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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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순례

리뷰 총점 9.0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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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독일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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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성공할 수 없었던 순례 평점8점 | q*****2 | 2014.04.07 리뷰제목
그 결맹은 처음부터 정체가 모호했다. 공통의 목적이 있는 듯 했지만 내부 조직원들은 그보다 앞서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하나 됨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이한 것을 순례의 목적으로 언급하는 정도의 개성은 지녀야 한다는 식으로 굴었다. 나는 순례단이 좌초할 거라 굳게 믿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제멋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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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맹은 처음부터 정체가 모호했다. 공통의 목적이 있는 듯 했지만 내부 조직원들은 그보다 앞서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하나 됨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이한 것을 순례의 목적으로 언급하는 정도의 개성은 지녀야 한다는 식으로 굴었다. 나는 순례단이 좌초할 거라 굳게 믿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제멋대로 구는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키기 위한 어떠한 기제도 작동치 않는 듯한 조직이 잘 굴러간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싫었다. 그들의 내면에 동방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가득했다 하여도, 현실은 동경만으로 부닥쳐서는 안 되는 날카로운 것임을 그들이 알아줬으면 했다.

그러나 일은 내가 예측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많고 많은 순례자 중 조직으로부터 낙오를 경험한 이는 레오였다. 저자는 분명 사라진 인물 레오를 찾아 헤매는 심경에 대해 줄곧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레오의 정체를 끊임없이 파헤치도록 만든다. 레오는 사라지면서 없어져서는 안 될 것들을 갖고 갔다. 그가 의도를 갖고 조직에 잠입해 중요한 문건을 훔쳐 달아났다고 몇몇 이들은 주장했는데, 그 주장은 결코 이상하지가 않았다. 의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순례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중요한 문건을 들고 사라진 레오의 존재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순례를 하려는 자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H.H.라 언급되는 저자와 함께 조직으로부터 이탈해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야 만다. 이것은 우리가 바란 바가 결코 아니었다. 차분히 H.H.를 따르는 것으로 우리는 순례자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또 많은 이야기들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고는 해 왔다. 그런데 저자는 친절하지가 못했다. 그를 믿고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순례로부터의 이탈을 선사하고야 만 저자에 대한 원망감이 살짝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레오에 의해 평가 받는 그 시점까지도 H.H.와의 결합을 포기치 않는다. 현실의 노예가 되어 바이올린마저도 팔아버린 H.H.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사실 어렵다. 그는 비록 조금은 이상한 형태를 띠긴 했으나 조직을 들어올 때 맹세했던 것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레오가 보여준 행동들로부터 어떠한 의미를 읽어내는 데 실패했다. 낙오자는 레오가 아닌 H.H.였고, 그런 H.H.를 철저히 따른 우리 자신 역시 낙오자였다.

동쪽에는 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저자 헤르만 헤세가 이 책을 집필하던 시점인 1932년, 동양은 더 이상 서양인들이 막연히 동경하던 이미지를 지니지 못했다. 오히려 서양에 의해 철저히 수탈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열악하고도 낙후된 공간으로 서양인들에 의해 무시 당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을 이상적인 공간인 양 설정하고 그 공간을 향해 떠나고자 하는 순례단을 저자는 창조해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외세에 의한 파괴를 피하지 못했지만, 그 곳에는 서양인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현실을 초월한 이상이 있었다. 물론 동양인이라 하여 모두 그러한 이상을 추구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내세에서의 출세를 위해 서양인들보다 더 서양인인 것 같은 삶을 살아가기도 했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더욱 저자는 모두가 등한시하는 이상향을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따르고자 안간힘을 쓰는 기이한 순례단을 창조해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분명 자신을 본따 만들었을 인물 H.H.에게 쓰디쓴 실패를 맛보도록 이야기를 설정해 본질적인 것을 획득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모두에게 암시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일 수도 있다.

오늘날에는 더더욱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가 적다. 현실에 경도된 나머지 이상을 추구하는 이들은 거의 없고, 혹 그런 이들이 있다 하여도 철없는 몽상가라는 공격을 받기 일쑤다. 언젠가 심판대에 섰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어떠한 변론을 펼칠 수 있을까. 날카로운 평가로 H.H.를 떨게 했던 레오는 아마도 우리에겐 더욱 쓰디쓴 독설을 내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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