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끝이 당신이다>를 읽고 쓰다
이 책은 <한겨레>에 '말글살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쓴 칼럼에서 가려뽑은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한 조건은 아주 고약했다. '이름과 소속 포함 원고지 넉 장, 800자 이내(제목 제외). 제목은 7자 이내. 말과 글이라는 주제를 벗어나서는 안됨.' 글을 시작할라치면 끝을 맺어야 하는 길이였다.(12쪽)
[일러두기]
글쓴이와 동일하게 위 방식을 준수하여 서평을 써보려 애썼으며,
다행히도 공백을 제외하니 800자를 넘기지는 않았다.
-----------------------------------------------------------------------------------------
말끝에 놓여 있다
말끝은 말의 맨 끝이자 첫머리다.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시간이나 공간에서 그 끝과 시작은 맞닿아 있다. 한 시점 혹은 한 지점이 끝나면 다른 것들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시공간에서 (불)연속적으로 나와 당신이 주고받는 말도 그러하다. 내(당신)가 던진 말끝을 어떤 식으로 잘라낼지 아니면 이어붙일지 생각하는, 즉 맡끝에 있는 당신(나)은 오늘도 말글살이 중이다.
바르고 고운 말을 가려 쓰면 말글살이가 나아질거라는 내 생각에 글쓴이의 외침으로 실금이 생긴다. 말속에 담겨진 사회적 무의식과 질서가 개인의 생각은 물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인과 개인 사이 그리고 사회 전체에서 소통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때 말은 각자의 경험과 지식, 신념과 이해관계를 담아낸 그릇으로 저울의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면 결국 모두가 위태로워진다.
"과잉된 언어 순수주의는 복잡한 언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단순화시키는데, 언어는 순화의 대상이 아니라 자제의 대상일 뿐이다.", "신조어나 축약어가 언어를 파괴한다는 우려가 있지만, 말은 지켜야 할 성곽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니 가둬둘 수 없다." 어쩌면 말(글)맛나는 말글살이를 위하여 이렇게 말하는 글쓴이가 어원이나 질서를 따지는 이에게는 '말'썽꾼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말'로 말미암아 누군가를 '성'나게 함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성(城)문을 열어 우리말(한국어)을 풍성하게 만드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글쓴이는 '말의 아나키스트'를 자처한다. 말의 무질서와 오염을 걱정한 나머지 올바른 말만을 강요하여 세운 질서에서 한국어의 보수성과 우리 사회의 불안정성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이미 문법적 역사성과 정당성을 확보한 우리말이기에 표준어와 맞춤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우여곡절을 겪는 인생처럼 관습과 질서가 생겨서 하나로 정착하고야 마는 말의 기질을 믿어보자는 것이다. 자기와 타인을 품고 세상과 연대하는 말글살이의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바로 말끝에 놓여 있음을 기억하자.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상대방의 말'에 예민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나의 말'에도 조금 더 예민해진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 말 또한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는 상대방의 말 이니까. 그리고 생각보다 말에는 많은것이 담겨져 있다는 것. 그러니 더 조심하되, 또한 흘러가는 것이 언어니까 더 유연하고 다양하게 사용해 보자는 것.
말끝이 당신이다.
말의 시작 또한 당신이다.
어느샌가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보다 어린 사람들을 만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린 사람들이 제게 먼저 말을 편히 놓으시라 말하기 전까지, 그후로도 오래도록 높임말을 씁니다.
그리고 꽤 친근해져서야 편한 말투로 바뀌지요.
차라리 높임말이 편할 때가 많습니다.
높임도 아닌 낮춤도 아닌 뭔가 어정쩡한 말투로 말을 끝맺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제 말끝이 저라는 사람을 표현한다면 저는 모호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말끝이 당신이다]라는 제목을 읽고 저의 말투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정말 말이 쉽게 짧아지더라고요.
청소의 성패가 마지막 먼지에 달려있다면,
말의 성패는 말끝에 달려 있다. (중략)
특히 어미를 어떻게 쓰는지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 성격, 타인과의 관계, 지위가 드러난다.
저는 누군가에게 말을 쉽게 건네는 편이긴 하지만 말을 금방 편하게 놓지는 않습니다.
존중하는 마음도 있지만 상대도 저를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책은 말에 대한 글이긴 하지만 대화법을 다루는 책은 아닙니다.
말에 대한 사유를 풀어낸 글이에요.
일곱 글자 이내의 제목에 800자 이내로 쓴, 말에 대한 칼럼이죠.
저자인 김진해 교수의 말과 글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살피는 마음이 책에 가득합니다.
저는 최근 나이가 들수록 말은 많아지는데 어휘력은 딸린다는 걸 깨달았어요.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단어들은 많은데 조합이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쩌면 어휘력이 부족해지다보니 그걸 메꾸려고 말이 많아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행복은 '속 시끄러운' 생각을 멈추는 데에서 시작된다. (중략)
편협한 자신이 드러나고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이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
생각은 자유롭게 하되, 표현은 절제해야 한다.
말은 줄일수록 좋다는 것이 정말 딱 맞네요.
오래도록 언어, 글쓰기, 책 만들기를 가르친 저자이지만 케케묵은 맞춤법에 연연하지 말고
오히려 맞춤법을 없애는 것이 더 풍부하게 말의 향연을 누릴 수있다는 주장도 거침없이 합니다.
그러고보니 근대 이전의 한글은 띄워쓰기가 없었다고 하지요.
말은 구름 같아서 우여곡절을 겪을 뿐,
살고 죽는 문제는 아니다.
필사하고픈 책이 생겼습니다.
말의 깊이와 글의 여운이 너무나도 가슴을 울리게 합니다.
읽노라면 몇 번이고 멈추고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문득 '마음이 곧 말이 된다'는 문장이 떠오릅니다.
제 말끝은 가끔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 혼잣말로 끝났어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듣고 싶은 말을 누군가에 들려주는 말로 끝을 맺겠습니다.
책에서 알려준 '짝퉁 시인'도 되어보고 싶네요.
지금 가슴에 품고 있는 당신의 문장은 무엇인가요?
*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