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조금 더 깊게 시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철이 없거나 열망만 가득했던 날들이다. 여전히 시를 좋아하고 시를 읽는 시간을 늘리려 하지만 시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슬프다. 그래서 아프다. 시를 아는 마음이, 시를 읽는 마음 앞에 무슨 대수일까 싶다가도 시를 안다면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시, 인터-리뷰』 란 책이 반가웠다. 어떤 책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반가움과 이해는 다른 것이라 반가움은 컸지만 이해는 더 멀어졌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시에 대한 리뷰와 시인의 인터뷰를 만날 수 있다. 한 권의 시집에서 수십 편의 시를 해설하는 리뷰가 아니라 오직 한 편의 시에 대한 리뷰를 만나는 일은 특별하다. 그러나 그 시가 내가 아는 시가 아닌 경우에는 어려움의 폭이 더욱 넓어진다. 시에 대한 리뷰는 어떻게 쓰는 것일까, 시인은 시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말하고 싶었던가.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다. 출판사의 소개 글에 끌려 구매한 시집, 그러니까 편집자가 선택한 시를 먼저 읽고 다른 시는 알지 못한 채 시를 읽었을 때 실망하고 아쉬워하는 누군가에게 이 책은 오히려 더 좋을 수 있다. 시를 공부하고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유용한 책이다.
책을 통해 만나는 시는 최근에 발표한 시들로 나 같은 독자는 이름도 생경한 시인(김유림, 주민현, 김복희, 배시은, 김행숙, 김연덕, 박지일, 한여진, 김리윤, 유계영이다. 김행숙의 시집만 읽어본 것 같고 다른 책에서 김리윤의 시를 읽은 것 같다. 어쩌면 이도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름을 들어봤어도 떠오르는 시나 이미지가 없는 시인이 많았다. 그러니까 나는 최근에 활동하는 시인을 잘 모른다는 거다.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 더 좋을 수도 있다.
「몫」의 받침은 어떻게 쓰는 거냐고
왜 한쪽 받침이 그렇게 생겼냐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거냐
「내 몫이지」 서울말 같았다
내가 이모라고 불렀던 여자
이모도 뭣도
아니고 나한테는 관심조차 없던
봄에 오는 새와 둥지에서 떨어진 새
이상하게 닳은 신발을 신고
울지않는다는 어느 날 공책 속에서 발자국을 마구 남기고
나가지 않고
그건 무슨 뜻이냐고 물어도 쓰는 법과 읽는 법은 말해주지만
계속 절룩거리며 돌아오기만 할 뿐
풀이 밟힌 채로 자라고 다리를 끌고 돌아가는 장면을
그대로 남겨두던 진흙길
「날개가 있으니까 다리 정도는 필요 없어」
텔레비전에서 나온 말을 이모는 자주 가르쳐주었다
그 말을 다 믿을 수 없었지만
마루 끝에 한쪽 다리를 들고 서 있다가
소리 내어 서울말을 따라한다
(김복희 「받침」 전문)
김복희의 「받침」 에 대한 조대한의 리뷰는 최은영의 소설 『몫』으로 시작한다. 그 소설을 읽었기에 이 리뷰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시에 등장하는 이모와 나, 이모에게 글을 배우는 장면을 그려볼 수 있다. 이모의 상처와 슬픔을 나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각자에게 할당된 부분을 뜻하는 ‘몫’이란 단어가 한동안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몫」의 받침은 어떻게 쓰는 거냐고
왜 한쪽 받침이 그렇게 생겼냐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거냐
「내 몫이지」 서울말 같았다
이모는 늘 홀로 걸었고, 공책 속엔 한쪽만 선명한 발자국을 마구 남기곤 했다. 내겐 별다른 애정을 쏟지도 않았고 부러 당당한 척하려 했던 것도 같은 그녀의 말을 이제 와 모두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문득 아무것도 기댈 곳 없이 공허해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괜히 “한쪽 다리를 들고 서”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모의 억양과 발음을 소리 내어 따라 해본다. 그건 내 몫이지. (조대한, 62쪽)
김복희를 검색한다. 읽어야지 하면서 읽지 못했던 김연덕의 시집도 함께 찾는다. 김연덕은 시가 아닌 크리스티앙 보뱅의 산문에서 추천하는 글로만 만났는데 이제 시를 읽어야겠다. 김연덕의 시 「웅크리기 껴안기」를 만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미뤄졌을 것이다.
강을 끼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주머니
나는 방에 누워 그것을 보고 있다
동전이 초콜릿이
음악이 흔들리고
새벽은 딱 그만큼 움직이기 좋은 시간
시트에 이는 먼지가
시트와 빛으로 나뉘는 시간
블라인드를 내린다
베개를 움켜쥔다
내 것이 아닌 건 이토록 부드러워
다른 꿈 다른 느낌을 갈 수 있다고 믿은 적 있다
허리가 곧은 산책자들은
따로 걷다 투명한 간격을 만들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몸은 죽지도 살지도 않는다지
참 많은 무늬다
귓바퀴를 쪼며
귓속으로 들어가는 어둠
●
고개를 돌려도 많은 발소리가 들리네
수면에 빠진 강이 둥글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동전이 떨어지는 중
주머니는 여전히 위아래로 흔들리고
줍고 싶지 않을 때 그들은 '
줍지 않는다
걷기만 해도 어지러워 평화로워서
왼손 오른손은
교차하지 아무렇게나
●
산책은 선택하는 사람들의 것
빛을 피해
목을 길게 뺀다
강이 불면
의자에 걸쳐 있던 가디건이 흘러내린다
오래전 데려온 얼룩이 도드라진다
교차하는 사랑스러운 꽈배기 문양
이어폰을 꼽는다
고르게 숨
듣기 힘든 노래는
듣지 않는다
●
소매를 걷고
팔을 귀에 갖다 대
서로 다른 시간을 듣고 있지만
안에서도 고요히
맥박일 수 있다니 좋아
강은
모두를 위한 혼자
의자가 기운다
가디건 주머니에서 초콜릿이 나온다
●
시트가 된 먼지는
시트를 원망하지 않는다
공기 방울이 떠다닌다
공평하게 가볍게
(김연덕 「웅크리기 껴안기」 전문)
방에 누워 산책하는 이들을 모습을 지켜본다. 아니 사람들의 주머니를 본다. 화자인 나는 아마도 그 방은 지상은 아닐 것이다. 누워서 볼 수 있는 풍경, 새벽의 풍경. 어쩌면 여름일지도 모른다. 조용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동전이나 초콜릿, 혹은 작은 것들로 채워진 주머니,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고 걷는다. 아니 그들의 말은 나에게는 닿지 않을 수 있다. 화자는 아직 산책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새벽의 강가를 걷는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새벽녘의 강은 모두를 위한 혼자로, 어디에서나 새어드는 새벽빛을 붙잡고 있다. 닫힌 블라인드를 걷으면 언제나 그곳에 있는 나의 이벽 유리, 나는 그것이 여전히 편안하고 여전히 두렵다. (최가은, 131쪽)
다섯 명의 시인 인터뷰와 열 편의 시에 대한 리뷰는 조금씩 독자와 시의 간격을 좁힌다. 천천히 낯선 시를 읽으면서 그 시가 바라보는 곳은 어디일까 생각한다. 시가 닿는 곳은 저마다 다를 것이고 시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시 너머의 무엇일지도 모른다. 막연히 시가 어렵다는 이들에게 시로 읽는 마음을 전해주며 시와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줄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가 읽기 어려운 당신과 시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제목으로 뽑은 이 문구는 나를 위한 말이기도 하다. 나는 평소에 시 읽기를 사랑하지만 시가 참 어려웠다. 이해하기 쉬운 시는 내 나름대로 생각도 해보고 숨겨진 의미도 알아보며 말 그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이해하기 어렵고 배경지식이 부족한 시를 읽으면 지레 뒷걸음질부터 치고 말았다. 시를 눈으로 읽는 데에만 급급하고 내 마음에서 시를 소화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선뜻 시를 건네며 당신의 감상은 어떠한가하고 물으며 내 이해를 돋우기에는 용기가 부족해 늘 제자리 걸음뿐인 나의 시 짝사랑은 정체되어 있었다. 단순히 해석본을 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상'이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시, 인터-리뷰>는 좋은 시 친구가 되어주었다.
책 내부 구성은 작품 소개, 리뷰,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에피타이저 본식 후식으로 이루어진 것 처럼 책을 순서대로 음미하면 놀라울 만큼 마음이 배불러온다. 혼자 작품을 읽으며 나의 감상을 정리해본 뒤 작가님의 리뷰를 통해 '이런 식으로도 볼 수 있구나', '이런 내용을 알고 있으면 이 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책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시인과의 인터뷰를 읽으며 짧은 간담회를 나누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가 어려워 선뜻 다가서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시를 볼 수도 있단다 하고 알려주는 기분이 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었고, 시를 더욱 풍성하게 나누며 순수한 문학의 기쁨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대리 만족을 선사해주는 기분이 들어 또 선물해주고 싶은 보물같은 책처럼 다가왔다.
책을 읽으며 또 크게 마음 속에 떠오른 감상은, '아, 시가 읽고 싶다' 였다. 술이 술을 부르듯 시가 시를 부르는 법. 이 책은 시에 대한 마중물 역할도 되어주었다. 특히 책에서 소개된 시들이 실린 시집들을 구매해, '이 시인의 세계관을 더욱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나아가 시에 아직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시가 고픈 당신에게, '시, 인터-리뷰'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10편의 시, 5명의 시인... 제목에 홀려서 생각해본다. 어쩌면 이 책은 사적인 글들을 가장 공적인 방식으로 나누는 작업이었을 거라고. 시, 인터뷰, 리뷰... 어느 하나 내 문해력으로 쉬운 글들은 아니지만, 읽기 모임의 결과물이니 입말처럼 조금은 더 쉽게 전해질까 기대한다.
기록의 결과물은 대체로 멋지고 응답이 있다는 건 소통와 희망이다. 문제는 내가 시를 ‘읽을 수 있는가’인데, 이 책을 한 장씩 넘기면서 시를 ‘읽는’ 건 또 맞는 표현인지 싶다. 신기한 것도 새로운 것도 없는 나이라 어느 날의 어떤 혼란이 나쁘지만은 않다.
모조리 오독일 가능성이 어느 장르보다 큰 문학이지만, 끌렸다, 즐거웠다, 기뻤다, 울림이 있었다... 이런 것으로도 괜찮지 않나 합리화해본다. 그건 이 책의 분위기가 무척 즐거운 모임 같아서이기도 하다. 인터뷰보다 대화 같고 리뷰보다 감상 같은 부드러움...
‘시’를 태어나게 한 시인들, 그 언어를 받아들이는 시를 좋아하는 이들. 뭐 다 내 변명일 수 있지만, 누가 어느 한 시를 쿡 집어 설명... 얘기해 달라고 하면 아무 말도 못할 듯하지만. 빠르고 짧아지는 호흡처럼 그런 문장들로만 얘기하고 쓰다보면 시의 속도는 휴식과 같다.
머물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는 느린 언어, 오래 읽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세계.
“사랑과 평화를 위한 노력의 총량과는 상관없이 전쟁은 일어나고 혐오는 계속된다. 그러니까 이곳은 놀라울 정도의 선의와 두려울 만큼의 악의가, 아무런 관련 없이 한곳에 펼쳐져 있는 차갑고 매끈한 우연의 세계인 셈이다.”
매일 누군가는 죽는다. 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사고가 비극이 덤덤하게 순식간에 밀려나는 건 두려운 일이다. 매끈하고 차가운 건 자주 섬뜩하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저녁이면 밤이면 나도 모르게 힘든 건 다 잊혔으면 좋겠다. 그렇게 무죄이고 싶다.
12월의 마지막 주는 길었다. 하루하루 숨을 후우 내쉬며 지나왔다. 한 해의 마지막... 살아 내었다, 살아남은 우리 모두는. 선명하지 않아도 좋은 시와 함께 하는 편안한 시간을 누리시기 바란다.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는 우리의 힘겨운 감각이 막다른 저수지 앞에서 ‘중간’의 자각이 될 수 있기를, ‘중간’에의 자각이 여기까지 살아왔다는 감격으로 전환될 수 있기를 (...) 바라는 날들이다.”
(...)
인간의 안에는 언제나 신기한 면이 있어
놀라울 만큼의 선의
우연한 악의의 감정
우리는 일찍이 학습했네
테러를 추모하는 공원에도 조롱꾼은 있고
손에 쥔 만화경을 돌리며
천국은 작고 어둡다
그런 말을 떠올렸네
(...)
《시, 인터-리뷰》 는 인터뷰 형식을 빌린 시 리뷰집이에요.
이 책은 열 편의 리뷰와 다섯 편의 인터뷰를 통해 시와 시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시란 어떤 의미인지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시와 멀리, 거리를 두고 지낸 이들에게는 시를 읽는 일조차 낯설게 느껴질 거예요. 그러니 일단 시를 읽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면 이 책으로 예열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어이자 리뷰어인 조대한 님과 최가은 님은 어떻게 이 책이 만들어졌는지를 이야기해주네요.
"늘 그렇듯 시작은 사소한 수다였던 것 같아요.
... 서로 좋게 읽었던 시인의 작품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어요. 그러다가 이 이야기들을 어딘가에 기록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요."
"그 기록들을 남길 수 있는 블로그를 만들고 거기에 '시로'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지요. (5p)
그동안 읽었던 시들은 전부 과거의 시인들이 썼던 작품이었더라고요. 이 책을 통해 지금 시대의 시인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시인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보니 시인에 대한 환상 혹은 편견이 있었나봐요. 시인과의 대화, 그리고 시 리뷰를 읽다보니 난해하게 느껴졌던 현대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네요. 한 편의 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야기 덕분에 시에 대한 애정까지는 아니어도 호감도가 올라간 것 같아요.
"... 과부하 된 / 희망과 증오 나는 / 내 의지로 이 사랑 모형을 버리지 않았다." (138p) 는 김연덕 시인의 시 『웹진 비유』 의 마지막 문장이에요. 여기서 '과부하'라는 단어가 주는 강렬함이 시가 주는 효과라는 생각을 했네요. 시어로 표현된 그 단어는 일상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거든요.
"... '세계'와 '당신'에 대해 말하는 작업은 결국 '나'에 대한 고민과 분리될 수 없는 작업인 것 같아요. 앞서 말씀해주셨듯이 한 편 한 편의 시를 써나가시는 일이 일종의 퍼즐처럼 한 조각씩의 세계를 구성해가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 세계에 대한 발화는 역설적으로 퍼즐 속에 그려질 나를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226p)
결국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게 되네요. 시로 읽는 마음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