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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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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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러시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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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우린 '갑'일 수 있지만, 어디선간 '을'이란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평점10점 | b******6 | 2013.05.08 리뷰제목
판사로서 권위와 부, 명예와 상류층에 어울리는 위선을 지니고 있었던 이반일리치의 갑작스런 병세악화와 죽음을 맞이하며 겪는 그와 가족, 주위 사람간의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부유하게 탄탄한 ‘갑’의 길을 걸었던 이반일리치가 병을 얻은 후 죽음을 맞는 순간 타인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 가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가 판사 재직 당시에는 ‘갑’의 위치였다.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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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로서 권위와 부, 명예와 상류층에 어울리는 위선을 지니고 있었던 이반일리치의 갑작스런 병세악화와 죽음을 맞이하며 겪는 그와 가족, 주위 사람간의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부유하게 탄탄한 의 길을 걸었던 이반일리치가 병을 얻은 후 죽음을 맞는 순간 타인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 가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가 판사 재직 당시에는 의 위치였다상대의 사정이 어떠하든 판결문은 그저 업무처리의 하나였고, 직장에서나 사회에선 유지 대접을 받았다그러나, 그가 갑작스런 병 때문에 환자로 병원을 방문했을 땐 그의 병은 단지 의사에겐 업무처리의 하나로 취급된다자신은 병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의사입장에선 밝혀내야할 하나의 병명에 불과하다법정에선 의 위치였지만 병원에선 의사가 이고, 자신은 로서 심드렁하게 취급받는다

 

남양유업 폭언의 당사자인 영업사원도 대리점에겐 이었을진 몰라도 어디에선간 그도 의 위치가 된다우린 어디선가 이지만, 어디선가 이 된다나의 현재 위치는 누구가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의 다른 작품인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선 하늘에서 떨어진 미카엘 천사가 하나님이 제시한 숙제 세가지를 해결하는 장면이 나온다사람의 마음속엔 사랑이 있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언제 죽을지 알수 없는 죽음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모든 사람은 자신을 돌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는다

 

의 입장이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면, 자신이 주위의 도움으로 살아왔음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누구나 톨스토이 인생과 작품에 대한 애정이 충만하듯 개인적으론 장편보단 그의 짤막한 단편을 좋아한다읽을때마다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그는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사유재산을 비난했다오랜 방황후, 55세에 신앙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종교인 기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고 고백한다그의 작품-특히 단편소설-은 언제나 내적통찰을 준다는 점에서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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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 평점9점 | w********2 | 2012.09.20 리뷰제목
<죽음의 윤리학>    죽음은 언제나 존재론적으로 확실하나, 인식론적으로 모호하다. 죽음 그 자체는 행위가 아니며, 또는 어떤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음에 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을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죽음은 현존재에게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다. 하이데거는 왜 죽음을 고통,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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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윤리학>

 

 죽음은 언제나 존재론적으로 확실하나, 인식론적으로 모호하다. 죽음 그 자체는 행위가 아니며, 또는 어떤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음에 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을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죽음은 현존재에게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다. 하이데거는 왜 죽음을 고통, 두려움의 본질 혹은 삶의 대조로 보지 않고 가능성이라는 긍정적인 영역에서 그것을 평가했을까? 톨스토이는 ‘죽음이 가능성’이라는 하나의 명제를 가장 시적으로 다룬 작가이다. 죽음에 관한 소설들(그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룬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은 좀 더 구체적으로 그것에 대해 다루지만 ‘이반 일리치의 죽음’만큼 설득력 있게 죽음의 본질을 설명하지 못한다.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혹은 작가의 죽음 이후 작가가 더 이상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달해주는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이 책을 읽어야하는지 개인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죽음 이전>

 

 이 책을 읽는 중 가장 깊은 감명을 받은 부분은 이반 일리치가 병에 걸리기 전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이것을 편의 상 죽음 이전이라는 부분으로 나눠볼 때,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삶을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로 묘사한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삶을 의도에 맞게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삶에서는 그 어떤 진정성도 느낄 수 없고 다만 편안 것만 찾아서 살자, 라는 하나의 편협한 실용주의가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묘사가 뛰어나다고 느낀 부분은 그런 의도된 삶(바꿔 말하면 절대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삶)에서 기쁨, 슬픔, 고통 등의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톨스토이는 우리가 진정성이라고 부르는 어떤 숭고한 감정, 삶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어떤 순간 없이도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심지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그가 죽음이나 여타 다른 것들에 의해 스스로에게 한 거짓이 깨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죽음은 실존을 느끼게 한다. 오직 인간만이 죽음을 통해 실존을 느낄 수 있다. 이반 일리치 역시 그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죽음을 사유하기 어려운 이유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보편성과 나에게 직접 다가오기 전까지는 절대 경험할 수 없다는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절대 두 번 경험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죽음에 대한 경험이 없다. 그래서 그토록 우리가 타인의 죽음에 무관심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사실 죽어가는 타인을 동정하지도 못한다. 정확히 이와 같은 현상이 이반 일리치를 둘러싼 타인들에게 일어난다. 의사는 그의 죽음보다 그의 병을 알려고 한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의 죽음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병’이 ‘자신의 삶’에서 하나의 방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거짓으로 채워진다. 아니, 오히려 자기기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극 중 등장한 키제베터의 ‘케사르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따라서 케사르도 죽는다’는 삼단논법에서 케사르라는 것을 나로 대체하면 나도 결국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의 진술대로 그것을 알기는 쉽지만 느끼기는 쉽지 않다. 왜냐면 내가 삶을 살고 있는 중에는 절대로 케사르와 내가 같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죽음을 직면한 순간에만 케사르와 내가 같아 질 수 있다. 하나의 장치로 톨스토이는 하인 게라심을 등장시키는데 그는 철저하게 이반을 둘러싼 인물들과 대척점에 있는 특수한 인물이다. 그는 죽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삶 안으로 받아들인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그의 고통을 동정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제, 죽음이라는 것의 ‘가능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것을 고민해보자. 글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사실 두 가지를 발견했는데, 하나는 이반의 직업이 판사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반이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점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서부터 라는 것이다. 결국 판단과 질문,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내 삶 안으로 던져진다는 것이 죽음을 직면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판단과 질문이라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한상 삶 안에서 ‘나’와 공존해야할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는 그것을 삶을 다 소비한 순간에 그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 판단과 질문이라는 두 형식이 이반을 둘러싼 등장인물들과 게라심을 구분 짓게 하는 선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으 스스로의 실존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즉 인간은 다른 존재와는 다르게 실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 아닐까?

 

<죽음 이후>

 

 키에르케고르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헤겔의 변증법을 부정한 첫 번째 철학자였다. 그는 정-반-합의 원리가 무효함을 느끼고 오직 반복이라는 것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려 하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역시 반복의 구조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죽음이라는 것이 지극히 실존의 문제임을 설명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소설을 세 부분으로 나누자면 죽음을 알기 전의 이반 일리치가 살아가는 세상, 죽음을 직면한 순간의 그가 살아가는 세상,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의 여전히 문제없이 돌아가는 세상으로 나뉜다. 편의상 나뉜 이 3개의 세계에서 우리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후에도 그 전의 세상과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느낄 수 있다.

톨스토이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처음으로 배치함으로써 결국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을 다른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톨스토이가 묘사한 대로 그들은 여전히 잡담을 하고, 거짓말로 자신의 삶을 속이고, 브릿지 게임을 즐길 것이다. 죽음이 개개인을 덮치기 전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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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 평점10점 | i******8 | 2023.05.28 리뷰제목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게 된 책이었다. 내가 읽은 책에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 뿐만 아니라 톨스토이의 작품들 중 삶과 죽음을 다른 다른 단편 소설인 '세 죽음' 관 '주인과 하인'이 함께 나와 있었다.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삶과 죽음, 자연과 문명, 이상과 감성, 선과 악의 문제에 대해 평생 일관되게 추구하였다. (p.267  역자 후기) 톨스토이는 명문 백작가의 사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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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게 된 책이었다.

내가 읽은 책에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 뿐만 아니라 톨스토이의 작품들 중 삶과 죽음을 다른 다른 단편 소설인 '세 죽음' 관 '주인과 하인'이 함께 나와 있었다.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삶과 죽음, 자연과 문명, 이상과 감성, 선과 악의 문제에 대해 평생 일관되게 추구하였다. (p.267  역자 후기)

톨스토이는 명문 백작가의 사남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삶은 복잡다난했다. 

청년시절 대학의 중퇴하고 나와 온갖 방탕한 생활로 쾌락을 추구하였고 청년장교로 전쟁을 경험했다. 그 후 농민에대한 사랑을 품고 계몽주의적 사상을 받아 자신의 영지에서 이를 시험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다채로운 삶의 경험으로 그가 불후의 명작들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이반 일리치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반이 병에 걸리고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정신적으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라는 진단을 들으며, 자신이 판사로써 죄인들에게 선고를 할 때를 대비시키는 부분이었다. 그들은 당사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이야기는 하지 않은채 의사로써, 판사로써 자신의 지식만을 나열해준다. 알아듣지 못할 용어들로 말이다.  사실 나도 이런 경우를 겪었던 터라 이 장면이 그냥 쉽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반이 알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병이 중증인지 어떤지  위험한지 어떤지 인데 의사들은 당신의 병은 신장과 맹장이 제 위치를 벗어나 어쩌고 저쩌고 할 뿐이다. (그때도 지금도 의사들의 대화법은 변화가 없다.)

독서 모임에서 게라심에게 어떠한 위로를 받았는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게라심은 제3자로 이반이 잘 알지 못하는 타인인데 그는 이반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공감해주고 도외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반은 게라심의 도움에 감사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는 가족들은 나의 아픔으로 자신들이 얻게될 것 잃게될 것을 계산하고 그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않기 때문에 이반은 더 분노하고 가족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 첫부분에서 이반의 친구인 표트르가 화자로 나오는데 표트르는 이반의 죽음에 대해 잠깐 이 죽음이 이반ㄴ의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지만 금세 지워버리고 이러한 비극은 이반의 것으로만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한다. 이는 표트르 뿐만이 아닌 이반의 부인 그리고 그 주변인들 역시 같다. 그래서 이반은 더 고독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반이 죽음에 다다르는 신체적 정신적 과정에 대해 총 12장의 구성 중 4~12장 까지 9개 장에 걸쳐 나온다. 그런데 그 과정이  실감이 난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뭐랄까... 정말 그렇게 죽어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감정적 동요 신체적으로 망가져가는 자신의 몸에 대한 혐오 절망 이런 묘사가... 톨스토이 자신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왔었기에 이렇게 묘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반의 삶과 죽음을 통해 톨스토이가 하고 싶었던 우리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현재에 감사하며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그들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마구마구 표현하며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그렇게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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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죽음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게되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r******6 | 2022.12.04 리뷰제목
모두에게 죽음은 두렵다. 하지만 그 죽음 이후에 자신의 영혼이 가게 될 곳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만 남겨진 이들의 삶속에 나의 죽음이 어떻게 반영되고 이해될 것인지는 간과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은 러시아의 대작가 톨스토이가 쓴 작품으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인해 주변인들이 느끼고 겪는 다양한 상황들을 소설로 풀어냈다. 읽다보면 씁쓸한 마음도 들고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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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죽음은 두렵다. 하지만 그 죽음 이후에 자신의 영혼이 가게 될 곳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만 남겨진 이들의 삶속에 나의 죽음이 어떻게 반영되고 이해될 것인지는 간과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은 러시아의 대작가 톨스토이가 쓴 작품으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인해 주변인들이 느끼고 겪는 다양한 상황들을 소설로 풀어냈다.

읽다보면 씁쓸한 마음도 들고 나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톨스토이의 많은 작품들중에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꼭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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