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B. 싱어(Isaac Bashevis Singer)는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으로 동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의 언어인 이디시어로 작품을 발표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확대되면서 이를 피해 형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다행스럽게도 그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직접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만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자신의 언어인 이디시어로 그들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작품 앞 지은이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을 몸소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그 시련에서 살아남은 난민들과 더불어 오랫동안 뉴욕에서 살아왔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결코 일반적인 난민들의 삶과 그들의 고단한 일상을 다룬 것이 아님을 일찌감치 밝혀 둬야겠다. 내 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책도 특이한 주인공과 특이한 사건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나치의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격과 운명의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혹시 그들이 난민들의 보편적 삶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예외 또한 규칙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7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데, 이 해 노벨상 선정 위원회는 그의 작품에 대해 "폴란드 출신 유대인의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인류의 보편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문학"이란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원수들,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유대계 폴란드인 헤르만 브로데르는 미국 뉴욕으로 망명해 랍비의 대필작가로 생활하고 있다. 그를 나치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헛간에 숨겨주었던 하녀 야드비가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이에 대한 의무로 그녀와 결혼하였다. 그에게는 아내 타마라와 두 아이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죽었다. 그는 의무로 결혼한 야드비가에게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또 다른 홀로코스트 생존 이민자인 마샤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그에게 죽은 줄 알았던 첫번째 부인 타마라가 찾아오면서 그는 세 여인을 사이에 두고 거짓과 불안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이전에 읽었던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들의 이야기인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설, 『소피의 선택』에서도 그렇듯이, 생과 사가 갈리는 극한의 삶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은 그 억압된 상황이 끝나더라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가 힘든 것 같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불안한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들만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아직도 세상을 치유하겠다고 여림이란 말이지?> 헤르만은 신문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더 나은 세상>이니 <더 밝은 내일>이니 하는 말들이 그에게는 고통받으며 죽어 간 이들의 유해를 모독하는 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희생자들의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상투적 표현을 들을 때마다 분노가 솟구쳤다. (28쪽)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항상 고민하고 불안해 하는 헤르만에게 랍비 램버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이승에 있거나 저승에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한 발은 지상에 두고 한 발은 하늘에 둔 채 살아갈 수는 없단 말일세. 자넨 지금 생존자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야. (35쪽)
마샤의 어머니 시프라 푸아는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혼도 너무 많이 두들겨 맞으면 더 이상 고통을 느낄 수 없게 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리곤 자신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살아남은 것도 모두 죽은 자들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되뇌인다. 그녀는 더욱 독실한 신자가 되어 죽은 이들을 위해 항상 기도한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살아남은 자들도 완전히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없다. 항상 죽은 이들과 함께 하고 어쩌면 이들도 죽음과 삶의 중간적인 지점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물들은 일찌감치 존재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도피 및 은신 능력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런 와중에도 확실성을 추구하다 오히려 몰락을 자초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269쪽)
헤르만은 결국 불안과 초조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상황으로부터 도피해버린다. 그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숨어 살면서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나갈 것이다. 홀로코스트가 종료된 상황에서도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그들의 슬픈 운명이 참으로 안타깝게 다가온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독재세력에 억압받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고 배척하며, 혹은 인종이 다르다고 멸시하는 상황들이 계속된다.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광기라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지,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 마음 속의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항상 살피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원수들, 사랑이야기는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작품으로 유대인 남자가 주인공이다. (작가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유대인하면 떠오르는 것은 나치에 의한 학살이다. 이런 역사적 이야기는 자주 예술작품의 소재가 된다. 주인공 역시 나치를 피해 어두운 곳에 3년간 은둔한 유대인으로 나온다. 자신을 도와준 폴란드 여성과 미국으로 와서 결혼하며 살지만 그는 늘 나치가 세상을 점령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 있다. 주인공의 직업은 작가인데(뭐 책도 팔지만) 이러한 자신의 불안감을 글쓰기의 원동력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모습이 꽤나 재미있긴 했다.
소설의 이야기는 세 명의 여자와 결혼하게 된 주인공에 대한 것이지만 나는 주인공의 불안감에 눈길이 갔다. 두꺼워서 언제 다 읽나 고민했는데 은근 빨리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