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은 인생을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받아들임은 생활 안에 새로운 창조를 이룬다.
체념은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야"라는 한탄이지만
받아들임은 “문제가 있지만 해결할 길이 있을 거야"하는 기대다.
갈바람에 뒹굴던 단풍은
가을비에 가부좌 틀고 앉아
달려온 한 해를 되돌아보는 듯합니다.
이 세상의 일로써 아무런 뜻도 없이 그냥 겪고 지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 당장에는 확연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필시 현상을 넘어서 진상으로 나아가는 문을 통과할 때 그 귀한 뜻이 드러나리라고 봅니다.
“놓으시오, 탁 놓으시오. 생기 넘치는 삶을 위하여"라고 잘도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천 길 만 길 벼랑으로 떨어지는 두려움의 고통보다도 더 슬펐습니다.
족함을 아는 자는 항상 만족합니다.
사람은 남에게 요구함이 없으면 스스로 높은 품위에 이릅니다.
독특한 콜라보다. 막노동과 글 쓰는 사제에 그림 그리는 정신의 라니. 마음을 다스리는 건 어쨌든 같으려나. 궁금했다. 특히 그림을 그린 이의 글을 여러 권 읽었기에 더 그랬다.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자연을 바라보고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는 일을 묵상으로 토해내는 그의 글은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울림을 주는 위로와 다독임은 아닐까.
산, 나무, 들꽃, 바람, 하늘, 별 그리고 사람. 사제의 삶에서 온통 드러나는 자연의 것들이 조금은 새삼스러워지는 시간이었다. 성당에서 멀어져 지낸 내 오랜 시간을 반추한다. 눈앞에 묵상처럼 펼쳐진다.
간혹 낯선 일상을 마주하게 된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배우게 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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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지금 서로를 극진하게 사랑하는 우리 사랑의 기운을 받으면서 분가하듯이 각각의 화분에 하나씩 심어지고 있단다. 그러니 스스로의 독립된 삶의 세계를 마음껏 펼치려무나. (p.51)
소슬한 바람결에 실려 온 풍경 소리가 마음에 내릴 때 일어난 메아리 같은 소리는 “두레우물 같은 마음에 내리는 달빛이고 별빛이어라”하는 것이었습니다. (p.191)
성 베니딕도회 왜관 수도원에 가본 일이 있다. 가톨릭 신자라 성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붉은빛이 살짝 도는 갈색 벽돌 건물들, 풀 한 포기 하나 허투루 보지 않은 듯한 전경에 온 마음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땐 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마주치는 신부님과 수녀님들께서 축복해주셔서인지 뱃속의 '샬롬이'가 기쁨의 발차기를 해댔고, 두 번째 그곳에 갔을 땐 뒤뚱거리는 '샬롬이'에게 은총을 내려주셨다. 이 책을 받아들고 표지를 보는데, 거짓말처럼 그날의 환한 기분이 그대로 떠올라 묵상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한두 장가량의 묵상 모음집이라 욕심낸다면 한두 시간 내에도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나는 일부러 한줄 한줄 천천히 읽었고,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도 하나하나 감상했다. (알고 보니 엄청 뜻깊게 읽었던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쓰신 김해남 작가님의 그림이었다) 어떤 글에서는 가슴이 푸근했고, 어떤 글에서는 눈물을 훔쳤다. 신자가 아닌 분들이 읽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받는 기분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자연 속의 겸허함'으로 묶인 글들이 제일 좋았는데, 비나 바람에서 자연을 느끼고,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사랑과 숭고함 등을 깨닫는 과정이 온 마음을 울렸다. 고추 모종을 옮겨심으면서도 그들에게 축복을 주고, 목화솜을 터트리는 씨앗에게서 감사를 배우는 신부님의 마음에 나도 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꽃이나 하늘, 가을에 부는 바람같이 좋은 마음으로 살자는 다짐을 여러 번 했다. 또 아이의 마음에 슬픔이 밀려들 때, 따뜻하고 보송하게 말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지도 생각했다.
'마음의 깊이'에서는 친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 어떤 문제를 당장에는 해결할 수 없어도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조차 은혜롭다는 말을 읽으며,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어떠한 어려움에 닿아도 털고 일어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홀로와 더불어'라는 묵상을 읽으면서는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나'로 온전히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하루에 앉아 다 읽기보다는 식탁이나 소파 등 손 닿기 쉬운 곳에 두고, 그날그날 마음에 닿는 제목들을 펼쳐 기도하듯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신자가 아니라도 마음에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한 장씩 읽다 보면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읽기만 했는데 이렇게 온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보면, 꽤나 짙은 온기가 묻어있는 글이었다.
인생 어느 순간에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정말 열심히, 이를 악물고 미친듯이 하는데 마치 거대한 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어서 그 어떤 것을 해도 안 되는, 그런 좌절과 슬픔이 연속되는 때.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다보면 남는건 지하로 내려간 자존감과 상실감, 깊은 허무함밖에 없다. 그러다 가끔 찾아오는건 타인과의 비교로 인한 분노, 울분 정도인데
이 모든 것들을 나름 잘 지나가면 어느순간 체념인지 해탈인지 모를 시기로 넘어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내려놓음이라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포기라 하며
여기 신부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면 신념이 된다고 하더라.
막연한 공허함에 허덕일 때 이 책을 만났다.
한창 야망에 넘치는 젊은 시절이었다면 이 책을 몇 장 읽고 던져버렸거나 아니면 읽다가 졸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의반 타의반 나의 보잘것없는 성취와 미래를 내려놓고 나니 이 책이 주는 위로가 상당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묵상에 빠지는 나를 발견했다.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서 정말 많은 것을 놓아야 한다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인데 얼마나 많은 세속의 유혹을 견디는게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혹독히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을 평생 지속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 모든 과정을 지나가고 또 현재에도 헌신하고 있는 폴리카르포 신부님의 잔잔한 문구들이 맑은 종소리가 되어 마음을 위로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 담겨있는 그림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김혜남 교수님이 도맡았다. 몰랐는데 알츠하이머 투병중이고 힘든 와중에서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셨다고 한다. 그림에서 드러나는 치열함과 글에서 묻어나는 잔잔함이 묘한 밸러스를 이루어 이것도 신의 뜻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다 포기한 것 같이 말한다, 라는 말을 많이 듣는 요즘인데
이럴 때에 이 책을 만나서 참 다행이다 싶다.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싶으니 참 깊고 헤아릴 수 없는 그 분의 마음을 되짚어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