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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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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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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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송해 1927 서평 - 노래하는 인생은 즐거운 인생이요, 움직이는 인생은 건강한 인생이지요 - 평점9점 | h******9 | 2021.12.21 리뷰제목
[서평후기] 송해 1927 - 노래하는 인생은 즐거운 인생이요, 움직이는 인생은 건강한 인생이지요 -         지은이 : 송해 · 이기남 발행처 : 열린책들(사람의집) 발행일 : 2021년 11월 15일 초판1쇄 도서가 : 15,000원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현역 최고령 연예인이라 하면 올해로 95세이신 송해(宋海, 본명:송복희)선생님을 꼽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남녀노
리뷰제목

[서평후기] 송해 1927

- 노래하는 인생은 즐거운 인생이요,

움직이는 인생은 건강한 인생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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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송해 · 이기남

발행처 : 열린책들(사람의집)

발행일 : 2021년 11월 15일 초판1쇄

도서가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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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연예계에서 현역 최고령 연예인이라 하면 올해로 95세이신 송해(宋海, 본명:송복희)선생님을 꼽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국노래자랑'의 MC로 널리 알려져 있죠. 1927년 4월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에서 출생하여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중 부산으로 홀홀단신 피난오신 실향민이기도 한 송선생님은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면서 1백세를 몇년 안남긴 현재에도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국민적인 건강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피로 누적으로 방송 녹화에 불참했을 때 뉴스보도가 나올 정도라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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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프롤로그>와 여덟번의 인터뷰, <송해 1927의 뒷이야기와 만난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필로그>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1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송선생님은 물론 후배와 가족, 감독과 악단장 등 선생님과 매우 가까운 분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참여한 인터뷰의 내용을 보면 이분이 왜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인지를 잘 알 수 있었어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황정민)' 못지않은 과거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른 분이더랍니다. 한국전쟁, 월남전, 유신정권 등 암울했던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모두 체험하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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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인 책이기에 두꺼운 책표지를 넘기면 파란색 속지가 나오는데 거기엔 송해선생님의 사인과 인사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꽤 인상적인 글귀였는데 이런 말이었습니다. 이제 몇년 후면 1백세가 되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남은 인생의 소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노래하는 인생은 즐거운 인생이요, 움직이는 인생은 건강한 인생이지요."

- 출처 : 송해 1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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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의 시작은 <송해 1927>라는 영화 한 편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 보고는 바로 검색했었는데 2021년 11월에 개봉했다 나왔었어요. 영화소개에 메인예고편이 있던데 그 동영상에는 송선생님의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 활동하시는 모습들과 함께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송선생님의 진짜 이야기"라는 멘트가 나왔었구요. 그런데 책 뒷부분 <송해 1927의 뒷이야기>에선 이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엔 영화가 2020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상영이 되었고, 이후 무주산골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DMZ국제다큐네터리영화제, 제주혼듸독립영화제, 가톨릭영화제, 전북독립영화제 등 국내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는건 일반극장에서 개봉한 것이 2021년 11월이란 말이겠죠? 70년 이후 송해 선생님의 삶을 중점으로 다룬 영화라는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1927년 황해도 재령군에서 송복희란 이름으로 태어난 송해 선생님은 해주음악전문학교에 다니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징병을 피하고자 잠시 피난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가길 서너차례 했었는데 1950년 12월경 네번 째쯤 되어서는 도로 들어갈 길이 없게 되었답니다. 고향인 험준한 재령을 넘어가는데 인민군의 사격으로 남한으로 내려가는 피난민 행렬에 합류하게 되었고 사선을 헤치고 해주로 와 피난민을 수송하기 위해 대기중인 상륙함(LST)에 올라타 부산으로 가게 되었답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함경도 흥남철수에서의 피난 온 이야기였지만 송해 선생님은 황해도 해주에서의 피난 온 이야기라는 약간 다른 피난길이었죠. 그 상륙함을 타고 3일 동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바다 위를 떠서 부산까지 오게 되었다는데 그 동안 상륙함 안에서의 상황은 정말 처참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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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온지 2주 정도 지날 무렵 임시 수용소에서 훈련장에 가서는 통신병을 자원하여 육군 통신학교로 운좋게 가게 되었답니다. 당시의 군생활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엄격한 훈련과 심한 매질을 견뎌야 했다는데요. 송해 선생님은 살기 위해선 뭐든지 하나라도 잘해야겠다는 일념으로 1분에 120자 이상의 모스 부호를 날릴 수 있어야 합격하는 <766 고속도 통신사>시험에 붙었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시 <1953년 7월 27일 밤 10시를 기점으로 모든 전선의 전투를 중단한다>라는 내용의 휴전협정 모스 암호를 직접 전군에 날렸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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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있을 때 같이 근무했던 선임하사가 자신의 누이동생을 소개해주고 인연이 되어 결혼하였고 3남매를 두었답니다. 홀로 월남하였기에 한국에 있는 가족은 아내와 3남매, 그리고 처가댁분들만 있었는데 둘째이자 외아들이 21살이던 대학 2학년 때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합니다.. 지금은 처가쪽 어르신들 모두 일찍 돌아가셨고 아내도 2년전 세상을 떠났기에 이젠 양가 모두 단촐해서 명절이나 제사 때도 조용하고 쓸슬하답니다. 이 부분 읽을 때 우리 가족 미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공수래 공수거란 경구도 생각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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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송해 선생님의 둘째아들(송창진)과 세째딸(송숙연)의 장남이자 송해 선생님의 외손주(양정우)와의 관련성에 대해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 두명 모두 음악에 관심이 많고 전자기타를 연주하고 있으며 좋아하는 음악쟝르도 같다는 공통점이 있답니다. 놀라운건 세째딸이 오빠가 선물한 카세트테이프들을 지금까지 다수 보관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자작곡으로 채워진 4개의 테이프가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부모님은 모르고 있었답니다. 영화제작진들은 인터뷰를 가장한 서프라이즈로 송해선생님의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테이프에 수록된 노래 한곡을 틀어드렸는데 누가 부르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음에도 듣다가 노래 끝나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셨다네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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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월남, 1954년 군 제대후 1955년 무렵 악극단에 들어간 이래로 파란만장한 연예계 활동을 이어 온 송해 선생님은 1980년부터 시작된 향토색 짙은 각 고장의 자랑거리와 아마추어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노래 대결로 시청자에게 꾸밈없는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이자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국민MC로 발돋음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겁니다.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의 MC를 맡아오신 송해 선생님은 아흔을 넘기신 지금까지도 철저한 사전준비와 성실함을 토대로 진행해 오셨다고 전국노래자랑 악단장이 직접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었어요. 그 연세에 그러시다는게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전 그 나이까지 살 수나 있을까 싶은데 말이죠..

 

이 책은 현존 최고령 연예인이자 최장수 방송프로그램 진행자인 송해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면서 그 관련 이야기들과 후일담을 위주로 함 책이라 여겨집니다. 책보다 먼저 영화를 보신 분은 어떻게 읽힐지는 모르겠지만 송해 선생님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추천할만하다고 여겨집니다. 송해 선생님 평전이 2015년 대학교수의 인터뷰를 근간으로 집필되어 출간된 적이 있다던데 거기엔 어떤 내용이 있는지 한번 구해다 읽어봐야겠어요.

 

 

 

1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9 댓글 13
종이책 송해 1927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2 | 2021.12.19 리뷰제목
제 이름은 송해이고, 고향은 저 황해도 재령이라는 곳입니다. 1927년 4월 27일에 태어났습니다. (-9-) 그런데 그 후에 제가 이북에 또 갔잖아요. 2003년 8월에 KBS 남북교류협력단과 조선중앙방송이 함께 평양 모란봉에서 평양노래자랑을 열었습니다. 평양과 가까운 사리원 아래가 바로 재령이니까 이번에는 고향에 가보겠지 했는데, 일하러 갔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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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송해이고, 고향은 저 황해도 재령이라는 곳입니다. 1927년 4월 27일에 태어났습니다. (-9-)


그런데 그 후에 제가 이북에 또 갔잖아요. 2003년 8월에 KBS 남북교류협력단과 조선중앙방송이 함께 평양 모란봉에서 평양노래자랑을 열었습니다. 평양과 가까운 사리원 아래가 바로 재령이니까 이번에는 고향에 가보겠지 했는데, 일하러 갔으니 고향에 좀 가겠다는 소리는 못 하고 또 그쪽에서도 내사정을 아니 잠깐 고향에 다녀오자고 할 텐데 그런 얘기가 일절 없어요. (-33-)


1970년대는 사회와 대중문화를 정화한다는 핑계로 규제와 징계를 남발했어요.그래서 기성 코미디와 다른 뭔가가 필요했고, 또 코미디 역시 자발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개그> 와 <개그맨>이라는 시대적 표현이 나온 것이죠. 그러나 개그나 코미디나 다 같은 장르이며 지금은 코미디언협회로 통합하기도 했습니다. (-113-)


네, 상록회는 35년전에 종로구 낙원동에 문을 연곳입니다.오래도록 함께 일하고 있는 조은희 실장이 관리하는데 말 그대로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 마작을 두거나 수다를 떨거나 편하게 드나드는 사랑방이죠. 인근 낙원동 사람들과도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근처에 늘 가는 사우나가 있는데 그곳에서 머리도 다듬고 그래요. (-201-)


또 야외에서 녹화하니까 어떨 때는 비나 눈보라를 맞기도 해요. 한번은 진안군에 있는 마이산에서 녹화하는데 마치 샤워기로 물을 틀어 놓은 것처럼 비가 세차게 내렸어요. 녹화를 계속하느냐 마느냐 고민할 정도로 비가 퍼붓는데 이곳을 한 번 미뤘다가 다시 찾아간 곳이라 녹화를 먼출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 비를 선생님이 무대에서 그대로 다 맞아서 온통 젖은 모습을 보았을 때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파라솔 같은 거라도 치고 연주했는데 그런 것조차 없이 진행하는 모습이 아주 안타까웠지요. (-245-)


영원한 딴따라, 대한민국 희극인의 표상, 송해 선생님의 인생이야기가 한 권의 책에 소개되고 있었다. 1927년생,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송해 선생님의 본명은 송복희다. 고향에서 남한으로 내려오면서,이름을 송해로 바꾸게 된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었던 송해 선생님은 1970년대 전국노래자랑 MC를 시작하였고, 그 이전에는 라디오 <싱글벙글 쇼>, <복권 추첨> 과 같은 프로그램과 영화와 희극, 악단 프로그램에 닩골로 출연하게 된다. 세 남매를 두었던 송해 선생님의 가족 중 하나는 1986년 오토바이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자식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온 지난날의 인생 이야기가 한 권의 책 속에 담겨지게 된다. 송해 선생님의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이 바라본 송해 선생님의 이야기가 문답식으로 인터뷰되고 있다.


영원한 딴따라이자 희극인,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이들 중에는 구봉서, 배삼룡,이 있으며, 유랑극단을 운영하면서,대한민국 전역을 누비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게 되었으며, 해주음악전문학교에서 습득한 음악적 지식들 기초로 100년 가까운 인생을 살아왔다. 


남 불어울 것 없는 그의 인생, 우리가 가지고 있지만, 그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가족의 소중함과 고향이다. 북에 적을 두고 살아온 지난날, 친구들 마저 북에 두고 , 자신과 함께 동거동락한 희극인들 조차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아 있었다. 외로움과 고독함을 늘 벗으로 삼고 있는 송해 선생님,그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가치가 되고 있으며, 유랑극단을 운영하면서, 경험했던 지난 시간들이 현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프로이면서, 프로페셔널한 인생이 무엇인지스스로 검증하고 있었다.


희극인이 가지고 있는 비극이 있다. 송해 선생님은 슬픈 일이 있어도 털고 일어나야 했다. 아들의 죽음, 그러나 눈앞에 있는 공연이 있었고, 전국 노래자랑 MC로서 책임이 주어졌다. 스스로 꼿꼿하게 삶을 견뎌왔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 스스로 시련과 고난을 감당해왔다. 때로는 서운한 일이 있어도, 가벼운 먼지처럼 털어낼 수 있었던 이유, 50년동안 KBS 전국노래자랑 명MC로서 살아왔고,그것을 견뎌올 수 있었던 그 인생의 에너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의 프로정신이 있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3살 꼬마부터 115세 할머니까지 아우르는 ,대한민국 국민 오빠가 된 영원한 딴따라 송해 선생님을 보면서,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내 앞에 놓여진 힘든 상황이나 어려움도, 송해 선생님처럼 견딜 수 있고,버틸 수 있다면,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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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송해 1927 평점10점 | v*****7 | 2021.12.06 리뷰제목
같은 제목의 영화가 곧 나온다고 합니다. 이 책은 영화의 tie-in 컨텐츠인 셈인데, 어느 예인이 오랜 동안 이처럼 장수를 누리는 사실도 놀랍지만 "현역"으로 계속 활동하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점도 정말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황금 시대의 한 주역이었던 원로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백 세를 넘겨 장수한 적이 있죠.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송해 선생께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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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목의 영화가 곧 나온다고 합니다. 이 책은 영화의 tie-in 컨텐츠인 셈인데, 어느 예인이 오랜 동안 이처럼 장수를 누리는 사실도 놀랍지만 "현역"으로 계속 활동하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점도 정말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황금 시대의 한 주역이었던 원로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백 세를 넘겨 장수한 적이 있죠.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송해 선생께서도 부디 오래 사시고 계속 활동해 주셨으면 하는 게 아마 많은 한국인들의 바람이겠습니다. 

 

예전 연예인분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겠거니 하는 선입견이 있지만 송 선생께서는 해주 음악 전문학교(p14)를 나오셨다고 합니다. 고향은 해주이며 임꺽정으로도 유명한 구월산을 언급합니다(그런데 저 뒤 p247에는 재령이라고 되어 있네요). 지금은 북한 지배 지역이라 우리가 당연히 왕래 못 하지만 사실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실향민 중에서도 이처럼 경기도 북부, 강원도 북부, 황해도 출신 분들은 고향을 못 찾는 아쉬움, 답답함이 더욱 클 것입니다. 송 선생의 연세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제는 실향민 1세대들이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송 선생은 고령이신데도 참 기억력도 좋으십니다. 이렇게 육체적, 정신적 기력이 좋으니 아직도 현역을 뛰시는 거죠. 인터뷰에서 한국전 당시 LST를 타고 피난 오던 당시의 회고를 하는데 아주 상세합니다. 이때가 1950년 12월이므로 교전 당사국들이 한반도에 거의 다 들어와 있을 때라 혼란상도 극심했고 1.4 후퇴 직전이니 그 결단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었겠습니다. 이때만 해도 느닷없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과연 전쟁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겠죠. 

 

p50에 재미있는 사항이 하나 나오는데 인터뷰어인 윤재호 영화감독이 종교에 대해 묻자 송 선생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상 종교 문제에 대해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송 선생은 어떻게 보면 지금도 행사 MC를 뛰시는 셈인데 행사라는 게 성격상 여러 곳을 다녀야 하죠(물론 <전국노래자랑>은 그런 행사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지상파 방영 프로그램의 위상입니다만). 젊은 시절부터 송 선생은 희극 공연도 하고 많은 행사에 사회를 보셨는데 종교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안 되었겠죠. 


 

1970년대 후반 아직 TBC가 있었을 때 송 선생은 레코드판도 직접 올리면서 라디오 DJ를 했다고 합니다. <가로수를 누비며>라는 프로그램은 방송국 이름만 바뀌었다뿐 지금도 있죠 아마. p60을 보면 위키리, 이상용 씨 등이 언급되는데 원래 이분들이 전국노래자랑 MC를 먼저 했었으며 특히 가수 위키리(이한필)씨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진행했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은 이분을 먼저 떠올리기도 합니다. 송 선생에 대해서는 MC보다는 KBS 코미디언으로 더 잘 기억하고들 있죠. 이한필씨는 송 선생보다 9살 아래인데도 벌써 타계해서 팬들을 아쉽게 했습니다. p65에는 양훈 양석천 명콤비, 김희갑, 배삼룡, 구봉서 등 쟁쟁한 원로 희극인들이 언급됩니다. 

 

윤재호 감독이 인터뷰어라서 더 두드러지는 점이기도 한데 송 선생 세대 희극인들은 영화를 참 많이 찍었습니다. 아마 당시 정부 차원에서 국산 컨텐츠 진흥책을 편 까닭도 있겠는데 여튼 1960년대에는 흑백 컬러 할 것 없이 코미디언들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가 참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신성일 김진규 최무룡 등의 정극배우들도 엄청난 다작을 했지만요.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희극인들도 그들이 메인이 되어 제작되는 영화가 (어떤 컨셉이든 간에) 거의 없는 걸 보면 크게 다른 분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p73 이하에는 두 번째 인터뷰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원로 희극인 방일수, 원일씨가 인터뷰이, 이기남 PD가 인터뷰어입니다. 방일수씨도 송 선생보다는 후배지만 KBS 등의 전통 코미디 프로그램에 같이 나오던 분이었다고 하죠. 원일 씨는 방일수 씨 등 원로 코미디언들이 "개그맨"이란 말을 불편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세대 갈등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아주 민감한 이슈입니다. p84를 보면 방일수씨가 1980년대 후반 코미디 프로그램을 회상하는데 이때쯤이면 송 선생, 방일수 씨 등이 지상파에 거의 못 나올 때입니다. 희극인의 세대교체, 프로그램 포맷의 극적인 변화 때문이었죠. 그런데도 방일수 씨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당시 프로그램에 대해 아주 상세히, 또 애정 어린 투로 회고합니다. 자신들을 다소 배척하는 기미까지 보였던 후배들이 만든 개그 프로그램에 대해 그 의의와 당시 반응을 정확히 회상하며 높이 평가해 줍니다. 저는 책 읽으면서 이 점이 놀라웠습니다. 

 

p86에는 흑백사진 하나가 나오는데 당대 최고의 MC, 희극인이었던 예명 "후라이보이" 곽규석씨, 이순주씨(이분에 대해서는 책 뒤 p289에 자세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송 선생이 함께 찍힌 쇼 프로그램 스틸입니다. 전성기 기준으로는 송 선생의 위상이 곽규석씨에 비해 한창 못했겠으나 곽규석씨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요즘 한국의 생활수준, 소득이 훨씬 높아졌으므로 커리어 토탈하여 수입을 비교하면 아마 송 선생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재능은 노력을 못 따라간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확인되죠.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p155 이하에는 송 선생의 따님 인터뷰가 나오는데 부친에 대해 "자기 관리가 치밀하고 굉장히 강한 분"이라는 평을 하십니다. 마당이 있고 수영장에 물을 채우던 아빠가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 보아 유복하게 자라신 듯합니다. 사실 송 선생의 동년배나 선배 다른 연예인들은 아무리 고소득을 올려도 사업 실패, 사기 피해, 불미스러운 범죄 연루(사기 가해, 간통) 등으로 무대에서 퇴출되거나 파산하는 경우가 많았고, 송 선생은 그런 점에서도 차별이 되죠. 엄격한 자기 관리는 사회인으로서 최상의 자질이자 덕목입니다. "강한 분"이란 평은 p235의 신재호 악단장의 평가에도 나옵니다. 

 

사실 개그맨은 콩글리시이기도 하며 선배 세대들이 내세운 "코미디언"이 훨씬 공인을 널리 받은 어휘죠.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개그맨 1세대 중 하나인 김학래씨가 p112에서 합니다. 또 엄영수 씨는 이제 둘 다 코미디언 협회로 통일되었다고도 합니다. 엄영수 씨는 나이 든 세대가 성함을 "엄용수"로 기억할 텐데 최근에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아주 안정적인 톤으로 속사포 개그를 하는, 그 분야에서는 최고였다고들 하죠. 이렇게 말재주가 좋으시니 (단신이면서도) 여성들한테 인기가 좋으셨나 봅니다. 심지어는 지금도. 

 

"코미디언 중에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대중을 사로잡거나 하는 분이 있는데 송해 선생님은 꾸준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정상에 섰고 노익장까지 과시하며 이제는 국민 영웅이 되었습니다(p120)." 확실히 유명 희극인 중에는 갑자기 특정 TV 쇼가 히트하고 나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이들이 많았습니다. 심형래, 주병진, 서세원 등이 그런 천재형이었으며 반면 이경규, 김정식, 유재석 등은 무명기간이 길었죠. 강호동도 물론 천하장사로서 벌써 유명인이었으나 TV 데뷔 후 얼마 안 되어 큰 호응을 얻었고 다만 메인 MC로 자리잡는 데에는 약간 시간이 걸리긴 했죠. 

 

송 선생 시절에는 연예인 사이에 군기가 아주 세었으며 본인도 선배들한테 호되게 당하면서 커리어를 쌓으셨을 텐데도 이 책을 보면 후배들한테 다정하게 대해 준다고 합니다. 좋지 못한 전통은 어느 시점에서 끊어져야만 하고 누군가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프로야구 타이거즈 구단도 구타의 폐습을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이종범 선수가 끊었다고 하죠. 꼰대짓, 똥군기는 정말 어느 조직에서건 사라져야 합니다. 엄영수 씨는 송 선생을 두고 "오빠, 형"으로 대하기 편한 분이라고 평합니다. p234를 보면 신재동 악단장의 경우 송 선생을 "회장님"으로도 부를 상황(!)이지만 격의 없는 분이시라 그냥 "선생님"으로 호칭한다고 합니다. 

 

TBC가 아니라 KBS에서 1970년대 <여로>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이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고 송 선생은 회고합니다. 정극배우 장욱제 씨(p145)가 저 당시 지적장애인 역을 맡아 대중으로부터 폭발적 반응을 이끌었는데 그때로부터 십여 년 후에도 이 연기가 원형이 되어 희극인 심형래, 오재미, 이창훈 등이 모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창훈 씨도 원래 연극배우 줄신이었죠. 

 

국민희극인, 나아가 국민영웅으로까지 평가 받는 송 선생은 예인으로서의 성취뿐 아니라 사생활 면에서도 만인의 귀감이 될 만합니다. 영화도 빨리 보고 싶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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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철저하게 자기관리 하며 일에 임하고, 후배들을 아끼고 베푼 국민MC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c*****y | 2024.02.19 리뷰제목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은 나의 또 다른 롤모델 송해, 가족을 사랑하고, 철저하게 자기관리 하며 일에 임하고, 후배들을 아끼고 베푼 그의 삶의 태도 역시 배워고 싶다. 아들을 잃은 이야기와 유작을 확인하는 순간은 내 일처럼 슬펐고 감동적이었다. 100세를 넘겨 120세까지 살길 국민 모두 염원했으나 책이 나온 다음 해 별세해서 아쉽다. 책으로 만나 뵈어 반가웠고 기회가 되면 영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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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은 나의 또 다른 롤모델 송해, 가족을 사랑하고, 철저하게 자기관리 하며 일에 임하고, 후배들을 아끼고 베푼 그의 삶의 태도 역시 배워고 싶다. 아들을 잃은 이야기와 유작을 확인하는 순간은 내 일처럼 슬펐고 감동적이었다. 100세를 넘겨 120세까지 살길 국민 모두 염원했으나 책이 나온 다음 해 별세해서 아쉽다. 책으로 만나 뵈어 반가웠고 기회가 되면 영화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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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자기관리의 끝판왕 송해 선생님의 송해 1927 평점10점 | a****9 | 2022.12.27 리뷰제목
전국 노래자랑의 모든 것이었던 송해선생님 우리는 그 분의 인생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이 책에서는 그 얘기들을 확실히 알려줬습니다   책은 8번의 인터뷰가 중심이 되었는데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시작된 전국노래자랑의 일화부터 밤을 세워 술을 드셨던 애주가로서의 삶이 애잔하게 책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첫번째 인터뷰에서는 1927년 4월27일에 북한에서 태어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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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노래자랑의 모든 것이었던 송해선생님

우리는 그 분의 인생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이 책에서는 그 얘기들을 확실히 알려줬습니다

 

책은 8번의 인터뷰가 중심이 되었는데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시작된 전국노래자랑의 일화부터 밤을 세워 술을 드셨던 애주가로서의 삶이 애잔하게 책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첫번째 인터뷰에서는 1927년 4월27일에 북한에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남하했고 그 어떤 슬픔에도 정착한 의지의 삶이 나오는데요.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독자의 죽음 앞에서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도 전국노래자랑을 시작하면 결국에는 극복했다는 멘탈 갑의 모습 넘 최고였습니다

두번째 인터뷰에서는 배드민턴 선수 방수현 아버지와의 일화가 임팩트 있었습니다

 

세번째 인터뷰에서는 선생님의 취미생활 축구에 대한 이야기와 선후배에 대한 예의바른 모습이 연예계에서 최고의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거 같네요

 

네번째인터뷰는 송해선생님의 영혼의 연기커플이었던 우리가 몰랐던 이순주 선생님과의 일화가 나와 흥미를 끌었습니다

 

다섯번째 인터뷰에서는 송해선생님의 둘째딸 송숙연님의 이야기가 주였습니다. 정작 송해선생님 본인은 유명하지만 가족들에 대한 얘기는 전혀 몰랐는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진진합니다

 

여섯번째 인터뷰에서는 선생님의 dna를 이어받은 외손자가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가셨지만 외손자의 모습에서 생각나게 할 수 있을거 같더라구요

 

일곱번째 인터뷰에서는 낙원동의 연예인 사랑방 상록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도 가끔 낙원동 가는데 다음에 가면 찾아봐야겠어요

 

마지막 인터뷰는 신재동 악단장님과의 에피소드가 잘 나옵니다. 저도 신재동악단장님의 cd가 있는데 음악실력만큼 입담도 최고세요. 

 

전체 인터뷰 장들이 그동안 송해선생님에 대해 잘 몰랐던 이야기들을 잘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선생님은 가셨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 부활하신거 같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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