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펀딩에 참여한 책이라 다른 책과는 다른 애착이 다소 깃드는 것 같은 책이다. 배송 과정에서 그랬는지 외장이 약간 구겨져서 왔는데 큰 불만은 없다. 책장 맨끝에 많은 펀딩 참여자들 이름 중 내 이름이 인쇄되어 있는 것도 색다른 감상을 갖게 한다.
제레미 블랙씨의 저작을 이전에 읽었던 기억은 없다. 본서에 대한 가장 첫인상은 벼르고 걸러서 압축한 전쟁사라는 인상이었다. 전체적으로 약술略述에 약술略述을 담은 저작이라고 여겨졌다. 전체 39장에 결론 장까지 하면 40장의 구성인데 아직 11장까지 읽었을 뿐이다. 감상이라고 남기기에는 여력이 없을 독서지만 텀을 두고 다시 읽을 작정이라 짧은 인상이라도 남기려 한다.
이미 언급했듯 아주 압축하고 긍정적으로 보자면 교과서를 요약한 한 단락처럼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고 해야 하겠다. 그렇다해도 지금까지 읽은 장에서는 전쟁의 원인, 효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이 단점 같다. 전쟁 소설 같은 서술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원인과 지정학적인 접근 등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쉬움을 숨길 수 없는 서술이었다. 아직까지의 대목에서는 말이다.
반면에 전쟁의 발전 과정에 인간의 호전성과 학습능력의 기능과 금속 기술의 발전, 무기 개선(전차와 합성궁의 개발, 중기병 등 무장 강화 과정), 군사 체계의 개편, 요새와 성의 역할 등을 전쟁사의 흐름과 함께 다룬 면은 당연한 것이면서도 적절히 언급되어 흥미를 지속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사실 수많은 전쟁을 다루는 대다 전쟁의 결과만을 나열한 것만 같은 간략한 언급들이라 역사적 내용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저작이다. 나로서는 읽으면서 동시에 잊고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전쟁이 발전해 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큰 독서가 아닌가 한다. 본서를 물론 한 번만 읽지는 않을테지만 읽기를 멈추고 기존에 보유한 책 중 지도로 보는 전쟁 관련 저작과 민족으로 보는 역사와 관련된 책을 먼저 읽고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몇 번이고 읽을수록 또 다른 얻음이 있을 책이고 배경지식이 더해지면서야 더더욱 깊은 음미가 가능할 책이라는 감상이 든다. 현대전이 가까워지는 대목까지 가면 전쟁하는 인간이 발전시켜나갈 지략과 전술과 무기체계의 변화가 어떠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 자체는 싫어하지만 이미 일어난 전쟁들을 돌아보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만큼의 죄책감은 갖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게임과 실제 전쟁이 야기하는 여파는 다르겠지만 과거의 전쟁들이 흥미로운 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전쟁사를 애호하는 많은 분들에게 최고의 아이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저명한 교수라 해서 살짝 긴장했다.
오리엔탈리즘까지는 아니어도 서구 강대국 중심의 역사관이 묻어날까봐.
이틀 만에 다 읽었는데, 기우였다.
이렇게 균형잡힌 전쟁사학자는 솔직히 처음 본다.
이 책에 한국이 등장하는 곳이 여럿이다(이런 세계적 저술에서는 낯선 장면이다).
맨 처음 나오는 건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출몰한 왜구를 격파하는 장면(145쪽).
아직 기병이 없던 왜군이 고구려의 기병부대에 놀라 패퇴했다는 서술이 나온다.
임진왜란도 자세히 다룬다(233~240쪽).
부산에 상륙해 승승장구하던 왜군이 이순신장군과 의병 게릴라에게 발목이 잡혀 심각한 병참 문제를 겪으며 전세가 바뀐다는 서술은, 익히 우리가 아는 바와 다름없다.
거북선도 자세히 등장하고 이순신장군의 노량해전 전사도 서술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서술도 냉전의 당사자인 미국과 소련-중국 어느 쪽에 편파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다.
제러미 블랙이 30년 가까이 예일대출판부와 협업하며 방대한 내용을 기적적으로 압축했다는 걸 실감했다. 짧으며 깊고 그러면서 골고루 넓다.
요사이의 우크라이나 전쟁의 서막인, 2014년 푸틴-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을 다루는 대목에선 이 책이 얼마나 현재적인지, 그래서 신상을 득템했다는 기쁨까지 맛봤다(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나라 서점에서 파는 전쟁사들은 대개 20년 전에 나온, 그러니까 20세기 판본들이다).
클라우제비츠, 손자, 조미니, 풀러 등 별과 같은 군사사 이론가들을 별도의 한 챕터로 정리해놓은 것도 좋았다. 나 같은 독자에겐 무엇보다 반가운 보너스다.
그래도 가장 감동적인 건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에 있다.
저자의 결기 같은 게 느껴져서 그대로 옮겨본다.
"덜 서구중심적인 군사사를 쓰고, 비서구 군사 역량의 원시화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지면 배분은 이런 과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할리우드나 유럽의 시각으로 만든 전쟁영화를 보면서 가진 울분들이 저자의 이 대목에서 녹아내렸다. 서구만이 최고라는 편견은 이제 그만!
과문한 탓이라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 이것저것 검색하며 두세번 더 읽어야겠지만,
그것도 큰 공부가 될 것 같은 예감.
5월 27일 현재. 올해,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알차고 유익했다.
설마 임진왜란이 등장할 줄이야..
저자가 거북선의 존재를 알고있네요. 한국사도 공부하신 분인가?
임진왜란 일본의 패인을 일본측 사료는 명나라 지원때문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전술적으로 화포를 효율적으로 사용한것이 크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남미지역의 분쟁이나 전쟁까지 다루어 서구중심의 역사서술을 탈피했다는 점도 눈에 띄구요
그리고 단순히 인물중심 무기중심의 전쟁사 서술이 아닌 역학관계 동맹관계 국제지정학적 구도 그리고 국가의 전시 행정능력과 병참 지원에 따른 전쟁의 결과가 어떤지 다각적인 방면에서 내용을 서술해주셨네요
특히 현대사회는 기후변화로 자원(물 식량)부족으로 내전이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예멘 물부족으로 정부 전복사건)을 다룬것을 보니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
도미니카공화국의 아이티이주민 학살사건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내용이구요
이런 사태가 계속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게(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우려가 됩니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게 조금 옥의 티가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