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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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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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독일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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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헤르만 헤세 저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를 읽고 평점10점 | m***3 | 2018.06.04 리뷰제목
헤르만 헤세 저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를 읽고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들 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가 있다. 그 관계는 여러 상황에 따라 이뤄지거나 맺어진다. 의도적으로도 되지만 우연히도 이뤄진다. 어쨌든 서로 맺어진 인간관계를 중하게 여기면서 사회생활을 열심히 해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럽고 좋을 수가 없다. 따라서 좋은 모습들은 언제든지 배워서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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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저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들 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가 있다.

그 관계는 여러 상황에 따라 이뤄지거나 맺어진다. 의도적으로도 되지만 우연히도 이뤄진다. 어쨌든 서로 맺어진 인간관계를 중하게 여기면서 사회생활을 열심히 해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럽고 좋을 수가 없다.

따라서 좋은 모습들은 언제든지 배워서 나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작품 속에서도 이런 주제를 다루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헤르만 헤세의 바로 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작품이다.

 '어느 우정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작품으로 인간의 본성을 속 시원하게 공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 아름다운 소년으로서 자신을 알기 위해 모든 것을 직접 행하기 좋아 했던 골드문트와 한 젊은 수사로서 인간이 상상한 세계를 정신으로 경험하고 인식하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수도원의 신성한 규율에 바치기로 하면서 정신으로 관통하는 사람 나르치스가 만난 곳이 마리아브론 수도원이었다.

미소년으로서 학생의 신분과 수사의 보조교사로서였다.

미소년 골드문트는 엄격한 아버지에 의해 수도원에 맡겨졌는데 아버지의 기억에 따르면 문란했던 어머니의 죄를 씻기 위해 금욕적인 수도자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었다.

골드문트의 사고는 이러한 가정의 경험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대한 많은 삶을 위해 골드문트는 최대한 많은 공간과 장소에 있고자 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황금의 입, 골드문트였다.

그러나 하지만 수도원의 천재 수사 나르치스는 천재소년이 수도자로 살 수 없는 본성임을 알아차렸다.

정반대의 영혼을 지닌 이들은 서로에게 운명적으로 끌렸다.

그것은 성과 육체, 세속의 통념을 초월하는 끌림이었다.

그래서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꽃잎 한 장이나 길 위의 작은 벌레가 도서관 전체의 책들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고 하면서 조언을 하게 된다.

나르치스가 수도원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결국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의 예언대로 수도원을 떠나 혼자 방랑의 삶으로 들어선다.

골드문트는 많은 여인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랑의 모험을 즐기며 나름대로의 삶과 새로운 세계를 배워나갔다.

골드문트는 많은 여자들의 유혹을 받아들이며 유혹적인 존재가 되었다.

어린아이다움, 개방성, 호기심, 순진무구한 욕정이 그의 무기였다.

여자들은 그에게 무언가를 남겨놓았고, 골드문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길, 예술가의 삶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하지만 과도한 열정은 늘 위험한 법이어서 죽음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르치스의 운명적인 도움으로 생명을 구하면서 결국은 수도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영원한 어머니의 상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구현하면서 영혼의 벗인 나르치스 곁에서 숨을 거두는 모습을 이틀간이나 보는 마음이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한없이 슬펐다.

아울러 헤르만 헷세의 인간의 마음 두 본성을 두 인물을 통해서 표현하려 하였지만 결국은 하나로 융합시킨 즉 이성과 감성의 조화, 학문과 예술의 조화 등을 통한 개인의 완성과 예술의 향한 구도의 길을 자유롭게 가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두고두고 몇 번이고 읽어보아야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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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헤세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책입니다. 평점10점 | i*****n | 2021.08.22 리뷰제목
예전에는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었는데, 요즘에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로 번역돼 나오네요. 어렸을 때 읽었고, 나이들어 갑자기 생각 나 다시 읽게 됐어요. 역시나 그때나 지금이나 초반부와 종결 부분은 재밌는데, 중반부는 조금 지루했어요. 뭔가 비유와 상징이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거기까진 이해를 잘 못해서 두 캐릭터의 매력만 보고 계속 읽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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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었는데, 요즘에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로 번역돼 나오네요. 어렸을 때 읽었고, 나이들어 갑자기 생각 나 다시 읽게 됐어요. 역시나 그때나 지금이나 초반부와 종결 부분은 재밌는데, 중반부는 조금 지루했어요. 뭔가 비유와 상징이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거기까진 이해를 잘 못해서 두 캐릭터의 매력만 보고 계속 읽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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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강추. 평점10점 | y****d | 2018.06.11 리뷰제목
말이 필요없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헤르만 헤세란 작가를 좋아하지만 정작 그의 책을 읽은 건 데미안이 다였다. '그 책'에서 출판한 헤르만 헤세 컬렉션을 모두 갖고 싶을만큼 내 마음에 쏙-드는 디자인의 책이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표지부터 그 어느 것 하나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없는 책다운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이력을 읽은 후 그의 작품 속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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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헤르만 헤세란 작가를 좋아하지만 정작 그의 책을 읽은 건 데미안이 다였다.

'그 책'에서 출판한 헤르만 헤세 컬렉션을 모두 갖고 싶을만큼 내 마음에 쏙-드는 디자인의 책이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표지부터 그 어느 것 하나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없는 책다운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이력을 읽은 후 그의 작품 속 세계로 서서히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예상했듯이 쉽지만은 않은 내용이었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의 글들이 어쩜이다지도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읽으면서 감탄만이 나왔다.

모든 내용을 다 필사하고 싶을만큼 꼭꼭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고,

헤르만 헤세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내가 이만큼 나이를 먹어도 전혀 자각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것이라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인간 본성의 양면, 두 세계의 대립과 융합, 정해진 운명 등등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아마도 나는 아직은 다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어떠한 독자층이 고전을 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란 의문은 늘 나에게 존재해 왔고, 이 책 역시나 마찬가지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접근하며 나의 자아를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은 주고 있다.

다들 인정하듯 위대한 작가라는 수식어를 그에게 붙여주고 싶다.

이 책의 서평에 있어 줄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뭔가 이해했다는 듯 거짓으로 서평을 채우고 싶지도 않다.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뭔가 깨달음은 많이 받았는 데 글로 쓰려니 나의 부족함에 정리가 되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내 성장기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내 영혼의 자서전"​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없는 시간을 내어서라도 꼭 읽어봐야 할 명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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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간은 세상을 주유하는 방랑자다 평점10점 | h******1 | 2018.06.10 리뷰제목
1930년 그러니까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 나치당이 권력을 잡기 전,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발표된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발표됐다. 우리나라에는 그전에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도 발표가 되었다. 왠지 <지와 사랑>이란 제목은 일본식 번역의 영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주인공들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개인적 성향이 각각 철학자,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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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그러니까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 나치당이 권력을 잡기 전,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발표된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발표됐다. 우리나라에는 그전에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도 발표가 되었다. 왠지 지와 사랑이란 제목은 일본식 번역의 영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주인공들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개인적 성향이 각각 철학자, 지식인을 상징하는 지()와 예술가로서 에피쿠로스적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면 의역된 제목이 아주 그릇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중세의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 시작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각각 성속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라면 단연 전자는 그리스어에 뛰어난 실력을 지닌 당대 최고의 지식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더군다나 그들이 머무는 장소는 수도원이지 않은가. 당시 수도원 이상의 교육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성을 추구하는 아폴론을 닮은 나르치스와 달리 본질적으로 쾌락주의의 화신인 디오니소스 캐릭터인 골드문트는 촉망 받는 미래의 수도원장과 돌아온 탕아라는 극명하게 대립되는 기묘한 우정의 발현으로 표현된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도입부에서 댄서이자 이교도였던 어머니의 대속을 위해 수도원으로 보내진 골드문트가 앞으로 벌일 유랑에 가까운 방황의 전조가 슬며시 제시된다. 이성의 화신 나르치스가 학업에 정진하고, 신에 대한 복종과 사랑이라는 수도사들에게 주어진 고전적 과제와 씨름하는 동안 훗날 돌아온 탕자가 될 골드문트는 부단히 속세의 쾌락과 즐거움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결국 리제라는 유부녀와의 관계를 통해 더 이상 자신을 부르는 세상을 외면하지 못하고 수도원을 떠나게 된다. 소설에서는 줄곧 이성과 감성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소설의 초점은 나르치스에서 골드문트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개인적으로 수도원과 속세라는 공간의 이분법적 구성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이성을 상징하는 수도원이 상대적으로 나르치스에게 보호와 안전을 제공했다면 골드문트에게는 인본주의적 해방을 의미했다. 그리고 나르치시는 이미 그전부터 골드문트가 수도원에 적합한 영혼이 아니라는 점을 적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지 않았던가. 자유로운 영혼에게 수도원이란 공간은 억압과 속박이지 않았을까. 하나의 공간이 서로 상이한 영혼에게 그렇게 다른 의미라는 점은 역설적으로 하나의 개인에게도 이성과 감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자 이제 이야기의 중심은 돌아온 탕자 골드문트에게 오롯하게 돌아간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수월했다. 유부녀 리제와의 관계를 통해 거듭나게 된 골드문트는 자신이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존재라는 점을 간파했다. 골드문트에게 여성이란 존재는 구원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팜므 파탈이었던 어머니라는 극복해야 할 존재이기도 했다. 골드문트가 체험하는 방랑은 필연적으로 그를 예술가의 길로 인도했다. 조각가로 변신한 그는 예술의 세계에서 구도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르치스가 학문에 대한 정진에서 자기 삶의 좌표를 정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성장소설의 궤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골드문트의 쾌락주의적 탐닉은 멈춰야 할 타이밍을 몰랐다. 그리고 한때 수도사 지망생이었던 그가 저질러서는 안되는 살인까지도 범하게 되지 않았던가. 중세를 초토화시킨 흑사병의 대유행 가운데, 골드문트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에 대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욕망이 추구하는 모든 지점들을 골드문트는 말 그대로 직접 체험한 것이다. 불교에도 심취했다는 헤세가 불가에서 말하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문학을 통해 재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또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골드문트의 이런 방탕한 방랑은 일종의 시련으로도 볼 수 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을 소멸시키는 궁극적 구원(redemption)에 이르기 위한 구도의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에게는 구도의 길이 조용하고 엄숙한 수도원에서 이루어지는 학문에 대한 연구와 대화일 수도 있겠지만(나르치스의 경우), 골드문트가 걷게 된 속세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어쩌면 돌아온 탕자에게는 성()보다는 속()이 깨달음을 위한 장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의 온갖 풍파를 추체험한 돌아온 탕자 골드문트에게 그런 점에서 나르치스와의 재회는 필연적이며, 수도원으로의 회귀 역시 구원의 완성을 위한 통과의례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비극의 탄생을 통해 그리스 신화야말로 모든 창조적 행위의 원형이라고 니체의 주장 대로 헤세 역시 비슷한 궤적을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그리고 있다. 소설에서 이성을 대표하는 선수로 등장한 나르치스의 원형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자의식의 화신 나르시소스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자신의 본성을 지속적으로 이성으로 제압해야 하는 그의 삶도 제 멋대로 산 골드문트의 그것만큼이나 고통과 번뇌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정상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는 삶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선택의 기로에서 나라면 과연 나르치스의 선택을 했을 것인가? 아니면 골드문트의 길을 걸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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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a*****7 | 2018.06.01 리뷰제목
무엇인가 혹은 누구에게 지속적으로 끌리는 감정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머릿속에 어떤 단어가 떠오르더라도 잠시 기다려주길...그리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어보기 바랍니다.헤르만 헤세는 여러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내면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가장 넓고 깊은 그 세계에서 헤매이지 않으려면 늘 자신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마리아브론 수도원에는 두 명의 특별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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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혹은 누구에게 지속적으로 끌리는 감정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머릿속에 어떤 단어가 떠오르더라도 잠시 기다려주길...

그리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어보기 바랍니다.

헤르만 헤세는 여러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내면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가장 넓고 깊은 그 세계에서 헤매이지 않으려면 늘 자신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브론 수도원에는 두 명의 특별한 인물이 있습니다.

한 명은 늙었고 한 명은 젊습니다. 수도원의 형제들은 모두 그 둘을 알고 있고, 그들을 존경합니다.

늙은 사람은 수도원장인 다니엘이고, 젊은 사람은 생도 나르치스입니다. 나르치스는 이제 막 수련 생활을 시작했지만 재능이 너무도 뛰어나서 , 파격적으로 보조 교사를 맡고 있습니다. 그의 놀라운 그리스어 실력은 수도원의 학자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수도원장은 대다수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그의 성품이 자비와 소박함, 겸허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라틴어 실력은 변변찮았고, 그리스어는 아예 몰랐습니다.

두 사람은 수도원의 누구보다 더욱 서로에게 특별한 친밀감과 애착을 느꼈으나 실제로 가까워지진 못했습니다. 그건 수도원장이 나르치스를 일개 수련수사가 아닌, 매우 특별하고 예민한 존재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르치스는 다니엘 수도원장에게 자신의 남다른 능력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알아차리는 능력.

드디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온 앳된 미소년 골드문트.

골드문트는 수도원에서 마음이 강하게 끌리는 두 사람을 발견합니다. 바로 다니엘 수도원장과 보조 교사 나르치스.

수도원장에게는 감탄과 경외의 감정이라면, 나르치스에게는 그의 진지하고 매혹적인 모습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렸으니... 소년에게는 가슴이 두근대는 사랑?

나르치스 역시 골드문트를 본 순간 불이 붙은 듯 정신없이 어린 영혼에게 빨려 들어갔고, 그의 성향과 운명을 금세 파악하고 맙니다. 나르치스는 귀엽고 환하며 사랑스러운 이 소년과 친구가 되기를 열망했고, 소년 안에 자신을 보완해줄 반대편 극점이 있음을 예견했습니다. 소년을 자신에게로 받아들여서 이끌어주고 싶었고 깨우쳐주고 싶었지만 더 다가서지 않았습니다. 나르치스에게 사랑은 순수한 정신적 교류를 뜻했으므로. 그래서 두 사람은 진지한 의미의 우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골드문트는 깊은 숲 속에 들어갔다가 리제라는 여인을 만나 육체적 쾌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녀와의 첫 입맞춤의 순간 내면의 뭔가 녹아내리면서 기묘한 아픔을 느낍니다. 어머니, 골드문트에게 출생의 오점을 남긴 사람. 지금껏 가졌던 모든 그리움과 꿈, 불안, 잠자던 비밀이 한꺼번에 깨어나면서, 모든 것이 변했고 모든 것이 황홀해졌습니다. 그때 골드문트는 자신이 수도원에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랑의 길을 떠납니다. 나르치스에게 작별 인사를 남긴 채.

나르치스는 이미 골드문트의 본성과 운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그를 보내줍니다. 골드문트는 예술가의 영혼을 지녔으므로.

아름다운 미소년 골드문트의 방랑기... 마지막은 나르치스의 곁으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각자의 길을 걷고, 다시 극적으로 만나는 과정은 결국 '나'로 귀결됩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많은 걸 보여줍니다.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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