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일까? 글쓰기와 가깝게 여겨지는 책 읽기는 망설임 없이 좋아한다고, 취미이자 특기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데, 정작 ‘글쓰기’에 대해 물어오면 답이 망설여진다. 글쓰기를 좋아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뭔가 끄적끄적 적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것만으로 답하기는 애매하다(글쓰는 것을 좋아한다면 도서리뷰가 종종 숙제처럼 느껴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글쓰기에 대한 책을 계속 찾아 읽고(2022년이 되어서도 이렇게 이 책을 읽지 않았는가 말이다), 매년 새해목표에 ‘글쓰기’를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나와 ‘글쓰기’는 끝없이 밀당을 하고 있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기 전 목차 살펴보기
1장. 쓰는 법 - 삶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2장. 쓰는 이유 - 쓸쑤록 더 중요해진다
3장. 쓰는 생활 - 그것을 믿는 사람은 이미 작가다
4장. 쓰는 고통 - 글쓰기에도 싸움이 필요하다
# 글쓰기는 ‘몸’으로 하는 일
이 애증관계를 끊어보고자 책을 펼쳤는데 저자의 말이 나를 다소 의기소침하게 한다.
글쓰기에 대한 강연이나 수업을 할 때면, 나는 종종 이야기한다. 글쓰기 강연을 듣는 것은 사실 글을 잘 쓰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또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찾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말이다..(중략)..마치 수영을 잘하고 싶은데 온라인 상의를 보거나 책을 찾아 읽는 것이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p.6
아니, 글쓰기 꿀팁을 얻으려 책을 읽기시작 한 사람에게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어봤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꺼라니,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글쓰기를 책으로 배웠어요” 글쓰기와 수영의 비교라니, 그래도 글쓰기와 책읽기는 조금은 (심리적으로) 가까운 관계 아니던가? 책의 시작부터 투덜거리기 시작하는 내게 저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글쓰기란 ‘머리’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몸’으로 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가 몸에 익은 습관 같은 것이고, 몸으로 삶을 살아내는 일이며, 몸이 머리를 이끌고 가는 일이라 믿고 있다. p.6
듣고보니 이해가 간다. 계속 글을 써야지, 글을 쓰고 싶어 생각만 하고 정작 손으로 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내게 딱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머리가 아닌 몸이 하는 일,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글쓰기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꾸준함이 필요할까?
언젠가부터 나는 매일 글을 쓴다. 관용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매일 글을 쓴다. p.7
생각만 하지 말고 뭐라도 매일 써라.
모든 글쓰기 책에 언급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항상 나의 작심삼일로 허무하게 끝나버리곤 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는 일도 실행하지 않으면서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니, 책의 시작부터 뜨끔하다.
# 꾸준한 글쓰기를 위한 ‘인정욕망 ’
“어떻게 하면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을까요?”
강연이나 북토크, 글쓰기 수업 등을 막론하고 항상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보통의 대답은 일기를 써보자, 소재를 가지고 아무거나 써보자, 옛 추억을 써보자 같은 말들이고, 나도 주로 그런 식의 대답을 하곤 했다. p.74
어떻게 하면 작심삼일을 이기고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래, 역시 일기지..고개를 끄덕이려니 저자의 뒷말이 어딘가 심상치 않다. 그리고 역시나, 이어지는 말은 내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많은 경우, 글쓰기의 꾸준함은 인정욕망에서 나오는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인정과 관심, 사랑을 받고 싶을 때 의외로 글쓰기는 그에 이르는 제법 괜찮은 통로가 되어준다. p.75
그래서 요즘에는 글쓰기 수업에서도, 만약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면 글쓰기 자체에서만 답을 찾기보다는, 글쓰기를 둘러싼 맥락들에 더 주의를 기울여보라고 말한다. SNS를 통해 서로의 글을 읽어줄 독자를 찾아 나서보라든지, 출판이나 등단과 같은 현실적인 목표를 지녀보라든지, 애써 완성한 글을 꼭 웹진 등의 다양한 매체에 투고해보라든지, 서로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눌 수 있는 글쓰기 모임에 참가해보라든지 말이다. p.76
인정욕망이라니, 조금 어리둥절해진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글쓰기라니, 이제껏 ‘글쓰기는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작업’이라 생각하고 있던 내 생각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이다.
몇 번이고 글을 곱씹으며 저자가 말한 ‘글쓰기를 둘러싼 맥락’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를 향한 글쓰기를 이어가기 위해 외부의 자극을 이용할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이른 아침 시작을 위해 지인들과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격려하거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들도 이런 ‘인정욕구’의 흐름과 통하지 않을까
특히나 나처럼 ‘칭찬’에 약한 (말 그대로 ‘칭찬’은 몸치인 Joy도 춤추게 한다) 사람에게는 큰 동력이 될 듯 하다. 다만, 번번이 즉각적인 반응이 없다고 기가 죽지 않는 마음만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능도, 천재성도, 열정도, 돈도, 환경도 아니고,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 아닐까..(중략)..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 확고하다면, 그래서 나의 글쓰기가 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아니며, 나의 고통 또한 바보 같은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주어질 때, 사람은 계속 글을 쓴다. p.52
# 중요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볼까 한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그저 계속 무언가를 적어보고 싶은 마음만은 진짜이다.
무엇이든 계속하면, 그것은 세상에도 나에게도 중요한 것이 된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면 그것이 곧 중요한 것이 된다. 반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pp.99-100
글쓰기만이 아니라 가끔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그것이 사적 영역이든 또는 회사라는 공간이든) 대체, 이게 뭐가 중요하다고 나는 계속 하는거지? 하며 풀이 죽을때가 있다. 올해를 빛낸 세계의 100대 인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속한 작은 세상에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일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무엇이든 계속’하면 ‘중요한’ 것이 된다고 한다. 아, 그런가? 이 대목에서 영화 ‘역린’에 나온 중용의 글이 떠올랐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나오고
겉에 배어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계속한다는 것은 단순히 반복되어 이어지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계속한다는 것은 그 안에 정성이 들어가야 하고,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일거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글은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중용의 글과 닮아 있다.
만약 그렇게 무언가를 계속해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에 남는 것은 ‘계속한 사람’이라는 것, 결국 이기는 것도 ‘계속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pp.100-101
책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저자의 쓰는 생활을 함께 적고 있다. 몇 권의 책을 냈지만 여전히 매일 정성을 다해 글을 쓰고 있는 저자의 글은 내게 응원과 함께 질책을 던져준다.
제대로 하란 말이야. 말만 하지 말고!
(그러고 보면 나는 새벽수련을 통해 차근차근 쌓이는 내공이 아닌, 전설처럼 꽁꽁 숨겨져있던 설산의 만년삼과 비급을 누군가 던져주기를 바라고 있었나보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응원한다. 그가 좋은 글을 쓰리라 믿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그가 글을 쓰고자 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자’ 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기다림이 이 세상을 분명 더 낫게 만들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 쓰는 자의 기다림은 옮다. 그가 발굴해낼 것 중에서는, 그가 아니었으면 결코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을 그 어떤 존재가 반드시 있다. p.35
*나에게 적용하기
일기든, 편지든, 포스팅이든 '어쨋거나 매일' 쓰기(적용기한 : 지속)
*기억에 남는 문장
글의 전달은 기억을 토대로 한다. 보는 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장면을 전달하는 영상과 달리, 그 읽기를 통해 사람들은 각자의 기억과 접속한다. 모든 사람이 기억하는 여름날 뜨거움의 강도, 풀 내음을 맡았던 순간, 매미 소리가 유난히 가까웠던 날과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던 공간은 각자 다르다. p.28
나는 자주 우리 삶이 그저 삶을 어떻게 상상하느냐에 달려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중략)..내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보다 느리거나 빠르다고 상상하면 내 삶은 정말 그런 삶이 된다. 하지만 내 삶을 그저 내 삶으로 상상하면, 내 삶은 그저 내 사람이 된다..(중략)..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이를 하며 사는 게 당연하다면, 내가 좋아하는 상상을 하며 사는 삶도 당연할 테다. pp.30-31
글을 쓸 때, 사회에 관해서는 가능한 한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되, 삶에 관해서는 최대한 옹호해야 한다고 믿는다. 달리 말하면, 사회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되, 삶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낙관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비판해야 할 것은 나름대로 좋은 삶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아니고, 옹호해야 할 것 또한 사회구조나 사회의 권력이 아니다. p.83
내가 속한 사회나 환경, 상황이 어떠하건 그런 현실과는 별도로, 한 명의 생명으로 태어나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야 한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충분히 많은 것을 사랑하고, 다양한 가치를 이해할 줄 알고, 매일의 삶의 기쁨을 놓지 않으며, 더 나은 삶을 향해 가야 한다고 믿는다. p.84
그런데 그저 하다보면 삶이 좋아진다. 그저 하다보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 때로는 글쓰기 자체가 좋은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좋아서 하는 일이 삶을 배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p.109
세상에서 내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고, 또 이 세상 전체에서 나라는 존재가 최선도 아니며 최고도 아니라는 사실은 상관이 없다. 나는 세상의 맥락에 따라 세상에 충실한 게 아니라, 내 삶의 맥락에 따라 나에게 충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p.114
어쩌면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거대하고 깊다. 우리 시대가 점점 그 거대함과 깊이를 잃어가는 것 같아 아쉽다. 마치 어느 숲속에 버려진 가장 맑고 아름다운 우물이 있는데, 그 우물로 들어가면 믿을 수 없는 신화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걸 이제는 아무도 모르게 된 것처럼, 언어 너머의 세계는 잊히고 있다. p.123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에 망가지지 않고, 그 시간을 이겨내는 이들이 결국에는 삶을 제대로, 잘 살 줄 아는 이들일 것이다. p.132
내가 무언가를 지켜내며 사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삶은 늘 무언가를 잊는 일들로 가득해서, 사실 무엇 하나 지켜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지켰다고 믿으며,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p.140
나를 평가할 수 있는 건 나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뿐이다. 그 밖의 사람들은 나에게 호불호를 가질 수는 있어도 내게 깊은 영향을 주는 평가를 할 수는 없다. p.192
살아가면서 어느 한 영역에서만큼은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고, 어느 한 영역에서는 끊임없이 새로 배우는 초심자가 되고, 어느 한 영역에서는 그저 웃고 즐기는 해맑은 아이가 되고 싶다.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면, 바로 그런 데 있을 것이다. p.201
글쓰기란 그렇게 매번 내게 말을 걸어오는 세상의 통념과 대화를 하고 싸우는 일이며, 어찌 보면 머릿속에서 혼잣말을 하며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일이다. p.229
여전히 내 곁의 사람들이 내게 매일의 힘이 된다. 그것이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작은 인정과 관심이 끈이 되어 이어지고 있다. 나의 자존감이란 내 안에 쌓인 단단한 영혼의 힘이라기보다는 매일 주워 모으는 조약돌 탑 같은 것이다. p.253
결국 버티는 사람이 이기고, 살아남고, 성공한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진실이 아닐까. 물론 모두가 일등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겨움을 이겨낸 매일의 힘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삶은, 그 삶 자체가 자신에게 돌아와 힘을 주지 않나 싶다. p.275
생각보다 우리는 무척 유약한 존재여서, 한 번 규정해버린 언어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 오래된 속담, 세간을 떠도는 말 중에는 주워듣고, 마음속에 새기고, 되풀이할수록 삶을 망가뜨리고 훼손하는 언어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 언어를 걸러낼 수만 있다면, 삶은 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p.277
삶이란 근사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이다. p.28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예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글쓰기란 무엇일까? 글이 우리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게 하는가? 글이 어떻게 삶이 될 수 있는가? 매일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는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사색의 결과를 모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현란하고 다양한 미디어가 춤추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도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를 다양한 측면에서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 삶을 보다 정답게 느끼게 해 주는 글쓰기를 하며 살고 싶다. 나를 둘러싼 삶의 복잡다단한 조건을 어떤 묘한 드로잉과 색채로 뒤섞어 삶을 채색해주는, 인상파의 그림같은 글을 쓰고 싶다. 그런 글로 인해 나도, 내 곁은 사람도, 나를 둘러싼 사람도, 그리고 저 너머의 많은 사람도 자신의 삶을 한결 정답게 느끼면 좋겠다. 그런 글들, 은은한 색감의 어떤 세부들로 가득한 나의 에세이집을 한 권 갖고 싶다. (112쪽)
글을 잘 쓰는 세부적 스킬보다는 글을 쓰는 이유, 글 쓰는 생활, 글 쓰는 고통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나는 어떤 글쓰기를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글쓰기는 글쓴이의 시선의 힘을 드러내는 일이다(24쪽)', '글쓰기는 지연에서 시작하여 절제에서 결실을 거둔다(32쪽), '글쓰기는 거리두기이다(39쪽)' 등 글쓰기가 우리의 삶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글쓰기에 담겨있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점도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맛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통해 위안받기를, 그의 삶이 보다 나은 쪽으로 인도되기를 바란다. 내가 그랬으므로.” 라고 말하는 작가는 책은 다른 사람과 연계시키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점도 지적한다. 그래서 일단 자신의 삶이 정직해야 하고, 삶에서 나온 글도 정직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YES 블로그에 작가블로그란 엠블렘이 붙어 있다. 나도 정말 작가일까? 책을 한 권 낸 것 은 있지만 그것보다는 매일의 일상을 블로그를 통해, 또 SNS를 통해 글로써 정리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진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힘들지만 첫 문장을 적어내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생활을 지속하고 싶다.
이래저래 글을 쓴다는 것 특히나 이렇게 이야기의 첫 구절을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항상 힘든 순간이다. 다른 이들의 글을 보며 어떻게 글을 술술 잘 읽히게 써내는지 항상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글을 잘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런 글쓰기 관련 책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의 작가 정지우는 글을 쓰면서 치유가 되고 위안을 받았기에 그런 글쓰기를 자신은 어떻게 해왔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몸’으로 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한다. 몸에 익은 습관으로 몸이 머리를 이끌어 가는 것으로 글쓰는 것은 일상의 어느 영역에 밀착되어 몸이 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 말은 프롤로그에 나와 있는데 아마도 글쓰기의 가장 큰 핵심이라 생각된다. 내가 글쓰기를 주저하는 것은 글쓰기가 내 일상이 아닌 너무나 특별한 일로 치부해 버리기에 항상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럽고 뭔가 큰 산을 넘는 것처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그리 대단한 글을 써 내려 가지도 못하면서 마음의 짐은 한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창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글쓰기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도 습관처럼 매일 반복된다면 나의 이런 글쓰기에 대한 정신적 부담은 몸이 알아서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요령을 알려주는 책이 아닌 글쓰는 사람의 자세 혹은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글을 잘 쓰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 기대를 하고 봤던 책인데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 혹은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작가의 생각들이 담겨있었다. 글쓰기를 하고 싶지만 좀처럼 안되는 경우 글쓰기에 다양한 목적을 붙여서 글을 쓰는 시간만큼 내가 다른 욕망을 충족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하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글을 쓰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거나 글을 쓸 때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라고 한다. 또한 글을 쓰면서 관념의 틀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을 찾아 나가며 자기 스타일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많이 써보기가 필수이다. 이렇게 많이 써보기 위해선 당연히 내게로 들어오는 경험들이 많아야 한다. 결국 많은 경험이 우선이 되어 그렇게 내면에 쌓인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아웃풋의 방법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가 될 수 있다. 들어오는 길을 잘 닦고 나가는 길을 적당히 뚫어 놓는 것이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백지는 가장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무대와 같기에 온전히 몰두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순간이 글쓰기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계속해나가는 사람이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이듯 그렇게 자신은 글쓰기를 계속해나가는 자기 삶의 증명하는 고유한 무언가를 남기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빈 구멍을 찾아 메울 수도 있고 그저 쓰는 것만으로도 삶이 좋아지고 좋은 일이 일어나기에 계속 쓰게 된다고 한다. 오직 문자로만 이해할 수 있고 기록될 수 있는 기억들과 내면이 깊이를 자기만의 언어로 담아 언어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고자 글을 쓴다. 지금 순간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고고학자의 자세로 무언가를 지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재능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작가는 글을 잘 쓰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지만 십 대 중반에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뒤로 작가가 꿈인 친구를 만나며 꿈을 작가로 정했다고 한다. 그 후 이십 대 중반에 반드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열심히 글을 썼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지금껏 글을 쓰고 작가의 삶을 살아가기에 무언가가 되기 위한 마음 먹기가 가장 기본이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글을 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이런 매력적인 방법을 통해 글을 쓰는 사람은 좋은 것을 얻게 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모두 이미 작가라고 말한다. 이렇게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고 자기 생각을 담아내는 것도 분명 좋은 것을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좋은 것을 많이 남기고자 한다면 분명 많이 글을 써야 할 것이고 이렇게 글을 매일 쓰다 보면 매일 글을 써야 한다는 요구를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매일 쓰다 보면 자신을 알아가는 글쓰기가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도 감수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살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철저히 혼자 일 때도 글을 쓰면 외부와 소통하며 어딘가에 닿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의 통념과 대화하고 싸우는 일이 곧 글쓰기이다. 이런 싸움이 결코 자신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글을 계속 써가며 싸워나가고 싶다고 한다. 글을 쓰며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커지지만 그런 인정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글이 나를 진실로 행복하게 해주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라고 말한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함이기 때문에 나 이상의 것을 글에 담는 것은 가장된 나가 되는 것이다. 계속 글을 쓰게 하는 힘은 주로 부정적인 감정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불안, 답답함, 초조함, 슬픔 같은 것들이 글을 쓰게 하는 데 이런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 가면서 걸러지게 된다. 부정적인 마음을 글로 써 내려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부정적 감정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과 싸워 이겨내고자 애쓰는 그 모든 과정이 글쓰기라는 것이다.
◎책속의 문장들◎
대상을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상화하는 것, 규정하는 것, 바라보는 것이 곧 글쓰기이다. 그래서 대상 자체가 나의 시선에 의해 고유한 가치를 지닌 세상 유일한 존재로 재탄생하는 것이 글쓰기의 과정이다. (p.25)
글쓰기는 혼자 고독 속에서 고고하 게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결국 그 고독 너머에 있는 그 누군가 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글을 계속 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지지해주는 존재가, 그 누군가가, 그 무언가가 있다. (p.53)
마음의 치유라든지, 삶을 살아내는 힘이라든지, 세상과의 화해 가능성 같은 것은 상당 부분 '구술'과 관련되어 있다. 대개 자신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조리 있고 정확하게, 의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삶과 화해를 이루어간다. (p.97)
내가 무언가를 지켜내며 사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삶은 늘 무언가를 잊는 일들로 가득해서, 사실 무엇 하나 지켜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지켰다고 믿으며,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쩐지 글쓰기는 그런 지켜냄을 해내는 데 무척이나 탁월한 도구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착각이 아니기를 바라며, 계속 쓸 것이다. 나는 모든 시절을 수집하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 (p.140~141)
이때 '작가가 된다'는 것은 꼭 글 쓰는 일로 평생 먹고사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오직 글만 써서, 작가라는 단일 정체성으로만 살아가길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다시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보다는 삶의 한 부분에 서, 존재의 한 측면으로 '작가'를 지니길 권유하고 싶다. 작가가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여러 면에서, 작가가 되는 일은 우리 삶에 필요할 수 있는 부분들을 채워준다. (p.164~165)
가끔 내게는 단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가 삶이라면 다른 하나는 글쓰기다. 삶이란 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리지 않고서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삶이란 오직 누림으로써만 삶이 된다. 그러고 나서는, 마치 환상소설 속 마법사가 어느 시 공간을 빨아들여 모자 속에 집어넣듯이 그 삶을 회수하여 이 글쓰기의 공간으로 끌고 와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가 누려낸 그 삶을 내 안에 남길 수 있다. 남기지 않고 누리기만 한 삶은 허공의 연기처럼 흩어져 모두 사라질 것이다. (p.220)
한편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안이나 기쁨을 줄 수 있다면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불행이나 슬픔, 박탈감을 줄 수도 있다. 아무리 선의로, 누구도 상처 입히려는 의도 없이 쓴 글일지라도, 그 글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해가 될 수 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진실과 같아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쓴 글을 불편해하며, 싫어하고, 그로부터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p.243)
다시, 나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삶은 내가 놓인 이곳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뎌내며, 이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 삶이 엉망이 된다면 좋은 글쓰기도 없다. (p.286)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을 통해 글을 쓰는 기술적인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글쓰기가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이며 글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사실 나와는 좀 거리가 먼 이야기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의 마음가짐조차 알지 못했던 내가 단순히 기술만 익힌다고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하고 글을 잘 쓰고 싶으면 매일 습관적으로 글을 쓰고 글을 쓰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것이다. 글 쓰는 것이 몸이 척척 알아서 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글을 쓰는 기술을 발휘할 기회도 없을 것이다. 책에 담긴 글쓰는 사람의 마음자세는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매일 글을 쓴다는 그 습관 하나만으로도 삶은 크게 변화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글을 쓰고 그 순간을 기록하며 남긴다는 것은 인간의 언어 활용의 가장 최고의 보물이라 생각된다. 매일매일 글을 쓰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글쓰기를 몸에 익숙해지도록 실천해야겠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예스24 제공]
고립된 세계 안에서 외롭게 몰두하는 신성한 작업의
소명을 가진 글쓰기 쯤으로 난 꽤나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그럴 필요가
그런 쓸모가
나에게 얼마나 유익할까.
고루한 생각을 내려놓고서
글쓰기의 본질과 마음으로 닿는 글에 집중하며 책에 마음을 옮겨보았다.
글쓰기는 내가 홀로 처절할 때 나의 유일한 우군이었고,
반대로 내가 삶 속에서 많은 것을 책임지고 고려하며 매만져야 할 때는
내 마음을 보다 올바로 쓸 수 있게 해주는 수선공이 되어주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매일 쓰기를 잘했다고,
또 앞으로도 글을 쓰지 않는 날이란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고 믿게 된다.
p178
대체적으로 쓰는 사람은 쓰라 권한다.
글쓰기를 통한 위안은 개인의 차가 있겠지만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태세를 전환하고
주위를 환기시킬 수 있는 수단에 있어서
가성비가 괜찮은 작업같아 보인다.
자신의 절대적 신념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테고
내게 남겨진 최후의 통첩처럼 거대하고 장엄한 서사처럼
거룩함으로 비장하게 기록해 나가는 이들도 있을테지만
개인적으로는 빼놓지 않고 마시는 하루 한잔의 커피처럼
쉽게 길들여지는 글쓰기가 나에겐 가볍고 맛있게 나가와서 좋다.
뭐 대단할게 없어 보이지만 그 하루의 감격은
나만 느끼는 개인의 서사이겠지만
내가 섬세하게 인식하는 세계관을
마음껏 글로 흘러보낼 수 있는 글이라면 난 좋겠다.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는 모두가
자신을 잃지 않고 나를 탐색하는 시간을 오래도록 매달리며 살되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과 글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만의 핫플레이스에서
마음껏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부지런하고 자유로운 삶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그런 삶을 나도 지향한다.
돈이 되는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이들과 더 풍성한 쓰기의 확장으로 이어져도 좋고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히죽거리며 지극히 개인의 만족으로만 써도 좋을
이런저런 글이 난무하는 경계를 없는 세계의 글쓰기가
누구나의 삶 속에서 밥 먹듯이 마음 먹게 되는 그런 쉬운 일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살기 위해 글을 쓴다.
어느 하루를 억누르는 내면과 외면의 모든 억압에 대해서.
글쓰기는 그 모든 것을 뚫고 어딘가로 나아가서 어딘가에 닿는다.
우주가 시작되고 100억 년이 지난 뒤쯤에 지구까지 닿아온 빛의 먼 여정처럼,
글쓰기도 어딘가로 쏘아 보내는 빛과 같은 것이다.
p227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혼란스러웠던 시점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커가는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던 하루 하루를 살고 있던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그 어느 날이었다.
나는 나로 살기 위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고
그저 가정 안에서 역할적 엄마와 아내로서 늘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나라는 정체성은 먼 곳으로 유배되어 떠나 보낸지
꽤 오랫동안 아무런 인기척도 하지않고 잠자코 숨만 쉬고 있었다.
내 마음이 나에게 닿고 싶었던 그 날은
벽장 속에 가두워 두었던 낡은 인형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 눈, 코, 입의 형태를 가만히 쳐다보다 문득 나와 닮아 있어 소스라치게 놀란 밤이었다.
그 후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던 시간들 속에서 비집고 떠오르던 생각이 바로 글쓰기였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어떤 경계를 넘어선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쉬운 형태의 일이 아니다.
넘어서고 받아들이기까지도 꽤나 시간이 걸리지만
봉인된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 그제야 발동하게 된 것 같았다.
경계를 넘는 순간, 난 엄마가 아닌 내가 될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내가 더 나로 살 수 있도록
왜곡된 생각과 집착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강한 힘이 되어주었다.
대단한 글을 쓰고 있진 않지만
떨어져나간 자존감의 조각들을 매일 주워모으며
매일의 삶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낮은 담을 단어와 문장으로 연결하는 내 세계를 구축한다.
봉준호 감독이 입으로 옮긴 스코세이지의 명언인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조적인 것이다'
라는 말 속에 의미를 부여하며
내 하루가 나에게 선물하는 산물들이
특별할 것 없어보이지만 가장 창의적인 것이 될 수 있다란 생각 속에서
틈틈이 생각하고 기록을 남겨보며 산다.
거창한 서사를 풀어 쓸 필력이 되진 못하지만
나의 작은 세상 안에 머물러 쓰고 남기는
글쓰기의 태도가 나를 더 나답게 살아가게 만드는 명약이란 걸 분명히 안다.
혈관 건강을 챙기기 위해 먹는 오메가3처럼
매일의 삶을 부담없이 꺼내 써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경계와 기준을 세우지 않고 맥락없는 유머와 말장난이 난무하는
글이라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 늘어가는 걸로 만족하며 그만이다.
그러다보면 나를 찾아가는 길을 단거리 직선코스로 무난히 완주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서평은 출판사 이벤트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글쓰기는 심각하고 진지하다. 직접 글을 쓰기 전에 항상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책 제목은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글쓰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따로 글을 쓰다 보니 분량 조절이 참 어려워 가장먼저 이 책의 분량에 눈이 더 들어왔다. 291페이지의 책은 두꺼운 편이었다. 원고지 600매가 에세이의 평균이라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더 분량이 많아 보였다. 책은 75개의 챕터로 되어 있었고 한 챕터마다 3페이지의 분량을 할당했다. 한권의 책에 많은 내용을 담은 것 같아 존경심이 들었다.
나도 글을 쓰기 전에는 글쓰기가 어렵고, 작가들은 대단하며, 나 같은 건 할 수 없을 줄 알았다. 글쓰기는 진지하고 무겁고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써 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글을 쓰니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잘 쓰는 건 당연히 어렵고 내 글은 잘 쓴 글이 아니지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끄적끄적 거리는 것을 넘어 ‘한권의 책을 써 봐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니 너무 어렵고 심각했다. 작가는 책의 첫 머리에 글쓰기란 ‘머리’로 하는 것이라기보다 ‘몸’으로 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이건 ‘꾸준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 주장에 일부 동의하는 바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고 모든 작가들이 꾸준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실한건 머리도 있어야 한다. 그냥 글을 쓰는데 는 꾸준함으로 가능할지라도 좋은 글을 쓰거나 한권의 책을 써내려갈 때는 몸도, 머리도 있어야한다.
요즘 책 쓰기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책에서 어떤 꿀 팁을 배울까, 어떤 기법을 빼볼까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하나는 타자를 붙잡는 기술이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타자와 함께 해야 하며 타자를 어떻게 상정하느냐에 따라 글의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 부분에 공감이 갔다. 현재 쓰고 있는 글의 독자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어떤 주제의 설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설명하거나 간단하게 설명하거나에 따라 달라지고, 글의 문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챕터마다 달라지는 문장에 조금 답답함을 느끼고 퇴고를 하면서 전체적으로 수정을 계획하였는데 타자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책은 하루하루 작가가 차곡차곡 모은 글들의 모음으로 여겨졌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가득 채운 분량에 감탄하고 한 주제로 이렇게 책을 완성하였다는 사실에 존경스러웠다. 역시 해보니 그 어려움과 위대함을 더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