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스물 한살 대학생이지만 아직 우리 품 안에 있는 느낌이다. 코로나로 인해 기숙사 입소가 한달 늦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지방에 있는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 집안은 어떤 분위기일지 좀 궁금하기도 하다.
요즘 아이는 가끔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 입구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걸어오곤 한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적잖은 맘 고생을 했는데, 왜 그곳을 돌아보는 것일까가 궁금하지만 역시 아이의 감정에 따른 습관이니 그러려니 한다. 스스로 그 기억들을 회상하면서 극복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고는 내 스물하나를 생각해본다. 더 엉망진창이었다. 독서실에서 같이 고시공부를 하던 이들을 통해 술을 배우기도 했다. 재수할 때 만나, 마음에 가던 여자에게 다가갈 용기도 없었고, 집착만 해도 가슴이 조렸다.
아마도 아이도 그럴 것이다. 내 기억으로 인해 그런 마음들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아이와 같이 읽고 싶은 작은 소설이 있어서 반갑게 봤다. 프랑스 작가 리자 발라부안느의 <나는 거의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한 나절이면 읽을 짧은 분량인데, 들은 순간 바로 읽었다.
조금 흥미로운 이름의 작가는 1973년생이니 나랑 별로 차이가 없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고등학교 도서관 담당교사로 근무한다고 한다. 그냥 무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가 처음 쓴 청소년 소설이지만 나처럼 나이 들어가는 이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주는 동화같다.
주인공은 16살이 된 로미오다. 이름과 달리 드러나지 않은 소년은 조용한 분위기의 집과 학교, 그리고 락음악 음반이 많은 레코드가게를 하는 삼촌의 가게를 들락인다. 그런데 소년에게 쥐스틴이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눈에 띠고, 생활에서 그녀와 겹치는 일들이 많아지자 친구가 된다.
로미오의 집은 “이 집에서 우리 가족은 만나지 않겠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조용하다. 나 역시 그 속에서 뒤척이지만 흔적도 없다. 어느날 새벽에 가출을 위해 기차역에도 나가보지만, 결국 아침 8시에는 제 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던 중 쥐스틴과 삼촌이 준 티겟으로 락 공연장을 찾고, 그녀와 키스를 하면서 나는 묘한 몽상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 쥐스틴과 어울리던 남자애가 둘이 관계하는 장면을 몰래 촬영해 학생들 사이에 공개해 버린다. 순식간 학교는 그녀에 대한 추악한 폭로의 장으로 변하고, 쥐스틴은 학교에 나올 수 없게 된다.
나는 결심한다. 쥐스틴의 집에 찾아가 그녀에게 공개 토론을 통해 이 상황을 풀자고 이야기한다. 학교 대강당에서 이 문제에 대한 토론회가 준비된다. 아울러 어느날 도착한 편지를 통해 그간 아무도 만나지 못했던 엄마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한 소년의 눈으로 성, 가정, 사회에 대해 성숙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게 한다.
소설은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성이나 페미니즘 등 이 사회가 가진 평온한 행복의 가치에 대해 대부분 이야기한다. 내가 이 소설을 깊게 공감한 것은 내가 성장하면서 가진 이성이나 가정, 문화, 성장의 이야기가 이 작은 소설에 잘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투명인간, 찐따, 아기고양이라고 불리던 로미오가 자신이 관계를 갖는 이성, 가족, 사회에 어떻게 부딪힐 것인가에 대한 신중한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아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편화됐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스스로를 아무 존재감없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재밌었다. 최근 <호수의 일>을 재미있게 읽은 아이에게도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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