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 1500일’이라는 부제를 통해, 이 책이 깻잎 농사 현장에 투입된 이주노동자들의 사연을 담은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일을 하려고 해도 직장을 구할 수 없다는 이른바 ‘취업난’을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육체노동이 필요한 현장에서는 일손을 구하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상반된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에, 산업 현장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과 적절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기에 맞추어 상품을 출하해야만 하는 농업 현장에서는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손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농사를 지을 때 가장 먼저 씨앗을 파종하여 길러내고 수확을 하는 동안 한시도 쉴 수 없기에, 그에 맞춰 적절한 노동력을 투입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많은 부분 기계화로 대체되고 있다고 하지만, 농사일은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해야만 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 시절에 대학에서 진행하는 공동체 지원 농업에 참여했던 저자는 귀국한 후 자연스럽게 한국의 농업 현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이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 한다’는 농민들의 말을 듣게 되었고, 농업 현장에서 자신들을 ‘노예’로 비유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캄보디아 농업 이주노동자의 장시간 고된 노동과 열악하다 못해 끔찍한 주거 환경에 대해 들었을 때는, 유기농과 무농약이라는 채소에 붙은 상표만 봤지, 그 너머에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아마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농사를 지어봤던 저자 자신의 경험도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다양한 이들을 만나면서 ‘사업주의 언어폭력과 성폭력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심지어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제때 주지 않으면서 ‘수천만원을 체불한 사업주’를 만났지만 돈이 없다고 버티는 모습을 볼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음을 토로하고 있다. 분명 모범적인 농업 현장과 사업주가 많았음에도, 이주노동자들을 멸시하고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 역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저자가 ‘4년이 넘게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닫고,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그들이 처한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자 하는 이 책의 출간 의도를 밝히고 있다. 고용주의 동의 없이 사업체를 쉽게 바꿀 수 없도록 한 규정으로 인해 오히려 ‘합법적인’ 자격을 취득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의 막강한 통제 아래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현실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체류 기간을 넘겨 ‘미등록 이주민’이 되었을 때, 농업 현장에서 더욱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현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농업 현장에서 이주노동자의 일손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면서 고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들을 ‘외국인’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활동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때, 노동 현장에서 차별과 폭력 등의 문제가 조금씩이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밥상도 건강하다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차니)
동물 복지와 관련한 책을 읽고 식탁에 오르는 고기에 대해 생각한 적은 있어도, 깻잎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음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이 책은 이주노동자, 그중에서도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근로 및 주거 환경을 통해 그들이 겪는 불합리성과 부당함, 농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아주 값진 책이다.
오래간만에 다시 종이책을 읽고 그 과정을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제일 먼저 남기고 싶었던 책이 바로 우춘희 선생님의 <깻잎 투쟁기> 다. 변호사가 되고 10년정도 이주민 관련 활동을 언저리에서 해오면서,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경향신문에 이주민과 관련한 칼럼을 써오면서 이런 저런 글과 책을 많이 읽었는데 처음 손에잡고 마지막까지 쉼없이 내달렸던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이 책에는 현실의 날 것이 생생히 담겨 있다.
아니, 생생한 현장 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진실이 무엇인지도 담겨있다. 왜 농촌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살게 되는지, 왜 해가 바뀌어도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는지,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옭아매는 법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합법적 신분을 유지하려면 노예의 삶을 감당해야 하지만 불법이 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 자유로운 삶을 살게되는 역설 등 단편적인 현실 뒤에 자리잡은 제도의 문제점과 인간의 욕망을 묵묵히 드러낸다. 현실의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수면위로 올려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1500일 이상 함께하면서 기록해 온 작가의 손과 발의 성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가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왜 고용주는 이주노동자에게 3년 넘게 월급을 주지 않고도 그 사람을 붙잡아 둘 수 있었을가? 그 동안 왜 이주노동자는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을까? 왜 농촌에서는 깻잎을 키우게 되었을까? 왜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성폭력에 더 많이 노출될까? 왜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가 될까?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간다. 어떤 질문에 누구도 답하지 못한다면 그 순간을 그대로 기록한다. 인간으로서 너무나 상식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침묵. 그 아찔한 침묵의 순간 를 지배하는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작가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성실한 자료와 논증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오해를 하나하나 바로잡는다. 국제기구의 권고, 각종 정부 통계자료, 현장 인터뷰 등 객관적인 자료들이 풍부하게 제시된다. 신문 기사로만 보았을 때는 가볍게 넘겼던 사례들도 작가의 추가적인 설명이 추가되면서는 다시 한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사건 하나 하나에 담겨있는 작가의 애정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저자도 좋아한다는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나 역시 참 좋아하는 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시 ‘방문객’
p.s 영광스럽게도 내가 쓴 칼럼의 내용 일부가 책(201페이지)에 소개되었다. 외국인 건강보험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졸고인데, 소개가 되어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