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탄(騎虎之勢) 군주 태종 ‘이방원’ 평전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 그가 꿈꾼 세상은 요순시대, 3대 시절(하나라 ‘우왕’ 은나라 ‘탕왕’, 주나라 ‘문왕, 무왕, 주공(성왕)’의 소강(小康)- 천하가 한 집안 같던-나라, 가족같이 화합하고 잘 사는 나라다.
이 책은 조선 왕의 리더십 연구에 천착했던 지은이가 지난 10여 년간 <태종실록>을 연구와 2020에서 2021년간 서울숲양현제에서의 강독을 통해 얻은 생각들을 토대로 쓴 태종 이방원의 평전이다. 인간으로서 군주로서 적어도 두 세대를 내다보며 심모원려 했던 정치가로서의 모습이 담겨있다.
세종리더십을 먼저 펴내면서, 66일간의 세자교육을 받고 이후 5년간 상왕 태종에게 받은 군주수업이 없었더라면 세종은 그저 그런 왕으로 남지 않았을까?, 세종의 멘토로서 태종, 그의 리더십 근간을 톺아보는 게 이 책이다. 아울러 이 책은 태종을 중심으로 태조와 세종 연간을, 그리고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 등을 두루 살피고 있는데, 외국 연구자들의 분석도 곁들이면서 조선 시대 태종이란 리더의 모습을 여러모로 조명해보고 있다.
조선의 기틀을 다진 태종과 주변 인물 등 국왕 중심정치와 총재(재상 중심, 신권중심정치) 정치- 재상은 넓게는 통상 종2품 간단히 말하면 오늘날 편제로 차관급 이상 총리까지 대략 60명 정도의 그룹을 말한다)-와의 대립, 절충, 우리가 알고 있는 절대군주로서 생사여탈권을 맘대로 휘두르는 태종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인재경영의 탁월함-를 볼 수 있다.
태종의 국가관 소강(小康) 정치, 가족같이 화합하고 잘 사는 나라
태종, 세종, 정조처럼 세간의 많은 관심을 끈 왕들도 그 한계는 분명했다. 이들은 영웅본색의 주인공이 아니지만 ‘소강 정치’을 실천하려 했던 군주들이다. 이 책은 조선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유교의 흐름도 소개하는데, 실질 성리학, 실사 성리학이 아카데믹한 성리학으로 이론 성리학 (주자성리학)으로 바뀌는 과정도 짧지만 소개하고 있어, TV에서 방영됐던 풍운아 이방원에 관한 오해가 조금은 풀릴 듯하다.
그런데 왜 조선 시대 개창의 주역 이방원을 오늘날 다시 살펴봐야 하는가? 왜 이방원인데? 역사에서 만약, 가령을 하는 순간 상상력은 발동된다. 아주 참신하게….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서 지은이가 말하려는 건 무엇인지, 뭐 재미로 읽는다면야 조금은 딱딱하지만, 술자리에서 썰풀기에는 좋은 정보가 담겨있으니, 시간을 투자해도 손해 볼 일은 없겠다.
현재는 과거를 통해서, 그리고 미래로
이 책은 바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역사의 장면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모든 역사는 되풀이되며 과거가 오늘을 그리고 미래를 규정하는 거처럼 그 역사의 어딘가에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요구되는 리더십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과거의 예를 살펴봄으로써 유용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담긴 내용
이 책에 담긴 내용은 7장으로 1장에서는 정치가 태종을, 2장에서는 왕의 여자들과 인간 이방원, 3장은 태종 치세 재상 3인방 이야기-부왕의 재상 조준, 하륜, 이색의 수제자 권근-, 4장 ‘태종의 나라’ 조선-국왕 중심체제 개편, 정치개혁, 민생경영 등을 통해 국가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을-, 5장에서는 실용외교와 국방-사대교린의 실천, 대명, 대일관계, 대여진관계-, 그리고 6장 태종의 탁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세자교체(양녕에서 충녕으로)와 전위, 그 리더십-, 마지막 7장에서는 태종 정치의 빛과 그늘-세종을 넘을 수 없는 이유-
태종의 역이족의(亦已足矣-또한 이미 충분하다) , 자기 절제력
바로 이 문장이 태종의 정치를 대하는 태도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이 또한 이미 족하다(亦已足矣), 적당한 곳에서 멈출 줄 아는 자제력과 지혜, 이 역시 냉철한 정치가의 면모다. 살아있는 권력으로 다음 왕 세종을 올리고, 그의 치세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1388년 위화도회군 이후 22세의 나이로 호랑이 등을 탄 것처럼 정도전과 손을 잡고, 정몽주를 척살하고, 정도전을 제거, 아버지가 아끼던 이복동생을 죽이고, 형제를 귀양보내고, 처남들까지 죽여버렸던 그가, 이제 그만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고 싶어 했다. 창업-수성-경장-쇠퇴라는 동양 사상의 순환체계론(E.H 카의 역사발전론도 이와 유사한 경로 언급한다. 대립모순 관계이지만), 아무튼 리더십론을 이야기할 때는 영화 제목 ‘박수 칠 때 떠나라’처럼 미련을 남기지 말고, 다 훌훌 털어버리고…. 이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경계점일 듯하다. 참을 그 실천행이 어려운 대목이다.
책내재여(責乃在予),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내 책임이다
백성은 하늘이요. 또한, 군왕에게 백성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돌보고 또 돌봐야 한다. 재난이 생기면 이 모든 것은 누구의 책임이 아닌 바로 내 책임이다. 라는 책내재여의 사고가 민생경영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요즘 말하는 복지 국가원리로 국가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가 아니라,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다. 그래야 더 신경을 쓸 게 아닌가?, 태종은 궁중 포럼을 운영했다. 대소신료에게 묻고 답하고, 절대군주 모습 이면에 민주적인 절차다. 적재적소의 인재들, 그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현안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느냐고. 이 또한 놀랍게도 오늘날 사라진 지 오래된 일이다. 내 책임이 아니라 다른 누구의 책임이며, 나는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고 발을 빼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500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그 발로는 내 책임이다. 그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는 인식에 터 잡은 리더십이기에 말이다.
태종의 리더십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들
거대한 시대의 전환기, 명나라와 여진, 일본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살피는 국제정세의 인식이 첫 번째다. 즉 국제관계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생각하는 것, 즉 시대의 흐름을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다. 둘째로, 위기극복 능력, 태종은 무려 5번 이상의 위기를 경험, 그때마다 어떻게 극복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로 민심을 얻는 방법이다.
또 하나 세종과 태종을 비교하는 것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 책에서는 태종과 세종의 용인술을 비교하고 있지만, 시대적 배경의 다름과 접근 방법의 문제라 생각된다. 다만 큰 틀에서 이들은 소강 정치를 구현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몇 가지 논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또 옥에 티, 일본인명은 상대주의라는 점이다. 오다 노부나가 등은 상대주의 관점에서 썼지만, 쓰시마 도주 종정무= 소 사다시게로 종정무라 표기하지 않고 소 사다시게로 했어야 한다. 그렇다고 전체의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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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 용의 눈물, 뿌리 깊은 나무, 육용이 나르샤 등등… 수많은 드라마에서 묘사된 태종의 이미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복 동생을 죽이고, 처남들을 죽이고 사돈을 죽이고…이 부분만 보면 냉혈한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태종이 조선왕조를 융성시키기 위한 기틀을 닦았고 세종이라는 위대한 왕을 탄생 시켰다는 평가는 있지만 , 대한 민국의 리더쉽과 국제 관계를 비춰보기 위해 태종의 진면목에 대하여 더욱 깊이 있게 들여다 봐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저자를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태종의 잔혹한 면이 주로 부각되다보니 잘 드러나 보이지 않던 것 중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태종이 책벌레라서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태종은 18세에 장원 급제하고 성균관에 입학했던 수재 였고, 왕이 되고 나서도 독서와 토론으로 정치 결정을 하곤 하였습니다. 추진해야 하는 일은 고전과 역사의 사례를 ‘이론적 무기’로 사용하여 설득했다고 합니다.
또한 인재를 스승을 대하듯 공경했고 겸손함으로 인재들이 모여들게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3대 재상 중 하륜은 제 발로 태종을 찾아가서 섬긴 제상이고 조준은 태종 자신이 섬기듯이 공들여 맞아들인 정승입니다.
태종이 일하는 방식은 ‘선발제지’ 즉, 일의 초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마치 유능한 외과 의사처럼 위험 요소를 제거해서 사태를 반전시키곤 했던 능력자였는데 이러한 능력은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일과 사람을 꿰뚫는 안목이 생긴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하는 부분이 세종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종의 국가관을 살펴보면, '국가는 그 자체로 숭고하고 독자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질서를 위협하는 사람은 가족 형제라도, 심지어 본인이라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생과 처남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인지 애써 이해가 되기도 하는 부분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러한 태종의 국가관이 토머스 홉스의 '정치 공동체'를 연상시킨다고 하였습니다. 홉스가 만인이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다수의 생명’을 ‘정치 공동체에 양도’하고 ‘강력한 주권국가’를 형성해야 한다고 했으니 정말 일맥 상통하기도 합니다.
태종시대의 외교관계는 '사대교린' 한마디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국력이나 위상이 다른 국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자소'와 '사대'가 중국(명)과 우리나라와 같은 관계이고, 국력이 비슷한 나라끼리(우리나라와 여진, 일본, 유구) 이루어지는 원칙은 '교린'입니다.
'자소'와 '사대'에 대하여 설명을 하자면, 큰 나라는 자국의 국력만 믿고 작은 나라를 정벌하지 않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인정하며 서로의 국력 차이를 인정하고 분수를 지키며 평화를 지켜 나가자는 원칙입니다. 현대 국제 정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원칙을 지키지 않은 수많은 나라들은 역사속에서 사라졌는데 우리나라는 신중함과 자기 제한의식을 통해 존속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신라의 김춘추와 태종 이방원을 최고의 외교 인재로 평가 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나라에는 외교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드 배치와 주한 미군 비용 협상, 중국과의 경제 외교 등에서 우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태종의 실용외교, 국익 중심의 내수외교 능력은 현재 우리에게 빈곤한 내수외교를 채워줄 인재를 양성해야한다는 각성을 일으킵니다.
태종이 가장 잘 한 일을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훌륭한 후계자를 세운 것을 꼽을 것입니다.
우선 세종과의 일화에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태종이 정도전 무리에 의해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을때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갓난아기였던 세종을 한시도 내려놓지 않고 사랑을 듬뿍 주며 키웠다는 점입니다. 유모한테 자란 다른 왕들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더 훌륭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령대군의 왕위 승계 과정에서 태종이 밝히고 있는 기록에서도 감동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태종이 세종의 아름다운 승계를 위해 민심이 세종에게 쏠리도록 배려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도성 수축에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을 태종이 미리 한 것입니다. 집권하는 세종이 하게 되면 백성들이 세종을 원망할테니, 본인이 모든 원망을 다 받길 원한다고 이야기 하며 앞당겨서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종의 왕위 계승에 반대하는 대신들의 입을 막기 위해 세종의 학문적 능력을 과시하며 지지를 이끌어냅니다.
태종은 물러나고 난 뒤에도 정치적 초보인 세종을 이끌고 세종도 전적으로 부왕에게 의논하는 등 보기 좋은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5년간의 상왕으로서의 통치를 끝내며 "나처럼 사람을 잘 얻어 나라를 맡긴 이는 고금 천하에 오직 나 한사람뿐"이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부분에서 저도 감동이 일었습니다.
태종과 세종은 둘 다 학문을 좋아하고 토론을 좋아했는데 태종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요? 태종은 역사 기록에 대한 인식이 왕의 편의를 위하는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역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문명을 보전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통로라는 인식은 세종만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재를 등용했으나 그 인재들을 본인의 밑에 두려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는 창의력 있는 인재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중원 대륙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정확히 포착했고, 위험한 순간을 기회로 만들어서 위기를 극복했고, 돌아선 민심을 극복하기 위해 인재를 등용해서 백성의 삶을 위한 제도들을 잘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이 책을 정독하면서 세종과는 다른 리더십인 태종의 리더십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과정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정을 통해 따뜻한 면도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틀을 깨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한편, 우리나라가 지금 유래없는 여러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하는데 나라를 경영하는 분들이 태종의 리더십을 본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가 지금 이 시기에 책을 낸 데에는 그런 이유가 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