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일상만화책인줄 알고 선택했는데
의외로 몰랐던 공무원 생활의 애환과 나를 먼저 추스리라는 저자의 가볍지만은 않은 진중함이 좋았던 책이다
가볍게 읽히면서도 곱씹을 만한 문장들이 많았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본인 스스로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기 쉬운 개개인의 수고를 헤라려본다
다른 사람들은 잘 버터는데 왜 나만 유독 더 힘들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내가 나약해서 그래. 난 왜 이렇게 약해빠졌을까?' 라는 자책이었다. 오랜 시간 이 질문과 대답을 반복한 후에야 놓친 것을 발견했다. '왜 힘들까?'라고 질문하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물었어야 했다
나를 겁쟁이로 만든 건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양보하고 배려한 것을 끝까지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나뿐이다. 직장내 건강한 인간관계는 나를 먼저 챙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기간을 정해 미리 마침표를 찍고나니 후회없이 그만둘 준비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마침표의 효과는 서서히 드러났다. 먼저, 매사를 가볍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은 선망의 대상이다
요즘 9급 공무원의 퇴직이 잦아지고 있다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공무원은 많은 사람들에게 꿈의 직장이다
그런 공무원을 8년 8개월만에 그만둔 저자는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나와 맞지 않으면
직장생활이 고통이 될 뿐이라고 말한다
비록 그만 둔 이후에 좋았던 것만 기억나며
다시 공무원 생활이 그리워지긴 해도
당시의 선택에 후회가 없는건
미리 준비를 하고 결심을 했다는 것
무작정 퇴사! 가 아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그런 내가 잘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럼에도 일년간의 유예를 더 두고
그 이후에 비로소 퇴사를 결정한다
지금 있는 곳이 너무 견디기가 힘들다면
그냥 도망치고만 싶더라도
먼저 자기 자신부터 파악하라는
아주 현실적인 조언들
호들갑스럽지 않은 저자의 담담한 문체가 좋았던 책
8년 8개월의 짧은 철밥통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도전하는 작가의 공무원 이야기다. 평생직장과 연금이 보장되는 공무원의 모습 뒤에는 사무적이고 편안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골목길 외진 곳에 위치했던 동사무소에서 근무했던 작가는 민원인들에 대한 부담감과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면 될 것 같았던 공무원 시험 준비 기간 동안의 생각과는 다르게 겨울이면 눈을 치우고 무섭고 당혹스럽게 하는 민원인들에게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승진 운이 없어 동료들 보다 1~2년 늦게 승진한다. 인터넷 뉴스 댓글에 공무원 반은잘라야 한다는 글을 보면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2010년 총선에서 벽보 붙이기, 선거 공보물 발송, 투표자 명부 확인 등 투표 준비는 그녀에게 매우 힘든 일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진행되는 일정은 약골이었던 그녀에게 특히나 버거운 일이었다고 한다. 퇴직 후 코로나로 고생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면 울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2020년 기준 5년도 안 돼서 퇴직하는 공무원이 26%에 달한다고 한다. 9급 공무원 경쟁률이 38%가 넘는데도 그만두는 이유는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마음의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미원인, 상사, 동료 등 주변 사람들의 의심의 시선과 복잡한 감정 때문일 것이다. 어느 직업과도 마찬가지로 공무원이 견뎌야 할 사회의 시선과 정부의 공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일들은 나약한 자신이 극복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 아니었을까. 작가가 8년 동안 끊임없이 고민했던 이직의 이유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아파 우울증까지 작가에게 찾아오고 휴직을 결심하게 된다. 자신 스스로에 대한 자기 위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작가는 나약한 자신 때문에 동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에 대해서도 한편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임신한 몸을 이끌고 밤늦게까지 서류를 정리하고 가족의 미안함을 뒤로한 채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하는 진실한 모습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자신을 거울 속에 비춰보고 느꼈을 후회와 감사와 미안함의 감정들이 나의 경험과 함께 한다.
작가의 스트레스는 과식과 무기력으로 이어졌으나 삶을 나의 의지대로 살기 위해 아침에 요가, 독서 등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가면서 하루하루를 이겨 나갔다고 한다. 복직 후 다시 시작된 동사무소는 힘들기로 소문난 곳이었고, 한 달여를 눈물로 보내다가 결국 공무원 생활의 마침표를 1년 뒤에 찍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마침표를 찍자 공무원 생활의 많은 부분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웃는 얼굴로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1년 뒤 퇴직이라는 마침표가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변화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년 뒤 작가는 공무원이 되는 것보다 그만두기로 결정하기가 더 어려웠던 공무원을 그만두고 자신이 원했던, 그러나 잘 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 도전한다.
요즘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만큼 공무원에 대한 직업선호도가 무척 높아졌다. 그마저도 어쩌면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길어지는 수명연장 만큼 더 오랫동안 안정적인 직업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점점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어제 미술관에서 기관단체 해설을 했는데 7급 신임 공무원들의 연배가 생각보다 너무 어려서 깜짝 놀랐다. 공무원 시험의 응시연령이 고등학생 때부터 가능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고, 언젠가부터 철밥통으로 불리던 공무원. 이제는 경쟁률이 높아져 그마저도 쉽지 않다는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전직 공무원이자 현직 그림 에세이 작가로 인생의 또 다른 챕터를 채워가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에는 어쩌면 직업군을 떠나 우리 모두가 누구나 경험하고 고민으로 느꼈을법한 이야기들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그 과정이 늘 기쁘고 즐거울 수 없듯, 혼자가 아닌 타인과 더불어 진행해야 하는 사회적인 역할은 분명 쉽지 않은 순간들이 더 많을 것이다.
저자는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견뎌내기 위한 마법 같은 순간들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누구나 자신만의 힐링 플레이스 혹은 힐링타임이 주는 에너지가 크다. 내가 꼽는 일상의 휴식 같은 순간은 신호 없는 고속도로를 달려 가까운 미술관에서 산책하기,
장소나 목적지보다 고요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는 시간이 소중하다.
주민센터 공무원으로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재직했던 작가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를 읽다 보니 어쩌면 그렇게 공감 가는 장면들이 많은지. 공무원이 아닌 민원인으로서의 자세를 돌아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상황에 따라 해석하고 행동하기 마련인데 누군가에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직업군을 떠나 삶의 모든 순간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데 팍팍한 세상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의도적으로라도 조금씩만 배려라는 것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모든 직업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