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를 읽어가다가 덮었다. 기원전 800년부터 200년 사이까지, 현재 인류문명의 축을 이루는 종교, 철학, 윤리, 영적 전통을 설명하는 그 책에서, 기독교 쪽은 알겠는데 불교 쪽은 모르겠다. 일단 부처에 대한 책을 읽고 다시 <축의 시대>로 돌아가기로 결정, 같은 저자가 쓴 이 책을 골랐다. (물론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도 모른다. )
석가모니의 전기는 어릴적 위인전 수준에서 더 읽어본 적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이 독특한 점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유명 스님이나 불교 관련 필자가 아닌 서양 종교 전문가가 써서 그런가보다. 개인에 대한 예찬이나 평가보다 붓다의 이 언행이 이 시대에서 갖는 의미 파악 위주이다. 늘 시대배경이 궁금한 나에게는 붓다 등장 즈음 인도의 상황 설명 부분이 참 좋았다. 당시 인도는 농업 기반 부족 공동체의 질서가 붕괴하고 공화제에서 왕정, 제국으로 나아가던 시대였다. 농업 사회의 전통과 다른 상업 사회의 경쟁과 이기심, 차별과 계급, 정복 전쟁 등등 급격한 변화에 베다 전통과 카스트 제도가 무너진 시기였다. (잘은 모르지만, 마호메트 등장 시기 아라비아 반도 상황이 떠오른다. )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붓다.
또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당시 붓다가 사용하고 붓다의 언행을 기록한 팔리어 경전을 토대로 전개된다는 점. 苦는 둑카인데 이는 단순한 인생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아니라 원래 팔리어로는'뒤틀리고 결함이 있고 불만족스럽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붓다의 그 시대로 돌아가 생각해보니, 불교가 그렇게 현실도피적인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붓다와 그의 가르침에 당시 그 시대의 아픔을 해결할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많은 신도들이 모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예수의 생애는 참 드라마틱하게 묘사되는 반면, 붓다의 경우는 깨달음 이전까지만 세세하고 드라마틱하고 이후 열반까지는 큰 기복이 없이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붓다를 따르는 빅쿠(비구 승)들의 파벌싸움, 암살 기도, 춘다의 음식 공양 - 식중독설도 있는데 저자는 독살설도 언급한다 - 으로 인한 사망 등등 붓다가 된 이후의 인생 고난도 다룬다. 덕분에 내가 몰랐던 붓다의 인생 이야기와 인간적 면모를 알게 되었다. 인간 붓다가 밋밋하고 개성없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가 깨달은 이후 자신의 감정과 언행을 절제했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대로 기록되다 보니 후세인에게 그렇게 보일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자의 시각은 신자가 아니라 학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불교 경전에서 기적이나 신이한 묘사로 적힌 붓다 관련 이야기의 신화적 상징성을 덜어내고 독자에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본다면, 붓다를 괴롭히는 마라(마귀)의 존재를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신의 그림자라고 설명한다. 전생담도 거의 소개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붓다 입문서를 찾는 분이라면 알맞을 책이다.
책은 다 읽었지만 여전히 불교 쪽은 알쏭달쏭하다.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철학같다. 그리고 이 '붓다의 시대', '축의 시대'에 인류가 품었던 시대에 대한 고뇌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 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인류에게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자, 다시 <축의 시대>로 돌아가 읽어 보아야 겠구나.
사실, 한국인들에게는 붓다의 삶이 너무나 친근하다. 꼼꼼하게 살펴 본 사람은 드물겠지만, 여기저기서 줏어 들은 것만 해도 우리는 이미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리라. 서양인들은 굳이 찾아서 보고 들어야 하지만, 우리는 문화 속에 스며 있다 보니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그래서, 붓다의 삶과 관련해서 책을 쓰기는 힘들다.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붓다의 사적 삶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펼치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돈 버리는 것 아니야, 하는 걱정이었다.
다행히, 저자가 카렌 암스트롱이라 돈 버린다는 각오 하지 않고 책을 펼쳤다. 책의 저자가 비교종교학자이다 보니, 소위 말하는 축의 시대를 전후해서 붓다가 살았던 시대를 비교종교학적으로 살핀 부분이 인상 깊다. 그 과정에서 붓다라는 한 인간이 가진 보편성과 단독성을 잘 드러낸 것 같다. 성장하는 도시 속에서 방황하는 개인을 위한 정신적 지침이 필요했고 그래서 불교가 나왔다는 얘기와 붓다는 절대자에 귀의해서 출구를 찾은 것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스스로 깨어난'자라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이외에도 수행자로서 붓다의 고뇌와 성취도 잘 그려냈다. 나는 특히 마지막 장면이 인상깊다. 아마 '대반열반경'에 나온 내용인 것 같다. 붓다도 노년의 고뇌는 피할 수 없지만, 수행의 힘으로 그것을 이겨내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난다의 고뇌가 너무 잘 그려졌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의 죽음. 데바닷타의 변절과 상가의 분열. 이 과정에서 아난다에게 자신과 담마를 섬으로 삼고 방일하지 말라고 정진하라는 스승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눈물겨웠다.
붓다의 삶을 무척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수행자로서 붓다, 인간으로서 붓다, 스승으로서 붓다의 삶이 잘 그려졌다. 언뜻 붓다의 깨달음 후 40여년 세월은 너무나 평탄했을 것 같은 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수행이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다고 포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것을 직시하면서도 평정과 자애의 마음을 잃지 않는 기술이라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