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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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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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세계각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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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도롱뇽과 인간-탐욕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p*******t | 2010.11.10 리뷰제목
특이한 표지에 눈길이 가는 책 “도롱뇽과의 전쟁”. Karel Capek, 처음보는 체코작가 그리고 1936년 발표한 글. 유토피아 등등에 혹해서, SF를 좋아해서. 하지만,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에 저자는 말한다. “조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현실의 반영이다.” 인간의 끝 없는 탐욕과 종말에 대해 경고한다.    실론 사람들을 보며 “하느님이 저런 치들을 왜 만드셨는지는 영문을 모르겠소
리뷰제목

특이한 표지에 눈길이 가는 책 도롱뇽과의 전쟁”. Karel Capek, 처음보는 체코작가 그리고 1936년 발표한 글. 유토피아 등등에 혹해서, SF를 좋아해서. 하지만,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에 저자는 말한다. 조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현실의 반영이다.” 인간의 끝 없는 탐욕과 종말에 대해 경고한다.

 

 실론 사람들을 보며 하느님이 저런 치들을 왜 만드셨는지는 영문을 모르겠소”. 이런 사람이 보는 도롱뇽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도롱뇽들은 단지 칼을 원한다. “나이페, 나이페왜이지?

 

우스꽝스러운, 각국의 경쟁은 급기야 각 나라의 자연사마다 각자의 왕도롱뇽을 갖게 되고, 다른 나라의 왕도롱뇽들에 맞서 맹렬한 과학전쟁을 벌이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 희귀한 마이오세의 유물이 이제 와서 새롭고도 경이롭게 성공적 진화단계를 만끽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물론 인간의 욕심이 부른 결과이지만.

 

도구가 되어버린 도롱뇽 도롱뇽의 유지에 비용의 절감과 효율성의 향상과 돈벌이를 위한 생각 예술적인 감성이 없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절대 생각해낼 수 없습니다. 세상을 계속 돌아가게 만들고 싶다면 우리도 시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이익과 비용만을 생각하는 이들, 파멸의 시작, 도롱뇽 신디케이트의 건설.

 

격동의 시대, 문명의 사다리에 오르다. 도롱뇽에게 정규 교육을! 도덕적 지적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인간 문명에 위험의 경고로 도롱뇽 교육은 혁신학교와 명문학교로 양분화 된다. 어떤 쪽이 맞을까? 도롱뇽에 대한 사유재산 침해와 지적 존재의 자유의 대립과 어처구니 없는 인간의 광기는 도롱뇽에게는 인기 없는 위대한 도롱뇽신앙 그러나 인간 추종자들을 만들기까지 한다.

 

도롱뇽 관련 산업과 인간의 노동 아이러니다. 인간을 대체하기 위한 존재에게 도리어 종속되어 살아가야 하다니. 하지만, 문명이라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발명품을 활용하는 능력이 아닌가 이제는 도롱뇽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도롱뇽들과 인간들의 교전과 여러 국가들을 위한 대리전투, 영국과 프랑스 도롱뇽과 전투하고, 전면전으로 치달아 가지만, 영국법에는 도롱뇽을 고용과 구입을 할 수 없다. 겉과 속이 다른 정부, 없는 도롱뇽들이 어떻게 싸우나. 도롱뇽의 신체적 변이를 인종적으로 순수하며 독창적인 독일 도롱뇽로 선전한다. 인간들은 우월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 불쌍한 동물을 이용한다. 분명히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것이다.

 

인류의 몰락, 인류 역사의 에필로그를 쓸 때가 마침내 온 것이다. 말기증상과 윤리적 고뇌들이 가득하다. 우리는 우리와 타자를 관념적인 상위의 본질로 묶는 인류라는 허구를 창출했다. 모든 민족, 국가, 계급, 계층에서 단 하나의 인류, 단 하나의 질서를 창출하겠다는 꿈이 가능 한가. 공생에 약하고 영원히 와해되는 대형 유기체인 인류의 만성질환이 다시금 만연할 시점에 도롱뇽들은 자기 존재(단일하고, 거대한 동질적 전체로서 존재를 과시)를 주장한다. 그들은 철학이 없어도 살고, 죽음 이후의 삶이나 예술이 없어도 잘 산다. 지구의 지배권을 접수한 도롱뇽은 인간문명을 통째로 물려 받아 행복한 신세계를 건설할 것인가?

 

X의 경고, 도롱뇽들의 침묵은 끔찍하게 무섭고, 속을 알 수 없는 그들의 냉담이 두렵다. 인간 대 도롱뇽, 반도롱뇽 운동 그리고 루이지애나 등의 지진과 도롱뇽의 메시지 우리가 어느 쪽에서 바다를 확장할 예정인지 미리 경고하겠습니다. 세계를 철거하는 일을 우리와 손잡고 해나갑시다. 도롱뇽과 집단적으로 맞서려는 것을 기존의 개념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전쟁이라 승인을 거부한다. 한술 더 뜨는 도롱뇽, 땅을 돈을 주고 사고 싶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인간의 사회, 돈을 얻고 땅을 잃으면 그들은 어디로? 하지만 우리땅은 없어지지 않는다내륙 국가의 이기주의.

 

개인(문지기)의 자책과 현실을 파악 못하는 이기주의적 생각. 하지만 곧 내 탓이야.” 이게 세상의 끝이야. 그저 이 아이들이 나를 용서해 줬으면 좋겠구나. 미래를 걱정하지만, 그 아이들이 있을지는, 단지 인간이 도롱뇽 밑에서 하인처럼 일하는 것이고, 섬기는 주인이 달라질 뿐 계속 공장에서 일하는 거야. 인간이 자력으로 스스로를 구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도롱뇽 뒤에서 그들을 움직이는 존재를. 인간의 문명을 이어받고, 조종을 받는 도롱뇽들의 대립과 아가미페스트로 멸망한다.

 

오랜만에 깊은 성찰과 재미를 주는 책, 현실의 풍자와 인간의 교만에 대한 교훈이다. 분명 현재에 대한 경고이자, 미래에 대한 경고이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위험 뒤에는 항상 탐욕의 인간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종의 미래도 뒷전이다. 오직 지배의 욕구만이 있을 뿐이다. 각 나라간의 경쟁, 서로의 우수성 주장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모두들 생존을 외치지만, 생존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의도는 무엇인가?

 

1930년에 본 작가의 통찰력이 놀랍다. 저자가 만든 로봇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현대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함정, 규모의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물 속에서 버둥거리는 사람들, 미래를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 파멸과 맞바꾼 이익 하지만 파면이 다가와야 후회한다. 이것이 인간의 속성인가? 도롱뇽을 통해 인간 문명에 대한 성찰을 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다. 이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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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파우스트와 아바타가 겹쳐 보이는 우화 평점8점 | a*****7 | 2010.12.23 리뷰제목
통렬하다. [도롱뇽과의 전쟁]은 안드리아스 스테우크제리라는 종의 도롱뇽을 빗대 인간 문명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한 편의 우화이다. 인간과 다른 종이 지구상에 번성하여 문명 발달을 이루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의 발로인 이 작품은 시종일관 허를 찌르는 에피소드와 읽을거리로 빼곡하다. 도롱뇽이 댐을 짓고 칼로 상어를 퇴치하고 심지어 말을 하고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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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렬하다. [도롱뇽과의 전쟁]은 안드리아스 스테우크제리라는 종의 도롱뇽을 빗대 인간 문명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한 편의 우화이다.


인간과 다른 종이 지구상에 번성하여 문명 발달을 이루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의 발로인 이 작품은 시종일관 허를 찌르는 에피소드와 읽을거리로 빼곡하다. 도롱뇽이 댐을 짓고 칼로 상어를 퇴치하고 심지어 말을 하고 문자를 해독하기까지 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는데 그 과정을 정밀하게 묘사하여 마치 사실인 양 믿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경천동지할 기막힌 상황 하에서도 이를 이용하여 이익을 취해보려는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진주 채취를 위해 이들을 훈련시켜 장비를 주고 이동시키기까지 하는 반 토흐 선장, 사업상의 필요에 의해 도롱뇽의 과잉 번식을 초래한 본디씨가 보이는 행태는 그리 새삼스럽지 않게 보인다. 이 대목에서 아바타의 스토리가 오버랩되는 듯하다. 돈만 된다면 뭐든 하고야 마는 자본주의 체제 하의 인간의 적나라한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작품은 인간 문명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요하는 우화라 하겠다. 반 토흐와 본디는 섬 원주민들인 인간보다 도롱뇽, 타파보이가 더 정직한 거래를 한다며 모든 것을 상거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더 큰 이윤을 취하려는 탐욕에 눈이 멀어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을 낳게 만들고 말았고. 그들은 마치 영혼을 판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루비와 진주를 얻기 위해 도롱뇽과도 거래를 하는 것 말이다. 마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서늘하다. 이런 작품을 구상하고 이야기를 일관되게 끌어나가며 그렇게 실감나는 자료를 동원할 수 있다니. 작가의 천재적 발상과 문학적 감수성, 이를 아우르는 내공의 폭과 깊이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에다 동원하는 자료도 경계를 넘나들 정도로 박람강기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보고서를 인용하여 도롱뇽이 안드리아스 스케우크제리라는 학문적 해설을 곁들이기도 하고 도룡뇽에 대한 관찰 실험보고서를 통해 400어휘를 사용하고 문자를 해독한다는 것을 실제 현실처럼 보이게 했으며 전보문, 신문기사 및 재판과정기록물, 심지어는 도롱뇽의 봉기를 선동하는 격문이 담긴 삐라까지 전문을 실어 독자들을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놀라운 플롯 구성과 필력에 그만 서늘해지고 만다. 글쓰기를 지망하는 이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 거대한 벽을 느껴 붓을 꺾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하여 [도롱뇽과의 전쟁]은 지적으로, 또 심정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벅차게 느끼게 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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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상상력! 평점10점 | l********7 | 2017.08.07 리뷰제목
어떻게 이런 생각을하고 책을썼을까?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처음 책 제목을 보고 도룡뇽이라니... 뭔가를 상징하는 거겠지 했는데... 진짜 도룡뇽 이야기...ㅎㅎㅎ현대 인간세상을 반영이니 미래를 반추하니 뭐니 어쩌고 책 소개에도 나와 있는데... 난 그런거까지는 못느꼈고...ㅎㅎㅎ 기바란 소재에 책도 재밌었다는 얘기만 하고 싶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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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생각을하고 책을썼을까?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처음 책 제목을 보고 도룡뇽이라니... 뭔가를 상징하는 거겠지 했는데... 진짜 도룡뇽 이야기...ㅎㅎㅎ

현대 인간세상을 반영이니 미래를 반추하니 뭐니 어쩌고 책 소개에도 나와 있는데... 난 그런거까지는 못느꼈고...ㅎㅎㅎ 기바란 소재에 책도 재밌었다는 얘기만 하고 싶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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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도롱뇽은 어떻게 인간 문명을 잠식했는가에 관한 잔혹보고서 평점10점 | a******i | 2010.12.31 리뷰제목
『R.U.B』로 대표되는 카렐 차페크의 이미지가 얼마나 지엽적인 것인지 부터 타파하는 것이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는 내내 선결되어야할 과제였을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이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문호와의 뒤늦은 만남에서 무언가에 영향 받는 일조차 없이 이렇게 폭풍처럼 휘말리다 소름이 돋고, 그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 축복으로 다가오기도 했으니, 내 무지에 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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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로 대표되는 카렐 차페크의 이미지가 얼마나 지엽적인 것인지 부터 타파하는 것이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는 내내 선결되어야할 과제였을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이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문호와의 뒤늦은 만남에서 무언가에 영향 받는 일조차 없이 이렇게 폭풍처럼 휘말리다 소름이 돋고, 그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 축복으로 다가오기도 했으니, 내 무지에 경배를……까지는 아니라 해도, 어험! 공상과학이라는 용어조차 확립되기 전, '로봇'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다른 한 사람은 차페크의 형이다)이기도 한 체코의 거장은 올해 가장 마지막으로 만났지만 가장 커다란 족적을 아로새겼음을 선언하는 바이다!

 

 

데블베이라는 의심쩍은 지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원주민들이 극히 꺼려하는 태평양의 심해에는 형용하기 힘든 생물체가 출현한다. 진주 잡이 배의 선장인 반 토흐만이 이 괴생물체의 존재가치를 '악마'가 아닌 것으로 접근하는데, 바다 밑에 득실거리는 진주를 건져다주는 착한 도롱뇽으로써 인간사회에 소개하게 된다. 두 다리로 걷고, 인간의 언어를 따라할 수 있으며,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이 해양 도롱뇽들은 진화에 역행하는 이단적인 존재이지만, 성실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기방어조차 하지 않는 순박한 생물이었기에 반 토흐 선장 사후 그 쓰임새는 인류 문명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데블베이의 악마가 아니라 전 세계 해안으로 실어 날아진 도롱뇽들은 새로운 해안선을 구축하며 인간의 활동영역을 심해로 확장시키는데 선봉이 된다. 인간이 제공하는 곡물과 다이너마이트, 상어총 등과 교환된 도롱뇽의 노동력은 해양건설의 영역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도 각광받는데, 각국의 비공식적인 예비 군비가 되어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게 한다. 도롱뇽의 권익을 어디까지 보호해야하는지, 도롱뇽의 무장을 과연 허용해야하는지, 도롱뇽과 인간 사회의 유착은 과연 이대로 안전할 것인지에 대한 각계의 논의보다 앞서는 것은 물론 도롱뇽이 창출하는 극대화된 이문으로, 도롱뇽의 극단적인 양적 팽창이 가져오는 불안함을 감지하는 일각의 우려는 도롱뇽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특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도롱뇽이 어떻게 인간 사회와 유착되는지를 다룬 1부 '안드리아스 스케우크제리', 그들이 문명에 끼치고 있는 다각적인 영향을 다룬 2부 '문명의 사다리를 오르다'에 이어 3부 '도롱뇽과의 전쟁'은 전 세계의 바다를 장악한 도롱뇽의 인류 문명에 대한 역공을 다루고 있는데, 이미 예고된 불안이었다고 해도 그 충격과 경악의 강도는 결코 희석시킬 수가 없다. 도롱뇽이 인간을 위해 건설하던 새로운 영토가 아니라, 도롱뇽에게 새로운 해안선과 모래톱을 제공하기 위해 '구 대륙'들을 심해로 가라앉히는 모습을 목도해야하는 심정은 실로 편치가 않다. 도롱뇽의 극단적인 팽창을 재산과 군비의 확충으로 인식해오던 인간들이 도롱뇽의 생존을 위해 도태되어야하는 종으로 전락하는 과정이 어찌나 자연스럽게 전개되는지, 그것이 또 다른 충격의 일환으로 다가오는 것은 물론이다.

 

 

차페크가 오랫동안 노벨상 후보에 머무르다 번번이 수상을 실패한 이유로 한림원이 제기한 '문학이 아닌 저널리즘이다' 또는 '정치색이 너무 강하다'는 견해를 코웃음으로 받아칠 수 있었던 장르의 경계를 초탈해버린 차페크의 문학적 깊이는 이 한 권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마의 영역이기는 하나, 가늠해볼 수 있는 무척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소설 안의 학술적, 미학적, 분석적인 주석 하나하나를 모조리 창조해내는 무한한 능력에 잠식되지 않을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단연 위트의 힘이다. 인간의 문명을 답습해서 도롱뇽의 문명을 창출하는 역습의 과정 내내 인간들이 보여주는 현실인식의 한계와 작태에서 빚어지는 해프닝 속에서 들여다보이는 촌철살인이 도롱뇽의 번식력 이상으로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게 있어서 인류는 진화의 선봉에 선 최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살아남아야할 종이기보다는 자신들의 터전을 스스로 파괴하는 생태계 교란의 전범일 것이다. 전쟁을 위한 전쟁에 힘쓰는 파시즘의 노예들을 한 순간도 주저 없이 꾸짖었던 양심적 언론인이기도 했던 차페크의 현실인식은 인간에 대한 탄식과 사형선고에만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롱뇽에게 잠식당한 인류의 적은 도롱뇽이 아니라 인간이면서, 인간의 멸종을 앞두고 그것을 반성하는 것도 인간이다. 반 토흐 선장과 도롱뇽 산업을 연결해준 커넥션의 중심에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부호의 문지기 포본드라 씨에 대한 작가의 살가운 시선은 경악할만한 반전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인류 문명의 총화는 어디까지나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을 때에만 재한다는 지극히 인간미 넘치는 시대를 초월한 경고가 각인되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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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류멸망예고에 대한 또다른 접근 평점10점 | s*****d | 2010.12.26 리뷰제목
때로 할 말이 너무 많으면 되려 말을 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말을 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여기 존재한다. 적어도 이 책 앞에서만은. 도대체 이런 문학이 어디 숨어있다 이제야 나타난 걸까. 한국 출판계 번역 너무 늦다. 니가 체코어 공부해서 직접 읽으세요, 하면 굳이 할 말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멋드러진 수다의 향연에 체코에서는 존재만으로 유명하다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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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할 말이 너무 많으면 되려 말을 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말을 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여기 존재한다. 적어도 이 책 앞에서만은. 도대체 이런 문학이 어디 숨어있다 이제야 나타난 걸까. 한국 출판계 번역 너무 늦다. 니가 체코어 공부해서 직접 읽으세요, 하면 굳이 할 말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멋드러진 수다의 향연에 체코에서는 존재만으로 유명하다는 작가 특유의 다재다능한 유머,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다더니 정보 가공 솜씨, 알록달록한 색지 사용 본문하며 세상에, 이건 문학이라기보단 자연대백과사전의 도롱뇽편이거나 SF소설, 뭐 그런거라 봐도 무방하다. 도롱뇽에 대한 혀를 내두를 막대한 정보 양의 가공은 전자요, 도롱뇽과 인간의 전쟁을 그리는 가까운 미래의 형상은 가히 후자다. 아하하. 처음에 나는 떼굴떼굴 굴러다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책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읽혀야 한다고. 하지만 또 소심한 여자인간인 나같은 사람은 아무나에게 덜컥 추천할 수 없을 것 같다. 열린책들 출판사의 문학은 다 이렇더라. 예전에 시배스천 폭스의 <새의 노래>를 어디선가 보고 꽂혀서 페이퍼북으로 덜컥 구입했는데 딱 죽겠는 거다. 두께도 두께지만 글자의 압박 때문에. 못 읽는 언어로 된 원서를 구입했던들 그렇게 막막했을까. 책을 읽을 만큼 읽는다고 자부했지만 글자의 압박은 그저 글자의 압박일 따름이었다. 내가 법학서를 읽고 있는 건 아니잖는가.(이건 하다못해 손으로 짚어가며 읽어야 한다. 흑흑.) 어쨌든 그와는 다른 이유로 그 책은 여전히 책장에서 엑스트라역을 하고 있지만. 그에 비하면 굉장히 세련되고 예쁜 편이라도 압박으로 치면 그 못지 않은 것이 바로 이 <도롱뇽과의 전쟁>이다. 현빈 말대로 한땀한땀 찍어냈는지, 빽빽하다못해 숨쉴 틈도 없는 문지기 포본드라가 수집한 도롱뇽에 관한 기사를 읽자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이건 2부가 특히 심하다. 이 책은 3부 구성인데 2부는 실험적 구성이자 편집의 성격이 다소 쎄다. 이제야 말이지만 가공 기사는 몇 번이나 건너뛰려 했다. 빨강, 초록, 노랑 색지인 게 그나마 다행이라 건너뛰기까지는 안하도록 막아주었으나.(종이신문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익숙한 사람은 괜찮을 수 있음) 

 

도롱뇽. 줄거리를 얘기하기 전에 이쯤이면 먼저 도롱뇽 얘기를 해야 한다. 내가 궁금했으므로 당신도 궁금할거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도롱뇽이었을까? 내게는 여전히 도마뱀이나 지렁이류로 읽히는 도롱뇽은 이런 생명체(?)다.   

 

 

도롱뇽목[有尾目] 도롱뇽과의 양서류.
몸길이는 수컷 8∼12㎝, 암컷 7∼9㎝이다. 몸은 갈색 바탕에 어두운 갈색의 둥근무늬가 띄엄띄엄 독립되어 있는 것이 많고, 특히 눈 뒷부분에서 몸통의 등면에 걸쳐 무늬가 뚜렷하다. 배쪽은 등면보다 연한 갈색 무늬가 산재되어 있거나 또는 연결되어 있다.

머리는 편평하며, 주둥이 끝은 둥글고, 눈은 돌출되어 있다. 몸통의 피부는 매끈하며 약간 편평하다. 목부분의 등면 중앙에서 허리 부분에 걸쳐 연결되는 얕은 등홈이 있고, 늑조는 13개이며, 배면에 10개의 뚜렷한 가로 홈이 있다. 꼬리는 몸통보다 약간 길다. 수컷은 항문의 앞끝에 작은 돌기가 있고, 항문 주위가 두툼하게 부풀어 있으며, 암컷에 비하여 뒷다리가 약간 비대한 점이 다르다.

남부에서는 3월 중순부터 4월 하순에, 중부에서는 4월 상순부터 5월 하순에 산란한다. 알은 3층의 투명한 한천질로 싸여 있고, 알덩어리는 바나나 모양으로 2열로 배열되어 있다. 알은 둥글며, 지름이 2∼2.5㎜이다. 1쌍의 알주머니에는 100개 정도의 알이 들어 있다. 알은 3∼4주 내에 부화하며, 유생 때의 몸길이는 10∼15㎜이다. 유생 때에는 겉아가미가 발달하지만 성장하여 변태하면 폐호흡을 한다.   
먹이로는 지렁이류·수서곤충류를 잡아먹는다. 알은 물 속에서 낳지만, 생활은 땅 위에서 한다. 한국 특산종으로, 중국(북부)·우수리강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이야기는 온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네덜란드 출신의 선장, 반 토흐로부터 시작된다. 항해중 정박한 어느 섬에서 본의 아니게 머물게 된 그는 원주민들이 끔찍하게 두려워하는 어떤 괴생명체와 맞닥뜨린다. 외부인인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닷속 깊이 진주조개를 쌓아두고도 바닷물에 발 담그기 두려워하는 원주민에게 약간의 호기심과 답답함이 들었을 뿐이다. 그가 바다에 간 건 오로지 진주조개 때문이었다. 그것이 발단이었다. 도롱뇽은 배를 채워야 할 조개를 쥐고도 열지 못해 낑낑댔고, 선장은 그들이 캐올 수 있는 조개에서 진주를 채취하는 것이 목적.(아참, 원주민이 끔찍히 두려워한 괴생명체는 도롱뇽이었다.) 그는 여기서 굉장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데 도롱뇽에게 진주조개 여는 방법을 시범보인 것. 이제 그들은 공생의 관계에 놓였다. 도롱뇽은 진주조개를 캐오고 선장은 그것을 열어준다. 진주알은 선장이 가지고 조개껍질의 국물은 도롱뇽이 마신다. 도롱뇽은 그렇게 선장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쌓은 걸로 보인다. 더군다나 선장은 조개를 잡을 수 있는 온갖 도구나 물건을 비롯, 조개를 열 수 있는 칼까지 도롱뇽에게 선물했는데 도구를 이용한 도롱뇽의 수완이 꽤 좋았음은 분명하다. 그가 도롱뇽에게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선장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욕심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일개 선장인 자신을 도와 도롱뇽을 통한 진주조개 따기 사업에 투자해줄 기업을 물색하다 어릴 때는 멍청해서 줄곧 놀림감이 되던 친구 본디가 엄청난 부를 거머쥔 사업가임을 알게 된다. 그를 본디에게 인도해준 것은 본디의 가택 문지기 포본드라의 판단이었고, 이런 이유로 포본드라는 마지막까지 자신으로 인해 인류의 삶이 도롱뇽에게 위협받게 되었다며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하지만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겠는가? 선장은 본디가 거절하면 또 다른 사업가를 찾아갔을 것이 분명하고, 선장과 도롱뇽의 기막힌 공생 이후 인류의 삶은 이미 위험하게 흔들리고 있던 셈인 것을. 어쨌거나 여기까지 해서 "이러니 저러니 해서 반 토흐 선장과 사업가 본디, 도롱뇽은 서로 도와 평생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했으면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쯤에서 막을 내렸다면 아름다운 진주조개와 친근한 도롱뇽, 인생 한 방을 몸소 실천해보인 반 토흐 선장, 그를 도운 친구 본디의 동화같은 판타지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과 야망은 언제 어느때 파멸을 불러올지 모르는 법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만으로 손바닥 뒤집듯 변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그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도롱뇽 사업이 시작되자(도롱뇽이 바닷속에서 진주조개를 잡아준다는 소문이 널리널리 퍼져 너나할 것 없이 도롱뇽과 진주조개를 찾아나서게 된 이후) 도롱뇽은 단지 인간이 진주를 손쉽게 얻는데 필요한 온전한 도구만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당국은 물론 이웃나라, 기업은 물론 개인들까지 도롱뇽을 사고 싶어했고, 그들은 도롱뇽을 이용해 어떤 이득이라도 취하려 눈이 벌개 있었다. 인간의 손 안에 완벽히 포박한 채로 자신들이 필요한 때에 도롱뇽을 이용하고 또 내다버리고 싶어했단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롱뇽 신디케이트는 시간문제였고, 판은 곧 그렇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도롱뇽에게 기대한 목표치가 한없이 높았기 때문에 도롱뇽에게서 얻기 위해 투자한 많은 것들에게서 발생했다.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살도록 만들고, 인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산업에 도롱뇽을 이용하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롱뇽은 똑똑해졌다. 인간과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그들이 못할 일은 없어졌다.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도롱뇽은 축축한 땅에서 살고 사람에 의해 사람 땅에서 살 수도 있었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했다. 이용가치가 사라져갈 때쯤 인간은 도롱뇽으로 이 세상에서 가능한 모든 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말을 할 줄 아는 똑똑한 도롱뇽은 잡아먹혔고, 죽임을 당했고, 종종 투쟁을 했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집집마다 도롱뇽을 키우지 않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도롱뇽 수요는 치솟을 때로 솟았고 가격 또한 높았다. 유럽 해양과 땅에서 시작된 도롱뇽 전쟁은 점차 다른 대륙으로, 다른 국가로 퍼져 나갔다. 도롱뇽 개체수는 이미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하고 있었다. 급기야 도롱뇽들은 자신들의 서식지인 해양을 둘러싸고 인간을 향한 전쟁을 선포했다. 문지기인 자신이 본디에게 반 토흐 선장을 데려다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죽기 전까지 괴로워하는 포본드라의 고민은 절대 타당성과 진정성을 잃은 허세 같은 게 아니었다. 아들내외는 물론 손자, 손녀에게 물려줘야 할 도롱뇽과 전쟁하는 세상을 그는 자기 탓이라 책망하며 무너져간다. 그의 마지막 논리가 타당한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사실이다. 역사는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반 토흐 선장이 도롱뇽 세상에 침입한 것처럼, 수많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쟁탈을 놓고 싸움을 벌인 것처럼, 인디언 원주민을 몰아내고 아메리카 대륙을 뺏앗은 후 신대륙을 건설한 것마냥 노래불렀던 유럽인들처럼. 인간 vs 인간, 인간 vs 도롱뇽, 도롱뇽 vs 도롱뇽. 그 어떤 전쟁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기자 출신의 체코 작가인 카렐 차페크는 이 소설이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이야기라고 했으며, 심지어 이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1936년이었다. 이제야 우리는 조금 안다. 그가 왜 이것이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라고 했는지. <도롱뇽과의 전쟁>은 여러가지 코드로 읽힌다. 그래서 더 대단하게 평가받아야 마땅한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국을 비롯해 비교적 먼 나라 일본까지 관통하고 있던 파시즘을 대입하든, 현재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류의 불안하고 위태한 위치를 떠올리든, 여느 다큐에서 본 툰드라 부족들의 삶, 그것도 아니면 사라지는 얼음 조각에 올라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북극곰을 오버랩시키든 당신의 자유다. 다만 욕심 좀 그만 부리며 살자. 언어를 말할 줄 알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지능이 좀 더 높다고 인간이 모든 걸 지휘할 권리는 없는 법이다. 비록 식용동물로 길러질지라도 도살에는 순서가 있고, 생명체를 대하는 데에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인류의 전쟁 역사까지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구제역 발발에 소와 돼지를 살처분 절차도 배제하고 생매장 시키는 어이없는 광경이 자꾸 떠오르고, 굶어죽는 아이들의 눈망울과 에이즈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아픔에도 식량과 치료제를 보급하지 않는 국제적 기업의 보편적 이기심에 치가 떨렸다. 서민복지예산 깎아 나라 발전을 위해 투자한다고 떵떵거리는 것도 못볼 노릇인데, 도대체 이 모든 싸움은 누굴 위한 배불리기란 말인가? 오늘 우리가 주인일지라도 내일 우리가 도롱뇽이 되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진짜 딱이다. 이 시대에 반드시 읽혀야 하는 필독서다.

 

도롱뇽 대 도롱뇽? 그게 무슨 뜻이야? 

 

-예를 들면 말이야... 일단 도롱뇽들이 과도하게 많아지면 작은 해안이나, 무슨 만이나 그런 걸 놓고 자기네들끼리 시비가 붙을 수도 있잖아. 그다음에는 더 크고 좋은 해안을 놓고 싸울 테고. 결국은 세계의 해안을 두고 서로 싸워 댈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도롱뇽 대 도롱뇽! 어때? 그거야말로 역사의 논리 아니야? 

 

아, 아니야, 그렇게는 안 될 거야. 도롱뇽이 도롱뇽과 싸울 리가 없어. 그건 본성에 어긋난다고. 도롱뇽들은 단일한 속이란 말이야.  

 

-인간도 단일한 속이야, 친구. 이미 봤듯이,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고. 단일한 속인데, 별별 걸 갖고 싸워 대잖아! 이젠 살 곳이 아니라 권력, 특혜, 영향력, 명예, 시장을 비롯해서 온갖 상상도 못할 것들을 두고 싸워들 댄다고! 그러니 도롱뇽들도 특권 같은 걸 두고 자기네들끼리 싸우게 하면 어때? 

 

하지만 왜? 왜 그래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도롱뇽들이 뭘 얻게 되지?  

 

-이득은 없지. 다만 일시적으로 일부 무리들이 다른 무리보다 더 많은 해안과 권력을 얻을 수는 있을 거야. 그리고 한참 뒤엔 또 입장이 역전될 거고. (pp.37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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