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리적 세계에도 살고 있지만, 화학적 세계에도 살고 있다. 물론 생물학적 세계에도 살고 있다. 어쩌면 말장난 같지만,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의식하는가는 상당히 중요하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도 같다. 한 관점에서만 세계를 바라보면 다른 관점의 세계는 하잘 것 없어 보이기도 하고, 혹은 너무 엉성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세계는 하나의 세계다. 서로 다른 수준과 관점에서 바라볼 뿐 같은 세계이고, 서로 얽혀 있다. 그리고 다른 관점은 익숙하게 여겼던 세계를 달리 바라보게도 한다.
김병민의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은 우리의 세계를 물질의 관점, 그리고 화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니까 물리학에서처럼 양성자를 쪼개면서 근원 물질까지 파고들어가기 보다는 원자가 전자를 얻고 주고받으면서 화합물이 되고, 그 화합물이 반응을 하고, 어떤 특정한 성질을 나타내어 우리의 삶에 이용되거나, 혹은 어떻게 해를 끼치는지를 탐구한다는 얘기다.
책은 매우 안타깝고 충격적인,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건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바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꽤 오래된 사건으로, 또 일단락된 사건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도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속되고 있고, 소송도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의 사건이다. 수백 만 명이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산되고, 실제로도 50만 명 가량이 증상을 나타냈으며, 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난, 정말 큰 사건이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PHMG)과 피프로닐(Fipronil)이라는 물질이 있다. 저자는 이 물질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떻게 이 물질을 쓰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며 화학에서 물질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을 기업과 개인,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많은 물질을 얘기하고 있다. 아니 그런 것 같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에 비하면 아주 제한된 물질만을 얘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주로는 원리를 중심으로 얘기하고 있어 ‘거의 모든’ 물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모두 요약할 수도 없으니, 자주 반복하고 있는 몇 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우선 “화학의 전자의 학문”이라는 것이다. 화학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원자에서 양성자 주위를 돌고 있는(정확히는 확률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전자다. 그리고 그 전자를 주고 받으며 결합하고, 분해되는 과정이 화학에서 가장 중심이라는 얘기다. 화학자들은 이런 관점이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화학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이런 설명은 화학이라는 과학의 분과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래, 원소가 안정된 상태에 비해 전자를 한두 개 더 갖고 있는지, 모자르게 갖고 있는지부터 보면 된다는 거지!
또 여러 차례 반복하는 얘기는, “구조가 기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원소의 결합으로 분자를 이루고, 화합물을 이루었을 때 어떤 구조를 갖지는지를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한 얘기다. 이를테면 포화지방산이라든가, 불포화지방산이라는 이제는 아주 익숙한 용어를 보더라도, 왜 포화인지, 불포화인지만 알면, 그 구조가 짐작이 가고, 그 구조 때문에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원리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화학은 그래서 상당 부분 논리적인 학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구조만 보았을 때 기능까지 한 번에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물론 그때도 구조가 기능을 결정하긴 한다). 그런 경우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실험을 통해서 알아내야 하는데, 그래서 화학은 또한 경험적인 학문이기도 한 셈이다.
그리고 저자는 플라스틱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한다. 플라스틱의 발명은 인류에게 어마어마한 편리함을 주었다. 플라스틱의 영원함은 찬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영원함에 대한 찬사가 지금은 독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그 영원함이 미래를 삼키고 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에 관해서 진지한 사고를 계속해서 독려하고 있다. “지속가능한(sustainable)”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정말로 이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의 방향과 정부의 정책이 더 중요하다. 어떤 것이 더 영향력이 큰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유해성’과 ‘위해성’의 개념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하고 있으며, ‘안전한 물질’이라는 뜻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이야기한다. ‘유해성’이라는 물질 그 자체로 얼마나 해로운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라면, ‘위해성’이라는 그 물질이 어느 정도나 사람 등에게 해로움을 주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개념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약이 되는 물질도 많은 양을 쓰게 되는 해를 준다면, 그건 위해성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또한 ‘안전한 물질’이라는 개념 역시 중시하는 개념이다. 몇 차례 예를 드는 게 최근 스타벅스 등에서 플라스틱 빨대 대신에 종이 빨대를 쓰는 정책이다. 저자는 원래 빨대로 쓰는 플라스틱이 ‘안전한 물질’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안전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해당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 플라스틱 빨대는 분해되지 않고, 바다로 돌아가 고래와 거북의 몸 속에 축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천연’과 ‘인공’의 개념에 대한 시선도 자주 지적한다. 사람들은 ‘천연’이라면 좋은 것, ‘인공’이라면 꺼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얼마나 편향적인 시각이고, 잘못된(항상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아마도 물질의 화학에 대해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했을 터이지만, 초심자가 읽기에는 그래도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려움은 조금 복잡한 이름, 그리고 몇몇 반응과 개념 때문이지 메시지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차분히 앉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고, 어려운 것은 넘어가다 다시 돌아와 이해를 시도하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저자의 메시지다. 어마어마한 화학물질을 소비하고 있는 현대인으로서 물질의 화학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를 알 수 있다면 저자도 만족할 듯하다.
교양화학 좋아하시는 분들!! 여기 주목하세요!!
화학 도서 검색하면 책 찾기가 많이 어려운데, 교약화학책 좋아한다 싶으신 분들
제발 보세요,,, 숨겨진 보물입니다...
최근 화학관련 도서를 찾던 중에 (고등학생때 화학 제일 좋아했던 새럼, 요즘 추억분야 찾는중)
그나마 검색하면 나오는 『화학 연대기』를 구입했거든요? 근데 기회가되어
이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을 접했는데 진짜 재밌습니다,,꿀잼입니다!
우선 화학을 전공하는 스토리텔러(?) 저자인데
화학자치고 글을 잘 풀어서 쓰는 친절한 책을 사실
소설같은 다른 분야보다 찾기가 매우 어렵지만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은 해냅니다.
재밌다고 느낀 이유는
*- 화학공학 전공의 저자의 꽉찬 지식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
*- 작가가 꿈이었던 저자의 ‘서술력’
: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면 쉽게 어려운 화학 용어에 닿아서 지식이 뿜뿜 쌓이는 느낌!
읽어보면서 화학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서 배워가는 기분 좋은 느낌이 차오르는 도서.
꽤나 두꺼워 금방 읽어버리는 것에 그치지않고 읽어나갈 부분이 남아있음을 생각하면 더 좋다.
실생활과 연결된 화학적 이슈와, 전문가의 식견 그리고
이 모든 지식과 사건을 톺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어떤 시각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