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배운 우리나라의 특징은 '한민족' 이라는 것이었다. 한반도, 한뿌리, 한민족. 유일민족국가라는 말은 어언 옛날이 되었고, 지금의 우리나라는 다문화민족이 되어가고 있다. 동남아 여성들이 와서 가정을 이루고, 소위 3D업종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와서 자리를 메꾸거나 다른 일로 한국에 머물며 한국인과 가정을 이룬 이들은 이제 우리 민족이다.
그들 역시 사람이기
초등학교 시절 배운 우리나라의 특징은 '한민족' 이라는 것이었다. 한반도, 한뿌리, 한민족. 유일민족국가라는 말은 어언 옛날이 되었고, 지금의 우리나라는 다문화민족이 되어가고 있다. 동남아 여성들이 와서 가정을 이루고, 소위 3D업종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와서 자리를 메꾸거나 다른 일로 한국에 머물며 한국인과 가정을 이룬 이들은 이제 우리 민족이다.
그들 역시 사람이기에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내가 만난 이들은 명암이 있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하면 한국말 몰라요라고 울어버리거나, 한국사람 왜그래요 라고 화를 내는 이들, 간간히 이래서 한국이 후진국이라고 간언의 말을 남기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문화가정의 사람들도 혹은 귀화자들도 언젠가부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24명의 이주민 이야기. 그들은 꿈을 쫓기 위해 한국에 왔다. 마치 예전 아메리칸 드림 처럼, 코리안 드림을 위해 한국으로 온 이들. 24가지의 이야기는 1인칭 시점으로쓰여졌기에 더욱 그들의 심정에 몰입이 되었다. 아직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회 속에서 그래도 한국인으로써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이란.
하지만 주의해야할 것은, 이주민의 이야기만으로 그들의 집단을 연민으로 바라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역시 그러한 행동이 차별임을 말한다. 법의 공백 사이에서 이주민들은 오롯이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한 동정 혹은 무분별한 차별이 아닌, 앞으로는 이들이 어떻게 사회에 녹여들도록 제도를 바꾸고 사회적 문제가 논의되어야 하는지, 이제는 그러한 논의가 시작되어야할 때임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한민족, 단일민족을 강조하던 시대가 있었다. 자연스레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나'라는 의식은 개개인을 결집시켜 사회적 연대를 이뤄 나라를 강건하게 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라 간 경계가 느슨해져 온 오프라인 소통 모두가 자유로운 세계화 시대가 되었다. '지구촌', '세계시민' 등 국적이 아닌 전 세계적 관점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이 낯설지
우리는 한민족, 단일민족을 강조하던 시대가 있었다. 자연스레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나'라는 의식은 개개인을 결집시켜 사회적 연대를 이뤄 나라를 강건하게 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라 간 경계가 느슨해져 온 오프라인 소통 모두가 자유로운 세계화 시대가 되었다. '지구촌', '세계시민' 등 국적이 아닌 전 세계적 관점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이 낯설지 않다. 국경은 희미해지고 디지털 스페이스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인류의 모습이 익숙한 요즘이라 '국가'의 존재, 울타리를 의식하지 않았다. 아니,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역설적으로 '국가' & '국적'이 강조되는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벌어진 국가 이기주의를 떠올려 보자. 강대국들의 백신 선점으로 가난한 나라들은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 위기 앞에서 각국은 '국경'을 단단히 봉쇄하고, 자국민을 우선으로 지키는데 힘을 쏟았다. 정책과 제도로 보호받을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런 배타적인 자세는 차별을 야기한다.
한 나라 안에서든, 나라 간에든 차별은 존재한다. 차별로는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차별이 만드는 생채기의 주인은 특정인이 아니다. 누구나 될 수 있다. 오늘 '내 일'이 아니라고 내일 '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다룬[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책은 '이주민'에 관한 총체적인 접근이다. 그들의 현주소뿐만 아니라 그들의 꿈과 미래를 담고 있다. 우리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이 아닌,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는 본인의 이야기는 선명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얕고 좁은 시야에 갇힌 '나 자신'이 보였다. 의도가 분명한 배제와 차별이 큰 벽이고 높은 산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구분 짓고 선을 긋는, 선량한 차별도 이주민에게는 깊은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주 노동자, 이주민과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이란주 작가는 이주민 24명의 삶과 꿈을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엮어 풀어내고 있다.
이주 1.5세대와 2세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함께 자라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함께 일하다 - 다양한 이주민의 삶과 꿈을 보여준 함께살다- 새로운 시대를 향해 힘껏 나아가는 이주민의 따뜻하고 당찬 용기가 가득한 함께 변화하다
<이주노동자가 웬 헌법 소원이냐고요?>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우다야 라이 씨의 이야기 중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 발표 사례가 나온다. '기막힌 이야기에 놀라지 마세요.'라는 당부처럼 비참하고 끔찍한 노동 현실에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주 노조가 청구한 위헌소송 결정에 관한 대목에서는 분노하다 염치가 없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 12월 23일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청구를 기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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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사용자가 안정적으로 인력을 확보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므로 정당하고, 또 더 나은 근무 환경과 임금이 있는 직장에 외국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여 내국인의 고용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외국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딸에게 '독도는 한국 땅' 야무지게 말하라고 가르쳤다> 혐오에 대응하는 일본 출신 사토미 씨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출신 민족이나 국가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출신 배경을 이유로 차별하고 놀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다양한 나라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을 거예요. 누구를 만나든, 그 출신 배경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개인의 생각과 처한 상황을 잘 살펴보며 좋은 관계를 맺기 바랍니다."
<왜 외국인들을 여기 모아놨어?> 함께 일하고 함께 늙어갈 한국인 조니 씨 이야기도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귀화를 했어도 "한국 사람은 아니잖아."라는 말을 듣는 그의 처지와 심정이 어쩔지 헤아릴 수 없다.
우리는 차별에 익숙해요. 직장에서 겪는 하대와 무시는 그냥 일상이어서 우리에겐 공기와 같은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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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신기하게도 두 가지가 다 있는 나라예요.
무시와 차별이 심하면서도 따뜻한 정이 있어요.
"야, 돈 많이 벌었어? 나라 언제 가? 돈 벌었으면 빨리빨리 나라 가야지?"
"어디 가? 또 일하러 가? 한국 사람 됐다고 너무 한국 사람처럼 일만 하는 거 아냐?"
너무 정겨운데 예의는 없는, 무례하고 다정한 참견을 견디며 노후를 준비하는 조니 씨께 고마움이 전한다. 한국인 아내를 만나 사랑해서 귀화까지 했는데 한국인으로 대해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그는 굳세다.
<뒷짐 진 열 살 소년 한달라를 아시나요>팔레스타인에서 온 유학생 마흐무드 알나자
표지에 등장하는 뒷짐 진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팔레스타인 만화가 '나지 알리'가 그린 '한달라'라는 캐릭터다. 뒷짐 진 손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식 해결책을 거부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고슴도치 같은 머리를 하고 기운 옷을 입고 항상 뒤돌아서 있는 아이는 맨발의 난민캠프 아이들 모습 그대로다. 아이의 얼굴과 표정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팔레스타인이 자유와 평화를 되찾는 날 한달라가 함박웃음을 보여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열 살 소년 한달라가 뒷짐을 풀고 활짝 웃을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생명을 지니고 힘차게 뻗어나갔으면 좋겠다. 이주민이 내게 들려주었던 그들의 상처, 고통, 고민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사랑, 행복, 꿈은 가볍게 흩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이 속한 이곳,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나가길 염원한다. 자연스레 우리에게 스며들어 이주민에 국한된 현실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화두가 되는 날을 그려본다.
약 30년 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와 일하기 시작했다. 30년의 세월 동안 우리나라는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솔직히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서로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의해 시작된 교류이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그들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주 1세대뿐만 아니라 2,3세대까지 확장되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주민을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평등하고자 노력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수긍한다.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는 아니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주민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 준 이란주 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진실되고 따뜻하고 용기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의 선을 알았고, 넘게 해주었다. 어느 나라 출신이든 우린 같은 '사람'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자. 함께 사는 세상,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단 며칠간의 외국 여행에서도, 아니, 해외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익숙한 곳이 아닌 대한민국 어딘가에 도착해서도 긴장되곤 한다. 언어까지 잘 통하지 않는 이곳에 와서 삶을 다시 꾸리는 이들의 마음이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거기에 이 사회의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를 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편안하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이주민 인권 활동가인 이란주 저자의
단 며칠간의 외국 여행에서도, 아니, 해외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익숙한 곳이 아닌 대한민국 어딘가에 도착해서도 긴장되곤 한다. 언어까지 잘 통하지 않는 이곳에 와서 삶을 다시 꾸리는 이들의 마음이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거기에 이 사회의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를 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편안하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이주민 인권 활동가인 이란주 저자의 말처럼, 대한민국 인적 구성이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건 내가 사는 곳에서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에 반해 이 상황과 이주민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 그 인구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와닿을 수밖에 없다. 지방의 소도시인 이곳은 인접한 시골과 생활권이 같다. 병원, 공공기관 등 웬만큼 큰 곳을 찾으려면 모여든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자주 보는 이주민을 생각하면, 이 책이 우리에게 더 깊게 다가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24명의 이주민이 그들의 한국 생활과 상처를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한국인 노동자의 차별과 피해를 들어오면서 화를 내곤 했는데, 이들의 한국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사회에 그 상처가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제야 이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 게 아쉬울 정도였다. 도서관에서 다문화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다문화, 이주민의 구성은 커졌다. 그만큼 우리 관심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인식은 같은 비례로 커지지 않은 듯해서 이들의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생각해야 할까. 인종, 국격, 피부색을 넘어, ‘이주’라는 공통의 배경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한국 생활 3년, 그사이 여러 지방을 떠돌며 살았어요. 남편은 일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어요. 일자리 알선 브로커에게 돈을 뜯긴 일도 여러 번이고,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청에 가기도 했어요. 이집트인이라서, 또 불안정한 체류 자격 때문에 무시당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기도 했어요. 나도 일하고 싶지만 아직 기회가 없었어요. 한국 회사들은 히잡 쓴 여자를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나 봐요. 덕분에 한국어 공부할 시간을 얻었으니 열심히 배워 일을 찾고 싶어요. (224페이지)
생계가 달린 일 앞에서 인정받을 시간을 기다리면서 또 다른 생활고에 시달린다. 난민 심사를 3년째 기다리는 이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다른 방법도 없다. 인정받고 제대로 된 삶을 꾸리려면 결과를 기다리며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을 주는 이도 없다. 얼마나 답답할까. 그 와중에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견뎌야 한다. 이주민이라고 모두가 똑같지는 않을 테다. 국적, 배경, 이주의 목적 등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사회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시선은 비슷하다. 부당함 역시 이들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새로운 사회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도 전에 혐오를 먼저 느끼기도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우리가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에 빠진 것은 그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 그런 건 아닐까. 이 책의 제목처럼,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과 차별을 이제는 바로 봐야 할 때인 듯하다.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이, 거리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을 그냥 관광객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살면서 다문화를 이룬 가족,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관광객과 다르게 보는 모습에 뭔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이다. 나 역시 이주민을 보는 마음이 어땠는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주변의 타인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나와 다른 삶, 그들의 목적에 맞는 생활을 꾸리고 있는 누군가 정도로 생각했다. 이 책으로 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읽게 된 기분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들 나라로 돌아갈 목적이더라도 이 사회에서 똑같이 노동하고 생활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특히 사업자가 외국인 인력 고용을 관리하는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가 분명 있을 테지만, 이 제도의 악용도 뚜렷했다. 이 제도 때문에 노동자는 마음대로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업주는 이 제도를 악용해 노동자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노동자의 가족 역시 동반 입국이 안 된다. 사업주가 아무리 잘못해도 노동자가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이 이주노동자에게 억울함을 주겠지.
듣다 보면 몰랐던 이주민의 삶에 아픔을 같이 느낀다. 차별을 알면서도 숨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함께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오려고 했던 목적이 분명해서 말이다. 이주민의 이런 고충은 성인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이주 청소년의 삶을 더 혼란스러웠다. 이주 배경 학생 수가 전체 학생의 3%를 넘는다고 하던데, 앞으로도 이 비율을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다문화, 이주민의 적응에 같이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현실에 그에 발맞추지 못해서 지금도 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의 마음을 더 읽어야 할 때이다.
시골에서 농사하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평소에도 일손에 가담하고 있는 이들의 많은 수가 이주민이다. 농사철이 되면 더한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때마다 시에서는 일반 실직자나 이주민 노동자를 농사하시는 분과 연결해주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농사에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커졌다. 가끔 몇 시간씩 나도 농사라고 불리는 일에 참여하곤 했지만, 정말 힘들다. 최저임금으로 고된 일을 해내면서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열악한 거주 환경까지 이들을 힘들게 한다. 때로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부당함과 혐오의 시선까지 감당해야만 하는 이들의 삶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 제도를 관리하는 기관이 있기에, 이주노동자의 여러 문제를 국가가 나서고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닐까. 거기에 우리를 비롯한 사회의 관심은 필수이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공존을 인정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세상에는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사람도 있고 찍어 먹는 사람도 있잖아요. 너는 왜 나처럼 안 먹느냐고 비난해봤자 소용없죠. 서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니까요. 다문화든 아니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외모가 어떻든 나와 다르다고 해서 미워하고 싸워야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어요. 우린 다 똑같이 ‘사람’인데요. (46페이지)
지금도 이주민을 향한 나쁜 말들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종종 듣는다. 이주민이 오면 한국이 망한다고, 우리 고유의 민족은 점점 사라지고, 이주민들이 대한민국을 차지할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가 이주민 없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이 돌보미부터 우리의 식탁을 책임지는 시골의 농사일, 산업 현장의 노동자까지, 우리 삶 곳곳에서 이들을 본다. 어느 한순간 이들이 이 공간에서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단순히 이들이 사라지면 우리 사회가 멈추니까 붙잡고 있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제 한국 사회가 이주민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듯이, 이들도 이제 우리 곁에서 그들의 삶과 꿈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뿐이다. 그동안에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이주민의 삶, 현실을 이렇게 듣고 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지고, 공감하게 된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한 개인의 삶으로 보고 싶어진다.
24명의 다른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주민에 대해 참 무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E-9, E-7같은 비자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되었다. 이외에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173p에 많은 논란이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는 등 이주민들에게 호의적인 방향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비판적으로 읽어야
24명의 다른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주민에 대해 참 무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E-9, E-7같은 비자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되었다. 이외에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173p에 많은 논란이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는 등 이주민들에게 호의적인 방향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체류를 허가받지 못해 유령처럼 살아가는 아이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으로 왕따를 당하고, 한국으로 귀화했지만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 이제 그들이 '함께' 나아가기 위해 목소리를 내려 한다.
책은 이주노동자, 이주 배경 청소년, 결혼 이주민, 귀화 이주민, 난민 등 한국에서 '이주'라는 공통점으로 살아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체류를 허가받지 못해 유령처럼 살아가는 아이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으로 왕따를 당하고, 한국으로 귀화했지만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 이제 그들이 '함께' 나아가기 위해 목소리를 내려 한다.
책은 이주노동자, 이주 배경 청소년, 결혼 이주민, 귀화 이주민, 난민 등 한국에서 '이주'라는 공통점으로 살아가고 있는 24명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주민들이 화자가 되어 그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며 겪어왔던 일들을 읽어내려갈 때면 한국인으로서 너무 부끄러워 고개가 저절로 숙여질 정도였다. 특히 '고용허가제'는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외국에서 인력을 모집해 국내 중소업체에 소개하는 제도인데, 고용주가 계약을 해지해 줘야만 노동자가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를 찾을 수 있다는 아주 큰 허점이 있다. 이걸 이용해 고용주는 이주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핍박하며 24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밤낮없이 일해도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에 독한 약품으로 눈이 멀어가고 몸에 종양이 생겨도 고용주가 허락해 주지 않으면 병원도 회사도 그만둘 수 없는 악법. 그런데 이 법은 두 번이나 합헌 판결을 받아 여전히 이주노동자를 고통의 시간으로 몰아넣고 있다.
문화와 전통, 사고방식과 종교의 차이로 갈등이 깊어지는 이주 1세대 부모와 한국생활에 익숙해진 자녀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고 살 곳을 찾아 전철로 이사하는 이주노동자 부부, 한국에서 12년간 성실히 일해 E-7비자(숙련기능인력)를 받았지만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비자 연장의 조건으로 더욱 열악한 근무환경과 임금을 강요하는 고용주들, 거기다 고용허가제 노동자는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고 가족 초청도 할 수 없기에 늘 외로움과 슬픔의 사투를 벌여야 한다. 다행히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고 도움을 주려는 아동센터 선생님들과 이주민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인권단체들의 활동을 보며 참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나도 역사적 사건들로 반일감정이 있었고, 이주민이나 난민들이 일으키는 끔찍한 사건에 반감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넘어 혐오로까지 닿지 앓길 바라게 된다. 전쟁과 탄압, 가난과 고통을 피해 한국을 택한 수많은 이주민들이 더 많았고 한국에 짐이 되기 보다 한국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정중하고 간절하게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있었다. 우리도 이제 '함께' 하는 사회에 두 손을 조심스레 마주 잡아 보는 걸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