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되는 순간
예서의 시 012
예서
강세환 시집
봄, 꿈
꿈에 (광해) 같은 왕이 나타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중신들과 맞장을 떴다.
(중량)
영화 (1987)
다시 한 번 천천히 틀어줬으면
봄, 꿈
봄꿈을 꾸어봅니다. 코르나 19가 물러난 봄을 기다립니다. 올해 겨울을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이 와서 더 기다려집니다.
큰 아이가 대학에 가서 멋도 부리고, 알바도 하고, 살도 빠지고, 기숙사도 지내보고 봄을 기다립니다.
작은아이가 아침에 일찍일어나서 싫어하는 등교를 매일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립니다.
(오직 엄마의 마음입니다)
더 작은아이가 학교가 싫어지기전에 학교를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립니다.
(뛰엄뛰엄 학교를 가니 재미가 없답니다.)
광해도 아니고, 장군도 아니다. 1987이 다시오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봄이 오길 기다립니다.
이 바보!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을 왜 그렇게 애타가 기다리는 거야~
봄밤
슬픈 건 슬픈 거라고 그가 말했을 땐
밤이 깊었다.
밤이 깊으면 슬픈 것은 슬픈 것이 되고
아픈 것은 아픈 것이 된다.
깊은 밤도 깊은 밤이 된다.
(중략)
사람의 가슴도 거대한 밤처럼 깊고 또 어둡다
시인들도 밤이 되면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들은 밤이 깊었다. 해도
다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인들은 좋은 시를 써야 겨우 용서 받을 수 있다
시인들 세계의 이 불문율(?)
봄을 기다리고 있나 보다.
밤이 깊어야 하루가 가고 내일이 온다.
내일이 가야 봄이 온다.
봄이 와야 꽃이 피고, 초록이 찾아온다.
봄을 기다리고 있나 보다.
시인의 근황을 물었더니 시인이 무슨 근황 따위가 있겠는가? 그저 오늘은 오늘의 시를 쓰고 어제는어제의 시를 또 끄적거렸을 뿐이다.
나에게도 근황을 물어보길 바란다. 읽고 그저 읽고, 내일은 무슨 책을 읽을까 생각하고 읽는다.
(그 사이사이에 살림도 하고, 돈도 벌고, 또 살림도하고, 내일을 기다린다. 어서 빨리 주말이 오길 )
시인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그저 살아지고, 살다보면 봄은 오고 시는 써진다.
어렵지 않고 즐겁게 읽은 시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이제 새로 기억한다.
'시가 되는 순간 - 강세황' 을 기억하면 될것이다.
길동무를 낭동하고 싶다는 작가의 글에 나도 조용히 읽어본다.
이런 길동무를 만난적이 있었다. 읽으면서 생각이 난다.
동행은 아니지만 동행인 순간들이 있다.
목적지는 같으니 그들이 같은 동행인거은 맞다.
문득 "얼마 안 남았어요 쫌만 올라면 됩니다" 라는 하얀거짓말이 생각난다.
그럴때 동행이 있어서 반갑다. 나만 속은것이 아니니 말이다.
물 먹은 인사들의 정경
아직 종쳤다고 생각하지 않는 구순의 늙마
혼자 배드민턴 치던 중년 여자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후배한테 밀려 탈락한 5선 현역의원
이번 학기부터 자기 시간 없어진 시간강사
아직 보지 못한 거돈사지 당간지주
무허가 간이주점의 얼굴 마담
첫눈 쌓인 백지 위에 여자 이름 커다랗게 써 놓은 남자
작년에도 밭을 통째 갈아엎은 농사꾼
약수터에서 물마시던 불법 체류자
출판사에서 되돌아온 원고를 바라보던 중견 시인
냉수 한 컵 또 한 컵 마시던 중년 여자
여기 한 사람 추가요 아직 접지 못하고 시 쓰는 앞에 골몰하는 소위 한국시 제작 영세 자영업자. (-27-)
우울의 유혹
나는 잡시 우울을 먹고 살 것이다.
서운할 것도 없다,
우울도 시가 되고
힘이 될 것이다.
좋은 것만 머고 살 수 없듯이
우울도 약이 된다. (-66-)
새벽 네시
새벽 네시
시를 읽을 시간도 아니고
시를 쓸 시간도 아니다
출근할 시간도 세수할 시간도 아니다
잠을 깰 시간도 아니고
잠을 잘 시간도 아니다
새벽 네 시
어디 한 군데 몸이라도 뜨거워지면
시를 맞이해야 할 시간?
스 쓰기 딱 좋은 시간
시 쓰기 딱 좋은 제목
새벽 네 시까지 내 시집을 읽었다는
강원도 후배 시인의 문자를 받고
새벽 네 시
시 쓰다. (-90-)
여기 한 표
향후 직종 간 임금 격차 단계적으로 줄인다면
각 시도 및 기초자치단체 등 통폐합한다면
지역구 국회의원 의석 수 축소 공론화한다면
기왕 중대선거구제 공론화한다면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혼합한 '분권형 대통령제'까지
차기 정부 '작은 정부'공약한다면
인구정책 전문가 중심 국가 특별 위원회 설치하면
서울 시내 자전거 도로 확대 및 재정비하면
도봉면허시험장 부지 '청소년 전용 대규모 복합 문화공간'건립한다면
예체능계 사설학원 공교육과 연계하면
서울 도심 승용차 홀짝제 시행한다면
영동고속도로 연중 통행 무료화한다면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개발하면
시집 300부 한정판 아님 20권 간행하면?
-여기 환 표!(-79-)
시인 강세환의 <시가 되는 순간>에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구도를 엿볼 수 있었다.시인은 우울을 먹고 살아간다. 그러나 시인은 현재,지금을 살아가고 싶어하였다.시인에게 현재는 시인이 추구해야 하는 고고한 가치이며, 이상이었다.하지만 시인은 매번 그럴 수 없었다.이상만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시인의 삶은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시인에게 현재란 자신의 자존심이며, 높고 높은 희망이자 이상이었다.내일은 바로 시인의 물짋적인 욕망이며, 현실과 자신의 타협 그 자체이며, 자신의 미래를 약속하거나 약속받는 매개체이다. 즉 시인이 시를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고고한 이상과 시상을 추구하는 것은 팍팍한 현실 앞에서 점차 점차 무너지게 된다.시를 쓰는 영세자영업자라 말하는 시인에게 시가 되는 그 순간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감정에 있으며, 시라는 매개체는 시간과 장소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나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시의 깊이와 주제, 그리고 단어와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시인 자신은 시를 통해서 사회에 관심 가지게 되었고,정치에 관심 가지게 된다.
돌이켜 보면 그렇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인조차도 물질적인 자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우리 사회의 속물 근성을 시에 담아내는 것은 시인의 자존심이다.정작 자신은 그 속물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돈과 자본을 위해서 시를 쓰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문자,하나 전화 한통화로 시를 쓰는 이유가 될 수 있다.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움과 균형잡힌 시상,그안에서 스스로 타협점을 찾고자 하는 시인 강세환님의 시에 대한 갈구와 몸부림을 엿볼 수 있었다.
저자소개에 보면 1988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시 ‘개척교회’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 신앙과 관련된 시를 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싯구를 생각하느라 술을 먹고 밤새 고민하면서 겨우 한편 쓰고 나면 술병도 낫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시를 쓰는 창작의 고통을 출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인은 싯구를 계속 생각하다보니 꿈속에서도 시만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꿈에 천지신명께서 보여 주신 싯구를 정리하여 시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시인은 범인들과 달리 어떤 사물을 볼때 생각이 다르다. 낡은 소파를 보면 보통 사람들은 앉아 쉬는 것을 생각하지만
시인은 그 속에서 삶의 연륜을 본다. 생활의 달인들처럼 한 곳에서 또는 한가지 일을 오랜 기간 하다 보니 그야말로 달인이 된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그냥 쉽게 이루어 지는 것은 없음을 본다.
현대인들의 인생살이가 한 곳에서 오래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어렸을 때는 모르는 상황들을 경험하며 자라난다. 새로운 것을 대하게 되는 우리의 자세속에서 현재의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성장하면서 환경이 바뀌어도 좀더 쉽게 적응하는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시를 보면 시를 쓰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드는지가 보이며 그만큼 인생의 경륜이 묻어난다. 시를 쓰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시인처럼 전문적으로 줄기차게 시를 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격렬한 것도 뜨겁다는 것도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깊어지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깊어지는 것은
그 만큼 격렬하고 뜨겁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깊어지면 알 수 있다
그 때가 지나가면 그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것을 그때그때 다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라 다시 떠나라’
시를 읽어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학창시절에 교과서로 배울때 빼고 개인적으로 시집을 사서 읽어 본적이 없는것 같다.
글이 아름답다, 문장이 아름답다는 식의 생각을 할때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붙어있는 시민 공모작의 한편 시를 보고
지하철을 기다리며 잠깐 읽어보기도 했다.
"시가 되는 순간" 이 시집은 재미있는거 같다. 솔직히 제목만 보고는 시 문학에 등단한지
얼마 안되는 새내기 시인이 많은 고뇌를 하며 쓴 시집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시집은 고뇌를
하며 쓴것은 맞지만 문장이 시 같기도 하고 수필을 짧게 쓴 글귀 같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시를 평가할 만한 내공의 없기에 자세를 편안히 앉아 샹송을 틀어놓고 분위가 잡으며 읽는
시집은 개인적으로 취향이 맞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집은 읽으면 어떤 내용을 전달하려 하는지
머릿속에 잘 들어온다. 억지로 함축하여 문장을 짧게 쓴 것도 아니어서 시집이면서 솔솔 잘
읽힌다. 제목이 "시가 되는 순간"이 아니었어도 초보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면 같은
제목을 만들어 보기 어렵지 않을지 모를 정도로 "시야? 산문이야? 하는 느낌도 받을거 같다.
하지만 시인 강세환님은 1988년에 등단하시고 시집도 많이 발표하신 중견작가이시란걸 알았다.
시를 건너뛰는 것도
시를 쓰는 것만큼 어렵고 또 무지 힘든일
시를 건너뛰지 못하고
시를 견디는 것도
삶을 견디는 것도
나를 견디는 것도
아 시가 되는 그러나 아 시가 되지 못하는
'시를 견디는 것' 내용 중 일부
시인으로서의 삶 자체가 한편의 시 이면서, 삶 자체에서 시를 쓰기위한 고뇌가 어떻게 표현
되었는지 이 글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일상생활에서 밥먹고 숨쉬듯 강세환 시인의 삶도
시를 빼고 삶을 논할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마지막 시인의 인터뷰를 읽고 시 문학계의 침체된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어 가슴이 아팠다.
좀 더 자극적인 글과 영상이 돈이 되는 시대로 변하는 듯한 시대상에 시집은 좀처럼 서점에서 찾아
보기 어렵다. 시를 포함한 문학계도 다양성이 공존해야 많은 작가들이 등단할텐데 경제적으로 힘든
모습을 시인은 걱정하고 있었다. 아마 현실적으로 시를 쓰는 것보다, 직업으로서의 시인은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오랫만에 시집을 한권읽었다. 이 젊은 세대도 같이 읽으면 아버지 냄새가 날수도 있고, 중견세대가
읽으면 많은 공감을 읽으킬만한 싯구가 많다. 겨울이 지나가고 코로나의 시대에 이 시집 한권 권하고
싶다.
우리 삶은 매 순간이 선택의 과정이요 또한 순간을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삶이 시가 될 수 있는 순간이 될 수 있음은 시의 순간을 삶에서 찾을 수 있는 현실적인 탐구 정신의 발로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시가 되는 순간, 그 순간의 삶이 어쩌면 지나온, 지나갈 삶의 족적으로서의 기시감같은 것을 보여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가 삶이 되고 삶이 시가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시집을 만나본다.
이 책 "시가 되는 순간" 은 저자 강세환 시인의 삶을 통한 시가 되는 순간과 시의 순간이 같음을 인식하고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그저 허투루 스처 지나갈 수도 있는 삶의 순간들을 채집해 자신의 직관적 감성과 정서를
투영해 시적 대상으로서의 삶을 경험해 볼 수 있게하는 시들을 마주할 수 있다.
삶이 시가되고 시가 삶이 되는 순간은 살아 보면 알게되는 삶의 지극한 결정이자 다양한 편린에 가깝지만 그러함을 자신의 직관성에 결부시켜 온전히 경계인으로의 존재감이 아닌 삶의 주체자로서의 삶을 오롯이 느끼게 한다.
시인의 시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현장 어느 한 순간을 베이스화하는 시인의 삶의 자세는 그의 사유와 태도로서 명확히 구분되고 삶을 언어적 표현의 구사 수단으로 형상화하는 가운데 삶을 사는 존재자로서의 외로움과 아픔을 느끼게 한다.
삶의 순간이 선택이 되고 시가 될 수 있는 순간이 됨은 시적 언어의 표현과 시인의 감수성에 기반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적 결과물들이 우리를 시와 삶이라는 경계지음에서 지우고 삶속의 시로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시 <근황>에서 보여주는 나, 우리 자신에 대한 직관적 진단은 그것이 사실이면서도 서글픈 현실이라는 아픔을 배가 시킨다.
시<시에 취하다> 와 같은 현상적 모습은 흔하게 겪을 수 있다는 기시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느낌을 전해준다.
시<이시는 어떻게?>처럼 온전히 삶이된 시처럼 우리의 지속가능한 삶은 바라보고 느끼며 직관하는 과정을 통찰할 때 비로소 나에게로 와 시가 될 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미를 부여해 볼수 있다.
어려움보다 삶 그자체로의 시를 만나 더욱더 살가움을 느끼는가 하면 애착스런 마음으로 시를 접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시인의 삶을 대하는 힘이 아닐까 하는 판단을 해 본다.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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