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편식>
특정 음식만 가려 먹는 편식. 기호가 지나치게 강한 탓에 섭취 영양소의 균형이 깨질 경우 건강을 해칠 수 있으며, 특히 성장 어린이에게는 발육뿐만 아니라 성격 형성, 미각의 폭, 음식 상황 대처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책 읽기에도 편식이란 단어를 붙여 쓴다. 독서 편식. 사회과학과 비평서가 대부분인 나의 독서 생활. 더구나 난 독서계의 어린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사유의 성장에 문제가 있을까. 시선의 폭이 좁아졌을까?
<석고대죄>
편식 탓에 매달 읽을거리를 찾고, 검색하고, 기웃거리는 곳이 참 좁다. 실로 다양한 책이 많을 텐데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서평단은 이런 편식 길에 잠시 옆길로 빠져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책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런저런 신간이 있구나’ 정도로 그치는 수준이고 막상 서평단 신청은 하지 못한다. 이놈에 편식 때문에.
편식 때문에 석고대죄해야 할 일이 있다. 정확히 1년 전, 쉽게 생각하고 서평단에 접근했던 한 권의 소설책. 그야말로 딱딱한 ‘활자’라고 불러 마땅했던 그간의 책들에서 너무나 곱고 순한 우리말로 이뤄진 책을 손에 들게 되었고 그 문장의 부드러움에 도저히 적응을 못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책은 노려보고만 있다. 고백하자면 난, 독후기 없이 책 먹은 이력을 가진 1인이다. 다시는 사람 착해지는 책은 들지 않으리라.
<사회 고발서?>
편식과 1년을 넘긴 죄인 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가려진 세계를 넘어』는 조심(죄송)스레 내 손에 들렸다. 내 입맛에 맞는 책이라 생각했다. 남과 북, 두 한국, 두 여성, 그리고 연대. 잊고만 있던 한반도의 통일 염원을 재확인하는 책이라 생각했다. 분단된 조국에 살면서 책만 끼고서 뭐를 하고 있단 말인가. 내 편식에 맞는 책이리라.
그러나 짐작한 책은 아니었다. 한 여인의 아픔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박지현. 이 여인이 겪은 경험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앉은자리에서 동작을 멈출 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했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북한의 ‘박지현’. 지현의 경험을 자신의 생애에 비춰 기록하고 있는 남한의 ‘채세린’. 그리고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나.
<박지현과 그의 한국>
“엄마, 왜 날 버렸어?” 지난 상처를 묻어두고 지내던 박지현은 2012년 어느날, 맨체스터 공원에서 아들이 던진 물음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버리지 않았다’는 간단한 말로는 할 수 없었다고.
청진이 고향인 박지현의 유년시절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있다면 60년대에 아파트에서 지냈다는 것. 그 시절 북한 사회는 사뭇 보릿고개라는 말로 대표되었던 남한의 모습과 비교해볼 때 풍족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아는바 북한 경제는 7~80년대를 거치며 점차 기울다 90년대를 넘어오며 식량 대부분을 의존하던 소비에트 연방 붕괴에 가뭄과 수해가 겹쳐 추락했다. 이는 박지현의 기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 강제노동을 경험해야 했던 이야기. 식량 배급이 충분치 않아 허기진 가족을 위해 몰래 마련한 아버지의 달걀 50개를 간밤에 뱃속에 넣으며 잠시 행복했던 하룻밤의 이야기. 이들 가족이 범죄의 흔적으로 남은 달걀껍데기를 심각히 고민하여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모습을 보며 웃프면서도 주변의 눈을 의식하는 남과 북의 다른 이유가 교차 되었다. 속은 달라도 겉으로 주변과 같아야 하는 사회와 겉으로 주변보다 더 잘나야 하는 사회다. 이러한 면은 출신 성분이라는 그 유명한 신분제의 출발에도 들어있다.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엘리트’ 계층과는 달리 해방 이후 월남한 외할아버지로 인해 ‘적대계층’에 속했던 지현과 그 언니는 뛰어난 학업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회적 진출에 좌절해야 했다. 겉으론 사회주의 표방하면서도 그 속은 처음부터 계층을 나눠 기회의 한계를 규정한 사회다.
체제의 신념으로 극복하기에 한계를 드러낸, ‘고난의 행군’이라 알려진 그 기근을 겪은 90년대의 북한 사회는 상상 이상이다. 수많은 주민이 집도, 직장도, 목숨도 잃고 북을 탈출했다. 박지현의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사수완이 좋았던 어머니에 기대어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는 그의 가족들. 또 수완 좋은 어머니 덕에 수학교사가 된 지현이지만 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큰아버지와 아버지마저 굶어서 자리에 눕는 현실 앞에, 그리고 먹을 것을 찾아 산과 들로 땅을 파헤치는 자신을 보며 참을 수 없는 체제의 혼란과 굴욕을 느낀다. 소식이 끊긴 어머니와 동생을 기다리며 홀로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돌보지만, 언니 가족의 설득에 이끌려 아버지를 남겨두고 국경을 넘는다.
<세 여성>
여러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난민 자격으로 영국에 정착해 인권운동에 뛰어든 ‘박지현’은 우연한 일로 통역 일을 잠시 맡은 남한의 ‘채세린’을 만난다. 경계 속에 ‘또 다른 한국’을 마주하지만 비슷한 연배의 두 한국, 두 여인에서 하나의 한국, 같은 여인의 마음이 된다. 외교관의 딸로 살아온 채세린은 처음엔 박지현이 겪은 상처와 경험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잠시 잠깐 박지현의 무거운 상처를 거부하며 평온한 이전의 일상을 그리워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연대를 이어나가게 된다. 만약 박지현 자신이 글로 썼다면 드러냄이 덜했으리라. 구술로 전하는 박지현의 이야기에 채세린이 공감하고, 아파하고, 상처를 드러내어, 기록되어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그 드러내는 공감에는 (국경을 넘을 때 도와준)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여자로서의 상처도 있다.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원제는 『두 한국 여성』이다. 그러나 내게 또 다른 한 여자가 보였다. 옮긴 이 장상미다. 감춰진 한국의 박지현, 공감한 한국의 채세린. 두 여자는 한국어로 연대를 이루지만 오랫동안 프랑스어권을 살아온 채세린의 머릿속 언어는 프랑스어였다. 이런 이유로 또 다른 한국 여인 장상미를 거쳐 내 손에 들렸다.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하며 무력감에 지쳐있던 옮긴 이 또한 채세린처럼 박지현의 상처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후반 작업에서는 박지현을 응원하며 오히려 힘을 얻었다 한다. 다른 세 곳의 한국 여인들이 만나 가려진 세계가 전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다시 편식>
내 편식에 맞는 책이라 생각했다. 서로 다른 사회와 그 체제가 들어있어야 했다. 그러나 책은 내 기대를 무너뜨렸다. 그 세계에는 얼마 전까지 우리의 1960년대가 있었다. 또 국경을 넘어 겪은 박지현의 상처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무게로 다가왔다. 지현이 딛고, 넘고, 발버둥 쳤던 행위에 응원을 더하며 책이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읽히는 건 왜일까. 두 여인이 나누는 대화에 공감되어 어느덧 조용히 그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일까. 착해지는 책을 거부했지만, 어느덧 나는 착해진 것일까.
좋아하는 것만 취하는 편식. 음식에도 편식이 있고 책 읽기에도 편식이 있다. 또 사회를 보는 시선에도 편식이 있다. 우리 사회의 편식. 가려진 세계를 보는 우리 사회의 편식. 오랫동안 가려진 세계를 보는 우리 사회의 편식증에 약이 있을까. 이 책 『가려진 세계를 넘어』는 박지현의 이야기로, 그녀를 공감한 채세린의 목소리로, 우리 정서로 번역한 장상미를 통해서 우리 사회 오랜 편식증의 처방을 알려준다.
바로 공감이다.
우리는 누군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하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다. 누군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하지 못하는 노래를 할 수 있다. 누군가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그 누군가를 위해, 우리를 위해 아파해야 한다. 부제처럼 이들은 계속 말할 것이고 우리는 또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려진 세계가 전하는 공감의 목소리를.
ㅡ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ㅡ
p74. 터미널은 언제나 사방에서 몰려든 여행객으로 북적이지만 카페는 누가 어떤 이념을 가졌든 신경 쓰지 않고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렇게 평온한 상태로 우리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더 집중하면서 서로의 삶을 마주한다.
북한만큼 가깝고도 먼 나라가 있을까. 나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도, 극단적인 단절의 시간을 보낸 세대도 아니다. 평화통일을 외치며 교류가 왕성했던 시기에 태어나서 오히려 TV나 영화 등 각종 매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그러한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38선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우리 민족의 국가에 대한 궁금증.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그 나라와는 상관없이 지현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타국의 광장에서 세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p147. 지금 여기 있는 우리는 딱 잘라 북한 사람, 남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한국인이에요. 두 한국인 여성. 분단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하나가 돼요.
지현의 이야기는 같은 듯 다르다. 지현의 어린 시절에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말괄량이 소녀가 있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일상을 누리고, 할머니와의 특별한 추억도 쌓고, 친구와 골목을 누비기도 하며, 작은 방 안에서도 큰 미래를 꿈꾼다. 그런 그녀가 조국의 실상을 마주하고 탈북을 감행하며 겪는 일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국가나 이념은 지워지고 그녀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이를 가능하게 한 이 책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바로 다른 이의 손으로 쓰여졌다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시대의 아픔을 겪어온 한 사람의 일생을 스스로가 기록한 자서전 형식이 아니라 다른 이의 손으로 받아적어진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그것도 어린 시절 내내 무찔러야될 '적'으로 인식해온 나라의 사람 손에 말이다. 같은 역사를 바라보는 2개의 시선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아픈 역사의 현실은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드러난다.
두 사람이 똑바로 마주 앉았을 때, 국가나 체제는 온데간데없고 두 명의 사람만 남는다. 이 두 명의 한국인 여성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연대의식은 피어오른다. 소통을 바탕으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상태.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관계이자, 만들어나가야 할 이상적인 통일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덧. 책이 들고 다니기 좋게 가볍다 했더니 FSC 인증 종이를 사용하여 만든 책이라고 한다. 몇달 전에 읽었던 타일러의 책에서 알게 된 이후로 처음 본 친환경 도서라 반가웠다. 앞으로도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이다. 나는 주변에 북에 친척이 있거나 하는 사람이 없기에 북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0%이다. 남한으로 탈북한 북한 사람들이 꽤 되지만 한번도 만나 본적이 없다. 사회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북한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자 국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하나의 한국에서 두 개의 한국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무슨 판타지 소설 같은 것인가라고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서사를 본 후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북쪽에 사는 사람들을 겪어보았던 사람들에게도 굳게 닫혀 있는 커다란 문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다. 오랫동안 교류가 없기에 누구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떨지 어느 순간 잊혀져가고 있다. 이제는 경제적 수준의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커다란 세금의 부담을 안으면서 통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도 없다. 현재도 충분히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가 힘이드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죽는다 한들 신경을 쓰겠나. 이 책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살았던 사람이 타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작한다. 전체적인 글은 박지현이라는 북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간에 두사람이 만나 인터뷰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적어놓기도 했다. 이 책은 2019년 프랑스에서 출간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지 않았고, 외국에서 출간된 후 역으로 번역을 통하고 주인공 두사람에게 감수를 받아서 한국어판으로 출간이 되게 된 것이다. 그 점도 독특했다.
지난 세기 식민 통치를 겪은 한반도는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 둘로 나뉜다. 이후 우리는 서로 경계하도록 교육받았다. 분단이 고착화하던 60년대 남과 북에서 태어나 서로를 적대시하는 교육을 받으며 자란 두 여성에게 서로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서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무찔러야 할 대상을 ‘또 다른 한국’으로, 두려운 존재를 ‘그냥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이야기다. 가려진 세계에는 어떤 삶이 있고 왜 뛰쳐나와야만 했는지, 보이지 않던 존재를 드러내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에 목소리를 부여한 연대의 기록이다. 두 사람의 만남으로 시작한 책은 곳곳에 또 다른 연대와 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평화는 남북 정상회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친밀한 공간에서, 소소한 대화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라면 처음 만난 북한 사람에 대해서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지금의 교육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반공에 대한 교육을 짧게나마 받았던 사람에게는 온전히 사람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지 못할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우려를 뛰어넘어 같은 민족이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커다란 연대라는 것을 크게 느끼게 된다. 북한의 민낯을 보게 된 느낌이라 거북한 느낌이 들지만 우리도 알아야 할 일들인 것 같다.
[P.64]
사회적 지위에 따라 계층을 나누면서도 ‘사회주의 기적의 나라’로 자평하는 사회였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기만적인지. 성분이 좋다고 반드시 잘사는 것도 아니었다. 성분이란 단지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어디까지인지를 가르는 기준일 뿐이란 사실을 우리는 곧 알게 되었다.
▶나의 어린시절 80년대만 해도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반공 포스터를 그리기도 했었다. 잠깐이었지만 남한에서도 70~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간첩에 대한 교육등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세뇌를 한 것이었다. 그 시절 북한의 교육과 크게 달랐을까 싶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 아니었을까.
[P.75]
우리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지현이 하는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확 와닿는다. 한 마디 한 문장 다 들리고 느껴진다. 나와 너무 다르면서도 너무 친숙한 이 여성이 한때 경계선 반대편, 세계가 외면한 나라이자 내가 지옥이라 여기던 그곳에 살았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알면 눈빛만으로도 모든 것이 해결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지현과 세린의 경우도 비슷했을 거라 생각한다.
[P.90]
결국 언니 말이 맞았다. 육체노동은 거칠고 힘겨웠다. 다들 매일 밤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열세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입을 열 기운이 없을 정도로 피곤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려보내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라남 집도, 이웃끼리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던 할머니 집도 그리웠다. 이 마을 농부들은 웃을 힘도 없고 이웃과 떠들 기운은 더더욱 없을 정도로 죽도록 일만 했다. 어린아이는 저마다 혼자 울다 잠드는 그런 마을이었다.
▶초등학생때부터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P.116]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걀을 향해 달려들었다. 배가 너무 고팠던 우리는 잡혀가는 위험도 감수할 수 있었다. 마치 신성한 의식에라도 참여하는 듯, 작은 소리에 맛이 달아나기라도 할 듯 모두 침묵을 지키며 달걀을 먹었다. 새 달걀 껍데기를 깔 때마다 언니와 나, 정호는 기쁨의 눈빛을 주고 받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아버지는 소리 내지 말라며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여러 번 주의를 주었다. 이웃집 장 씨 아줌마가 엿듣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현은 평생 배가 고팠다고 한다. 아파트에 살았지만 전기세를 충분히 낼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에 초를 켜놓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은 너무 숨막힐 것 같다. 내 이웃이지만 언제든 고발을 할 수 있기에 누구도 믿을 수 없었을 것 같다.
[P.145]
나는 순간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서울이 전 세계에서 성형수술이 가장 성행하고 제곱미터당 화장품 판매량이 제일 높은 도시라는 통계가 떠오른다. 북한 여성은 생리대조차 구하지 못하고 남한 여성은 외모 가꾸기에 몰두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우리나라에서 최하위 소득을 가진 사람들의 자녀 중 생리대를 살 수 있는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도 충격이었는데, 북한 여성들은 애초에 생리대라는 것을 구하지 못하니 생활하는데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해외 어느 나라에서는 생리를 하는 아이나 여성이 있으면 운막 같은 곳에서 일주일동안 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거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P.160]
구원을 받으려면 정치적 영혼을 키워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 육신은 어쩌고? 아무리 정치적 양식을 먹어봐야 목숨을 부지할 수 없잖아. 그 무엇도, 김일성의 시조차도 밥 한 그릇을 대신할 수 없다고!
▶공부도 열심히, 주어진 일도 열심히 했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너무나도 미비한데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사진으로 모든 것이 해결이 되겠는가.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사이비 종교 단체나 마찬가지 아닌가.
[P.203] 중국으로 탈출후
그 여성은 우리에게 흰바에 달걀과 국을 내주었다. 장마당에 정장을 내다 판 뒤로 처음 먹는 달걀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북한에서 몇 년 동안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았는데 국경에서 불과 1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전혀 다른,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있었다.
▶ 내가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곳에서는 굶줄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북한을 떠난 것을 마냥 좋아했을까.
[P.207]
누군가를 그렇게 증오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평생 언니를 믿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어머니가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 말했다.
“이 결혼으로 받을 돈이면 우리 가족이 먹고살 수 있어. 그러면 모두 평생 너에게 고마워하며 살 거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중국 남자와 결혼하는 북한 여자는 너 혼자만이 아니야. 그중에는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북한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지현이 중국으로 탈출을 했지만 가족들의 배신으로 인하여 팔려가게 된 순간 화가 나서 치를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버지의 소원, 유언 같은 말 때문에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P.218]
마을에 사는 모든 조선족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 발을 들인 북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 ‘노예’를 구경하겠다고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러고는 만약 내가 도망치면 고발하거나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가난과 불행은 사람을 어떤 식으로 몰아가기도 하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영혼을 잃고 증오와 악의만 남은 상태로 살고 있었다.
▶지현은 결혼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밭일을 하고 남편의 욕정을 채워줄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어떤 곳에서는 인간이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무슨 이 세상이 무너져 없어지고 광기만 남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뚝 떨어진 것 같은 상황, 영화에서나 봤던 이야기이다.
[P.271]
밖에서 바라보는 북한은 마치 블랙박스 같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선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나는 지현의 눈으로 그 나라를 들여다보며 상상 속 북한과 실제로 경험한 북한이 맞닿는 지점을 포착하려 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기꺼이 세뇌당하며 모범생으로 자랐지만 교사가 된 후에야 그 체제가 얼마나 부조리했는지 깨달은 청년,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으나 떠날 수밖에 없었던 딸. 어머니와 언니에게 배신당했지만 살아만 있다면 그들을 용서하고 싶은 사람.
나는 지현의 이야기에서 모순된 감정을 하나씩 풀어내며 깨달은 바를 함께 나누길 바랐다. 두 여성의 이야기에 담긴 두 한국의 역사를 기록하며, 북에서도 남에서도 부조리 너머 화합을 향한 깊은 열망이 존재하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현은 2008년이 되어서야 영국으로 와서 정치적 난민 지위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완벽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표현을 하는게 맞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에 난 무엇을 했나 생각을 해봤다. 90년대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에는 부조리한 우리 나라에 대해 내가 어른이 되면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의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어떻게 화장을 하면 예뼈 보일까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2000년대를 지나올때는 여성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분노를 했고, 후배들에게는 선배들이 했던 과오를 전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목숨이 왔다갔다는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단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배고픔에 시달리며 살았고,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기도 했다. 자신이 힘든 일을 겪었고, 침묵만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여성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인권운동가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를 통하여 북한을 살짝 들여다보았지만 통일이라는 것이 가깝게 다가올 것 같지 않다. 북한의 상황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맞는 것일테지만 뿌리깊게 박혀 있는 이념들이 우리와 어느정도 융화가 되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더 확고하게 느낀다. 하지만 폐쇄적인 것은 언젠가는 무너지게 될 것이니 이렇게라도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살아가고 있는지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으면 언젠가는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하여 두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을 고이 간직해서 나의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그전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지도 궁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특히 남한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