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판 '부부의 세계'라는 문구를 읽었다. 드라마가 유행을 했으니 가져다 붙인 카피일 거고 그냥 쉽게 말하면 한 여자와 한 남자가 같이 살다가 다른 누군가에게 한 눈을 파는 이야기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불륜에 관련된 이야기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딸아이도 있다.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아직 의사라는 타이틀을 따기도 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남자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여자와의 사랑에 빠졌다.
사랑할 대상은 어디서든 마주치게 마련이지만 실제 인연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65p)
결혼은 타이밍이라고 하더라. 누구와 결혼하는 것인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혼할 타이밍이 되었을 때 누가 옆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리 오래 사귄다 하더라도 그 시기가 맞지 않으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굳이 결혼이 아니라 인연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만큼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당신이 정말 좋아할 만한 남자를 만나서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로 탐닉하는 당신을 보고 싶어. (116p)
그렇게 서로가 좋아해서 다시 같이 살게 되었다면 둘이서만 충분히 행복하면 될 것이 아닌가. 물론 그들은 행복했다. 새로 아이들도 낳고 각기 자신들의 직업에 충실하면서 말이다. 남자는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택했고 여자는 공부를 더했다. 그리고 각자의 일상이 나뉘었다. 남자는 여자를 부추겼다. 누군가를 만나서 셋이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그저 자신들끼리 하는 관계에 불을 붙이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어쩌겠는가 그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는 것을 말이다.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뿐이야. 친구. 그냥 우연히 남자인 친구가 생긴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 (200p)
여자는 그랬다. 그저 단순히 친구라고 말이다. 뭐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운동을 같이 하기 위한 친구, 동네 친구. 그렇게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게 아닌 것을. 마음이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이야기는 명확하게 끝을 내지 않는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다시 자신들의 행복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남자가 자신의 결혼을 한번 깨고 그 여자를 만난 것처럼 여자도 이 결혼을 깨고 다시 다른 남자를 만나서 다시 새로운 결혼을 이어기가 될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쪽 저쪽에서 남은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결혼의 연대기라는 제목은 조금은 거창해보인다. 원제인 결혼의 역사. 이렇게 이해하면 보다 쉽게 이해가 된다. 이 역사는 결말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결혼의 연대기
이 책은
이 책 『결혼의 연대기』는 소설이다. 장편소설.
저자는 기에르 굴릭센 (Geir Gulliksen), 노르웨이 문학가이자 편집자이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 아동문학가, 에세이스트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여자는 수동적이고 남자는 능동적인 고지식하고 불평등한 과거의 남녀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이들의 관계와 사랑을 주제 삼아 여러 작품을 써왔으며, 도발적이면서도 우아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강력한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현대문학의 새로운 기준을 써 내려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
이 책의 내용은
주인공은 남편인 존과 그의 아내 티미다.
그런데 그들의 만남이 평범한 결혼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아내와 딸아이가 있던 존은, 의대생으로 의사가 되기 전 진료소에서 실습중이었던 티미를 우연히 딸아이를 데리고 진료를 받으러 간 게 계기가 되어 만나게 된 것이다.(62쪽)
그러다가 같은 강좌를 수강하게 되었고(67쪽) 결국은 둘이 결혼을 하게 된다.
처음 나를 만났을 때만 해도 아내는 스물다섯이었고, 나는 그보다 겨우 몇 살 더 많았다.(13쪽)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결혼한 그들, 아이 둘을 낳고 살고 있었는데, 그만 헤어지게 된다.
이런 둘의 대화, 들어보자.
그들의 과거를 다음 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봐.
우리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흠, 한 때 열렬히 사랑했던 사이지.
그리고
결혼해서 정식으로 부부가 됐고.
그리고 나서
엄마 아빠가 됐지. 함께 아이를 낳았으니까.
(……)
그런데 어느 날....
무슨 소리야? 나더러 그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어서 그래.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사실은 나도 모르겠어.
그래도 어려울 것 같아. 아니, 별로 하고 싶지 않아. 내입으로는 못하겠어.
그럼 내가 대신 말해 볼까? 내가 당신인 듯 말야. (7-8쪽)
그 다음부터 남편인 존의 입으로, 아내인 티미의 이야기가, 부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니 이 소설은 화자의 시점이 독특하다.
남편인 존이 아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남편이 아내인 것처럼,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화자인 ‘나’의 입으로 펼쳐지는 세계는 여러 시점이 드러난다. 새겨가면서 읽어야 한다. .
한때 그녀의 남편이었던 내가, 바로 이 집 그리고 우리가 함께 했던 방에 앉아서 집안을 걸어 다니는 아내의 모습을 여전히 눈으로 좇고 있었다. 하지만 티미는 이제 우연히 나와 마주칠 때가 아니면 더는 나의 얼굴을 기억하지도,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않는다.(34쪽)
티미는 이제 우리가 함께 일구어온 세상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막 옮겨가려던 중이었으니까.
티미는 그렇게 한순간에 모든 걸 내팽개치고 떠나버렸다. (37쪽)
그렇게 완전히 과거를 회상하는 미래 시점이 나타나기고 하고
때로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그 시점에서 말을 하기도 한다.
위에 인용한 부부의 대화에서 등장한 이런 말.
<그런데 어느 날....>
그 ‘어느 날’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이다.
아내인 티미에게 어떤 남자가 다가온다. 그 남자를 아내는 받아들이고, 그것을 남편에게 모두다 말해주면서, 점점 그 남자에게 이끌려간다. 장갑맨.
조깅하고, 승마를 같이 하고, 스키를 같이 하며, 드디어.....
밖에서 그 남자를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고, 점점 그쪽으로 쏠리는 아내의 모습을 화자인 ‘나’는 아주 냉정하게 그녀의 입장이 되어 서술해 나간다.
다시. 이 책은
드디어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될 것 같아? 어떻게 끝날지 생각이나 해봤어?(205쪽)
점점 아내의 마음속에서 희미해지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가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의 나는 예전에 티미가 알던 남자가 아니었다. 지금 내 목소리 역시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269쪽)
부부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한 차원 다른 ‘부부의 세계’를 보는 느낌, 별세계의 사랑은 그런가보다.
사랑이 식으면 깔끔하게 이혼하는 것. 배우자를 사랑하지만 좀더 사랑하는 제삼자가 나타나면 말끔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것. 이것은 옳은 일일까? 아님, 좋은 일일까? 한때 뜨거웠던 사랑이 얼음처럼 식었지만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을 쇼윈도 부부처럼 이어가는 것도 어리석고, '오춘기'의 늦은 불장난처럼 벌어진 한때의 외도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도 어리석다. 어쨌든 결혼을 사랑의 종착역으로 생각하는 순진한 연인들이 있다면 분명 언젠가 생지옥과도 같은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노르웨이 작가 기에르 굴릭센의 『결혼의 연대기』(쌤앤파커스, 2020)는 결혼생활과 사랑 그리고 부부의 침실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얼추 내린 결론은 '사랑은 쉽지만 결혼은 어렵다'는 것이다. '사랑이 쉽다'는 얘기는 마치 스마트폰 신상이 나오면 이전 것을 버리고 새제품으로 갈아타듯 그렇게 새로운 사랑을 쉽게 찾아 나서는 용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결혼이 어렵다'란 얘기는 백세시대를 맞아 단 한 명의 배필과 결혼생활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유지하기가 무척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졸혼'이 생겨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결혼생활이 오래되면 애초의 달콤한 언약과 부부간의 예의와 도리가 오히려 탈주하고픈 쇠고랑처럼 변질되기 때문이다.
외도의 이유는 뭘까? 왠지 외도나 불륜하면 결혼생활의 공허감과 권태감이 일으킨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결국 불륜이란 결혼생활의 행복 여부와는 무관한 게 아닐까 싶다. 깨가 쏟아지게 행복한 부부라도 새로운 사랑의 발견과 새로운 인연의 개입으로 한순간에 남보다 못한 관계로 전락할 수 있다. 가정에 충실한 남녀 모두 유혹의 손길에 굴복하거나 외도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내가 보기에, 만족과 공허가 사랑과 불륜, 혹은 결혼의 행복과 불행을 구분짓는 잣대는 아닌 것이다.
30대의 유부남 존은 처와 딸아이가 있었지만, 의대생 티미를 만나 사랑에 빠지자, 주저없이 아내와 이혼하고 티미와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듯 한순간에 버림받은 아내는 존에게 언젠가 당신도 자기처럼 똑같이 버림받기를 간절히 기도하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아뿔싸,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두 아들의 엄마가 된 티미가 '그 남자'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 것 같다. 적어도 남편 존의 눈엔 말이다.
존은 평소에 티미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해도 여전히 사랑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오히려 티미가 다른 남자와 만날 것을 종용하곤 했다. 마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자유분방한 계약결혼을 흉내내려는 것처럼. 게다가 침실에서 가상의 질퍽한 삼각관계 유희를 떠올리며 변태처럼 즐기기까지 한다. 그런데 존은 질투와 시기심을 리비도로 활용하는 자신의 엽기적인 에로티시즘을 아내 티미가 어찌 생각하고 느끼고 있을 지에 대해선 무지했다. 존은 끝내 잘나가는 배우자를 둔 집착남이나 일반적인 의처증의 수준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정신과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