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니콜 키드먼, 이와이 슌지의 추천 영화인 백화의 원작 소설인 가와무라 겐키의 소설 벽화는 작가의 외할머니의 치매 발병을 계기로 쓰였다. 어머니의 치매를 통해 잊혔던 과거를 기억해 내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주인공 이즈미의 이야기다.
“그만두면 되잖아. 연금도 나오고, 생활비를 더 보내도 괜찮아.” “뭐든 안 하면…… 망가질 것 같아.” 엄마의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기계나 장난감처럼 인간도 망가진다. 숨기려는 것처럼 겹친 유리코의 손에 새겨진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p.92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중에서 제일 와닿는 건 운동이다. 여기서 운동은 신체적 정신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
둘이서 살아온 균형이 또다시 무너지려 한다. “애초에 50년도 살지 못했던 인간이 장수하게 되면서 암 환자가 생겼죠. 암을 치료하게 되어 더 오래 살게 되자, 이번에는 알츠하이머가 늘었어요.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무언가와 싸워야만 합니다.” p.129
이즈미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고 부성애를 겪어보지 않은 아픈 과거를 가진 자신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하게 된다. 또 치매로 인해 변해가는 엄마를 보며 힘들어하고 아픈 과거를 떠올리며 본인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걱정한다. 하지만 나기사 홈에서 요양하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엄마와 자신 사이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하게 되고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엄마의 집을 정리하면서 찾은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이즈미는 더 발전하게 된다.
인간의 소지품은 기억과 비례하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향해 가면서 필요한 물건이 조금씩 줄어든다. p.218
다행히 주인공은 엄마의 임종 전엔 엄마를 이해하고 더 사랑함을 느끼게 되지만 그 과정을 엄마는 함께 느끼지 못했다. 엄마는 때론 아이가 되고 때론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오랜만에 따뜻한 소설을 읽었는데 영화로는 어떻게 전개되고 주인공의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하다.
최근 팔로워 하는 번역가의 역서가 나왔고 운 좋게 그 책을 선물로 받았다.
저자 싸인본은 구입하거나 우연히 손에 들어온 적이 있는데
번역가의 싸인본을 받아본 적이 처음이라 기분이 좋기도 하고
묘하기도 해서 사진을 찍고 올려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사진을 올린다. ^^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소설이라 호기심도 일었고
엄마는 기억을 잃어버리는데 아들은 추억이 하나씩 떠오른다는
띠지 문구도 책장을 펼치게 만들었다.
이래저래 과제도 많고 찾아봐야 할 것도 많은데
한 시간만 읽자며 펼쳐 들었다가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소설 속 치매에 걸린 엄마의 변해가는 모습에서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았고
엄마와의 추억이 하나씩 떠오르는 주인공 '이즈미'의 모습에서는
현실의 '나'를 마주했다.
우리 엄마는,
활동적이고 암산도 잘했고, 요리도 뚝딱뚝딱 해냈던 우리 엄마는
건강하고 씩씩했던 우리 엄마는
치매라는 병 따위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그렇게 깔끔하게 지냈던 우리 엄마는
그런 모습으로 안 별할 줄 알았는데
소설 속의 어머니처럼 우리 엄마도 조금씩 변해갔다.
지금도 조금씩 변해가는 중이시겠지.
누구를 탓할 수도 탓한들 나아지지도 않고
나을 가망도 없는 참으로 잔인한 병 치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울릉도를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 다음에 가자. 엄마는 언제 갈 수 있냐고 다시 묻지 않았다.
그때 어디든 갔더라면, 어디든 가서 엄마 이야기를 들어 드렸다면.
외할머니는 자꾸 동물원에 가자고 하셨다.
한번 다녀와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가자고 하셨다.
엄마가 언제 누구랑 갔잖아! 그랬더니 외할머니는 기억을 못 하셨다.
그래서 또 모시고 갔던 적이 있다.
엄마는 왜 울릉도를 가고 싶어 했을까?
외할머니는 왜 동물원에 가고 싶어 했을까?
소설 속의 엄마는 '절반 불꽃놀이'가 자꾸 보고 싶다고 말한다.
절반밖에 보이지 않는 불꽃놀이를 봤던 그날의 행복한 기억이 그리웠나 보다.
엄마는 울릉도에, 외할머니는 동물원에 행복한 기억이 있으셨나 보다.
나이가 드는 탓인지 엄마의 영향인지 나도 최근에 자꾸 어릴 때의
추억이 방금 본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선명히 떠오를 때가 있다.
따뜻했던 기억, 슬펐던 기억, 즐거웠던 기억 등등
그 장면에는 항상 젊고 씩씩했던 엄마가 있다.
이 #백화 라는 소설은 아들 '이즈미'와 엄마 '유리코'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같이 만나게 된다.
치매를 다뤘다고 해서 아주 눈물을 쏙 빼는 감동할 만한 장면을 늘어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평범하고 담담하게 묘사하는 장면들이 더 눈물을 짓게 만든다.
일본에서는 지난 9월에 영화로 나왔다.
소설을 읽고 나서 예고편 동영상을 보니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소설 속에 푹 빠져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다가 토요일 한나절이 다 갔다.
백화
가와무라 겐키
봉준호, 니콜 키드먼, 이와이 슌지의 추천 영화인 '백화'의 원작소설을 읽어보았다.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백화는 가와무라 겐키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가와무라 겐키는 애니로 제작되었던 '너의 이름은'의 작가로도 유명하며 예전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란 소설로 작가로 데뷔했다.
워낙 많은 베스트 셀러를 써서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작가인데 이번에 읽은 백화는 가와무라 겐키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서사가 잘 나타난 책이라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백화는 치매로 인해 힘들어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이 주인공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 사이에서 보여지는 감정들을 가와무라 겐키 특유의 감성적인 언어와 섬세한 표현으로 잘 묘사해냈다.
치매라는 질병은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는 가장 큰 특징을 갖고 있는데 백화에 나오는 엄마 유리코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도 아들을 사랑하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인 이즈미는 엄마가 치매로 변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진행된 치매로 인해 집을 나가는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엄마와 자신 사이의 잃어버린 기억과 추억들을 찾으며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 속에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참고로 작가인 가와무라 겐키의 외할머니가 치매가 있었다고 하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외할머니를 이해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만큼 작가의 경험과 기억이 담긴 소설이라 그런지 책을 읽으며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으며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유리코와 이즈미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랑하는 사람, 가족과의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상상해보기도 하고, 나 혹은 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치매에 걸려 나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덕분에 내가 가진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에 함께 해준 사람들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소미북스 출판사에서 2023년도 02월에 출간된, 가와무라 겐키 저/이소담 역의 <백화> 작품을 읽고 나서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치매에 걸린 고령의 엄마와, 엄마를 돌보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에서 소외되는 부모의 개인성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사라져가는 기억을 통해 행복과 소중함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