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이라는 경계선 위에서 꽃핀 사랑”
장혜영의 <유리언덕>을 읽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경계선: 유리언덕
욕망이 먼저일까.
도덕이 먼저일까.
당신의 선택은?
만약 당신이 첫눈에 반한 사랑을 만났다. 그런데 이미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약혼한 사이이다. 그래서 소위 임자가 있는 사람이라 도덕적 판단 하에 단념하고 포기하기로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욕망은 식을 줄을 모른다. 소위 말해서 '골대 있다고 공 안들어가냐' 라는 말처럼 욕망에 이끌려 도전해보려 하지만, "안돼,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해.' 라고 자꾸 머리 속에서 외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정말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삼류 막장 드라마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현실에서 가능하고 생각한다. 이 책 「유리언덕」 속 두 남녀 주인공 태주와 다요는 첫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이야기는 태주와 다요가 처음 만나게 되고, 그 첫만남에서 첫눈에 반하게 된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사랑을 시작하기에는 그들 사이에는 이미 장애물이 놓여 있다. 그녀는 부도가 난 아버지의 회사를 회생하기 위하여 이미 마음에도 없는 자폐증환자와 정략적으로 약혼을 한다. 정략결혼이라는 말에 '요즘 세상에도 이런 정략결혼을 하나' 하는 지금이 과거 조선시대도 아니고 말이다. 마치 우리나라 전래동화 <효녀 심청>, <춘향전>을 보는 듯하다. 어쩌면 이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현대판일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그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쩌면 그들은 '유리언덕'을 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갈등이기도 한 '유리언덕'은 한태주가 문학강의 속에서 언급한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욕망의 일탈을 통제하기 위해 일종의 경계를 설치하는데 나는 이상적인 장치에 '유리언덕'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았습니다."
-p.10 , <첫눈 연정>
그렇게 여자 주인공 서다요는 마치 효녀 심청을 연상하게 할 만큼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고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된다. 마치 효녀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이기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바다신의 제물로 희생하는 것과 같은 구조이다. 한태주와 서다요는 금지된 사랑을 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해보이지만, 그들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했던 그들만큼 처절하고 절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남자 주인공 한태주가 도덕과 양심에 얽매어 사랑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포기하지도 못하는 그런 우유부단하고 관망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쟁취에 있어서 적극적이었고 도덕보다는 사랑을 중시했던 로미오에 비하면 너무나 약하고 의지가 약한 것 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한태주가 심성이 너그럽고 선량해서 지나치게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또한 문학박사이며 대학 강사인 그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 때문에 욕망을 자제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욕망과 도덕의 경계선 위에서, 자신의 감정보다는 타인을 배려하고 번번히 사랑하는 그녀를 놓치는 모습에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에 반해 태주보다 서다요가 사랑에 좀더 적극적인 것 같다. 태주를 보기 위해 가출도 하고, 도망도 가고, 해외도주까지 결심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아킬레스 건이 있다. '나에겐 사랑밖에 없어.' 라고 결심하다가도 부모님, 특히 아버지 앞에 서면 그녀는 작아질 수 밖에 없다. 한태주를 사랑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그녀의 사랑의 경계선 위에서 매번 그녀는 효심을 선택한다.
요즘 시대에 이런 여자가 어디 있을까. 너무 산파극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자유연애 시대가 아닌가. 그 자유연애를 대표하는 인물이 윤하늘(강바람)인 것 같다. 정말 쿨하게, 서로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서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오직 성 쾌락만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녀의 연애에는 사랑은 없고 섹스만 있다. 왜 그녀가 그런 연애를 표방하게 되는지,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지에 대한 슬픈 사연이 나중에 밝혀지지만, 처음에는 그런 그녀가 그저 쿨해 보이고 멋져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 그녀도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결국은 알게 되었다. 그녀야말로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자유연애도, 지고지순한 사랑도 아닌 그저 짝사랑에만 만족하는 연애를 하는 여자도 있다. 바로 '앵두누나'로 불렸던 고정애인데, 정말 왜 그녀가 그런 대접을 받고 그렇게 태주 곁에 머물렀을까. 어쩌면 서다요보다 고정애가 정략결혼의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물론 고정애는 한태주를 사랑했지만, 한태주는 이미 다른 여자인 서다요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깐.
서다요, 강바람, 고정애 이 세 여자의 화살표는 하나로 향했다. 그런 점에서 한태주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다. 그 여자들의 사랑을 모두 다 받고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만 올인을 했으니깐 말이다. 소위 말해 '나쁜 놈, 나쁜 남자' 라고나 할까.
결국엔 모두다 해피엔딩으로 즐겁게 끝났지만, 그 해피엔딩의 숨은 공신은 세 여자 중 진정으로 그를 사랑한 그녀' 일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소 놀라기도 했다. 그런 결말일지 상상도 못했고, 그녀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줄은 전혀 예측도 못했으니깐.
간만에 속으로 '나쁜 놈', '나쁜 놈' 욕도 하면서, 나혼자 웃고 울고, 안타까워하면서 너무나 집중해서 이 책을 보았다. 처음에는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언제 읽을까 걱정했는데, 그들의 막장 드라마 같지만, 한 편의 로맨스 영화같은 스토리에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어쩌면 스토리도 뻔하고, 결말도 뻔하지만, 오랫만에 읽은 사랑 이야기에 즐거워하며 신나게 읽었다. 유리언덕을 그들은 과연 넘었을까. 그들에게 유리언덕은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리고 만약 내가 현실에서 유리언덕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생각해본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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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언덕
장혜영 작가의 <유리 언덕>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 욕망과 도덕률 사이의 고민, 효와 사랑, 아버지를 따르자니, 연인이 울고, 연인을 떠나보내자니 가슴이 미어지는 기나긴 밤이 될 것이고, 안방 극장 TV 드라마의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막장드라마라는 말은 아니다. 유리 언덕, 작가는 한태주의 입을 빌어 “현실은 항상 욕망의 일탈을 통제하기 위해 일종의 경계를 설치하는데 나는 이 상징적인 장치에 ‘유리 언덕’이라는 붙여보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유리 언덕은 현실에 의해 차단된 피안의 세계가 투명한 유리 너머의 물체처럼 욕망의 시선에는 포착되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차단 기능을 가진 넘기 어려운 언덕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는 암시. 프레임에 빠진 것인가, 아니면 작가가 파놓은 함정, 터널 속으로 들어온 것인가. 그도 아니면 작품의 흐름에...
이도 저도 아니다. 갑남을녀 누군들 한때, 지금도 품을 수 있고, 또 품고 사는 열정, 욕망 같은 것을 고스란히 이 소설에 담아 놓고 있는게 아닌가, 소설 "사랑방 손님"이 그러하듯, 원초적 내 안에 또 다른 나는 욕망, 내 하고픈 대로 하라고 하지만, 현실 사회를 지배하는 단단한 외피의 관습은 이를 허용치 않는다.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고, 이게 이 소설 바탕에 흐르는 관념이 아닐까, 다른 말로 ‘유리 언덕’이라는 표현하면서,
소설의 얼개, 주인공 한태주와 서다요는 그녀의 사촌 동생 혜진이 한태주의 강의를 듣는 학생이어서 만날 수 있는 그런 관계로 첫만남이 이뤄졌고 그때 둘은 서로에게 반한다. 복잡하게 얼기설기 설정해놓은 주변 인물들, 묻지 마 앤조이 상대 강바람, 앵두 누나 고정애와의 대학 새내기 때 외할머니 집에 가서 열정에 불탔던 사건, 그 후 오랫동안 잊혔던 사람, 이 두 여성과 다요의 관계 설정, 두 여성은 다요를 응원한다. 그들의 원초적 본능은 한태주와의 사랑의 결실?, 그렇지만 여기에 유리 언덕이 가로 놓여있다. 현실은 자제해야 할 처지, 마치 소설 사랑방 손님처럼...
가부장제 질서가 지배하는 가정, 한태주나 서다요 모두 그렇다. 흔한 소재이며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그런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한 꺼풀을 벗겨보면 조금은 다른 분위기가 있다. 늘 등장하는 소설 속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완벽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이다. “효도“, ”정략결혼“ ”프리섹스?“ ”도덕적 책임감“ 완벽하지 않은 인간 한태주의 '순애보'라 할까,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며 소설창작론, 소설비평 등을 하는 이의 세계,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들, 성에 있어 자유로운 결정이 강바람이고, 이들 관계는 마치 율리우스 시저의 여성 편력, 하지만 어느 여인도 시저를 비난하지 않았다는 전설, 왜 그랬을까? 그는 여성을 소유물로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자신과 사랑, 자신이 사랑했던 여성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할 우려가 있을 때는 이를 지원했다. 뭐 이런 태도를 가부장적 온정주의라 해도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한태주 모습이 겹쳐온다. 적어도 그 나름의 도덕률이 존재한다.
강바람은 청소녀시절, 어머니는 죽은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고, 스무 살 어린 남자(계부)를 집으로 데려온다. 계부는 엄마가 외국 출장 간 틈에 그녀를 강간, 동물적 욕구를 채운다…. 어머니에게 그녀가 당한 일을 하소연하지만, 되돌아오는 말 계부를 용서하라고, 그 댓가로 집과 가게를 떼어준다. 이후로 관계를 끊고 살아가던 그녀가 태주와 다요를 도우려고 계부에게, 다요의 아버지 회사에 일감을 줄 것을 부탁한다. 한태주의 사랑은 이들에게도 전염된 것인가... 캐나다로 떠날 계획인 강바람(윤하늘)의 사랑법...
고정애 또한 물러나 제 갈 길을 가겠노라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등장 여성 3명이 주인공이다. 한태주는 조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이 사랑하는 방식의 세 가지 패턴을 보여주는 게 아닌지, 다요사랑법, 바람(윤하늘)사랑법, 그리고 앵두 누나(정애)의 사랑법... 경계선에 선 이들, 유리 언덕을 넘어설 수 없나?,
누군가의 희생으로 사랑이 이뤄졌다. 그 희생자는 그 누군가이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막장드라마가 아니라 했고, 흔하디흔한 소재인듯하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여성 각자가 주체로서 자신의 욕망과 현실, 유리 언덕을 보면서 스스로 답을 내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권선징악이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시청자의 눈물과 웃음을 끌어내는 그런 류의 소설은 아니다.
작가 장혜영의 말처럼 도덕의 중력에도 도피 대신 연대를 통해 욕망을 이루어 나가는 인물의 몸부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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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언덕
욕망이라는 이름의 경계선
< 유리언덕 > 이야기 속에 이미 알고 있는 문학작품들이 극중 상황 및 인물의
입장을 대신하는 듯한 표현을 드러낸다. 책으로 만났던 영화로 보았던 낯설지
않은 연결고리라 ...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 한태주의 직업이 대학교에서
문학을 강의 하는 강사신분이라 자연스럽다. 도입부분에 글의 주제가 시원하게
드러남으로 쉼없이 한호흡에 읽는데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직접 읽으면 되는것이고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성격의 여성 캐릭터들이 잔상으로 남는다.
김은진
생활력 강하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직진하는 스타일
현실 직시가 빠른편.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무리한 요구에 좌절보다는 해 볼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여
해결을 시도한다.
혜진
솔직하고 자기 감정에 충실하며 숨김 없는편으로 생기발랄한 청춘, 대학생
스스로를 드러내고 표현 하는 것이 자기애 충만하다.
서다요
혜진의 사촌언니
무역학을 전공중이나 소설을 쓰고 , 문학을 좋하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침
천하제일의 미모를 지녔으나 글쎄., 세상 답답한!
강바람
비밀로 가득한 여인
말, 대화에 영어를 섞어쓰며 재력과 능력, 지혜로움까지 겸비한 팔방미인
어찌보면 오지랖 이 태평양이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오죽 답답하면 그렇게까지 해 줄까... 싶다. 분명 서로 얽메이지 않는 관계인데
.. 사랑이 무섭긴 무서운거다.
고정애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우렁각시 스타일
한태주 외할머니와 부모님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등장인물이 많은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것이라.
가끔 흐름이 끊기는 부분부분에선 약간의 덜그럭거림이 있었다.
평소에 드라마를 많이 보았다면 더욱 더 흥미로웠을텐데....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만의 유리언덕은 무엇인가요.?
현경사가 방금 현실의 금지선을 넘고 싶다 했잖아, 그걸 은유한 게 ‘ 유리언덕 ’이야.
넘을 수 는 있지만 넘는 순간 유리여서 깨어져 상하게 되거든.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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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활용, 작성 합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경계선, 유리 언덕. 넘을수는 있지만 넘는 순간 유리여서 깨어져 상한다고 하는데. 욕망이라는 것을 모를때는 그저 유리일 뿐 언덕이 보이지 않는데, 욕망이 생기게 되면 유리언덕이 보이게 되며 그 유리언덕을 넘을것인가 말 것인가를 보고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욕망만을 쫓는다면 세상이 엉망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늘 욕망과 도덕적인 면에서 수많은 고민들을 하는 것 같다.
여기 첫눈에 반한 연인이 있다. 대학 문학강사 한태주와 대학원생 서다요. 하지만 다요는 아버지의 사업이 곤경에 빠지자 협력업체로 선정되어 회생하려 업체선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백이사의 자폐증을 가진 아들과 강제로 약혼을 한 상태이다. 다요의 사촌동생이면서 태주의 제자인 혜진은 다요가 태주를 좋아하는 것을 눈치채고 적극적으로 다요가 정략결혼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는 것을 돕는다. 태주도 다요를 사랑하는 만큼 다요가 처한 현실에서 빠져나와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도덕군자같은 그는 갈등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외할머니는 태주의 짝이라며 정애를 데리고 올라와 태주에게 결혼할 것을 종용한다.
처음에 이 소설에 얽힌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주말드라마에 나올 법한 소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자극적인 이야기로 시청자의 눈길을 머물게 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자신의 과도한 욕망에 앞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이나 피해를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현실이 눈에 보이기도 했다. 요즘도 그러지 않던가. 나의 욕망을 위해 도덕적인 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서 질주하는 이들 때문에 눈살을 지푸린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더 문제는 태주처럼 유리언덕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고뇌조차 하지 않고 당연한듯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화살을 돌리며 안하무인으로 구는 사람들도 있으며, 한 때, 유리언덕을 넘어섰다가 반성하며 죗값을 받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전자의 경우의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참 이세상은 너무나도 혼란스럽겠지. 살아가면서 항상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 때마다 조금만 더 고뇌하며 올바른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함부로 유리언덕을 넘어서지 않도록. 험악한 세상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유리언덕』. 제목만으로 본다면 연극에 어울릴 듯한 분위기다. 첫눈에 반한 두 청춘 남녀가 있다. 서다요와 한태주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처럼 전개된다. 다요는 효도에 묶여 (부친의 부도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한) 정략결혼의 제물이 되고, 한태주는 사랑에 묶여 그녀(다요)의 효심을 존중해 다른 여자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절망한 다요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그것을 목격한 한태주의 친구는 자신을 강간한 계부와 화해하는 조건으로 협력업체 선정 허락을 받아낸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한다. 욕망과 도덕이 타협한 결과물이다. 간략한 줄거리처럼 주제도 간결하다.
저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경계선'으로 말한다.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이 욕망만 추구한다면 동물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동물이면서도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도덕으로 욕망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나 불교 등 위대한 종교에서는 인간의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으로 본다. 철저히 제어하고 다스려야 하는 게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란 가르침을 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은 욕망과 도덕의 전쟁선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무너져 내리는 연속이다. 개인의 내면에 살고 있는 동물과 인간의 대결이며 그것의 현실투영이 인생이다. 이 소설 『유리언덕』은 도덕의 중력에도 도피 대신 연대를 통해 욕망을 이루어나가는 인물의 몸부림을 핍진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수직적 선-악 갈등구도를 플롯의 수술대에 눕혀 권선징악의 구식 척추를 제거하고 수평적 갈등구도를 생성시키는 『유리언덕』의 긴장감과 흡인력 있게 펼쳐지는 서사에 빠져보자.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소개한다. 미리 내용을 알고 보는 영화는 재미가 없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좋은 영화나 소설은 두세 번을 읽어도 늘 새로운 것이 있다. 감동도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것들을 '명작' 혹은 '명화'라고 한다. 이 소설도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춘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물론 문학적 기술 능력이나 구성, 문장력, 어휘 등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비평가들의 몫이다. 독자는 독자 입장에서 판단할 따름이다. 스토리가 우수하고 유기적 구성 조건을 갖추면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대학에서 문학 강사 노릇을 하는 한태주는 대학원생 서다요를 처음 본 순간 그녀의 출중한 미모에 반한다. 다요 역시 한태주의 풍채에 연정을 느낀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요는 이미 약혼한 남자가 있다. 박스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자 (협력업체로 선정되어 회사를 회생하기 위해) 자폐증환자인 백이사의 아들 백민호와 다요는 정략결혼을 약정한다. 뜨거워지는 애욕의 감정은 여러 가지 구실로 두 사람의 만남을 유혹하고 그것을 목격한 다요의 부친은 딸을 가택에 연금한다. 효녀인 다요는 회사를 구하려는 부친의 설득 앞에서는 효심에 기울고 선남인 태주 앞에서는 사랑에 혹하며 양자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도덕군자인 태주는 효도와 사랑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다요의 입장을 이해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포기한다. 두 선남선녀의 안타까운 상황을 옆에서 목도하는 친구 윤하늘과 다요의 사촌동생 혜진이 자진하여 도와주지만 두 사람은 욕망과 도덕의 마찰 속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흔들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을 향해 치닫는다. 그러나 백이사의 음모술수에 말려들어 민호에게 순결을 잃을 뻔했던 다요는 가출하여 (부친을 떠나) 태주한테로 돌아와 태주와 함께 해외로 도주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녀의 해외 도주 계획을 뒤늦게 알게 된 부친이 실신하여 병원 응급실로 호송되자, 효녀인 다요는 여객기에 탑승하려다가 포기하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태주도 혜진이도 그녀의 절절한 효심을 가로막을 수 없다. 부친은 생명의 위험을 빌미로 딸에게 결혼식을 올릴 것을 강요한다. 아버지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응낙한다. 한편 태주에게는 쪽지로 협력업체선정만 결정 나면 즉시 백민호와 이혼하고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한다. 혼례식 날 다요는 윤하늘이 신부 역할을 대신해 준 사이 호텔로 빠져나가 태주와 만나 그의 씨앗을 품는다.
지금까지 태주는 다요의 입장을 고려해 그것만은 자제했었다. 혼례식에서 다요는 극도의 슬픔을 견디지 못해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호송된다. 그녀의 졸도 원인이 백민호네 집에서의 신랑 성폭력 사건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조건으로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는 한편, 건강이 호전될 때까지 신랑과 각방을 쓰며 부부 사이를 분리시키기로 한다. 백이사는 아들이 결혼했다는 안도감에 협력업체 선정날짜를 앞당겨 박스회사와 계약을 체결해 준다. 그러자 다요는 윤하늘을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즉각 이혼소송을 준비하며 태주한테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백이사네는 태주에게 정략결혼의 대가가 협력업체 선정이라는 물증을 제공함으로써 이혼을 감수하더라도 선정을 취소함으로써 다요 부친을 위협하려고 한다.
결국 이혼하려면 협력업체 계약이 취소되어 부친의 회사가 파산하게 되고, 협력업체를 유지하여 회사를 살리려면 이혼을 포기해야만 한다. 다요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그녀는 효녀이면서도 동시에 태주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태주는 대학 1학년에 다니던 여름 방학 시골에 갔을 때 우연하게 인연을 맺었던 정애와 결혼함으로써 다요의 효심을 지켜 주고 협력업체 계약을 유지하기로 마음 먹는다. 둘 다 가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희생을 선택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요는 무한한 실의에 빠져 극단의 선택을 시도하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다.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는 다요의 처량한 모습을 본 윤하늘은 비장한 결심을 한다.
자신을 강간한 계부를 찾아가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고) 부도난 친구 부친의 회사를 협력업체로 받아줄 것을 간청한다. 태주와 다요를 도와주기 위해 구역질이 나는 ‘아빠’라는 호칭까지 입 밖으로 뱉어낸다. 결국 태주와 다요는 욕망과 도덕의 깊은 계곡에서 모진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야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된다. 그러나 그들이 ‘유리언덕’을 넘으며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찔려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법적 부부가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동반되었다. 하늘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정애는 대학기숙사로 들어간다.
스토리와 사건의 연계성, 등장인물의 성격, 치밀한 구성 등 명작 요건에 별로 빠지지 않는다. 독자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저자의 심리 표현이나 배경 묘사 등도 탁월하다. 자칫 세속적 요소만을 강조하거나 거기에 빠지는 독자는 저자의 구성의 탁월함을 놓친다면 TV 드라마 그 이상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배경과 세상 사람들의 심리가 변했음을 간과하고 이 소설을 썼다면(만일 톨스토이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많은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인정될 수 있었을 것이란 추측을 버리고 싶지 않다. 치밀한 심리 묘사나 배경 표현은 연극 무대를 생각해도 좋을 만큼 맛깔나다. 독자가 연극을 연상케 한다고 말한 이유다.
저자 : 장혜영
소설가이자 인문·교양·세계사작가이다. 단편소설 〈하이네와 앵앵〉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림자들의 전쟁〉, 〈화엄사의 종소리〉 외 다수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꽃은 왜 아름다운가』 외 여러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신춘문예 장편소설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학술서를 출간했다. 그 중 『술 예술의 혼』은 ‘2013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새로운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