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너를 보호하지 못할 거야.’ (211)
침묵이 나를 보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를 이야기했을 때, 나를 보호할 수 있을까? 가해자는 잘살고 있는데 피해자는 외려 더 움츠러들고 소외되고 도망가야 하는 현실. 이런 현실에서 침묵은 너를 보호하지 못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분명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진짜 달라진 게 맞을까? 의붓아버지가 추행해도, 엄마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딸을 나무라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엄마가 되어서 딸의 고통을 그냥 눈 감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엄마라는 사람은 이 남자가 아니면 어렵고 힘든 인생이 펼쳐질 거라 믿어서일까? 딸이 조금만(?) 희생하면 편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세상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지만. 이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떤 인생이 그들에게 최선인지.
예민하고 강박적인 엄마, 가부장이라는 이유로 큰소리치지만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아빠. 나연에게 부모는 그런 사람들이다. 힘든 가정 형편 중에 아빠는 사촌 집 별채에 살게 되었다고 좋아한다. 새로운 곳에서 학교에 다니는 나연은 존재감 없는 투명 인간이다. 따돌림을 당하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다. 세상 어디 기댈 곳 없는 나연에게 사촌 오빠 ‘루’는 햇빛 같은 존재다. 자신을 제일 잘 이해해주는 사촌 오빠 루. 하지만 사촌 오빠는 나연에게 기습적으로 입을 맞추고 무리한 부탁을 해 온다. 세상 친절한 사촌 오빠 루의 선의를 믿고 싶었던 나연은 루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이 또한 괴롭다. 부모에게 말해 봤자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어느 날 ‘그건 범죄야’라고 말해주는 주홍 샘을 만나게 되는데...
친절을 가장한 폭력. 결코, 상처가 사라지지 않을 폭력. 때리고 패는 것만, 폭력이 아니다.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말이나, 혹은 눈으로 하는 폭력도 상처가 된다면 폭력이다. 친절하다는 이유로, 나를 이해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나를 조종하게 놔둘 수 없다. 그건 범죄니까. 하지만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건 더 절망적이지 않을까? 부모가 있지만, 부모보다 더 어른 같은 아이, 부모가 있지만, 방패가 되어주지 않는 부모,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부모, 그냥 권위에 기대어 소리치거나 윽박지르면 당연히 따라와 줄 거라 믿는 무식하고 무지한 부모.
자신이 지구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걱정해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연이를 보면서 씁쓸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평등하지 않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는데? 누군가는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라지만 누군가는 사랑받지 못한다. 존재 자체를 쓸모없다 여기는 그런 아이들로 자라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가뜩이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난리면서 왜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건지. 이런 아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되는지,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많다면,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더 각박하지 않을까? 사랑에도 양극화가 생기는 것 아닐까? 곁에서 너는 파괴되지 않는다고, 이겨 낼 수 있다고 말해 주면 좋겠지만, 솔직히 말한다고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음을 걸 알기에 그냥 씁쓸했다. 나연이 앞에 펼쳐질 세상이 답답해서. 청소년 책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루밍 성범죄와 가스 라이팅.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그리고 이런 일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지면 현실과는 달라 많이 아픈 소설이었다.
박하령 작가님의 신작 『나는 파괴되지 않아』
우리 사회가 저지르는 아픔, 고통을 직면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함께 살아가는 공감과 연대를 말하는 박하령 작가님은 이번 신작에서도 보호받아야 하는 십 대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위협을 독백 형식으로 털어놓고 어른인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정으로 피해자의 아픔을 들여다보았는지? 그 고통을 피해자의 탓으로 치부하거나 치유하는 것을 피해자의 몫으로 사회의 몫으로만 돌리고 있는지?
주인공 나연은 자존감이 낮아 관계 맺는 게 서툴다.
누가 자신을 바라보면 얼굴이 붉어진다. 사실 얼굴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물들어 버린다. 손이 차갑고 끈적거리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과부하가 걸린다. 얼굴 빨개지는 게 싫어서 앞에 나서자 않게 되고, 앞에 나서지 않다 보니 더더욱 고립되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
나연은
집에서는 부모의 폭력과 가스라이팅을 당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는커녕 부모가 가하는 감정 배출과 폭력에 휘둘린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왕따를 당하는 등 괴롭힘을 당한다.
속한 모든 곳에서 기댈 곳 없이 혼자이면서도 오롯이 혼자일 수 없는 그 가여운 아이는 타인에게 휘둘리면서도 자신 안의 그들을 벗어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지 못해 혼자 삭히려 한다.
나연은 부끄럼증을 기질이라 생각하고 힘들어했는데 중2 때 담임 선생님께서 일종의 학습에 의해 얻어진, 세팅된 결과일 뿐이니 연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다시 세팅하면 된다는 말을 해주신다. '그냥 잘못되어 있을 뿐'
그리고 '자뻑' 일종의 자기 기만인 '워비곤 호수 효과'라는 긍정의 착각을 하는데 연이는 그게 없어서 가혹한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며 '자기기만의 쿠션'으로 자신을 감싸주라고 격려해 주셨다.
충분히 힘겨운데 나연에게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나연의 집안 사정, 학교 사정을 듣고 자신의 경험담까지 털어놓으면서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던 사촌 오빠에게 그루밍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그루밍, 이미 호감과 신뢰를 형성한 후 친밀한 관계가 되었을 때 성폭행을 당했기에 피해자들은 자신이 폭력을, 학대를 당했다는 것을 모른다. 더 나아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성폭행 시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기에 동의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보통 어린이나 청소년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일어나는 범죄이기에 더 많은 부분들을 고려해서 수사하고 처벌해야 하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수사기관, 제3자들에 의한 2차가 해 또한 심각하다.
성범죄 특히 그루밍 성범죄는 미성년자 피해자에게 비난의 칼날을 돌리거나 범죄의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폭력의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결코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어른이 나서야 할 몫임을 가장 흔들리고 주저했지만 절실한 목소리로 단단하게 말해주고 있다.
나연 주위에도 분명히 관심을 보이고 곁을 내어주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 또한 가까운 이들에 의해 부정되는 게 안타깝다. 나연뿐만 아니라 학교 밖 아이 시아의 이야기까지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분명한 현실이다.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사회,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나연이의 이 멋진 미소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고 싶다.
어른들이 보여주는 작태에 울분을 토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나연의 독백을 읽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벗어나기 힘든 부모의 협박, 친구의 따돌림, 친척의 위협에 '나는 파괴되지 않아' 굳은 결심으로 자신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나연의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준 주홍 샘 같은 분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자식의 아픔마저 외면하고 등을 돌리는 부모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왜 그렇게 잔인한 것입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전에 있었던 그 일이 내게 아무것도 아닌 일은 아니야.
......
그러니까 난 달라질 수 있어."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 일을 끝낼 수 있는 용기는 피해자인 아이들이 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 누구도 겪지 않아야 할 일들을 벗어나기 위해 싸움을 벌어야 하는 아이들이 힘겹지 않도록 그들이 털어놓은 진실에 귀 기울여주고 손잡아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일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마 전 리뷰단으로 읽은 책에 자신이 주도하던 일이 잘못되면 상황탓을 하고, 남이 잘못하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탓을 한다는 말에 엄청 공감한 적이 있었다. "나는 파괴되지않아"라는 책을 읽으며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 꽤 자주 아이들이 처한 상황과 여건을 생각하지 않고, 어려서 생각(능력)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일을 망쳤다고 예단하며 일단 꾸짖는 경우가 많았음을 깨달았다.
나연이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대접받지 못 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을 펼쳐보이지도 않는 여린 감성의 청소년이다. 하지만 나연이도 교실 돌아가는 권력관계를 모두 알고 있고, 가족들의 상황과 여건이 어떤지 모두 알고 있기에, 말해도 안 된다는, 말해도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사는 아이다. 그 사이, 나연이 마음의 두께는 더 얇아지고, 마음의 벽은 더 높아져간다.
하지만 루 오빠의 견디기 힘든 요구와 루 오빠 가족에서 경제적 종속관계로 살아가는 자신들의 처지 속에서 힘겹게, 나약하게 물들어갈 때, 주홍샘과 학교밖아이 시아를 통해 자신이 어항속에서 뛰쳐나온 금붕어처럼 용기를 내기로 한다.
나연이의 독백처럼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연이가 겪는 사건들은 엄청난 상처와 좌절, 슬픔과 고통의 이야기인데, 각각의 사건마다 분노할 때, 신기할 때, 행복할 때, 억울할 때, 난감할 때가 있었는데 감정이 거세된 것 처럼 담담하게 펼쳐진다. 이것이 한편으론 주변 눈치로 숙달된 애늙은이의 시선처럼 세상일에 무감한 듯, 통달한 듯 애달프게 느껴지기도 하다가, 거꾸로 작가가 아이의 인생에 직접적 감정이입 안 하려고 애쓴 흔적인가 애써 이해해 보려고 애쓰게도 만든다.
일상적 언어폭력, 정서폭력에 길들여 자존감, 자신감이 없던 아이가 믿었던 사람에게 성적 폭력까지 당하고, 부모조차 자기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제3자인 주홍샘과 시아의 이야기에 힘입어, 가장 절망의 순간에 오히려 자기의 삶을 자기의 시선으로 보기로 맘 먹고, 그간의 자신의 일을 독백처럼 말하는 순간의 말투는 허망함, 담담함, 결연함이 섞인 묘한 힘을 가진다.
아이라고 존중하지 않는 어른들의 무례함, 방문과 노크가 주는 자기 공간에서 느끼는 편안함,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이로운 거짓말, 언어폭력에 자기 탓만 하던 일상에서 구세주처럼 활용되는 3인칭의 힘, 때로 어떤 순간에 갑자기 나를 찾아오는 나도 모르는 나라는 존재, 그 누구의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진 나 자신의 쓰담쓰담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일상을 표현한 것 같다. 그래서 나연이의 이야기는 내 주변의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아이들의 그 입장, 그 처지, 그 상황을 알려하지 않았기에, 우리 아이들이 더 외롭고, 더 힘겹게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동시에 우리가 보이는 작은 관심과 정성으로 아이들이 엄청 큰 변화의 계기를 갖고 용기를 낼지도 모른다. 주홍샘이 어쩌다 영화관에서 본 작은 움직임으로 관심을 보인 것 처럼.
작은 일에도 눈물을 보이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말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던 후줄끈한 인생을 살던 나연이가 또각또각 자신의 구두발자국 소리를 내며 당당하게 살아낼 것으로 믿으며 크게 응원하고 싶어진다.
아이들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책 읽기를 신청했었다. 이 역시 아이들 탓만 하는 어른의 시선이었다. 드러내지 못할 이유가 있었음을, 아니 내가 드러내고 싶을 만큼 믿음직한 어른으로 비춰지지 않았음을 느낀다. 또한 누군가의 삶을 겉핥기로 바라보면서 이해, 공감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하야 함을 느낀다. 어쩌면 나연이가 나보다 더 어른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 yes24 리뷰어클럽 리뷰단 선정으로 쓴 느낌입니다. -
"난 그렇게 길들여져 있을 뿐이다."
이제라도 아프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 나를 보호해야 한다.
폭력과 폭력 사이,
흔들리고 주저했지만 분명 들려오는 어떤 이야기
가족이라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말을 쉽게 내뱉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무례한 행동과 따돌림.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이런 문제들이 피해자에게는 평생토록 남을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나도 부모로서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어쩌면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경험을 하면서..
가족이라도 말을 조금 해야 함을 느끼게 되는데,,
아이가 성장할수록 더 크게 와닿는 부분이고,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 학부모가 되니 언제든 우리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은 나연이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담았다.
주인공 나연이 나는 파괴되지 않아.
우리가 모르는 일이 아니기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특히 부모가 되고,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니 학교폭력 이슈를 자주 듣고, 접하게 되니 말이다:)
어른이 되고,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은 없었던 일이 될 수 없고,,
별거 아닌 일이 될 수 없기에...
폭력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기 마련이다:)
나연이와 비슷한 피해를 겪은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
내가 못나서, 내가 부족해서..라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이 책을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부모로서,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을 성장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본 서평은 해당 업체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