 대한 뭔가의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이웃나라 일본에 우익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시선으로 전후 배상 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또 우리나라에도 일본 우익 못지않은 태도를 가진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씁쓸해집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피해자분들이 생존해 계시는 지금, 일본과의 진실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역사적 책임, 도의적 책임, 법적 책임 구분 짓지 말고, 잘못을 바로 잡는 데 필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어느 위안부 할머니 말씀처럼 기회가 있는 지금, 일본이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실현가능한 해결책으로 출발하여 한일 모두 과거를 청산하고 서로에게 미래의 협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건강한 교류를 이웃나라가 되는 내일을 기대해봅니다.
강제징용자의 질문 -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답이 보입니다.
⊙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되, 가해국가 국민이 피해자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여 역사에 유린당해온 사람들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과제를 환기시키는 책, 잘 읽었습니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