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한마디
[시인 정현우의 첫 번째 에세이] 한국 문단이 주목하는 젊은 작가,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시인 정현우의 에세이. 자신의 소년 시절을 들여다보며 슬픔과 사랑에 대한, 아픔을 견디는 마음에 대한 단상들을 담아냈다. 슬픔을 끌어안는 감정이 위로가 되었던 시처럼, 슬픔 속에서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에세이다. - 에세이 MD 김태희
기약 없이 찾아온 사랑과 슬픔을 견디는 마음에 대하여..
정현우 에세이 『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
잠긴 문을 두드리는 날엔 나의 문장이 쓰였다.
슬픔은 지금을 쓰고 사랑은 과거를 쓴다.
○ 1부 → 유년의 서(書) :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기대어..
《 엄마 》
세상에서 가장 짧게 부를 수 있는 슬픔..(p34)
《 예의 》
오늘은 내게 모두 틀렸다고 말하는 것 같아.
.... 안도와 적당한 슬픔이 어떻게 너에 대한 예의일 수가 있겠어.
.... 아무리 걸어도 그곳으로 건너갈 수 없는 오늘은..(p59)
《 늦은 답장 》
"눈 온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가야지,
아프다고 해서 미안해."
할머니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김치를 꺼내 놓는다.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본다.(p67)
○ 2부 → 사랑의 젠가 : 나의 사랑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한다..
《 그냥 》
빛은 빛에게 약속한 적이 없지, 빛은 빛이듯이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나를 지 않사랑이라 부르는 그대를 사랑할 수 있겠다. (p77)
《 동주의 눈 》
동주에게 말하고 싶다.
... 지겨울 때까지 살아보라고, 너의 잘못도 들키지 말고 슬픔도 들키지 말라고..(p109)
《 그럼에도 우리를 찾아와 울게 하는 것들 》
할머니의 시간은 질기게 이어져 엄마의 시간을 살아가게 한다..(p133)
○ 3부 → 성실한 슬픔 : 살아 있다는 건 결국 울어야 아는 일..
《 버려진 마음 》
버려진 것들이 나를 존재하게 했다. 그런 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 버려지지 않았으면 한다.(p147)
○ 4부 → 남은 꿈 : 우리는 다시 쓰일 수 없는 기적
엄마의 일기.. 친구 수의 죽음.. 묘묘의 죽음..
이 책을 읽고나니 그의 시가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 에서 시.. <소금달> 이 다시한번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 소금달 ]
- 정현우
잠든 엄마의 입안은 폭설을 삼킨 밤하늘,
사람이 그 작은 단지에 담길 수 있다니
엄마는 길게 한번 울었고,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김치를 꺼내지 못했다.
눈물을 소금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슬플 때의 맛을 알 수 있을텐데.
둥둥 뜬 반달 모양의 뭇국만
으깨 먹었다.
오늘은 간을 조절할 수 없는 일요일
다시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 를 읽어야 겠다..
처음과는 조금 더 다른 마음으로.. 아주 조금은 더 시인의 마음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 소/라/향/기 ...
천사시인인.. 정현우시인님.. 선물도.. 선물같은 글도.. 너무 감사합니다..
【 손을 놓았을 때, 그는 서늘해진 손을 코트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다. 한마디에 쉽게 없어지는 말이라면 무얼 약속했는지 무얼 했는지 어떤 사랑을 했는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결국 사랑이란 지나왔던 겨울 길을 되짚어 제가 갔던 길을 다시 걸어보는 일이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 (p. 91)
【 벚꽃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숨을 쉰다. 바람결에 날아가는 잎들과 대기의 서늘한 흐름. 한철을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들. 벚꽃이 질 때, 사랑이 미움에 닿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랑이 우리를 바닥을 보게 하는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 안에서 뭉개지고 흐트러지는 마음이 있다. 그냥 밟고 지나가도 되는 마음들이 있을까. 빗물에 쓸려가는 벚꽃을 보면, 시작과 동시에 끝을 생각하게 된다. 】 (p. 148)
시인의 에세이는 조금 더 길어진 글로, 조금 더 가까워진 마음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그의 글은 차디찬 겨울, 소복이 쌓여 있는 눈처럼 느껴졌다. 쌓여 있는 눈은 보기엔 폭신폭신 보드라워 보이고 아름답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만져보면 손이 따가울 만큼 아리게 차갑다. 시인이 이번 에세이에서 꺼내 보인 말들에선 한겨울의 눈처럼 보드랍지만 차가운 슬픔이 배어 나왔다. 책을 읽고 있으니 그 슬픔의 빛깔에 내 마음도 물들어 차분히 가라앉았다.
슬픔으로 아파했던 시간들을 겪었던 그는 이 책을 통해 슬픔으로 휘청거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독인다. 감성 가득한 겨울밤을 보내고 싶은 이에게, 차분하면서도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이 책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를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슬픔을 읽었다. 사랑이 늘 성공하기만 하는 건 아니고, 때론 아름다움보다 추함에 가깝다는 걸 익히 알고 있음에도 내가 기대했던 건 달랐다. 일상이 피로할수록 현실에 존재치 아니할 법한 무언가를 갈망하기 마련이고, 일종의 도피처로서 사랑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마도 난 이 책을 향해 손을 뻗었던 듯 싶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충분히 열리지 못한 탓에 저자가 머금은 사랑을 받아들이기까지 적잖이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이 분명했지만 사랑으로 읽히지 않았던 이야기가 마냥 낯설어서 이를 정의할 수 있는 다른 용어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 더디게나마 나의 생각을 고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크게 두 축의 시선이 보였으니 하나는 부모를 대하는 애틋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친구 ‘수’를 향한 감정이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가난이 뒤따라왔다. 부모는 이를 저자에게 물려주려 들지 않았을 터이나 저자는 늘 부모의 지난날을 헤아렸다. 부모에게도 부모가 있었고, 아마 그 위로도 여러 차례 끊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존재할 터이다. 즉, 어느 한 시점에서 시작됐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 버거울 정도로 뿌리가 깊은 게 가난이었다. 처음부터 부모가 되고자 태어난 존재는 없다. 그의 부모 또한 그러했지만 오늘날에 이르자 부모로서의 삶 외에 남은 게 없었다. 저자는 어머니의 일기를 남몰래 들추며 지금껏 결코 알려 들지 않았던 것들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부모가 부모가 아니었던 시절, 부모 아닌 존재가 부모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스스로에게 대입하는 과정은 어딘지 모르게 시렸다. 혹 이를 예전에도 알았더라면 좋은 자녀가 될 수 있었을까. 가정이 현실을 절대 대체할 수 없단 걸 잘 알아서인지 나에게는 그가 느꼈을 후회보다 가난으로 인한 무게가 더욱 막중하게 느껴졌다. 등단 연도로 추측컨데 많아도 내 연배일 텐데, 그는 내가 결코 알지 못했던 가난을 체감하며 성장했다. 또래와 아마도 많이 상이했을 처지로 인해 정을 붙이기 힘들었기에 고양이 묘묘에 대신 사랑을 쏟는 순간이 잦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도 좋을까. 제 편이 단 하나도 없어 외로움에 한없이 떨어야 하는 이들에 비하면 나은 처지라고,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무책임한 말을 입안에 담고 웅얼거려본다. 이 역시도 사랑일 거라고, 사랑하는 건 사랑받는 거보다 행복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란다고.
온전히 그가 짊어져야 할 일은 아니지만 수의 죽음에 대해 그는 일말의 책임을 느끼는 듯했다. 이따금씩 내비친 수의 외로움을 외면했다는 죄책감. 하지만 누구라도 그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죽음은 쉬이 입에 담을 수 있는 소재가 아니어서,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외면하고 싶은 무언가여서. 저자는 계속해서 수에게 속삭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이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안에 가깝다. 수가 떠난 건 오래 전이지만 아직 자신은 수를 보내주지 못하겠어서, 좀 더 사랑해주었어야 마땅한 이의 이름을 반복해 부른다.
궁극적으로 그의 모든 시선은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있었다. 부모는 끊임없이 나이 들어 언젠가는 소멸할 존재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고아로서 위태로이 현재를 버티는 중이다. 수는 저자로선 알지 못하는 저 세상에 이미 속해 있다. 윤동주가 읊었던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언지, 그는 수를 떠올리는 순간 배울 수 있지만 아직은 이를 애써 거부하는 모양새다. 수가 없다는 건 그리 쉬이 받아들일 수 없다. 잠시나마 그가 곁을 내어 주었던 몇몇 생명체들과 더불어, 언젠가는 그 역시도 사라지는 존재가 될 것이다. 사라지는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면, 같은 길을 걷는 자신 또한 긍휼히 여기는 게 가능하다. 세상 모든 존재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기를. 내가 흩어진 이후에도 사랑만은 이 세상에 남기를.
묘한 잔상이 내게 남았다. 내가 두려워했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오구오구 페이백으로 구매했습니다. 작가분이 시인이라 그런지 에세이지만 시적이네요~ 책은 1부 유년의 서: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기대어, 2부 사랑의 젠가: 나의 사랑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한다, 3부 성실한 슬픔: 살아있다는 건 결국 울어야 아는일, 4부 남은 꿈: 우리는 다시 쓰일 수 없는 기적으로 나뉘어 있고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잔잔하고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