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쓸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
<편지 쓰는 법>을 읽고
도서관에서 서가를 기웃거리다 책제목을 보고 눈길을 멈춰 세웠다. 글쓰기가 아닌 '편지' 쓰기에 관한 책이라서 한 번, 편지를 '잘' 쓰는 법이라고 할 법도 한데 '잘'이 빠져 있어 또 한 번 눈을 깜빡거렸다. 누군가에게는 편지를 쓰고 보내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편지를 전혀 써본 적이 없거나 가끔 특별한 날에만 펜을 드는 사람에게는 글쓰기만큼 녹록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편지 쓰는 법>은 저자가 (훗날 '보내는 사람'이 될) 독자로 하여금 그저 편지 한 통 써보고 싶은 마음이 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현재 저자가 운영하는 편지 가게 '글월'은 편지의 순우리말이자 편지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불현듯 머릿속에 '글월 문(文)'이라는 한자와 함께 물음표가 떠올랐다가 다시 느낌표로 바뀌는 기분이 들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사람들이 소통의 방식으로 애용하며 서간, 서신, 서찰, 서한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편지의 역사를 생각해볼 때 편지글은 곧 글 그 자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편지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소위 '편지 덕후'로 예상했던 저자가 글월을 열기 전까지 어쩌다 일 년에 몇 번 정도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퍽 흥미롭다. 편지 가게에서 편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지를 매개로 편지에 대해 소통하면서 점차 편지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편지가 전하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발견하며, 그것으로부터 무한한 응원과 위로와 공감을 얻습니다.(21쪽)
편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편지를 받으면 편지를 쓴 사람에게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 알게 되며, 편지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선명하게 전달하고, 편지를 건넨 바로 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토록 좋은 편지 쓰기를 마다할 이유가 어디있겠느냐 싶지만, 막상 편지를 쓰려면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저자는 날씨, 함께 보낸 시간, 상대방의 상황, 현재, 일화, 위트를 소재로 한 첫 문장을 써보라고 권한다. 이어서 첫문장을 썼다면, (수신인의) 이름, 첫 번째 인사, 안부, 장소와 때, 편지 쓴 이유와 하고 싶은 말, 상대의 모습, 끝인사, 날짜와 시간. 이러한 순서대로 편지를 채워나가보자.
아직 시도해 보지 않았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꼭 써 보고 싶은 추신이 하나 있습니다. 편지를 쓰는 계절이 꼭 한겨울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붕어빵, 호빵 같은 겨울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도록 현금 3천원을 편지와 함께 넣어 두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추신을 쓰는 거죠. "추신. 이번 해 겨울 간식 한 봉지는 내가 책임진다."(61쪽)
편지의 끝자락에 더 쓰고 싶은 것을 덧붙일 때는 '추신(追申)' 혹은 'P.S.(postscript의 줄임말)'를 쓰게 된다. 업무상 자주 작성하는 이메일에는 이따금 '추신'을 달기도 하지만 'P.S.'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P.S.'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면 책에서 언급된 '차마 부끄러워서 하지 못한 "사랑해"라는 말'처럼, 자동 반사적으로 "I Love You"를 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아무튼 어렵(혹은 쉽)사리 다 쓴 편지를 다시 읽으며 오탈자와 어색한 문장을 솎아내다가 문득 편지를 쓰는 행위에 앞서, 편지의 세계로 입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맡고 있는 삼총사가 생각났다.
저자는 삼총사(편지지, 봉투, 우표)를 고르는 법뿐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예쁘고 화려한 편지지는 쓰기 욕구보다 소유욕을 자극하기에 여백과 약간의 모자란 구석이 있는 것이 좋으며 지면에 쓰여질 자기 글씨를 상상하며 편지지를 고르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편지를 대체할 수단이 많아진 요즘은 편지 봉투가 보내고 받는 사람의 주소를 적는 게 아니라 편지지를 담는 용도로만 쓰이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 나눈 내용을 편지글로 정리하는 일종의 기록 서비스입니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열화당, 2019)이라는 책 제목처럼 '편지로 남긴 시간'이라고 할까요. 일과 생활, 관계, 균형 등 다양한 카테고리 중에서 인터뷰의 주제를 한 가지 정해 1시간 반 정도의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고 그날의 이야기가 담긴 글과 소회를 편지글로 정리해 손편지로 보내 주는 서비스입니다. 글로 자신을 남기는 시간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159쪽)
이밖에도 책은 '펜팔 서비스'와 더불어 글월을 대표하는 '레터 서비스'를 소개한다. 전직 에디터 겸 인터뷰어의 경험을 바탕으로 편지와 인터뷰의 만남을 시도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받는 사람만을 위한 글을 써 내려가듯이 인터뷰도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만을 향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 닮은 반면, 편지를 받는 사람은 오직 하나이지만 인터뷰어의 글은 인터뷰이를 비롯한 여러 독자가 읽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이렇게 닮은 듯 다른 둘을 연결시켜 편지의 가능성을 확장시킨 저자의 아이디어가 편지 덕후의 저변을 넓혀나가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되리다 믿는다.
지금까지 편지의 쓸모, 즉 '편지를 쓸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12쪽)'에 대해 알아보았다. 모쪼록 <편지 쓰는 법>이 편지가 어색한 사람에게는 (책의 부제이기도 한) '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일'에 눈을 떠서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 한 통을 쓰고 싶다는 초심을 심어주고, 편지와 이미 친한 사람에게는 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일에 대한 진심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행운의 편지'가 되기를 바란다.
언제 받은 편지든 그 편지에는 자신의 지난 시간이 담겨 있을 겁니다. 편지 안의 문장들은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해서 때때로 내가 누구인지,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지 보여 줍니다.(135쪽)
편지를 쓰고 주고받는 일이 거의 사라진 시대에 서울 한복판에 문을 연 편지 가게 ‘글월’. 드물고 멀어진 탓에 여느 때보다 편지 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손편지의 힘을 궁금해하며 편지를 써 보고 싶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좋은내용입니다. 좋은 내용이 많이있네요 그래서 더욱더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내용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