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아물지 않는다 : 이산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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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아물지 않는다 : 이산하 에세이

이산하 에세이

리뷰 총점 9.8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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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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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생은 아물지 않는다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s***h | 2020.09.22 리뷰제목
생은 아물지 않는다   이 책은    이 책 『생은 아물지 않는다』 는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이산하, 시인이다.   이 책을 보다 더 의미있게 읽으려면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난 후에 책을 읽어야 한다.그가 1987년 ‘제주 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는 사실과 석방 이후 10년의 절필 기간에 전민련
리뷰제목

생은 아물지 않는다

 

이 책은 

 

이 책 생은 아물지 않는다는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이산하, 시인이다.

 

이 책을 보다 더 의미있게 읽으려면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난 후에 책을 읽어야 한다.

그가 1987제주 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는 사실과 석방 이후 10년의 절필 기간에 전민련과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실행위원, 국제민주연대 인권잡지 사람이 사람에게초대 편집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인권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한다.

 

그의 시는 책상에서 나온 시가 아니다.

그의 시는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이 책의 내용은 

 

시집 한라산의 저자인 시인 이산하가 쓴 아포리즘.

여기 모두 111편의 글이 소개되고 있다.

 

아포리즘이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로 금언 ·격언 ·경구 ·잠언 따위를 가리킨다.>

 

이 책에 실려 있는 111개의 글들은 그 글 하나 하나가 모두 아포리즘이라 할 정도로 간결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해서 소개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 중에는 나를 일깨워주는 것, 새롭게 알게 되는 것,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또 시도 있다.

 

먼저 이런 글 읽어보자.

모든 나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잘리고 병든 이웃 나무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최대한 오래 버티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유리하다. 그 애정과 결합의 정도가 강한 숲일수록 더 오래 유지된다. 참나무나 전나무, 가문비나무, 더글러스소나무 등 거의 모든 나무도 마찬가지다. 숲이나 산을 걷다가 발견하는 살아남은 밑동은 그런 우정과 상호 연결의 결과이다.> (25)

 

그래서 글의 앞부분, 이런 글을 새겨야 한다.

나무들도 서로 영양분을 나누지 않으면 더 빨리 죽고 죽은 나무도 금방 썩어 숲에 구멍들이 뚫린다. 그럴 때 태풍이 오면 옆이 나무들도 쉽게 쓰러져 죽는다.

 

옆의 나무가 쓰러지는데, 저라고 별 수 있을까 

 

코스타리카라는 나라는 군대가 없다. 사실일까 

저자는 그 나라를 이렇게 소개한다.

코스타리카는 1948년 과감하게 군대를 해체해 버렸다. 대통령은 군대가 없는 것이 최대의 방위력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군대가 없으니 당연히 무기도 필요 없을 것이다.> (43)

 

이런 사실, 정말일까 

정말이다. 사실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확인한 바는, <1949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군대를 철폐한 이후 경찰이 치안유지와 국토방위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

  

사람이 죽으면 꽃을 같이 묻었다. 예부터. 

지금의 이라크 북부, 한 동굴에서 6만년전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유골 근처에 빙 둘러 꽃가루들이 나왔다. 그 꽃가루들을 분석하니 놀랍게도 지금도 볼 수 있는 꽃들이었다. 아킬레아, 엉겅퀴, 접시꽃, 히아신스 등.

그때도 네안데르탈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꽃을 같이 묻었던 것이다. (68)

 

현각스님은 요즘 뭐하시나요 

예전에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녔던 화제의 스님이 있다. 현각 스님.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그랬던 스님이 안 보인다. 매스컴에 나오질 않는다. 어디에 계시는지 

 

한국을 떠나셨다. 이유 중 하나는, 소위 인기라는 것이다. (248)

유명해지는 것은 전혀 내 뜻이 아니었는데... 결국 명성은 또 다른 짐이자 고통이란 걸 깨달았다. 난 외로워지기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거기서 또다시 유명해진다면 난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다.”

 

진정한 구도자, 수도자는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인기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는 게 덧붙인 나의 생각이다.

 

아포리즘중 아포리즘 - 이런 시는 어디 벽에라도 굵게 새겨두자.

 

불혹

 

백조는 일생에

두 번 다리를 꺾는다.

부화할 때와 죽을 때

비로소 무릎을 꺾는다.

 

나는 너무 자주

무릎 꿇지는 않았는가.

(172)

 

이 시는, 이 책의 아포리즘중 아포리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자르는 데는 너무 인색하고 타인의 생각을 자르는 데는 너무 익숙하다.> (63)

 

정명훈 지휘자가 줄리어드 음대에서 공부를 할 때, 어느날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의 답은 이랬다.

지휘를 잘하고 싶지만 잘 안되는데 어떻게 하면......”

“It takes time.(시간이 걸려)” (126)

 

오늘, 어느 석좌교수가 쓴 과학책을 읽다가 혈압이 올라 곤욕을 치렀다. 조악한 비문의 장례행렬이 이어졌고 나는 조용히 책을 쓰레기통으로 운구했다.>(143)

 

공감이 가는 글이어서, 옮겨 놓는다. 크게 공감이 가는 글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시도 꼭 읽어야 한다.

이 시가 맨 앞에 수록되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쉬워, 여기 옮겨 놓는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읽어보라는 의미다.

책 제목이 마침 시의 제목이기도 하니까, 이 시를 읽어야 책을 읽는 셈이 된다.

 

생은 아물지 않는다.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시는 책상에서 나온 시가 아니다. 그냥 읽고 허공으로 사라지는 시가 아니라,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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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제 베인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s******5 | 2020.11.01 리뷰제목
작가 이산하는 1987년 '제주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석방이후 10년의 절필 기간에 전민련과 참여연대 국제인견센터 실행위원, 국제민주연대 인권잡지<사람이 사람에게> 초대 편집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인권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이산하 작가분을 나처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일단 작가
리뷰제목

작가 이산하는 1987년 '제주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석방이후 10년의 절필 기간에 전민련과 참여연대 국제인견센터 실행위원, 국제민주연대 인권잡지<사람이 사람에게> 초대 편집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인권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산하 작가분을 나처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일단 작가소개를 했다. 나도차도 4.3을 잘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접하면서 궁금해서 찾아보니 1947~1954년까지 제주도의 거의 대부분의 시민들이 4.3 항쟁을 통해 무차별 학살이 되어 추정 6만~8만명이 실종및 사망한 사건이였다.


'생은 아물지 않는다' 는 이산하의 에세이집이지만, 신변잡기가 아닌 글 하나하나에 뜨거운 무언가 힘이 담겨 있는 듯하다. 메세지와 교훈이 담겨 있다.


나이테

사람의 나이는 고통을 이겨낸 나이테가 아니라 해마다 죽음의 대출금을 상환한 영수증이다. 그리고 '인생의 후회'라는 이자는 늘 연체된다. 올해도 본의 아니게 나이를 먹더니 이자율도 높아졌다. 내 몸의 나이테는 촘촘해지지 않고 자꾸만 느슨해진다.

새의 부화

새의 부화에서 보듯 하나의 세계가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나오려면 자신이 안에서 먼저 깨트려야 한다. 본인들 둘러싼 껍데기를 힘껏 쪼아야 밖에서도 함께 쪼아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모두 껍데기다. 하나의 껍데기를 깨면 날아오르기도전에 또 다른 껍데기가 금방 나를 둘러싼다. 나는 힘들고 지친 나머지 튼튼한 날개가 없는 것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날개는 새끼가 부리로 껍데기를 먼저 쪼듯 내 안에서 돋아나는 것이지 누가 밖에서 선물처럼 달아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한 번 죽지만 엄마는 수백번 죽는다.

촛불로 밝혀진 서울 시청 광장에 ... (중략)... 세월호 엄마들이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세월호 엄마들이 바늘이 아이들의 찢어진 영혼과 자신들의 부서진 마음을 한 땜씩 꿰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타래는 아이들의 심장이다. 그 실타래에서 한없이 풀려나오는 실은 엄마들이 하염없는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의 실을 타고 엄마들은 오늘도 아이들 곁으로 간다. 이 시집 역시 펜을 뜬 뜨개질이다. 펜은 뾰족하고 실타래는 둥글다. 엄마의 손끝이 뾰족한 것을 둥글게 다듬는다. 상처받아 뾰족한 아이들의 영혼이 엄마의 손끝에서 마침내 둥근 무지개로 떠오른다. 그러기까지 엄마들은 수백 번도 더 피를 토하며 혼절을 거듭했을 것이다.

 

마음의 감옥

제주 4.3 항쟁은 토벌대의 공세로 10월에 이미 전세가 기울었지만 청년들은 계속 한라산으로 올라갔다. 어쩌면 지금 내가 시를 쓰는 것도 그 가을, 이미 패색이 짙은 싸움을 위해 입산하는 그 청년들이 심정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유배는 풀렸지만 늘 진실만 말해야 한다는 멍에가 여전히 내 목에 걸려 있는 한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그 베인 자리가 아물면 내가 다시 벨 것이다. 그러니 내 생은 결코 아물지 않는다. 아물면 죽음이다.


거듭 말하노니

한국 현대서 앞에서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 이산하, <서시> 한라산 중에서 -

 

우리를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2011년 1월, 한국 선박이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해적들에게 납치됬다. 한국 정부느 해군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8명의 해적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다. ....그런데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박노자 교수가 ' 우리를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나?' 라는 신문 칼럼에서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

어쩔 수 없이 해적이 된 가난뱅이 8명을 '성공적으로 죽였다고' 기뻐서 난리치는 우리를 과연 계속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있어야 할 자비심이나 생명에 대한 경외, 피부색과 무관한 이웃사랑은 우리에세 과연 남아 있는가? 대한민국 국적 소유자임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이산하 시인의 글은 문학이 시대정신과 곁을 같이할 때 압도적으로 찬란해진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작가이다. 나스스로도 생각을 많이하고 반성도 되면서 나 자신을 채찍질해주는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깨닫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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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생은 아물지 않는다] 숨결과 숨결을 모아 물결을 만들어내는 '한라산 시인'이 쓴 아포리즘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c*****0 | 2020.10.31 리뷰제목
이산하는 '한라산 시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한라산'은 그가 쓴 시의 제목이다. 시인에겐 매우 영광스러운 애칭일 것이다. 시인에게 자신의 시 제목을 이름 앞에 붙여준다는 것은 '한라산'이 워낙 유명한 시이기도 하고 시인 자신의 역작이었기 때문이리라. '한라산'은 '4.3 제주'를 시로 표현한 대서사시다. '한라산'은 그렇게 시인 이산하(필명이고 본명은 이상백)의 정체성을
리뷰제목


이산하는 '한라산 시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한라산'은 그가 쓴 시의 제목이다. 시인에겐 매우 영광스러운 애칭일 것이다. 시인에게 자신의 시 제목을 이름 앞에 붙여준다는 것은 '한라산'이 워낙 유명한 시이기도 하고 시인 자신의 역작이었기 때문이리라. '한라산'은 '4.3 제주'를 시로 표현한 대서사시다. '한라산'은 그렇게 시인 이산하(필명이고 본명은 이상백)의 정체성을 확정시켜주는 시가 됐다. 지금에야 4.3 제주사태로 생각하지만 사건 당시부터 군사정권 때까지만 해도 피해자인 제주도민들은 입에 담지도 밖으로 내뱉지도 못하는 사건이다. 제주 4.3을 말하는 것조차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시국에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1987년)했으니 시인이 겪었을 고초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역설적으로 이 시는 시인의 대표작이 되고, 시인의 정체성을 우리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그의 시인으로서의 글쓰기와 시대 비판 정신이 드러나는 '작가의 말'을 통해


꽃이 대충 피더냐.

이 세상에 대충 피는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소리 내며 피더냐.

이 세상에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다 아름답더냐.

이 세상에 아프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언제 피고 지더냐.

이 세상의 모든 꽃은

언제나 최초로 피고 최후로 진다.


라고 적는다.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꽃을 '민초' '소외된 사람'에 비유해 읽어도 감동적이다.





시인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 1987년 당시 발표한 '한라산'의 일부를 발췌해본다.(행과 띄어쓰기는 독자 임의로 했음) 당시 제주는 '5.18 광주'와 오버랩되기도 한다. 상당히 유사하게...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항간에서는 그것을 제주 4.3사건 또는 제주 4.3인민항쟁이라 부른다.

이 피의 대학살은 당시 일체의 공식적인 보도가 금지되었고

외부의 특파원이 현장에 들어가는 것조차 금지되었기 때문에

전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채


도망갈 곳조차 없는 외떨어진 섬

썩은 볏짚 사이로 푸른 잡초가 듬성듬성 돋아난 초가지붕

비스듬히 기운 농가들처럼 무너져 무너져 가는 사람들

무고한 주민들은 게릴라와 내통했다는 죄로

끊임없이 살해되고 있었다.


시인은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석방 이후 10년 동안 절필했고, 절필 기간에 인권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한라산'은 2018년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한 권의 시집으로 발간됐다. 그는 최근 판결 33년 만에 ‘한라산 필화사건’의 재심 청구에 들어갔다.




이 책 『생은 아물지 않는다』는 이산하 시인의 아포리즘(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말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명한 아포리즘은 히포크라테스의 《아포리즘》 첫머리에 나오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이다, 독자 주)이다. 산사기행집 '피었으므로, 진다' 이후 4년 만에 낸 신작이다. 기행문이 아닌 이산하의 일반 산문집으로서는 첫 책이다. 평범한 일상 속의 비범한 일화, 영혼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세상 속 이야기들을 노래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 현실에 관한 촌철살인과 개개인의 상처를 보듬는 것을 뛰어넘어 역사적 아픔과 시대의 상흔까지 어루만진다. 시인의 날카로운 시대 비판 정신은 전 책을 통해 곳곳에서 드러난다.

책장을 덮는 순간 휘발되는 감성이 아니라 책장을 덮고 난 후 더더욱 선명해지는 글이다. 그것이 이산하의 문장이라고 단정지어도 된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뒤돌아보게 만드는 힘, 이 책에는 그런 힘과 함께 우리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찬란한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저자는 벼꽃, 샛노란 산수유, 히아신스, 금강송과 같은 꽃과 나무를 통해서 얻은 노련한 지혜를 들려준다. 과다출혈로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탐욕을 부리는 늑대, 높은 지능과 뛰어난 모성을 지닌 문어, 척박한 히말라야의 설산까지 사냥을 하러 올라오는 인간을 피해 살아가는 눈표범 등 동물의 생태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이켜본다. 인간이 아닌 자연 속 존재들의 모습에서 공동체 정신을 배우고 인생의 올바른 방향성을 진중하게 모색한다.


지나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이 텃밭 아름답지 않아요?” 하고 묻는 친구의 마음과 눈이 너무 아름답다. 벼꽃이 피는 것을 개화라 하지 않고 ‘출수’라 부르는 것처럼 그가 아무리 세련된 현대미술을 논해도 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친구 가슴속의 텃밭이 먼저 보인다. 벼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듯 농부도 벼꽃 피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 것이다.(p.18~19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에서)




두 번째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현실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여전히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드러낸다. 행복지수가 세계 순위에서 늘 5위 전후인 나라 부탄을 이야기하며 부탄의 거룩한 국민행복지수는 인도와 네팔 노동자들의 등을 밟고 센 허수임을 꼬집기도 한다. 늘 약자 편에 서는 인도의 고등학교 마요칼리지와 꼴찌 없이 모두가 1등인 아프리카의 반투족을 통해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 된 한국의 현실을 비판한다.


촛불로 밝혀진 서울시청 광장에 거대한 고래가 지나갈 때 지하 갤러리에서는 세월호 엄마들이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고래 속에 상처받은 304명의 아이들이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세월호 엄마들의 바늘이 아이들의 찢어진 영혼과 자신들의 부서진 마음을 한 땀씩 꿰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타래는 아이들의 심장이다. 그 실타래에서 한없이 풀려나오는 실은 엄마들의 하염없는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의 실을 타고 엄마들은 오늘도 아이들 곁으로 간다.

(p.162 「아이는 한 번 죽지만 엄마는 수백 번 죽는다」 중에서)




또한 이 책은 평범한 일상 안의 비범한 일화들을 이야기한다. 영혼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세상 속 이야기들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흔할 것 같으면서도 결코 흔하지 않은 사연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를 통해,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며 뚝배기 같은 진한 감동을 우려낸다.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내미는 단 한 번의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서늘한 깨달음이다. 비록 그 손길이 모든 일을 결정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희망은 옆의 숨결을 느낄 때 오고 절망은 옆의 숨결을 느끼지 못할 때 온다. 숨결과 숨결이 모이면 물결로 변한다.

(p.198 「잔인한 실험」 중에서)




『생은 아물지 않는다』는 문단의 지성이 쓴 에세이이다. 인스턴트 감성에서 비롯된 가벼운 공감과 다 똑같아 보이는 위로의 글들과는 차별화된 뜨거운 울림을 갖고 있다. 패기 있고 꿋꿋한 이산하 작가의 외침은 예술과 정치를 분리하고 되도록 엮지 않으려고 하는 문단의 풍토와 대한민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책장을 덮는 순간 휘발되는 감성이 아니라 책장을 덮고 난 후 더더욱 선명해지는 글, 그것이 이산하의 글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뒤돌아보게 만드는 힘, 그리고 우리가 그 힘을 어떻게 펼치며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지 알려주는 찬란한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세상이 이산하의 글을 품을 수 있는 한, 우리 생은 결코 아물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에서 사회자 이효리 가수가 낭송한 시(다음)로, TV를 무심히 보던 내 귀에는 마치 환청처럼 아득하게 들렸다."고 술회한다. 독자도 같은 시각 대한민국 서울에서 TV로 보고 있었지만 이효리 가수가 추념시를 낭송한 것을 들었지만 시인처럼 절실히 귀에 들리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시인과 독자의 눈이 다른 것인가.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쫒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저자 : 이산하


1960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 부산 혜광고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필명 ‘이 륭’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를 발표하며 등단해, 그해부터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다. 1987년 ‘제주 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석방 이후 10년의 절필 기간에 전민련과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실행위원, 국제민주연대 인권잡지 《사람이 사람에게》 초대 편집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인권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저서로는 시집 《악의 평범성》 《한라산》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성장소설 《양철북》, 산사기행집 《피었으므로, 진다》 《적멸보궁 가는 길》, 번역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프리모 레비 지음) 《체 게바라 시집》(체 게바라 지음)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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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삶에 대한 깊은 성찰 평점10점 | c*******3 | 2020.10.27 리뷰제목
생은 아물지 않는다평지의 꽃느긋하게 피고벼랑의 꽃쫓기듯늘 먼저 핀다.어느 생이든내 마음은늘 먼저 베인다.베인 자리 아물면내가 다시 벤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산하 작가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라는 시이다.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에서 사회자 이효리가 낭송한 시로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산하 작가는 1987년 제주 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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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아물지 않는다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산하 작가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라는 시이다.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에서 사회자 이효리가 낭송한 시로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산하 작가는 1987년 제주 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위의 시가 낭독되었던 제주 4.3 7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중략) 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석방되고 나서도 '빨갱이 시인'으로 낙인찍혀 금기의 이름이 되고 마음의 감옥 속에서 30여년 동안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냈을 작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이렇듯 이산한 작가는 당시 현실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모두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하였으며 이번 책을 통해서도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경험을 이야기하며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양한 교훈과 깨달음을 준다.

 

'비교'라는 단어

작가는 비교라는 단어를 가장먼저 없애고 싶다고 말한다. 그만큼 지금의 우리 사회는 다른 사람과 다른 회사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를 더 몰아세우고 경쟁사회로 내몰고 있는 것 같다. '비교는 경쟁을 낳고, 경쟁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악마를 낳는다. 그리고 악마는 약자부터 잡아먹는다'라는 표현이 크게 공감된다. 더 나은 이익과 수익을 위해 아래사람들을 다그치고 무한경쟁으로 몰고 가는 사회적 분위기도 안타깝고 이런 상황속에서 자신의 원래 목표나 관심, 심지어는 건강도 잃어가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현실도 마음이 아프다. 뉴스를 통해 건강이 악화되고도 일을 쉬지 못하다 과로사로 숨지는 안타까운 사연을 종종 접할 수 있다. 이또한 타사와 경쟁하며 더 나은 서비스나 소비자의 만족을 위한 회사의 압박으로 결국 일반 노동자들이 더 힘든 상황이 되어버린것 같아 씁쓸하기만 한다.

 

 

 

닭과 옥수수라는 에피소드는 모든 타인이 닭으로 보이고 난 한없이 작고 무력한 옥수수 알갱이 처럼 느껴지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보는 내모습과 남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의 차이에서 괴리감을 느낄때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보려는 나와 보여지는 나, 진짜 내 모습이 명확히 구분짓기도 어렵고 그 경계가 모호하다. 내 자신을 파악하는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억울하게 독방에 갇힌 빠삐용의 꿈속에 나타나 재판관은 너의 죄는 인생을 낭비한 죄라고 말한다. '나는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과연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답할 수 있을까 고민된다. 또, 어떻게 살아야 떳떳하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답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글을 읽으며 무슨 일이든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실천하는 자세를 지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새들이 일반적인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강풍이 부는 날 휘청거리는 나무 위에서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를 힘들게 엮어가며 둥지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짓는 순간의 바로 지금 눈앞의 상황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나중에 바람이 많이 부는날에도 둥지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미래를 생각한 선택이다. 이런 새들의 모습을 본 후로 새대가리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쓰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된다. 사람도 당장의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실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번의 시행착오끝에 이런 지혜를 깨달았을 새들의 모습이 놀랍다.

 

책 전반에 걸쳐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의 깊은 생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사소한 현상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자세하게 들여다볼줄 아는 세심함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세월호 사건이나 난민문제,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적 살해 사건등을 언급하며 사회 부조리와 국가의 잘못도 예리하게 짚어내며 문제를 제기하여 읽는 사람들도 역시 주어진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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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생은 아물지 않는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a*****7 | 2020.10.02 리뷰제목
세상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도 있지만, 스스로 애써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더군요.<생은 아물지 않는다>는 이산하 시인의 에세이예요.시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은 시인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그리고 새삼 시인은 세상의 아픔을 대신 아파해주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어요.어쩌면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것
리뷰제목

세상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도 있지만, 스스로 애써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더군요.

<생은 아물지 않는다>는 이산하 시인의 에세이예요.

시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은 시인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새삼 시인은 세상의 아픔을 대신 아파해주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어요.

어쩌면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것도 착각일지도 모르겠네요. 겨우 책을 통해 아는 것을 진짜 안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주를 아름다운 여행지로만 알고 있지만 그 제주에는 피비린내나는 슬프고 비극적인 역사가 있었어요.

저 역시 4·3 항쟁을 역사적 사실로는 알고 있지만 그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시인은 시가 아닌 에세이를 통해서 이 사회의 현실과 개개인의 상처뿐 아니라 역사적 아픔까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삶이 아픔이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물지 않을 아픔에 대해서.

그러나 무겁고 침울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잔잔하게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몸이 아프면 약을 먹을 텐데, 마음이 아픈 건 약이 없는 것 같아요.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처 입은 마음이 들여다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상처 입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어요.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상처들이 생기곤 하잖아요. 어쩌면 그런 경험들이 스스로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옳은 것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아프지 않으려고 피하는, 중심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삶. 그래서 나이는 들었지만 어른이 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여전히 아둥바둥, 그러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걸 느꼈네요. 시인은 그저 이야기를 들려줄 뿐인데, 괜시리 뭔가 가슴을 콕콕 찔러대네요. 어떤 삶을 살았던가...

시인이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대사를 통해 그 생각을 전해주는 것 같았어요. 나즈막한 읊조림이 가슴 깊숙히 들어오네요.


"우리 사람 되는 거 힘들어.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말고 살자."  (289p)



"4·3 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도 있었습니다.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

    - '제주 4·3 70주년' 문재인 대통령 추념사 중에서   (176p)


'이산하 시인'이라는 말은 내가 1987년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이후부터 석방되고 나서까지 '극좌파 시인' '빨치산 시인' '빨갱이 시인'으로 낙인찍혀

4·3 만큼이나 좌우 모두 기피하던 금기의 이름이 되었다. 몸은 감옥에서 석방되었지만 세상 속 내 이름은 여전히 갇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창살 없는 감옥이자 마음의 감옥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 그 세월이 30년이었다. 

... 4·3 항쟁 70주년을 맞아 《한라산》 개정판을 냈다. 시집 후기에도 썼듯이 '내 젊은 날의 비명이자 통곡'이었던 시를 30년 뒤에 하나씩 천천히 쓰다듬으며 다듬었는데

그 과정이 마치 유골 발굴 현장에서 흩어진 뼈를 주워 하나씩 맞춰가는 것처럼 가슴이 떨렸다.

... 비록 유배는 풀렸지만 늘 진실만 말해야 한다는 멍에가 여전히 내 목에 걸려 있는 한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그 베인 자리가 아물면 내가 다시 벨 것이다. 그러니 내 생은 결코 아물지 않는다. 아물면 죽음이다.


거듭 말하노니

한국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 이산하 , <서시> , 《한라산》, 노마드북스   (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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