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역사상 가장 큰 사상자가 발생한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 흐름 속에서 인류는 75년 간 그동안 누리지 못한 평화를 누려왔고, 나 역시 그 평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래서 그 평화가 당연할 줄 알았다. 그래서 앞으로 지금까지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온다는 것에 동의가 되지 않고 지금도 내 눈에는 의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책이나 유튜브 같은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소위 전문가 그룹에 속해 있는 몇몇은 주장한다. 세계화는 끝났다고(이 책의 저자 역시 같은 주장을 한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의 모습은 비효율적이고 높은 비용의 일상이 된 세계일 거라고. 미래를 예견하는 건 어렵다. 그리고 설령 미래를 예견했다는 이유로 명성을 얻은 이들 역시 30번의 주장 중에 단 한 번을 맞춘 것 가지고 지금의 명성을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저자인 누리엘 루비니도 유의 사람일까). 하지만 인간은 원래 자극적이고 잔혹한 걸 좋아하는 법. 그렇기 때문에 그 주장이 다소 썸뜩하게 들리더라도 흘려들을 없는 이유다.
저자는 앞으로 닥칠 10가지의 초거대 위협을 제시한다. [부채 위치, 공공 부문 정책의 실패, 인구 통계학적 시한폭탄, 저금리 문제, 스태그플레이션, 통화 붕괴, 세계화의 종말, AI와 사라진 일자리, 지정학적 갈등, 기후 위기]가 그것이다.이 중 어느 하나라도 만만한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위협이 한 가지씩 오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위협들이 한 번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위기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면 그 충격으로 인해, 대응이 가능할지언정, 저자가 전망하는 위기들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제시한 위협들 중 개인적으로 더 섬뜩하게 느껴졌던 위기들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부채 위기
1929년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등 세계는 지속적으로 일정한 싸이클을 갖고 위기(그것이 외부 요소는 내재적인 요소든)를 겪어왔다. 자본주의 세계는 성장하지 않으면 존속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런 위기들은 성장을 저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위적으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 때마다 각국 정부는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했는가? 금리를 내렸던가? 금리가 이미 충분히 낮은 상태였다면? 늘 그래왔든 그들이 취할 수 있는 타개책은 항상 하나였다. 각국 중앙은행은 화폐를 추가 발행함으로써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비교적 생생한 위기인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예를 들어보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발하기 전의 미국 기준 금리는 1% 대였다. 이후 팬데믹이 터지자, 중앙은행은 기준 금리를 0% 대로 인하했다. 하지만 충분치 않았다. 미국 중앙은행은 그들이 가진 발권력을 이용해서 코로나 기간에만 2조 달러 이상을 발행해서 시장에 공급했다. 시장에 돈이 공급되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저리로 돈을 빌려 소비재나 자산을 구입했다. 덕분에 소비는 살아나고 자산 가격은 상승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너무 많은 유동성 공급은 자산 가격 거품과 인플레이션이라는 결말에 다다를 수밖에 없고 지금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의 터널 한 가운데 있다.
위기 발발 -> 유동성 공급 -> 소비재 및 자산 가격 상승 -> 위기 타개 -> 인플레이션 발생 -> 다시 위기. 항상 이 싸이클의 반복이다. 화폐를 발행해서 위기를 타개하는 것까지는 좋은 해결방안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타개책을 계속 사용할수록 부채가 갈수록 증가한다는 데 있다. 쉽고 값싼 돈은 더 많은 빚을 지게 한다. 쉬운 돈은 또한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종내에는 거품을 일으킨다. 아직까지는 그 청구서의 고통이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으나, 언젠가는 그 결산이 이뤄질 것이다. 그 시기가 바로 눈 앞에 왔을지도.
세계화의 종말
왜 우리는 지금까지의 세계에 익숙해졌을까? 1945년 이후에도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겠지만, 2차 세계대전 같은 대규모 세계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뭔지 아는가? 바로 핵무기의 등장 때문이다. 그렇다면 핵무기가 등장하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왜 나라 간 전쟁을 했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전쟁의 가격표가 평화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즉, 교역이나 협상을 통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거보다 상대국보다 우위에 있는 물리력을 사용해서 상대방의 자원을 갈취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핵무기의 등장이 게임을 바꾸었다. 한쪽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다른쪽도 똑같은 방법으로 응징하는 세계에서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건 집단으로 자살한다는 것과 다름없었고, 아이러니하게도 핵무기라는 집단 자살무기가 전쟁의 억지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1945년 이후의 세계에서는 평화의 가격표 전쟁의 그것보다 저렴했다. 그래서 전후 세계는 물리력을 이용해 상대방의 자원을 빼았는 대신 무역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취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물론 나라 간 교역이라고 하면 그 이전에도 있었다. 조선시대만 해도 청나라나 일본과 무역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교역이란 필시 꽤 많은 리스크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반도체(?)를 이스탄불까지 배달한다고 했을 때 배달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배로 반도체를 배달한다고 가정하면(비행기로 할 거 같지만 여기서는 배로 운송한다고 가정), 중간에 무력 집단을 만나서 나의 재산을 갈취당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또는 거래 상대방이 돈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이렇듯 무역에는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이런 리스크는 상쇄됐다. 미국은 자국이 지닌 강력한 안보 환경을 주변 국가를 세계화의 흐름에 편입시키기 위해 그들에게도 교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안보 환경을 제공했다. 혹여나 앞서 말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미국이 강력한 물리력을 바탕으로 그 나라에게 대신 협박해줄 테니. 이렇든 전후 약 75년 간의 세계에서는 우리는 상대방의 자원을 빼앗지 않고 무역을 통해서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세계화의 흐름이 기존의 강대국을 결정하던 지정학적 이점을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상쇄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도 그 수혜를 많이 누린 국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축북의 세계가 끝나가고 있다. 빗나갈 가능성이 더 많은 게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지만, 달리 가능한 미래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부디 우리의 상상력이 부족했기를 바랄 뿐이다.
AI와 사라진 일자리
개인적으로 근래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서비스를 고르라고 한다면 ChatGPT일 것이다. 아마 이 주장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인스타그램이 1억명의 사용자를 모으는 데 9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ChatGPT는 불과 2달만에 1억 명을 모았다. 역사상 최단 기록이다. 이 괴상한 이름을 가진 AI는 얼핏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지식을 학습한 것처럼 보인다. 개떡같이 질문해도, 찰떡같이 대답한다(아직은 부정확한 것도 많지만 앞으로 더욱 정교해지리라). 적어도 이 AI는 나보다 아는 게 많아 보인다. 인간의 경쟁력은 창의력 아니냐고? 음, 글쎄 창의력도 AI가 인간보다 더 나은 시대가 온다고 주장하면 너무 과한 주장일까?
나는 아직 직업은 없으나, 개발자를 목표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지원자의 개발 실력을 체크하는 용도로 '코딩테스트'라는 알고리듬 시험 문제 통과를 요구하는데, 이 시험은 일종의 사고력과 논리력 시험이라 할 수 있다. 문제가 주어지면 조건에 맞게 코드를 작성하는 게 전부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그리고 때로는 여러 가지 풀이법을 조합하는 창의력도 요구한다. 어느날 시험삼아 내가 끙끙대던 시험을 한 번 ChatGPT에게 풀라고 시켜봤다. 그런데 웬걸? 나는 1시간 동안 못 풀던 문제를 이 녀석은 단 10초만에 풀어냈다. 그것도 내가 보기에는 꽤 독특했던 풀이법처럼 보였다. 물론 이 풀이법 역시 다른 사람이 작성했던 풀이법을 차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차치하고서라도 꽤나 절망했다. 적어도 나보다는 코딩 능력이 우수해 보이는 기계가 있는데 훗날 미래에 나를 채용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가격도 매우 저렴하고 밥도 안 줘도 되고, 쉬지 않고 일을 시킬 수 있다!)
내 걱정이 기우일까? 물론 뛰어난 개발자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같이 어정쩡한 실력을 가진 개발자는 시장에서 쓰임이 다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적어도 90%는 사라지지 않을까? 저자 역시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직업은 AI로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계혁명으로 대표되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육체 노동을 하는 직업들이 사라지고 화이트칼라 직업으로 대표되는 정신 노동자가 생겼다면, 이 AI는 화이트 칼라도 전부 대체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제 기계는 정신 노동도 인간보다 잘할 것이다. 조만간 나 역시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할 듯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대체되지 않을까?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 모든 잉여 인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가'이다. 의식은 없어도 거의 모든 것을 인간보다 잘 할 수 있는 고도로 지능적인 알고리듬이 생긴다면 의식을 지닌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전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사라지는 직업만큼 그만큼의 직업이 또 생길 거라고? 글쎄, 내가 너무 부정적인 걸까?
이제 컴퓨터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역할을 대신에 처음에는 단순한 작업으로 시작해서 점점 더 복잡한 정신적 작업을 수행한다.
최초의 러다이트 운동 이후 드디어 현대의 러다이트들이 옳다는 것이 밝혀질 것인가? 사람들이 직업과 소득, 존업성을 잃는 동안 소수의 최상위층만 승리를 거두는 미레 또한 현실적이다.
창의성이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정서적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 언제까지고 인간의 전유물로 남아있을까?
대부분의 화이트칼라의 업무는 경력 과정에서 배우고 익힌 기술과 정보를 적절한 순간에 무작위로 접근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거주 불가능한 지구
이것 역시 매우 우울한 주제이다. 기후 위기라는 위협은 저자가 제시한 9가지 위협과 그 궤를 약간 달리한다. 앞선 9가지 위협들은 전부 현재 인간의 활동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으면 통제할 수 있는 내부 변수라면 기후 문제는 적어도 이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여기까지 온 데에는 인간의 활동 때문이라는 거에는 이견이 없지만, 지금부터 인간의 활동을 잘 통제한다고 해도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현재의 기후 문제는 대부분 선진 경제를 이룬 국가들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한국은 여기에 대해 얼마만큼의 지분이 있을까?). 그들이 발전을 하면서 배출한 탄소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현재 개도국 위치의 있는 국가들이 비슷한 전철을 밟으려 하는 걸 그들은 반대한다(내로남불이지만 그런 어리광은 국제 관계에서 먹히지 않는다). 문제는 선진국들은 현재 탄소 배출을 저감할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는 데 반해, 개도국 지위의 국가들은 그런 자원이 없다는 데 있다. 그들은 친환경으로 가기 위한 자원이 부족하다.
또한, 선진 경제 국가들은 개도국가들에게 보상금을 주기로 합의했지만 말 그대로 합의일 뿐 실제 실행을 보이는 국가는 찾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즉 다들, 위기 의식은 공유하지만, 실제로 실행에 나서는 국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누군가 무임승차라도 한다면 손해보는 건 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분리수거 열심히 하면 뭐하나? 미국인이나 중국인들은 그냥 이것저것 구분 않고 버리는데(분리수거와 기후 위기 문제는 거의 무관하다는 건 차치하자). 이럴 때 보면, 패권적 힘을 가진 리더격인 국가가 나서주는 게 필요할 거 같다(미국 안 나서주니?).
기후 위기로 닥쳐올 위기를 나열하자면 지면이 모자를 지경이다. 해수면 상승도 심각한 문제이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저위도 지역은 대부분 잠긴다. 대규모 인구가 고위도 지역으로 이주할 것이다. 기존 지역민들과 마찰은 피할 수 없다. 이주 뿐이겠는가? 저위도 지역이 물에 잠기면 재배할 수 있는 식량 수도 감소한다. 인구를 먹여살릴 식량이 부족해진다. 성인들은 내 빵의 반쪽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라고 했건만, 역사에서 그런 위인이 있었다는 얘기를 나는 들은 적이 없다(발견한다면 내게 꼭 좀 알려주시라). 나만 해도 먹을 게 없으면 다른 사람을 해치고 빵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내 가족이 굶주리고 있는데 안 그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울하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참 우울하다. 마치 인류 절망을 예견하는 예언서같다. 저자는 책 마지막에 희망찬 미래를 짧게나마 제시하기는 하는데, 그건 그냥 독자들의 정신 건강을 걱정한 저자의 립서비스 같아 보인다. 1945년 이후 우리는 역사상 전례 없는 번영을 누려왔다. 그래서 그 번영에 익숙한 우리는 그 반대는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근 75년의 번영이 역사상의 예외 아닐까? 이제 다시는 이런 번영의 시간은 오지 않는 거 아닐까? 나중에 이런 예언은 단순 음모론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저명한 학자가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해주니 이것 참 그냥 지나치기는 힘들다. 우울한 하루다.
여러 개의 초거대 위협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흔들고 세계 질서를 뒤엎을 것이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라. 앞으로 아주 어둡고 험난한 밤길을 달려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