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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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리뷰 총점 9.6 (57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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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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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여운 가득한 표현 속에 담겨진 따뜻한 마음들/ 다산책방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j****3 | 2024.04.03 리뷰제목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따뜻한 풍경이 펼쳐지는 이야기가 가슴에 다가왔다. 섬세한 심리를 간접적으로 표현해 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무슨 일이든지 간접적으로 얘기해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언어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가령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처음 머물면서 실수를 한 일을 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어른의 실수로 치장해 아이가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표현을 사
리뷰제목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따뜻한 풍경이 펼쳐지는 이야기가 가슴에 다가왔다. 섬세한 심리를 간접적으로 표현해 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무슨 일이든지 간접적으로 얘기해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언어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가령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처음 머물면서 실수를 한 일을 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어른의 실수로 치장해 아이가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표현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도시의 한 가정에서 어딴 부부가 아이는 많고 물질적으로 무척 어렵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의 엄마가 또 아기를 가졌다. 그래서 한 아이를 먼 친척이 되는 집에 한 여름을 맡기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소녀는 자신의 집을 떠나 일정 시간 동안 시골의 한 가정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안다. 아이가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는 환경을 이해하고 그것을 수용한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기대감과 힘겨움이 동시에 갖는다. 소녀가 가는 곳은 무척 목가적인 풍경을 지닌 곳이다. 소냐가 그는 집에는 킨셀라 아저씨와 아주머니 둘만 살고 있다.


소녀는 그곳에 처음 머물면서 어려운 마음 상태가 된다. 킨셀라 부부가 아무리 잘 해줘도 마음에 부담이 작용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행동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무언중에 느끼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아이가 잘 적응하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지닌다. 미처 준비를 해오지 못한 것은 보충해 주고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안내도 한다. 소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적당한 일도 함께한다. 따뜻한 마음이 서로의 관계를 익숙하게 만들어 가도록 한다. 소녀가 그곳에 있길 원한다면 언제까지나 있어도 좋다고 얘기도 해준다.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p17


소녀가 집안 사정으로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지는 상황에 드러난 마음이다. 집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어린아이의 입장에서는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용하리라. 그것을 잘 포착해 저자는 그려내고 있다. 또한 집의 어려운 사정에서 떠나 마음이 편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기대감도 드러난다. 미묘한 소녀의 심리가 잘 표현된 부분이다. 아마 집에서 떠나 타인의 집에 기거하게 되는 소녀의 섬세한 마음이 이 작품의 맛을 크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랴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시골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성도 좋아질 수 있게 되는 마음 다스림을 하는 소녀의 정신적 성장이 그려진다. 소녀를 키우는 부부의 따뜻한 마음도 소녀의 성장에 맞춤 형태의 도움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글의 배경은 아일랜드로 되어 있다. 소녀가 생활을 해나가는 공간이다. 시골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킨셀라 부부의 배려하는 마음들이 다양한 언행으로 나타나고 따뜻한 분위기가 되고 있다. 그것들이 이 작품의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까 한다. 소녀가 낯선 곳에서 생활하면서 두려움과 어려움을 느낄 수가 있는데 그렇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이 배려하는 마음이다. 소녀가 시골에 적응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소녀는 비교적 낯선 분위기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다. 아저씨가 베풀어 주는 생활에 적응하게 하는 우편함까지의 달리기, 아주머니가 함께해 주는 우물을 긷는 방법 등이 시골 생활의 도움이 된다. 그것은 결국 생활을 익숙하게 하고 자생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소녀가 옷이 없어 시장에 가서 옷을 구입하면서 정을 돈독히 하기도 하고, 종교적 시설에 같이 가면서 타인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한다. 시장에 옷 사러 가서는 킨셀라 부부가 아들을 가지고 있었고 잃었다는 아픈 사연을 알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베푸는 정겨움의 일단을 이해하기도 한다.


소녀는 시골에서의 생활에 추억을 쌓아간다. 그것이 아마 앞으로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집의 아이들도 시골 할아버지 집에 더러 가도록 했다. 그곳에서 흙과 살면서 나무들도 익히고 강물에서 고기들을 잡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 한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성장하면서 건강한 추억이 되고 삶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시골에서 성장할 수 있다면 아이들에겐 그것을 권장하고픈 마음도 있다. 이 글 속에서의 소녀도 한 여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 그것이 아마 삶의 소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소녀의 집에서 남동생이 태어나고 소녀가 학교에 갈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집에 데려다 준다. 소녀는 아쉬움을 느끼며 그들과 헤어진다. 킨셀라 부부도 언제든 다시 시골에 와도 된다고 해준다. 헤어짐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들이 정겨운 분위기를 마련한다. 읽는 내 마음도 훈훈해 진다.


저자는 이 글에서 자신의 판단을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파악하도록 하는 중심 흐리기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나 행동들을 독자는 그들의 언행을 통해서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해야 한다. 마지막에 사용된 아빠의 중의적인 의미도 그런 한 가지 요소일 게다. 은은하고 따뜻한 이미지가 그들로 인해 더욱 사랑으로 영글어져 온다.


작가의 시선이 내 마음의 한 부분에 들어와 소녀를 통해서 말을 건다. 세상은 그리 혼탁하고 피곤한 곳만은 아니라고. 소녀의 눈을 통해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이 전해지며, 살만한 세상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행복한 읽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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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유령의 세계에 사는 우리는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s*****l | 2023.07.15 리뷰제목
굵은 빗줄기가 훑고 간 도시의 주택가는 마치 커다란 습식 사우나로 변한 듯 후텁지근합니다. 도시에 사는 떠돌이 비둘기 떼가 먹이를 찾아 아파트 이쪽 동에서 저쪽 동 옥상으로 비행을 하고, 금세라도 비를 뿌릴 듯하던 하늘은 구름 사이로 빼꼼 푸른빛이 감돌고 있습니다. 비라면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고 하는 사람들. 그러나 며칠째 이어지는 비구름은 쉽게 물러나고 싶은 생각이 없
리뷰제목

굵은 빗줄기가 훑고 간 도시의 주택가는 마치 커다란 습식 사우나로 변한 듯 후텁지근합니다. 도시에 사는 떠돌이 비둘기 떼가 먹이를 찾아 아파트 이쪽 동에서 저쪽 동 옥상으로 비행을 하고, 금세라도 비를 뿌릴 듯하던 하늘은 구름 사이로 빼꼼 푸른빛이 감돌고 있습니다. 비라면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고 하는 사람들. 그러나 며칠째 이어지는 비구름은 쉽게 물러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긴 장마 덕분에 나는 퇴근 후 시간이 날 때마다 밀려 있던 책들을 마저 읽었고, 빗소리를 들으며 이따금 오래된 추억들을 소환하여 시간의 순서를 아랑곳하지 않고 뒤죽박죽 늘어놓았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 역시 장마로 집에 묶이지 않았더라면 표지만 보고 무심히 흘려보냈을지도 모르는 귀한 책이었습니다. 인연이란 이렇듯 반드시 만나야 할 것들을 어떻게든 만나게 해주나 봅니다.

 

"나는 아까 이 집에 도착했을 때처럼 집시 아이 같은 내가 아니라, 지금처럼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뒤에서 아주머니가 지키고 서 있는 내가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다음 머그잔을 물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온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p.30)

 

아일랜드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로 알려진 클레어 키건의 몇 안 되는 작품 중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맡겨진 소녀>는 1981년 아일랜드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쓰인,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작품입니다. 무뚝뚝하면서 애정이 없는 아빠와 집안일과 여러 자식들을 돌보느라 늘 삶에 쫓기고 허덕이는 엄마 밑에서 태어난 까닭에 "네"라는 대답조차 온전히 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란 '나'는 엄마의 출산을 앞둔 어느 날, 아이가 없는 먼 친척의 집에 맡겨지게 됩니다. 서둘러 오느라 변변한 옷가지도 챙겨 오지 않았던 아빠는 '나'를 마치 귀찮은 짐짝처럼 낯선 친척 집에 떨어트려 놓고는 훌쩍 떠나버립니다. "불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너."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나'를 떠맡게 된 킨셀라 부부는 첫날 매트리스에 오줌을 싼 '나'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은 물론 달리기 연습을 시키기도 하고, 잠들기 전에 귀지 청소를 해주는 등 이제껏 집에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애정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킨셀라 부부의 정성어린 돌봄과는 다르게 인근의 이웃들은 처음 보는 소녀에게 과한 호기심을 보이며 상처를 주곤 합니다. 평온하고 특별하지 않은 하루하루가 그 전날과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달이 다시 나오자 아저씨가 램프를 끄고, 우리는 달빛 속에서 사구를 내려왔던 길을 쉽게 찾아 따라간다. 사구 꼭대기에 도착해서 신발을 신으려 하자 아저씨가 나를 말리며 직접 신겨준다. 그런 다음 자기 신발을 신고 끈을 묶는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멈춰 서서 바다를 돌아본다. "보렴, 저기 불빛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 세 개가 됐구나." 내가 저 멀리 바다를 본다. 아까처럼 불빛 두 개가 깜빡이고 있지만 또 하나가, 두 불빛 사이에서 또 다른 불빛이 꾸준히 빛을 내며 깜빡인다."  (p.75)

 

어느 날 킨셀라 부부와 함께 상갓집에 들렀던 나는 한 이웃으로부터 킨셀라 부부에 대한 비밀을 듣게 됩니다. 지금의 '나' 정도의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에 대한 부부의 친절과 환대는 아들을 잃은 것에 대한 보삼 심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섣부른 판단과 왜곡된 시선과는 다르게 킨셀라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나'나 부모님이 원하는 날짜에 언제든 보내 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와 함께 짧고 행복했던 '나'의 날들도 끝이 났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 번째 빛. 나는 내 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p.96)

 

작가인 클레어 키건은 이 짧디 짧은 소설을 통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문자 텍스트가 아닌 여백 텍스트로 존재할 뿐이지만, 여기에서 파생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어느 독자에게서 다른 독자에게로, 한 명의 비평가로부터 다른 비평가에게, 혹은 키건의 소설을 그저 이야기로 전해 들은 어느 행인으로부터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면서 새로이 만들어지고, 부풀려지고, 오늘 내리는 빗물처럼 흘러넘쳐서 결국에는 이야기의 바다에 이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킨셀라 아저씨는 말했습니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입니다.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진심을 전할 상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 인터넷 세상에는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없는 빈 말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처음부터 갖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대화가 사라진 유령의 세계에 사는 우리로서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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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오래 전 그 소년은... 『맡겨진 소녀』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n******i | 2023.06.09 리뷰제목
큰 조카(큰 언니의 아들)를 10년 가까이 키웠다. 그 당시에는 가족이 모두 같이 살았으니,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키웠다는 말이 맞겠다.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함께 사는 동안, 가족 모두가 바라는 건 한 가지였다. 이 아이의 몸과 마음이 올바르게 자라주기를, 부모가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해서 고개 숙이지 말기를, 공부까지 잘해준다면 앞으로의 성장에 햇살이 비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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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조카(큰 언니의 아들)10년 가까이 키웠다. 그 당시에는 가족이 모두 같이 살았으니,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키웠다는 말이 맞겠다.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함께 사는 동안, 가족 모두가 바라는 건 한 가지였다. 이 아이의 몸과 마음이 올바르게 자라주기를, 부모가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해서 고개 숙이지 말기를, 공부까지 잘해준다면 앞으로의 성장에 햇살이 비춰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큰 조카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자기 엄마와 살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우리는 걱정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다면, 키우는 게 당연하다. 낳았으니 키우는 게 의무일 테고, 사회적인 책임을 배제하더라도, 미성년 아이에게 일어난 일 대부분 역시 부모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 누구도 큰 조카가 자기 엄마랑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가 큰 조카를 돌봐야 했던 이유와 같다. 낳았다는 것 말고는 부모의 자격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부모의 자격이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는 거냐고 따지고 든다면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가 아는 일반적인 생각의 기준이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그러니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정의 여의치 않아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자기가 데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모의 역할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 그게 소녀의 부모였다.

 

어느 여름, 아빠의 트럭은 먼 친척 집 마당에서 멈추고, 차에서 내린 소녀는 그 친척 집에 맡겨진다. 아빠는 소녀의 손 한번 잡아주지 않고,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남겨두고 떠난다. 사랑스러운 딸을 두고 가는 아쉬움은 하나도 없이, 마치 귀찮은 일 하나 해결했다는 태도였다. 소녀의 엄마가 곧 출산을 앞둔 상황에서 돌봐야 할 아이 하나 남에게 떠맡기고 가는 거였다. 남의 집 사정이야 다 알 수 없지만, 어려운 형편이라 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서, 또 태어날 새로운 아이의 등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려운 형편에 자녀가 많더라도, 그 자녀들에게 사랑 듬뿍 주면서 키우는 부모도 많더라만, 왜 다 주지도 못할 사랑에 무책임하게 아이만 낳는 것인지. 태어날 아이가 그 집에서 어떻게 자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쓰리다.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진 소녀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부족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자라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소녀의 부모가 소녀를 친척에게 맡긴 것을 화내야 하는데, 이 상황이 소녀에게 어떤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킨셀라 부부가 소녀에게 보여주는 진심과 사랑에 울컥해지기를 여러 번, 이 부부에게 사연이 있을 것 같지만 지금 그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소녀와 킨셀라 부부, 이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궁금해질 뿐이다. 소녀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따뜻함이 이 부부에게 뿜어져 나온다. 아마도 소녀의 부모는 소녀가 낯선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지 관심조차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 이쯤 되니 소녀의 부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도 관심 없어진다.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소녀가 무엇을 발견하고 이 짧은 시간 동안 어떤 성장을 이뤄낼지 기대되는 건 나만은 아닐 터. 어차피 소녀의 부모는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하니, 소녀가 킨셀라 부부의 아이가 되는 것도 좋은 거 아닌가.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나는 도저히 이 부부의 진심과 다정함을 놓을 수가 없어서 그런지, 자꾸만 소녀의 현재와 미래에 이 부부의 인성이 그대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멈추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간 소녀가 마주한 것은, 차에서 내리면서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아버지와 같은 거였다. 소녀의 변한 옷차림에 부러워하면서도 어두운 표정의 언니들, 이 상황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어린 동생들, 킨셀라 부부에게 고마움도 모르는 부모. 그 분위기 속에서 불편해진 킨셀라 부부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뗀다. 이렇게 끝인가? 소녀는 부모에게 남겨지고, 킨셀라 부부는 떠나고. 정말 이렇게? 소녀가 킨셀라 아저씨에게 훈련된 달리기는 이 순간 빛을 발한다. 떠나는 부부를 향해 뛰어간다. 아저씨를 끌어안으며 흠뻑 취한다. 같은 말이지만 다르게 부르는 그 이름을 외치면서. “아빠아빠이지만 아빠가 아니고, 아빠가 아니지만 아빠인 존재들을 부르며 소녀는 온 마음을 다한다. 그 여름 킨셀라 부부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 짧은 시간 동안 소녀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을 의미들을, 사랑과 따뜻한 마음을.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을 제외하고 나면,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부모가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거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더해진 노력,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을 항상 고민하는 태도가 부모의 자세이고 책임이라는 것을 아는 정도면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곧 서른이 되어가는 큰 조카는, 경제적인 이유로 남들보다 조금 늦은 졸업을 했고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용돈을 벌어서 학교에 다녔으니, 이 아이의 경제활동은 꽤 오랜 시간 계속된 셈이다. 이제는 자기 인생을 책임질 기반을 다져야 하고, 어려운 시기에 취업 활동을 계속했다. 며칠 전,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서 좋은 소식을 듣고 다들 눈물바다였다. 우리 가족에게 항상 아픈 손가락이었고, 누구보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이 아이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못했기에 늘 걱정이었다. 이제는 취직도 했으니 좋은 일만 있겠지 싶은 마음에 안심한 것도 잠시, 부모라는 존재는 이 아이에게 또 다른 짐을 지워주고 있다. 입버릇처럼, 큰조카가 고아였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싶은 마음이 불쑥 치밀어 오르지만, 부모가 있는 아이에게 나는 그저 친척인 현실이 눈앞에 있을 뿐. 이런 나를 볼 때마다 남동생은 냉정하게 말한다. 이 아이의 성장에서 우리가 안부를 묻고, 가끔 밥을 같이 먹거나 용돈을 줄 수는 있어도, 이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다고. 이 아이가 자기 인생을 먼저 챙기기를, 도움에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아줄 어른으로 존재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 생각하곤 한다.

 

한때 외가의 가족들에게 맡겨졌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이모 삼촌과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뭔가 더 해줄 게 없는지 찾게 하는 존재로 남아있다는 게, 나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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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두 번을 읽고서야 평점9점 | YES마니아 : 로얄 j*****3 | 2024.01.06 리뷰제목
작가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먼저 읽었다. 이 책에 쏟아진 작가에 대한 찬사는 다른 작품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맡겨진 소녀>를 알게 되었다. 2009년 출간된 이래로 교과 과정에 줄곧 포함되어 아일랜드에서는 모두 읽는 소설로 자리 잡았으며, 영화 [말없는 소녀]로 2023년 5월에 우리나라에 개봉되었다는 것도. 책과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정보가
리뷰제목

   

  작가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먼저 읽었다. 이 책에 쏟아진 작가에 대한 찬사는 다른 작품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맡겨진 소녀>를 알게 되었다. 2009년 출간된 이래로 교과 과정에 줄곧 포함되어 아일랜드에서는 모두 읽는 소설로 자리 잡았으며, 영화 [말없는 소녀]로 2023년 5월에 우리나라에 개봉되었다는 것도. 책과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읽기 시작했다. 그것에 더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먼저 읽은 탓일까? 제목에서 착취당하는 소녀를 먼저 떠올렸고, 읽는 내내 다정한 사람들에게서조차 불안함을 느꼈다.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저들을 믿어도 될까? 책장을 덮으면서 내 사고가 너무 부정적인 것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무섭다고 하지만 선한 사람들이 더 많은데, 책 속에서조차 왜 그렇게 불안해했는지, 그런 내 모습을 만난 것이 조금은 충격이었다. 

 

그 충격에서 조금 벗어난 후에 다시 한 번 읽었다. 문장 하나 하나에 집중하면서. 놓쳤던 문장들을 발견했고, 감상의 포인트도 조금씩 달라졌다. 다섯 째 아이를 임신한 엄마는 집안일까지 도맡아야하는 힘든 상황이라 소녀를 여름 한 철 동안 먼 친척에게 맡겼다. 아빠의 차를 타고 친척집에 도착하고, 친척 부부와 함께 생활하고, 개학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나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p 69~70

 

내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모든 상황들은 그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따뜻한 보살핌이었다. 그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소녀는 실제 가족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평화와 사랑을 느꼈다. 아저씨와 함께 바라 본 바다에서 멀리 반짝이던 두 개의 불빛 사이에 또 다른 불빛이 깜빡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과의 관계가 가족이 된듯 돈독해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래서, 그들과의 이별은 아플 수 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우편함까지 뛰어가서 우편물을 가져오게 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의아했는데, 마지막 장면을 위함이었구나 싶었다. 소녀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려지다보니 소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따라갈 수 있었는데, 소녀와 동일시되면서 작품에 더욱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이동진이 <맡겨진 소녀>에 대한 리뷰를 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봤다. 마지막 두 문장을 독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거라고 했는데, 소설의 많은 부분들이 이 문장으로 모아지는 듯했다. 맡겨진 소녀의 진심이 이 문장에 담겨있었을 거라고 난 생각했다. 

 

소녀의 삶은 이 가족과의 한 철을 보낸 후 많은 것이 바뀌지 않을까? 실제 가족과 함께 하는 생활은 큰 변화는 없겠지만 마음 속에 한 번 차오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거라고 믿고싶다.  두 번째 읽으면서 소녀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왜 이름을 주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몇 문장이 남았다. 그 부분들은 영화를 보면 해결할 수 있을까? 소설을 그대로 그려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봐야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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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2024-055] 한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풍경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m******1 | 2024.02.24 리뷰제목
따뜻함이 그립다는 건 누군가로부터 사랑과 친절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막막하고 차가운 현실이 지속되다 보면 그것이 일상인 듯 익숙해집니다. 누군가에게 말 못 할 비밀이 많아지고, 진실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더욱 중요한 덕목이 되곤 합니다. 실제로 '자유'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답답하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이나 그 사회의 문화나 분위
리뷰제목

 

따뜻함이 그립다는 건 누군가로부터 사랑과 친절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막막하고 차가운 현실이 지속되다 보면 그것이 일상인 듯 익숙해집니다. 누군가에게 말 못 할 비밀이 많아지고, 진실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더욱 중요한 덕목이 되곤 합니다.

실제로 '자유'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답답하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이나 그 사회의 문화나 분위기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다양한 감정을 발설하고, 그것이 수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의 유무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과 성품은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여기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가정이 있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하는 두 가정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언어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감정의 온도차는 그대로 느껴집니다. 존재 자체가 귀하게 받아들여지는 곳에서는 어떤 실수도 용납됩니다.

아일랜드의 작가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의 작품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입니다. 작품이 펼쳐지는 배경 묘사는 다채로운 빛을 드러냅니다. 화려하고 섬세하며 역동적입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절제됩니다. 제한적인 설명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작가의 여백은 독자의 창작으로 이어집니다. 작품에서의 빈 공간을 독자들이 채워갑니다. 그리하여 키건의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함축적인 문장들은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새롭게 다가옵니다. 독자들이 숨죽여 그의 글을 읽게 만듭니다.

이 책 『맡겨진 소녀』는 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두 가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황. 시원한 설명 없이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친척의 집은 어떤 사정이 있는지', '자신은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를 아이는 알지 못합니다.

흐릿하지만 불안과 두려움은 점차 따스함으로 채워집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배려와 친절이 의아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가 뚜렷해집니다. 불분명한 경계 속에서도 소녀의 감정은 점차 분명해집니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가정이지만 그곳에서도 꼭꼭 숨겨놓은 비밀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같기도 합니다. 마음 한구석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인생의 큰 전환을 가져올 만큼 중차대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건을 어떻게 통과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묘하게도 극적 장면이 적은데 가슴은 조마조마합니다. 키건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 듭니다. 두려움과 불안을 함께 느끼며. 이야기의 소녀가 됩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 앞에서 뛰어놉니다. 이것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느낌일까 고민해 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짧지만 여운이 오래갑니다. 섬세하고 간결한 문장들의 연속에서 복잡하지 않은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절제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분명하지 않았던 정서의 묘사는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명확해집니다. 독자들은 그 감정선을 함께 따라갑니다. 작가의 다른 이야기가 무척 듣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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