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뮐한이란 이름은 그 철자를 Klaus Mulhahn이라 씁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인이며 현 체펠린 대학 총장이라고 나옵니다. 약력을 보면 페어뱅크 상 수상이라고 나오는데 존 K 페어뱅크는 중국사(동양사) 연구의 권위자이며 지금 이 책과 성격이 비슷한 <동양문화사>(한국어판은 을유문화사 刊)를 크레이그, 라이샤워 교수 등과 공저한 적 있죠. 물론 그 책은 고대부터 현대 전 시기를 커버하고, 이 책은 근세 이후입니다만 접근 방식이라든가 개설서라는 형식이 서로 닮았다는 뜻입니다. 독일 출신의 저명 동양사학자라면 테오도르 몸젠 같은 이가 있겠습니다.
"여러 열강이 중국을 통제하고 그 거대한 시장을 이용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p39)." 사실 한국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의 영향 하에 있었으며 형식적이든 실질적이든 대륙을 섬겨 왔습니다. 반면 서양은 그저 비단이나 도자기를 생산하는 신비로운 나라로 인식했을 뿐 군사적으로 문화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어떤 강력한 영향력의 원천에서 뿜어나오는 압박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렇기는커녕 근대화에 뒤처진 미개한 인간들이 잔뜩 사는, 잠재력 가득한 상품 시장 정도가 첫인상이었겠습니다.
아직도 중국은 현대 국제 질서를 서양 열강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불합리한 시스템으로 여기며 이에 편승해 풍요로운 나라를 일군 한국을 배신자, 앞잡이 정도로 간주하고 언젠가 제 분수를 알게 해 줘야 할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중국이 예전처럼 세계의 중심에 자리하고 주변국들을 한 수 아래로 보며 호령하고 깔아뭉갤 수 있게 된 후에야 세계 질서니 규범이니 하는 걸 존중하는 척이라도 시작할지 모릅니다. 저자는 일단 단기간에 이룬 중국 현대화의 성과를 부러워하며, 동시에 광범위하게 퍼진 환경오염, 소수민족 탄압, 빈부격차 심화, 여전히 요원한 민주화 등이 아직도 그들의 도정에 남은 과제라고 보는 듯합니다. 저자는 이를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까지 의미규정하네요.
매카트니가 건륭제에게 조공할 무렵만 해도 청과 영국의 격차는 상당했습니다. 물론 그는 고두의 예를 거절하는 등 자국의 위신을 애써 지키긴 했으나 눈 앞에 드러나는 국세의 차이는 부정하고 싶다고 부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죠. 이 무렵 급박하게 돌아가던 대외 사정을 보통 다른 개론서들은 대(對) 영불 관계에만 집중하지만 이 책은 대 러시아 관계에도 두루 관심을 가집니다. 사실 청 조정은 영국, 프랑스뿐 아니라 북서쪽에서 밀고들어오는 러시아 때문에도 골머리를 앓았는데 종래 오랑캐로 관리해 오던 중앙아시아 제 민족에 대한 통제권, 종주권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물론 한참 뒤에는 한반도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집니다.
서양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갈 때 빈민구제, 의료혜택 제공 등을 앞세우는 게 정해진 패턴이었습니다. 우리한테도 마찬가지였고 현재도 한국의 대학 상당수가 채플도 의무화하는 기독교 계열인 게 다 이 흔적입니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구빈과 의료는 전통적으로 종교의 몫이었으며 원래 중국 입장에서는 외래 종교였던 불교도 이런 사업을 예전부터 했었음을 상기합니다. 흥미롭게도 시기가 청말인데 "환경 문제와 싸우는 중국 정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해 미세먼지 이슈가 아니라 인구 때문에 수목 남벌, 과도한 관개로 초래된 자연 파괴를 지적함인데 저자는 이를 시스템의 문제로 규정합니다.
청말은 사실 그 정도로 구제불능이었을까 싶을 만큼, 꼭 그렇게 무기력한 파멸을 맞을 운명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의화단 운동 때문에 결국 서양 열강도 한 발 물러섰던 걸 보면 백인들의 무력 침략이 결정적인 요인도 아니었고 자희태후의 무모한 권력욕 때문에 초래된 시스템의 모순 심화가 결정타였습니다. 신해 혁명이 일어났지만 새 정부는 구심력이 없었고 위안스카이 같은 시대착오적 망상가가 복벽을 시도했으나 그 결과야 뻔했습니다. 이후 장개석의 국민정부는 심지어 일본과의 전쟁 중 서양이 지원해 준 무기를 일본에 팔아먹는 관료들까지 있을 만큼 고질화한 부정부패에 발목을 잡혀 마오에게 대륙의 패권을 내주었습니다. 이 여정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저자에 의하면 "현대화(의 미비)"입니다.
대체 무엇이 현대화인가. 현대화가 곧 서구화, 자본주의화일까요? 마오는 전혀 그렇게 보지 않았고 적어도 그가 표면에 내세운 기치는 공산주의 혁명의 완성이었습니다. 공산주의의 관철이 곧 현대화였으며 그래서 공산주의에의 이행에 방해가 된다면 공자, 맹자의 삼천년 유산도 함께 청산되어야만 했습니다. 그게 소위 문화대혁명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인들이 입은 상처와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던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은 후 복수에 눈을 돌렸다면 아마 지금의 중국은 없었겠습니다. 4인방 숙청으로 정치보복은 최소화하고 미래를 향한 건설에 집중했습니다.
수출도 국가 주도가 아닌 민간 부문에서 성장했고 예전에 매판 자본한테 하도 당해서인지 해외 자본에 국가 경제가 잠식당하거나 의존 구조가 심화되는 일 없이 투자의 선순환이 이뤄졌고 더 주목할 것은 인적 자원의 건실한 양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회 병폐와 부조리도 간과하기 어려울 만큼 곳곳에서 돌출되었으며 저자는 류사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합니다. 저자는 최근에 쏟아져나오는 대만과 중국의 학술 성과에 주목하며 그 발전이 너무 빨라 종래의 명저들이 더이상 제 구실을 못할 만큼이라고까지 평가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체제선전적인 컨텐츠가 많이 생산되는 통에 학문적 순일성이 침해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고 생각하네요.
최근의 학계동향과 광범위한 연구성과를 반영 그리고 해석에 설득력이 있고 역사과 과정이 현재와 문제와 연관성을 잘 제시하였다고 후기에 나오네요.
페어뱅크와 스펜스를 계승할 만하다. ~~라는 문구가 결코 허언이 아니더라구요.
무엇보다 정치적인 선입관 즉 중국 공산당에 대한 동경이나 극단적인 찬사나 동경이 없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술한듯한 느낌이 들어요
다만 700페이지정도에 300년이 넘는 중국의 역사를 서술하다보니 구체적인 사건이나 상황을 보다 심도있게 보려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네요. 다른 책과 보조를 맞춰야할거 같습니다.
특히 중국 현대사파트에서 집권자에 따라 지향했던 이데올로기를 잘 요약한듯 합니다.
시진핑을 예를 들면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중국을 글로벌 리더로 급부상 시키는데 중정점을 두었다는 점.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세우며 대국굴기를 이루려고 하는 시도가 경제성장의 한계를 보여주며 위기를 맞이했는데 과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지.
이 책은 청말부터 현대 시진핑 정권까지의 중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제법 두꺼운 분량의 책이리도 하지만 막상 읽다보면 눈이 피곤하지 않을만큼의 편집이 되어있어, 읽는데에 큰 지장은 없다. 오히려 금새 술술 넘어간다는 기분이 든다. 청말의 역사를 볼 수 잇다는 점과 중국의 현대를 청말을 토대로 두는 저자의 시각이 돋보인다. 현대중국과 관련하여 이 책을 토대로 몇권 더 살펴보아야겠다.
클라우스 뮐한은 중국현대사를 연구하고 있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저자는 청의 흥기부터 시진핑 시대까지 현대 중국사를 논한다. 중국사는 청나라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창조적 적응의 긴 시간이었다고 한다. 중국 현대화가 400년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생동감 있게 논증하고 있다. 우리와 가까운 이웃, 중국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