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이탈리아 대표문학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아직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없던 시절에 쓰인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암튼, '열흘 동안의 이야기'라는 제목인 <데카메론>은 '조반니 보카치오'의 걸작입니다. <데카메론>에는 100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방대한 이야기들이 훗날 많은 작가와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었기에 그러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데카메론>의 주된 줄거리는 흑사병이 널리 퍼지던 시절에 병마를 피하기 위해 일곱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가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로 몸을 피하면서 시작합니다. 무사히 도착한 열 명의 남녀는 '2주일'동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기에는 참으로 무료하니 열 명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열흘동안(주말은 쉬고, 주5일/2주) 각각 10편씩 모두 100편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주목받는 까닭은 이야기의 주제가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 다시 말해, '신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대표하던 중세시대를 지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하게 된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직 본격적인 르네상스를 맞이하기도 전에 르네상스의 상징과도 같은 '인본주의'를 깊이 다루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특히, '여성'을 남성보다 낮잡아보던 시선에서 탈피해서 '일곱 명의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진취적인 문학이라는 점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여성을 한낱 남성의 전유물로 보았고 노예보다는 조금 낫지만 '자기 생각'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보았기에 중세사회에서까지 여성에 대한 인식은 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데카메론>에서는 남성보다 더 많은 '일곱 명의 여성'이 자신들의 처지에서 자신들의 본성과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데카메론>을 '야한 이야기'가 담긴 소설, '음담패설'을 남발한 까닭에 청소년에게 부적합한 책이라고 소개합니다. 실제로 소설 <데카메론>을 원작으로 한 '야한 영화'와 '야한 만화' 들이 넘쳐나던 7~80년대에는 당시 중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을라치면 '발랑 까진 녀석'이라고 뭇매를 맞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어른들 누구도 청소년들에게 권하지 않고, 청소년들 스스로는 지루한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해 찾아 읽지 않는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요즘도 읽지 않습니다. 신박함과는 거리가 먼 [고전문학]은 제목만 알고 있어야 하는 책이기 때문에...
이 책에는 100편 가운데 청소년이 읽어도 무방한 내용으로 엄선(?)한 20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뒤친이(엮은이)의 변명으로는 '원작의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청소년에게 너무 '야한' 이야기는 빼고 수록했다고 한 탓에 조금 밍밍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한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느끼기게 전혀 문제가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에 조금의 설명을 듣고 배경지식을 알고 읽으면 '고전의 깊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참고로 이 책은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 가운데 7권입니다. 여타의 시리즈도 참 유익합니다.
한편, 이탈리아 대표문학에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도 있습니다. 중세 그리스도교의 교리인 '지옥', '연옥', '천국'을 매우 생생하게 그려내어 훗날 문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친 작품입니다. 하지만 단테는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중세의 끝자락을 살던 사람이라고 하지만 아직 '암흑시대'를 살고 있던 사람인데, 그의 <신곡>은 중세를 넘어 근세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던 걸까? 그건 아마도 그리스도교의 이미지를 '사실적 묘사'로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원근법'으로 실제(현실)에 가깝게 그려냈기에 사람들의 '의식(틀)'을 깨는데 큰 공헌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단테는 중세 사람인 까닭에 독실하게 살다 갔습니다. 하지만 보카치오는 중세의 끝자락에 살았어도 매우 '현세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유럽에 대유행을 했던 '흑사병(14세기)'이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흑사병이 중세인들의 사고방식을 바꿨다는 견해는 이미 오래전부터 밝혀진 내용입니다. 즉, 기도만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의 등장함으로써 중세 사람들을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흑사병'은 르네상스의 유행도 뒤로 밀어냈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고서는 '문예부흥'과 같은 여유와 낭만도 즐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암튼, 단테의 <신곡>과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모두 '르네상스'를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읽으면 좀더 깊은 감상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서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것을 끌어다 '비교분석'을 하면 색다른 재미가 있답니다. 단테와 보카치오를 비교하다보니 우리나라의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해골물 사건'이후에 큰 깨달음을 얻은 의상대사는 원래의 목표였던 당나라 유학을 떠나 '화엄종'을 기반으로 한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 섰다면, 원효대사는 그자리에서 얻은 큰 깨달음으로 백성들에게 '부처의 진리'를 널리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합니다. 마치 단테와 의상은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카치오와 원효는 현실적인 감각으로 '인본주의'와 '불교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것이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 재미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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