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제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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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제3판]

신영복 옥중서간

리뷰 총점 9.8 (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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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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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절벽 틈 사이로 피어난 꽃 한 송이|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저, 돌베개) 평점10점 | y***9 | 2019.08.18 리뷰제목
길을 걷다 보면 엉뚱한 곳에 핀 꽃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 위에 꽃이 피어 있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 어딘가, 또 벽돌 담 한 가운데에도 피어 있군요. 심지어 도저히 꽃이 필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없는 절벽 틈 사이에도 꽃은 피어 있습니다. 저는 신영복 선생의 옥중서간을 보며 그런 꽃 한 송이가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젊고 혈
리뷰제목

 

 

길을 걷다 보면 엉뚱한 곳에 핀 꽃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 위에 꽃이 피어 있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 어딘가, 또 벽돌 담 한 가운데에도 피어 있군요. 심지어 도저히 꽃이 필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없는 절벽 틈 사이에도 꽃은 피어 있습니다. 저는 신영복 선생의 옥중서간을 보며 그런 꽃 한 송이가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젊고 혈기 왕성한 청년이 20년 넘는 세월을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세상과 단절돼 살았습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감옥에서의 삶,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자유로웠습니다. 제가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쉽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는 내내 여러분도 무한한 자유의 날갯짓을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가 감옥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동안, 세상은 되려 자유를 잃었습니다. 억압 속에 자유로운 영혼이 있었던 반면, 방종 속에 수많은 영혼들이 구속된 채 방황했습니다. 그가 불가능에 가까운 여건 속에서도 교도소 문 밖으로 내보낸 편지들은 오히려 구속 받는 영혼들을 위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검열 필’이라는 도장을 찍었던 교도관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어쩌면 그가 최초의 독자였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두 사람만 기억하는 이야기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여러분은 어떤 글들을 접하고 있나요? 적나라한 묘사로 생생함을 주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진 않았나요? 귀를 쫑긋 세우게 하지만 지나치게 추리력을 발휘해 진실을 왜곡하진 않나요? SNS를 통해 여과 없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고 판단력을 잃게 하는 글들을 많이 접하셨을 겁니다.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양산해 내고야 만 헛된 글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선생의 서간은 진실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시대에 다시 읽어야 할 글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선생의 글을 눈으로만 읽는다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일 겁니다. 때로는 가슴으로, 심지어 눈을 감고 읽어야 하는 순간들을 포착하게 되실 겁니다. 촘촘하게 적힌 글자 사이에 평야처럼 펼쳐진 행간의 기록들이 숨어있습니다. 저는 감히 다 읽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의 완독으로는 도저히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읽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감상 기록을 남기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이 순간, 저는 무척 괴롭습니다. 대체 저 같은 놈이 어떻게 이 책을 받아들였을지 두렵습니다. 하지만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 놓고 이리저리 춤을 추듯 쓰고 있습니다. 제 머리 속에 그리고 가슴 속에 들어 온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느낌들을 손가락의 놀림을 통해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그의 '현재'는 과거의 추억을 미래의 희망처럼 미래의 희망을 과거의 추억처럼 노래합니다.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살아있을 자기 자신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멈춰버린 듯한 시절을 살아 숨쉬는 오늘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가르쳐줍니다.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나뒹굴기만 한 저의 오늘은, 선생 덕분에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날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며칠 전보다 조금 더 이 삶을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여름 동안에 겨울을 이길 건강을 만들어두겠습니다.

 

주옥 같은 구절들 가운데 별 말도 아닌 이 문장이 제게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그가 형수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죽지 못해 안달이 나도 모자랄 판국에 그가 선택한 것은 ‘내일’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이놈의 찌는 듯한 여름, 대체 언제나 가을이 오는 거야?” 우리는 늘 불평합니다. 하지만 그는 찌는 듯한 여름을 탓하지도 않고, 더위를 가셔줄 눈앞의 가을을 갈망하지도 않습니다. 여름과는 또 다른 혹독함을 선사할 겨울이겠지만 그 겨울도 잘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노래합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 기억납니다. 촉망 받던 은행 간부 앤디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작합니다. 그것도 악질 범죄자들만 수감한다는 쇼생크 교도소에서 말입니다. 수감 생활 동안 숱한 억압과 강탈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죽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무려 1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탈출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갑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레드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탈출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구속된 삶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훗날 앤디가 탈출을 한 뒤 40년 만에 레드가 가석방됩니다. 앤디의 흔적을 따라 두 사람은 해후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신영복 선생은 육체적 탈출을 감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자유로움을 선택했지요. 그의 기록은 갇힌 삶에 익숙해진 레드가 앤디를 보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는 것처럼, 너무나 자유로운 그래서 때로는 방종에 가까운 억압의 모순 속에 사는 우리를 해방하는 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제가 사는 곳이 되려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탈출을 감행하고 싶은 욕망마저 솟구쳤습니다. 다행히 그가 선사한 해방감이 이 감옥 속에 머무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게 힘들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죽는 것이 무서운 걸 보면 아무래도 사는 것이 훨씬 나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산다는 게 그리도 힘이 드네요. 거친 바람이 왜 이리도 부는지, 파도는 왜 이리도 거센지 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꽃씨입니다. 이 모진 바람이 삶이라는 곳에 우리를 얹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곳에서 제 뿌리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그곳이 춥고 무서운 저 높은 절벽 위 바위 틈 사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바람이 우리를 이곳에 내려놓은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너무 슬퍼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곳이 힘들어도 담담히 뿌리를 내렸으면 합니다. 누가 압니까? 예쁜 꽃이 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어여쁜 꽃 한 송이가 되어 살아갔으면 합니다.

 


나는 한 송이 꽃이 될 거예요.
당신도 한 송이 꽃이 되세요.
여기가 꽃밭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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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평점10점 | h*****7 | 2019.08.24 리뷰제목
이 책의 초판이 나오던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던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대에 감옥살이를 시작하여 40대가 되어 나온 저자의 삶이 어떤 사연인지 궁금했고 아마도 제목에서 ‘사색’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읽게 된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이라는 한 인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고 어떤 부류의 사람이
리뷰제목

 이 책의 초판이 나오던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던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대에 감옥살이를 시작하여 40대가 되어 나온 저자의 삶이 어떤 사연인지 궁금했고 아마도 제목에서 사색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읽게 된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이라는 한 인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고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도 어울리려고 하는 열린 마음, 부단히 학문에 정진하는 올곧은 지식인의 면모 등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속박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살고 있으면서도 소중한 삶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다 볼 수 있었다.


 영인본엽서의 서문에서 20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타난 선생을 본 친구들은 그의 변함없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2020일을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족들의 끊임없는 헌신과 사랑도 물론이거니와 선생의 견고하고 담대한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27년 감옥살이를 하고도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를 떠올렸다. 어떤 것에든 감사하는 마음을 붙여서 견뎌냈다는. 모두 자신 앞에 던져진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면서 어떻게든 결국 살아남겠다는 초월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신영복의 엽서에서 뽑은 230장의 내용과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썼다는 사색노트가 추가된 이 증보판으로 20대와 30대 초반의 선생의 사색을 접하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실린 모든 글은 연월일의 순서로 편집하였으며 1969년부터 1988년까지 20년 동안의 기록이 거의 망라된 것이다.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살라고 하는데 단지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라니. 또 희망적이어야 할 내일은 어제의 내일일 뿐이다. 내일도 또 내일의 오늘일 뿐이라는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처한 20대 청년의 고뇌가 이 그림에 너무도 절절하게 나타나 있다. 조금 서투른 듯 보이는 그림은 뒤로 갈수록 솜씨가 붙어 제법 감탄하게 하는 그림으로 나타나 미소 짓게 한다.(전에는 그림을 본 적이 없었는데 깨알처럼 빼곡히 쓴 단정한 글씨와 엽서의 그림을 보게 된 것도 내겐 큰 행운이다.) 마치 옥살이의 달인이라도 된 것처럼 삶에 달관한 듯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의 저력을 느낄수 있었다.

 

…… 수인의 군집 속에서 흙처럼 변함없는 인정(人情)를 만난다. 이러한 인정의 전답에 나는 나무를 키우고 싶다. 장교 동()에 수감되지 않고 훨씬 더 풍부한 사병들 속에 수감된 것이 다행이다. 더 많은 사람, 더 고된 생활은 마치 더 넓은 토지에 더 깊은 뿌리로 서 있는 나무와 같다고 할 것이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P53,55) -니토(泥土) 위에 쓰는 글 -


 수감 직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었지만, 거칠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교도소에서 일반 사병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햇볕 좋은 자리를 선택할 수 없는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신에게 내려진 벌을 달게 받겠다는 굳은 다짐이 엿보인다. 참담한 슬픔도 아주 작은 기쁨으로 위로받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알고 보면 우리는 작은 기쁨으로 힘을 얻어 삶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불모의 영토마다 자리 잡고 있는 과거라는 이름의 숲은 실상 한없이 목마른 것입니다. 그늘도, 샘물도, 기대앉을 따뜻한 바위도 없습니다. 머물 수 있는 곳이 못 됩니다. 나는 벽 앞에 정좌하여 동공을 나의 내부로 열기로 하였습니다. 내부란 과거와 미래의 중간입니다. 과거를 미화하기도 하고, 현재를 자위하기도 하고, 미래를 전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색이 머릿속의 관념으로서만 시종(始終)하는 것이고 보면, 앞뒤도 없고 선후도 없어 전체적으로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려 합니다. …… 

 이 나무는 과거에다 심은 나무이지만 미래를 향하여 뻗어가야 할 나무입니다. 더구나 나는 이 나무에 많은 약속을 해두고 있으며 그 약속을 지킬 열매를 키워야하기 때문에 당장은 마음 아프더라도 자위보다는 엄한 자기 성찰로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67~68)- 고성 밑에서 띄우는 글 -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 등 갑작스런 상황에 처한 선생과 가족들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현실을 잊고 싶어 과거를 회상해 본다고 해도 나아질 건 없다. 오히려 더욱 큰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고 과감하게 이전의 나와 다른 나를 만나려고 한다. 자신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심고 그 나무와 수많은 대화를 하고 약속을 하며 실행하는 과정에서 숱한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며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思沈)하여야 사무사(思無邪)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P100)- 생각을 높이고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지만 밖에 나가서 실행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힌다.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실을 다지고자 한다. 무작정 책을 읽으면서 권수를 채우려는 맹목적인 독서법을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다.


봄철, 가을철은 징역 살기로도 좋은 계절입니다만 이곳에서는 봄 , 가을이 바깥보다 유난히 짧아서 춥다에서 바로 덥다, ‘덥다에서 바로 춥다로 직행해버립니다. 징역 속에는 춥다덥다의 두 계절만 존재합니다. 직절(直截)한 사고, OX식 문제처럼 모든 중간은 함몰하고 없습니다.’(P109)- 봄철에 뛰어든 겨울 -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났다. , 가을은 원래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하는데 징역 살기로도 좋다니. 힘든 현실에서 얼른 벗어나려고 안달하기보다는 상황을 인정하고 좀 더 의미있는 삶을 계획하고 자꾸만 침잠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긍정의 마음이 이것을 견디게 했으리라. 더운 것과 추운 것으로 심플하게 바뀌는 것이 징역살이의 애환일까. 이것뿐이 아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버님, 어머님께

꽃과 나비는 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저렇게 아름답게 자라지 않느냐.”

어린 아들에게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자애로 담뿍 적신 저는, 꽃보다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P121)-꽃과 나비 -


늦은 5, 흠씬 비를 맞은 신록이 미리 여름의 웅장함을 선보이려는 듯, 방금도 키가 크는 것 같습니다.

기쁨과 마찬가지로 슬픔도 사람을 키운다는 쉬운 이치를 생활의 골목골목마다에서 확인하면서 여름 나무처럼 언제나 크는 사람을 배우려 합니다.’(P162)-슬픔도 사람을 키웁니다 -


 부모님을 비롯하여 형님, 형수, 계수 등 온 가족들의 옥바라지를 받는 선생은 더욱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꽃과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리라고. 어디 선생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까. 오직 인간만이 과잉보호를 받으면서 점점 나약한 정신이 되는 건 아닌가 싶다. 기쁨이 아니라 슬픔도 한층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무엇이든 구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화단의 맨 앞줄에나 앉는 키 작고 별로 화려하지도 않은 꽃이지만, 열두 시의 나비 날개가 조용히 열려 수평이 되듯이, 팬지꽃이 그 작은 꽃봉지를 열어 벌써 여남은 개째의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한 줌도 채 못 되는 흙 속의 어디에 그처럼 빛나는 꽃의 양식이 들어 있는지…….

흙 한 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내가 과연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는지, 5월의 창가에서 나는 팬지꽃이 부끄럽습니다.‘(179)-한 송이 팬지꽃 -


좁은 거처에서도 예쁘게 꽃을 피우며 제 할 일을 해내는 한 떨기 꽃들과 풀들을 보면서도 부끄러워하는 순수하고 맑은 마음.


어머님을 뵙고 난 어젯밤에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죽어서 망우리 어느 묘지에 묻혀 있다면,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쯤에는 어머니의 아픈 마음도 빛이 바래고 모가 닳아서 지금처럼 수시로 마음 아프시지는 않고 긴 한숨 한번쯤으로 달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만, 그러나 어제처럼 어머님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머님께서 손수 만드신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추석에 마음 아프시고 겨울에는 추울까 여름에는 더울까 한밤중에 마음 아프시기는 하지만 역시 징역 속이지만 제가 살아있음이 어머님과 더불어 마음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나 하시는 말씀처럼 부디 오래 사셔서 여려 가지 일들의 끝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P189)-어머님 앞에서는 -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말 밖에는. 매인 몸의 아들을 끊임없이 걱정하는 어머니를 향한 애절한 사모곡이 들려오는 듯하다.


나한테 묻는다면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불빛이라고 하겠습니다. 새까만 연탄구멍 저쪽의 아득한 곳에서부터 초롱초롱 눈을 뜨고 세차게 살아 오르는 주홍의 불빛은 가히 겨울의 꽃이고 심동(深冬)의 평화입니다.

천 년도 더 묵은, 검은 침묵을 깨뜨리고 서슬 푸른 불꽃을 펄럭이며 뜨겁게 불타오르는 한겨울의 연탄불은, 추위에 곱은 손을 불러 모으고,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젖은 양말을 말리고……, 그리고 이따금 겨울 창문을 열게 합니다.’(P206)-불꽃 -


 ‘덥다춥다로 함축되는 교도소의 추위를 견디게 해주는 불꽃... 

아름다울 수밖에 없겠다. 모두를 따뜻한 난로 옆으로 불러 모을 것이며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며 꽃을 피우겠지. 모진 세월의 징역살이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생각해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도 참 컸겠다 싶다.


이기(利器)를 생산한다기보다 필요그 자체를 무한정 생산해내고 있는 현실을 살면서 오연(傲然)히 자기를 다스려 나가기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은 그 속이 빔()으로써 쓰임이 되고 넉넉함은 빈 몸에 고이는 이치를 배워 스스로를 당당하게 간수하지 않는 한, 척박한 땅에서 키우는 모든 뜻이 껍데기만 남을 뿐임이 확실합니다.‘(P212)-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 -


 문명의 이기로 물질이 넘치는 시대에 아무려면 보통의 인생살이를 하는 사람만큼 많이 가진 사람이 있을까. 징역살이에서도 방을 옮기면서 힘듦을 겪고 빈 그릇의 미학을 떠올린다. 어디서든 사람은 홀가분한 삶을 원하면서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저께 밤중의 일이었습니다. 여태 없던 서늘한 바람기에 눈을 떴더니, 더위에 지친 동료를 위하여 방 가운데서 부채질하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엄상(嚴霜은 정목(貞木)을 가려내고 설중(雪中)에 매화 있듯이 고난도 그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을 묻고 있는가 봅니다. 이러한 인정을 보지 못하고 지레 미움을 걱정함은 인간의 선성(善性)의 깊음에 대한 스스로의 단견(短見)외에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P219)-고난의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 -


 여름의 감옥살이의 고충을 말한 바가 있다. 그저 존재 자체로 증오하게 된다는 여름살이의 힘듦을 말이다. 동료들을 위해 부채질하는 선행을 목격하고 선생은 자신의 좁은 소견을 깨닫기도 한다. 고생을 해 본 사람이 같은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는 아량도 있을 것이다. 어디가 되었든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옛날에 수염이 길고 지혜 또한 깊은 어느 노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짙게 서린 무기(霧氣)를 보고 이곳에는 훗날 큰 절이 서리라는 예언을 남기고 표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예언이란 엇비슷이 적중하는 데에 묘()가 있는가 봅니다. 수천의 청의삭발승(靑衣削髮僧)(?)들이 고행 수도하는 교도소는 가히 큰 절이라 하겠습니다.

잠 에너지로 어제의 피곤을 가신 이곳의 우리들은 새벽의 청신한 공기를 양껏 들이마시며 기차처럼 어느새 지나가버릴 쾌청한 가을 날씨를 차마 아까워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P222)- 청의삭발승(靑衣削髮僧) -


 지난한 옥살이의 세월을 이렇게 이야기로 토해낼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앞에서 나는 가족들의 옥바라지 외에 선생의 강인한 정신력을 더 높이 생각했는데 리뷰를 위해 다시 보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형수님, 계수님에게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털어놓을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을 치유하는데 한 몫을 했을 터였다. 세상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다림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유머가 느껴져서 더욱 아련한 마음이 된다.


이번 이사 때 가장 두고 오기 아까웠던 것은 창문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능선과 오뉴월 보리밭 언덕이 내다보이는 창은 우리들의 메마른 시선을 적셔주는 맑은 샘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먼 곳에 착목(着目)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여미는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陽地)’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進步)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형수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의 발전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P230)- 창문과 문 -


창문으로 토막 난 하늘을 보다가 문으로 걸어 나가서 본 하늘의 느낌은 어땠을까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은 실천의 현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창문의 차이를 이렇게 멋지게 해석하는 선생이었구나!



육순 노인에서 스물두어 살 젊은이에 이르는 스무남은 명의 식구(?)가 한 방에서 숨길 것도 내세울 것도 없이 바짝 몸 비비며 살아가는 징역살이는 사회 , 역사의식을 배우는 훌륭한 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도덕적 분식(粉飾)이나 의례적인 옷을 훨훨 벗어버리고 벌거숭이의 이() , () , () , ()가 알 몸 그대로 표출됩니다. 알몸은 가장 정직한 모습이며, 정직한 모습은 공부하기에 가장 쉽습니다.’(P266)-감옥은 교실 -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어디서든 어떤 사람에게서든 배울 점 한 가지는 있을 것이다. 자신의 중심을 꽉 붙잡고 긴 세월 동안 사색을 멈추지 않은 선생의 깨어있던 정신에 마음이 아득해진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P298)-함께 맞는 비 -


 남에게 호의를 베풀면서도 언젠가 되받으려는 마음을 가진 적은 없는지. 아니면 상대의 굴종을 담보로 훗날을 위한 흑심은 없었는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으로 공감과 연대가 확장되는 것이라는 말이 뜨끔한 일침을 준다. 누군가에게 내민 도움의 손길이 결국 자신을 위한 위선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현상은 그것이 개인이든 사건이든, 하나의 단절된 객체로 한정할 수 없으며, 그것에 선행하는 여러 가지의 계기에서부터 그것의 발전, 변용의 가능한 방향에 긍()하는 총합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파악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더욱이 과거란 완성되고 끝마쳐진 어떤 불변의 것이 아니며, 반대로 역사인식은 언제나 현재의 갈등과 관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과거에 투영된 현재이며 그런 의미에서 계속 새롭게 씌어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어떠한 종류의 매스컴이나 미니컴이라도, 그것은 어떤 층을 대표하는 기관지인 법이며, 문제는 그것이 기관지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대표하는가에 있다는 그의 간결하고 적확(的確)한 사회인식이라든가, 어느 사회의 진상을 직시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사회의 밑바닥 인생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민중의식은 뛰어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겠습니다.’(P301~302)- 과거에 투영된 현재 -


 선생은 징역살이 초기에 부친과의 편지에서 단지 염려스러운 아들보다는 하나의 독립된 사상과 개성을 가진 한 사람의 청년으로 이해되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단순히 옥에 있는 아들을 염려하는 편지보다는 대화의 편지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선생의 사물을 대하는 감성적인 부분 외에도 사회, 세상을 바라보고 사색한 그분의 생각이 많이 들어있다. 개인이나 사건 등은 단절된 객체가 아니므로 총합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은 개인은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역사인식은 언제나 현재의 갈등과 관심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한 사회의 진상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직접 방문하여 민중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색한 선생의 이 육성이 두루두루 읽혀져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제가 정작 부러워하는 것은 객관적인 처지의 순역(順逆)이 아닙니다. 생사별리(生事別離) 등 갖가지 인간적 고초로 가득 찬 18년에 걸친 유형의 세월을 빛나는 창조의 공간으로 삼은 비약(飛躍)’이 부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비약은 그 어감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곱셈의 논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P318)-독다산(讀茶山) 유감(遺憾) -


 유형의 세월 동안 놀라운 업적을 이룬 정약용의 비약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도 옥중에서 많은 책을 읽고 출옥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다수의 저서를 남긴 것도 자신의 내면에 나무를 심고 키웠던 결과가 아니겠는가. ‘온몸으로 세상을 겪으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에 흠모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니 진정한 지식인은 역시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도 다르다.


비단 갇혀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많은 사람들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튼튼한 연대감이야말로 닫힌 공간을 열고, 저 푸른 하늘을 숨 쉬게 하며……, 그리하여 긴장과 갈등마저 넉넉히 포용하는 거대한 대륙에 발 딛게 하는 우람한 힘이라 믿고 있습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봅니다.’(P347)- 닫힌 공간, 열린 정신 -


 그렇다. 갇혀 있건 나와 있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다. 무관심은 인간의 정을 메마르게 하고 증오를 낳고 나아가서는 범죄를 부르기도 한다. 신영복 선생의 20대 후반부터의 인생 20년을 읽었다. , 이때 나는 몇 학년 이었지? 이때 나는 무얼 했더라? 기억을 떠올리며 읽어나갔다. 다 읽고 나서는 마음이 헛헛했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그분의 출옥을 보셨을까, 옥바라지에 20년을 보낸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등등. 그리고 선생도 세상에 안 계시다. 첫 책을 읽었을 때는 몰랐던 청구회모임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어린이에게 다가가 대화를 할 줄 알았던 열린 마음의 선생의 순수한 마음을 다시금 엿볼 수 있었다. 출간된 지 오래되었음에도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아픔이자 우리 시대의 고뇌와 절절한 양심에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감옥이나 바깥세상이나 매 한가지가 아닐까. 어디서든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져있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출구와 입구가 어디인지 모를 만큼 넓은 교도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 너무 심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자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철학자가 있는 걸 보면 무리도 아니지 싶다. 그렇기에 『감옥으부터의 사색』은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에도 진실로 소중한 것이 무언지 모르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을 번쩍 깨워준다. 어쩌지 못한 세월을 원망하기보다는 글을 쓰고 공부하며 본연의 삶을 살면서 귀한 저서들을 남겼으니 우리에겐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의 다른 책들을 진작 만나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탓하면서 앞으로 그 헛헛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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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감옥에서 벗어난 인식과 실천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평점10점 | g******i | 2019.09.01 리뷰제목
한 권에 이렇게 많은 계절이 빼곡히 담긴 책도 없을 거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대였던 1969년부터 1988년 40대까지 감옥에서 보낸 편지. 세상에는 감옥에서 쓴 글이 많지만 저자에 따라 그 느낌은 상당히 다른데 신영복 선생의 글은 빼어난 아름다움이 있다. 선생의 근사한 필체와 그림까지 곁들여 있어 더 그렇다. 감옥의 질곡에서 몸과 마음의 주권을 단련한 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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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에 이렇게 많은 계절이 빼곡히 담긴 책도 없을 거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대였던 1969년부터 1988년 40대까지 감옥에서 보낸 편지. 세상에는 감옥에서 쓴 글이 많지만 저자에 따라 그 느낌은 상당히 다른데 신영복 선생의 글은 빼어난 아름다움이 있다. 선생의 근사한 필체와 그림까지 곁들여 있어 더 그렇다. 감옥의 질곡에서 몸과 마음의 주권을 단련한 한 사람의 이 오랜 기록은 이제 고전이 되었다.

 

“고립되어 있는 사람에게 생활이 있을 수 없다. 생활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정치적·역사적 연관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에 있어서의 생활이란 그저 시간의 경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물질의 운동양식이라면 나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바위처럼 풍화당하는 하나의 물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칭 옥살이라는 것은 대립과 투쟁, 억압과 반항이 가장 예리하게 표출되어 팽팽하게 긴장되고 있는 생활이다. 궁핍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또 요구를 낳으며 그 요구가 관철되기 위하여는 크고 작은 투쟁의 관문을 거쳐야 하는 판이다.

그런데 그 요구의 질과 양이 실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일광욕 투쟁, 용변투쟁, 치료, 식수……. 바깥 세상에서는 관심 밖의 것들이 거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을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궁핍과 제한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이 생존에 불필요하기 때문은 아니다.

가장 불리하고 약한 입장에서 가장 필요불가결한 것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수인(囚人)들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다듬어진 용기와 인내와 지구력…… 이것이 곧 수인의 재산인 것이다.”

 

ㅡ「고독한 풍화(風化)」,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1969년 1월~1970년 9월 기록 중

                     

 

유형 생활과 사형 직전에서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는 그 영향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는 감옥 생활과 죄수들의 해학을 면밀히 담았는가 하면 한 사람 한 사람 허투루 담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과 『수용소군도』,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 기록을 담은 프리모 레비의 책 등에서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참혹한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무엇인가’를 내내 숙고하게 된다. 신영복 선생의 이 편지들에서도 그것은 내내 떠나지 않는 화두이다. 수형생활의 특성상 동일한 문제를 여러 차례에 걸쳐 거듭 생각하고 타인에게 글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더 다듬었으니 그것을 읽는 사람은 가볍게 읽고 지나치지 않게 된다.

 

같은 옷을 입음으로써 일순 평등해지고 서로의 민낯과 습관 전반을 함께 경험하는 감옥 생활은 비극적이면서 생활의 발견을 하게 만든다.

뽑은 이라도 감옥을 벗어나게 하려던 행동. 고양이, 새, 곤충, 마늘 한 쪽 등 각종 생명체에 대한 경외감. 교도소 인근 묘지 방문자들에 대한 관찰과 난상 토론. 잠에서도 징역을 사는 꿈. 전망 없는 창문과 살다 보니 봄가을이 없다시피 한 교도소의 하하동동(夏夏冬冬) 계절. 서로를 37℃의 열 덩어리로 느끼게 되는 여름 잠자리의 증오. 더위에 지친 동료들을 위해 방 가운데서 부채질을 하는 인정. 이재민의 재난과 불행까지 포함해서 ‘바깥의 삶’ 그 자체가 동경이 되는 삶. 교도소에 나타난 황소를 보고 고향을 떠올리는 그리움. 가족에 대한 불안과 고마움……. 선생의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책을 덮고 당장 나가고 싶었다. 내 앞에 펼쳐진 하늘과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기쁨이 내게 주어져 있는데 이걸 무심히 흘려버리고 있다는 안달 때문이었다. 선생은 오죽했을까. 형기 십 년을 훌쩍 넘었을 때 선생이 정약용의 18년 유배 생활 글을 읽는 심정은 또 어떠했을지.

 

 

 

이 책은 가족에게 보낸 편지라 사려 깊은 가족애를 보는 것도 남다르다.

형의 결혼에 대해 불만을 가진 동생에게 “그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당부. 동생이 반려자를 맞을 때는 ”사람이란 사과와 같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의 반려이며 생활을 통하여 동화·형성되어 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면밀한 선택으로부터 좀 대범해져도 좋을“ 것이라는 충고. 지식과 실천의 조화를 다짐하는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 어머니의 사랑을 거듭 절감하며 자신의 글씨에서 어머니의 글씨체도 담겨 있다는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형수, 계수와도 교우를 나누는 편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소풍에서 우연히 만난 꼬마들과 계속 교우를 나눴던 「청구회 추억」이다. 선생이 체포되어 흩어지게 된 사연이 가슴 아픈데, 수사과정에서 ‘청구회’가 사회주의 폭력을 위한 비밀 폭력단체로 추궁 받았던 데에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했고, “도운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자주 말씀하셨던 신영복 선생의 ‘인식과 실천의 조화’ 탐구는 자기 안의 사고에 갇히기 쉬운 나도 다른 독자도 함께 가져가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억울한 감옥살이로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시기를 뺏겼지만 선생은 “징역이 아니면 얻기 어려운 시각과 그 적나라한 인간학으로 해서 기존의 도덕적 베일, 분식(粉飾)과 허위로부터 시원하게 벗어난 자유로운 정신”으로 비약할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가을이 오는 문턱에서 이 책을 읽었다. 감옥살이에서 어디로 피할 수 있었겠는가마는 '피서(避書)로 피서(避暑)' 했다는 신영복 선생의 여름 회고에 살짝 웃기도 하며, 선생이 『담론』을 썼던 사연도 짐작했다. 처칠 『2차 대전사』를 영 마뜩잖아 하며, 동양철학과 한국의 근대 사상 독서에 뜻을 내비치는 게 아버지께 보낸 1973년 편지에 있었다. 『담론』도 재독 하고 싶고, 읽지 못한 다른 책들도 읽고 싶다. 또 다른 게 보이리라.

 

 

 “세상이란 관조(觀照)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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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조금만 신경 쓴 리뷰 00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평점10점 | h******o | 2019.08.13 리뷰제목
1.겨울의 싸늘한 냉기 속에서 나는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봄을 기다린다. 천장과 벽에 얼음이 하얗게 성에 져서, 내가 시선을 바꿀 때마다 반짝인다. 마치 천공의 성좌 같다. 다만 10와트 백열등 부근 반경 20센티미터의 달무리만 제외하고 온 방이 하얗게 얼어 있다.1월 22일 3호실로 전방되어 왔다.방 안 가득히 반짝이는 이 칼끝 같은 '빙광'이 신비스럽다. 나는 이 하얀 성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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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겨울의 싸늘한 냉기 속에서 나는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봄을 기다린다.

천장과 벽에 얼음이 하얗게 성에 져서, 내가 시선을 바꿀 때마다 반짝인다. 마치 천공의 성좌 같다. 다만 10와트 백열등 부근 반경 20센티미터의 달무리만 제외하고 온 방이 하얗게 얼어 있다.

1월 22일 3호실로 전방되어 왔다.

방 안 가득히 반짝이는 이 칼끝 같은 '빙광'이 신비스럽다. 나는 이 하얀 성에가, 실은 내 입김 속의 수분이이 결빙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내뿜는 입김 이외에는 얼어붙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천공의 성좌 같은 벽 위의 빙광은 현재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세계'이다.

 

 

- p.21

 

2.

크아 시작부분부터 확 끌어당긴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보는 책은 이유가 있었구나.

 

시골아낙님께서 "별로 신경 안 쓴 리뷰"라고 쓰니, 보기 싫어진다고 해서 제목을 살짝 바꿔봤다. "조금만 신경 쓴 리뷰"로. 이럼 조금이라도 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둘 다, 리뷰를 쓰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리뷰대회를 참여하기 위해 구매한 책이다. 수상여부에 관계없이 참여 자체만으로도 꽤 의미있고 나름 재미가 있다. 아무래도 리뷰대회에 참여하는 책들은 더 많이 신경쓰게 되고, 더 좋은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글쓰기 능력도 절로 향상! 1석 몇 조다.

 

신영복 교수가 감옥에 있을 때 썼다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는 신영복 교수의 팬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갑자기 팍팍! 강렬한 첫 느낌이다. 이제 리뷰대회마감기간이 20여일 정도 남아있으려나. 조금 두껍고 많은 책이긴 하지만, 조금씩 읽어나가면 그때까지는 다 읽겠지! 모두 팟팅 팟팅~

 

아주 조금만 신경 쓴 리뷰였습니다. 제대로 신경 쓴 리뷰는 다음 기회에...

 

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8 댓글 10
종이책 감옥 속에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평점10점 | i*******3 | 2019.08.28 리뷰제목
젊은 시절에 나는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았다. 논쟁에서는 칼과 같은 말로 상대를 찌르고, 나와 다른 사람은 견디지 못했다. 마치 날카로운 조약돌이 바람과 강물에 깎이듯, 오랜 시간 나의 이런 날카로움이 깎여져 갔다. 나의 날카로움 깎은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인생이라는 시간들, 삶에서의 여러 번의 실패, 좋은 사람들의 조언들이 있었다. 독서 역시 나를 깎고 다듬어 주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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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나는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았다. 논쟁에서는 칼과 같은 말로 상대를 찌르고, 나와 다른 사람은 견디지 못했다. 마치 날카로운 조약돌이 바람과 강물에 깎이듯, 오랜 시간 나의 이런 날카로움이 깎여져 갔다. 나의 날카로움 깎은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인생이라는 시간들, 삶에서의 여러 번의 실패, 좋은 사람들의 조언들이 있었다. 독서 역시 나를 깎고 다듬어 주었던 가장 큰 도구였다. 독서를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여러 인생들을 경험하면서 다른 인생들을 이해하기도 하고, 내가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한 가르침에 겸허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그중에 한 권이 바로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20년도 훨씬 넘는 젊은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저자와 그의 책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매우 강했다. 그래서 이 책을 들고 읽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존경하는 한 분의 소개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느낀 반응은 저자의 겸허함이다. 서울대 출신의 당대의 엘리트이자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동안 감옥에서 세월을 보낸 저자의 이력 때문에 그에 대한 선입견이 강했다. 저자의 굽히지 않는 신념이나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분노 등이 터져 나오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는 순간 인생에 대한 겸허한 마음과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마음을 접하고 당황했었다. 그는 감옥 속에서 타인의 잘못을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숱한 문제들과 정면 대결하는 긴긴 겨울밤을 좋아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하늘을 치달리는 잡념을 다듬고 간추려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하나하나의 일들과 만나고 헤어진 모든 사람들의 의미를 세세히 점검하는 겨울밤을 좋아합니다. 까맣게 잊어벼렸던 일들을 건져내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담겨 있는 의외로 큰 의미에 놀라기도 하고, 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알았던 일에서 넘치는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만나고 헤어진다는 일이 정반대의 의미로 남아 있는 경우도 없지 않아 새삼 놀람을 금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만나는 것은 매양 나 자신의 이러저러한 모습입니다." (P 75)

 

이와 함께 책 속에서 타인에 대한 저자의 따스한 마음을 접하게 된다. 감옥에서는 다양한 사람을 접하게 된다. 또는 감옥의 동료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의 처절한 삶도 듣게 된다. 깡패들의 착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매일 악다구니를 치며 싸우는 창녀의 삶. 징역 사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위해 몸을 파는 아내의 삶. 반대로 징역 사는 남편을 버리고 딴 살림을 차리는 또 다른 아내의 삶. 저자는 이런 사람들의 삶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보다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며 그들의 삶의 위치에서 생각해 보려 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 무지하면서도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인 폭력입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는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끊어버림으로써 그의 정신세계를 이질화하고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 83)

 

저자가 감옥에서 만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더 낮은 위치에서, 더 거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배운 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무시하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겸허하게 그들의 삶을 존중한다. 감옥 속에서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한탄하면서도, 타인의 인생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만은 눈물겹도록 따스하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 만 느끼게 합니다. - 중략 - 자기의 가장 가끼이 있는 사람들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이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P 93)

 

이 책을 읽은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보수와 진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권력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싸움으로 치열하다. 이제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들까지 존재하는 듯하다. 조금 더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할 수는 없을까. 신영복 선생의 사색이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이다. 각자의 감옥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기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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