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인생영화를 둘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죽은 시인의 사회>와 <시네마 천국>을 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장면 중에는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 서서 '캡틴 오 마이 캡틴'을 외치는 것이다. 그와 비슷한 감동이 밀려오는 장면이 이 책에 존재한다. 마지막 장면이다. 다이라 선생님과 같은 의사가 되고 싶어서 흉부외과에 오겠다고 하는 인턴들. 그 마음이 전해져서 찡해진다. 아마도 띠지에 적힌 '마지막 1페이지에 눈물짓게 될 것이다'라는 카피는 이 장면을 위해서 쓰여진 듯 하다.
다이라 선생님이라면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겁니다!
335p
솔직히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기는 했지만 나를 울린 것은 그 장면에 아닌 훨씬 이전이었다. 우사미의 이야기를 그린 에피소드. 나도 그녀와 같은 경험이 있기에 더욱 동화되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휘둘려서는 의사가 되지 못한다. 유스케 같은 좋은 선생이 있었기에 그녀는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친구 참 멋지다.
기실 알고 보면 유스케는 완벽한 인간은 아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의사들은 정말 판타지스러울 정도로 완벽하지만 유스케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집에도 잘 못 들어가는 등 가정적이지도 못하고 수술을 완벽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을 백업할 능력이 있다. 그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것을 커버하고도 남는다. 그가 주치의인 환자는 참 좋을 것이다. 의사가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거나 권력투쟁의 도구로 환자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방법을 선택할테니 말이다.
나는 흉부외과와 순환기내과가 협력해 서로 보완하면서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팀 의료라고 생각하고. 서로 적대시한다면 환자가 불이익을 당할테니까.
78p
인턴 셋을 흉부외과에 입국시키라는 미션을 받은 유스케. 이 일을 완수를 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병원으로 갈 수 있다. 흉부외과는 힘들기로 소문난 과다. 인턴들이 꺼리는 과라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인턴들을 입국시킬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기필코 해야만 한다. 그런 그에게 또다른 미션이 주어진다. 그것은 바로 괴문서의 범인을 찾는 것이다. 이 또한 자신이 가고픈 병원과 연관되어 있다. 둘 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그는 무사히 미션을 완료하고 자신이 원하는 병원으로 갈 수 있을까.
작가 치넨 미키토는 현재 의사다. 그래서인지 전문적인 느낌이 확 다가온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다.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옮긴이의 말을 읽다보니 알았다.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라는 다소 이상한 제목의 책을 읽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야기 또한 매력적이었다. 가이도 다케루 이후로 꽤 괞찮은 의사 작가를 발견했다. 의학 미스터리가 살짝 섞인 감동의 힐링 이야기는 늘 사랑받을 수 밖에 없다. 아껴두고 살살 녹여 먹는 아이스크림 맛처럼 말이다.
병원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도 그렇다. 가능하면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아직까지 아픈 데 없고, 건강검진에 의한 이상 징후(?)가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내 나이쯤 되고 보니 주변엔 혈압약 먹는 사람 많고, 고지혈증이나 당뇨 초기인 사람도 많다. 아직은 건강 기능에 관련된 보조적인 의미로 약을 먹기는 하지만,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약을 처방받아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건강에 자신할 수 있을까? 그런 또 아니라고 본다. 가능하다면 병원에 가지 않고 나이 먹는 게 내 소박한(?) 소원이라면 소원인데.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몸을 움직일 뿐.
대학병원 흉부외과에 근무하는 의사 다이라 유스케. 어느 날 그에게 전국에서 손꼽히는 흉부외과 의사이자 의국 최고 권위자, 아카시 과장의 호출을 받는다. 조만간 세 명의 인턴이 올 예정인데 이들 모두 흉부외과에 입국 시키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바라던 흉부외과 의사로 가는 탄탄대로의 길이 열리지만, 실패한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 의사이긴 하지만 흉부외과는 가혹한 근무 환경 때문에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한 열의가 너무 과했을까? 인턴들의 반감을 사고 만다. 심지어 병원 내 권력 다툼으로 유스케는 힘들다. 유스케는 인턴 지도를 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인턴들이 흉부외과를 지원할 수 있을까
큰아이, 작은 아이 친구 중에도 의대에 간 아이가 있다. 가끔은 공부만 잘해서 의대에 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친구들도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 친구들이 모두 좋은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 울 아이들 또한 그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 이거 너무 사심이 많은 걸까? ^^
의사로서, 사람으로서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일까 (책 표지)
의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은 제법 많다. 예전에 읽었던 ‘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바라보며 그대를 그리워한다.’도 의사가 주인공이었다. 한 명의 의사는 환자를 살릴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후쿠하라 마사카즈이고 또 한 명의 의사는 병원에서 사신이라 불리는 키리코 슈지였다. 키리코 슈지는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환자의 가족에게 권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말라고 말한다. 누가 더 훌륭한 의사일까? 그리고 누가 더 필요한 의사일까? 세상이 이거 아니면 저거. 이렇게 이분법적인 게 아니라면, 이 두 명의 의사는 꼭 필요하다. 파이팅 해서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사가 필요하고, 때론 냉정하게 말해야 하는 의사도 필요하니까.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든 정치적 행동이 수반된다. 실력은 없지만, 줄을 잘 타 성공한 의사가 있는 반면, 실력은 좋지만 정치적 행동을 못 해 승진과는 무관한 의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의사들의 세계를 알지 못하지만,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 그렇고 그런 모습일 것이다. 여기서도 그렇다. 자신이 원하는, 그래서 성공할 길이 보이는 그런 곳에 발령 나고 싶은 유스케. 그것과는 상관없이 환자를 대하는 유스케의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특별하다. 성공과 환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국, 환자를 생각하는 유스케. 기계와 같은 실력은 아니어도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줄 아는 의사 또한 분명 있어야 한다. 이런 의사가 있다면 누구든 찾아가지 않을까?
사람이 하는 일 중 하나가 의사라는 직업이다. 의사로 사람으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어찌 보면 사람으로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른 형태의 직업관이 생길 수도 있겠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신념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어른으로, 어떤 사람으로 나이 먹고 싶었던 것일까?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윤리뿐 아니라, 인간이기에 고민해야 할 인생관.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는데, 다이라 선배는 흉부외과 집도의에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에요?" 스와노는 차갑게 말하고 캔 커피를 흔들었다.
"무슨 소리야? 만약 여기서 집도의가 못 되면 지난 팔 년의 고생이 허사가 된다고."
"팔 년이 허사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선배는 정말 자기 평가가 너무 낮아요. 무엇보다 선배는 대학 때부터 흉부외과만 보고 달렸잖아요. 대체 그 열정은 어디서 오는 겁니까?" p.133
다이라 유스케는 준세이카이의대 대학병원 흉부외과에서 팔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도의 심장 수술을 하기 위해 지식과 기술을 길러 왔다. 환자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하고, 자곡과의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일에 모든 것을 바쳐 온, 고지식하고 성실한 의사였다. 어느 날 그가 존경하는 아카시 과장으로부터 세 명의 인턴을 가르치는 지도의가 되어달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아카시 과장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흉부외과 의사이자 의국 최고 권위자였다. 오래 전 다이라의 어머니를 수술을 성공시켜 그가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유스케가 원하는 후지제일 종합병원으로의 파견을 조건으로 인원이 부족한 흉부외과에 인턴들을 입국시키라는 거였다. 셋 중 둘 이상 입국시키면 유스케의 오랜 꿈인 일류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단 실패하면 오키나와의 작은 병원으로 파견되어 의사로서 성장할 아주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된다. 하지만 인턴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의 행동을 오해하고, 결국 그들에게 반감을 사고 만다. 게다가 아랫사람에게 무례하기로 소문난 흉부외과 의국장 히고의 미움을 사게 되어 수술실 퍼스트 어시에서 배제되는 등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그 와중에 의국에 아카시 과장의 부정에 대한 고발장이 도착해 병원 전체에 난리가 난다. 그리고 유스케는 고발장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조사하는 일까지 맡게 되는데, 과연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후지제일로 파견을 나갈 수 있게 될까.
"여동생을 살리지 못한 것은 자네 탓이 아니야."
유스케가 부드럽게 말하자 우사미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럼..... 그럼 누구 탓인가요? 동생은 왜 죽어야 했나요?"
우사미는 젖은 눈가를 닦지도 않고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유스케는 살살 고개를 저었다.
"누구이 탓도 아니야.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없어도 부조리한 일은 일어나니까. 그게 현실이야. 그리고 의사는 그런 부조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네." p.252
치넨 미키토가 실제로 의사로 활동했다는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 동안 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차가운 숨결>,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가면병동> 등 그 동안 만나왔던 작품들 모두 자신만의 장점을 잘 살려 생사의 생사의 갈림길을 매일 마주하는 의사로서의 고뇌와 병원에서 지내는 환자들의 모습을 현실감있게 그려냈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만난 작품은 치넨 미키토가 처음으로 도전한 의료 현장이 배경인 ‘휴먼 드라마’다. 메디컬 미스터리가 아니라 메디컬 휴먼 드라마라고 해서 더욱 궁금했다. 특히나 이 작품은 치넨 미키토가 소설가로서 데뷔했을 무렵부터 구상해온 이야기라고 하니 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한 인간의 일과 인생에 대한 갈등을 그린 휴먼 드라마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영화 못지 않게 따스하고,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다이라 유스케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의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카리스마 넘치는 면모를 선보이는 캐릭터도 아니며, 대단한 연줄이 있다거나 집안이 좋다거나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평범한 인물이다. 사내 정치가 돌아가는 데는 전혀 관심없고, 오로지 환자의 마음을 돌보는 데만 온 힘을 다하지만 그걸 또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류 흉부외과 의사가 되어 많은 환자를 구하겠다는 꿈 하나로 그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다고 믿으며 여기까지 달려 온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단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아무리 사람이 좋더라도 요령이 없다면 어리숙하게 이용당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매 순간 느끼면서 살고 있다. 그렇게 그가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인물이라는 점이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방점이 된다. 가슴 뭉클한 메디컬 휴먼 드라마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30대 중반의 다이라 유스케는 준세이카이의대 대학병원 흉부외과 8년차 의사입니다. 가혹한 근무환경과 열악한 처우 때문에 모두가 기피하는 흉부외과지만 유스케는 의대 시절부터 오로지 최고의 흉부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 정진해온 인물입니다. 하지만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미래를 결정지을 파견 인사를 앞두고 유스케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입니다. 최고의 파견 자리 하나를 놓고 1년 후배인 하리야와 경쟁해야 하는데, 그는 다름 아닌 흉부외과 과장 아카시의 조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유스케는 아카시 과장으로부터 원하는 곳으로의 파견을 전제로 두 가지 요구를 받습니다. 하나는 신입 인턴 3명 중 2명을 흉부외과에 영입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아카시 본인의 논문 조작설을 주장한 괴문서 유포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치넨 미키토는 현직 의사이자 미스터리 작가지만 무척 특이한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읽은 작품만 따져 봐도 ‘가면병동’과 ‘시한병동’이 본격 미스터리와 의료 서스펜스를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라면, ‘리얼 페이스’는 성형의 빛과 그늘을 다루면서 거기에 연쇄살인사건을 접목시킨 작품이고, 최근에 읽은 ‘유리탑의 살인’은 (메디컬과는 전혀 무관한) 신본격 미스터리의 부활을 선언하는 듯한 정통 미스터리입니다. 그야말로 장르를 불문하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의사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자의 손길’은 치넨 미키토가 자신의 본업을 소재로 집필한 메디컬 휴먼 드라마라서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로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은 의술과 인품을 골고루 갖춘 완벽한 인물이거나 의술은 뛰어나지만 어딘가 모난 구석이 있는 괴짜 캐릭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유스케는 무척이나 ‘현실적인’ 의사입니다. 물론 병원 내 권력다툼 같은 데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환자를 위한 순수한 헌신과 최고의 흉부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뜨거운 열정을 지닌 점에선 보통 주인공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지극히 속물적인 욕심(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파견 자리를 반드시 차지하고 말겠다!)에다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요령 없다는 평가와 함께 팔랑귀에 가까운 가벼운 처신도 수시로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과장의 조카인 하리야에게 최고의 파견 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에서 유스케에게 던져진 동아줄은 두 개. 하지만 어느 하나 쉽지 않습니다. 오래 전부터 흉부외과 지원자가 사라지다시피 한 현실에서 3명의 신입 인턴 중 2명을 반드시 잡아야 하고, 과장의 논문 조작설을 제기한 괴문서 유포자를 찾아내는 일은 안 그래도 격무에 시달리는 유스케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으로 보일 뿐입니다. 더구나 인턴들을 유혹(?)하기 위해 나름 고안해낸 배려가 오히려 날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괴문서 유포의 용의자가 흉부외과 내 고위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오히려 유스케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설정만 보면 미스터리가 곁들여진 꽤 시끌시끌한 소동극처럼 보이지만 ‘구원자의 손길’은 8년차 의사 유스케가 진짜 의사로 성장하는 이야기이자, 용감하게 흉부외과에 도전하는 신입 인턴들의 분투기이며 병원 내 권력투쟁의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정통 메디컬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또 생명과 직결된 흉부외과가 주 무대이다 보니 감동 코드도 풍성했는데, “마지막 1페이지에 반드시 눈물짓게 될 것이다!”라는 출판사 소개글과 달리 제 경우엔 최소 네 번은 울컥함에 눈가가 뜨끈해졌습니다. 그건 역시 욕심 많고 소심하고 요령 없는 팔랑귀지만 진짜 의사의 모습을 진정성 있게 보여준 유스케의 캐릭터가 그만큼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고 무엇보다 “내가 아플 때 이런 의사를 만날 수 있다면!”이란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유스케의 엔딩은 일반적인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의 그것과 사뭇 다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공감이 갔고, 응원하고 싶어졌고,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구원자의 손길’이란 제목 대신 ‘의사의 길’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그의 엔딩은 “반드시 후속편을!!!”이란 간절한 바람을 갖게 만들었는데, 과연 치넨 미키토가 유스케의 ‘다음 이야기’를 독자에게 선사해줄지 너무나도 궁금해질 따름입니다.
(사족으로.. ‘옮긴이의 말’에 이 작품의 주요 조연인 스와노 료타가 ‘신의 카르테’의 주인공이라고 돼있는데, 그는 치넨 미키토의 작품 ‘기도의 카르테’의 주인공입니다. 중쇄를 하게 되면 꼭 수정됐으면 좋겠습니다.)
치넨 미키토는 이 책으로 처음 접했다. 들어보지 못한 작가였지만, 프로필에서부터 눈길을 끌었다. 그는 내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현직 내과 의사가 쓴 메디컬 휴먼 드라마라니.
그는 무엇보다 의료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현실감 있으면서도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면과 단점을 함께 가진 주인공들, 병원 내의 살벌한 정치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꾸미는 계략들. 치열한 신경전과 때로 벌어지는 드잡이까지.
거기다 미스터리 문학을 썼던 작가인 만큼, 서스펜스와 스릴이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긴박감 넘치는 응급 상황 묘사가 압권이었다. 치넨 미키토를 읽은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하는 마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유스케는 흉부외과에서 아카시 과장에게 수련하며 수술 집도의가 되는 것만을 바라보고 팔 년을 달려왔다. 집에 몇 변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딸의 얼굴도 잘 보지 못하며, 가족을 희생시켜서 목표에만 매진했다. 그러나 그는 곧 파견을 나가야 하고, 그 파견지가 문제였다. 흉부외과의 수술을 계속 배울 수 있는 후지제일 병원으로 파견을 나가고 싶지만, 그는 외진 시골 마을에 딱히 흉부외과도 없는 오키나와의 병원에 파견을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아카시 과장이 제안을 하나 했다. 세 명의 인턴을 지도해서 흉부외과에 두 명 이상 입국하게 하면 후지제일 파견을 고려해보겠다는 것이었다.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생명을 걸고 인턴을 필사적으로 지도하던 중, 아카시 과장의 논문 조작 의혹을 고발하는 괴문서가 병원 전체에 날아들었다. 아카시 과장은 다시, 후지제일 파견을 걸고 유스케에게 그 사건의 조사를 맡긴다.
유스케의 필사의 노력과 후지제일 파견 경쟁자인 하리야에 대한 질투심과는 별개로, 그는 참 인간적이고 훌륭한 의사였다. 환자를 귀중하게 대하고, 보호자까지 배려하며, 후배들을 진심을 다해 지도했다. 그 시작은 후지제일 파견을 위한 것이었지만, 어느새 그런 조건은 잊고 말았다. 응급 상황에는 적절한 판단으로 최선의 치료를 해서 어떻게 해서든 환자를 살려냈다. 현실에 이런 의사가 있다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라도 그에게 진료를 받고 싶을 정도였다.
유스케의 매력 뿐만 아니라, 인턴들과의 훈훈한 우정, 야나가사와 교수의 카리스마, 아카시 과장의 수술에 대한 열정, 스와노와의 아옹다옹하는 모습 등 독자를 매료시키는 지점이 많았다.
소설 뒷 부분으로 갈수록 긴장과 갈등 속에서 페이지가 팔랑팔랑 넘어갔으며, 너무나 인간적인 그들의 모습이 마음을 울렸다. 올해 읽은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엄청난 작품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그 감동에서 쉽게 놓여나지 못했다. 이 책을 펼치는 누구라도, 이 소설의 매력에 빠질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