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자》 리뷰는 잡편으로 전에 작성한 내편과 외편 리뷰와 내용상으로 긴밀하게 이어진다. 잡편은 이름에서 풍기듯 잡다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장자》는 내편이 핵심이고 외편과 잡편은 중요도나 주제의식으로부터 떨어진다고 했는데 잡편을 읽으면서 그런 주장들이 나온 근거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외편과 잡편은 구분이 가능할까? 현행본 《장자》의 편저자인 곽상(A.D 252 ~ 312)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외편과 잡편을 나눠 정리한 것 같은데 읽어본 바로는 외편이나 잡편이나 내용상으로 크게 차이점을 찾을 순 없었다. 책의 해제에서 역자도 외편과 잡편을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은 모르겠다고 하는데 전적으로 공감이 갔다.
몇몇 사람들은 《장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편이고, 저자인 장주가 직접 저술한 부분도 내편이기에 외편과 잡편보단 내편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추천한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주장에 귀가 솔깃했다. 잡편과 외편은 내용이나 주제의식도 광범위하고 집약적이지 않으며, 일관성도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게다가 원저자인 장주가 쓰지 않은 흔적들이 많이 보였기에 원전에 덧붙여진 부록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자백가의 저술들 중 과연 원저자가 쓴 내용을 확실하게 가릴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제자백가서는 원저자로 알려진 철학자가 손수 저술한 것이 아닌 그 철학자를 계승한 제자들이 정리한 문헌이다. 유가의 《논어》, 《맹자》, 《순자》도 그 사상을 따르는 제자들이 정리한 것이며, 《묵자》, 《노자》, 《손자》, 《귀곡자》 등등의 제자백가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나는 종국에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사람이고 책은 책이다. 이 둘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장자》 역시 마찬가지다. 장주라는 인물의 사상과 목소리가 《장자》에 주축을 이루는 것은 맞지만, 장주와 《장자》는 철저하게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장주는 위대한 사상가이지만 그가 쓰지 않았다는 외편과 잡편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외편과 잡편이 가치가 없었다면 현행본 《장자》에서 진즉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장주의 목소리는 담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편과 함께 2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전해지는 것에는 분명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기에 파트별로 중요도를 따지지 말고 《장자》라는 문헌의 큰 틀에서 동등한 시각과 가치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장자 잡편》의 다양한 우화를 읽으면서 두 가지 측면을 생각했다. 하나는 전국시대 말기에 유행하던 황로학으로 이는 제자백가의 다양한 철학들의 장점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였는데 여기서 중심 사상이 된 것이 도가였다. 그래서 황로학을 두고 후대의 학자들은 '잡가'라고 표현했는데 다양한 사상들의 정수를 짬뽕시켰다는 의미다. 제자백가 사상을 하나로 통섭하려는 시도는 전국시대 말기에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데 중원의 열국들이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는 과정에서 사상 역시 하나로 일원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제자백가를 하나로 획일화하는 과정은 여러 학파에서 진행되었는데 그중 대표되는 사상가는 순자와 한비자, 여불위다. 순자는 맹자의 배타적 관념을 거부하고 병가와 법가, 종횡가 등의 현실주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유가를 중심으로 제자백가를 통합하려고 한 철학자다. 순자의 제자 한비자는 스승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도가를 사상적 토대로 삼아 법가사상을 집대성했는데, 그가 정비한 법가사상은 유가에 베타적이지만, 도가와 병가, 종횡가 등등의 이론을 법가의 시각으로 정리, 흡수한 철학이었다.
여불위는 새로운 제국 진나라의 철학을 정립하고자 학파를 가리지 않고 식객들을 모아 《여씨춘추》를 편집하였는데, 이를 '황로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의 외편과 잡편도 황로학적인 요소들이 다분한데, 어쩌면 《여씨춘추》의 성립에 있어서 《장자》의 외편과 잡편이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두 책 모두 제자백가의 다양한 요소들을 도가의 입장으로 흡수하여 해석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여씨춘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장자》의 외편과 잡편의 사상들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 정리해 보자면 《장자》의 외편과 잡편은 도가를 중심으로 제자백가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의 시초일 가능성도 있다. 물론 현행본 《장자》가 편집된 시대는 《여씨춘추》가 만들어진 전국시대 말기로부터 약 400년이나 지난 서진 시대이기에 역으로 《여씨춘추》의 황로학 사상이 현행본 《장자》의 편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곽상이 정리한 《장자》 이전에도 《장자》라는 책은 여러 판본으로 전해졌으며, 이 책들은 《여씨춘추》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져 통용되었다. 그렇기에 어느 책이 먼저인지는 명확하게 밝힐 수 없지만, 두 책 모두 전국시대 이후 도가 사상이 황로학이라는 정치사상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불교와의 접점이다. 외편도 그랬지만 잡편을 읽으면서 《장자》는 불교의 사상과 무척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세 이후 중국의 사상계는 3가지로 정리되는데 각각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다. 유교와 도교는 중국의 전통 제자백가 사상인데 반해 불교는 외국의 사상이다. 유교는 세속적이며 입신양명을 지향한다. 반면 불교는 세속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격리시키며 내면적인 자유와 해탈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유교와 불교는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기에 대립의 각이 클 수밖에 없었다. 도가 철학으로부터 태어난 도교는 어떨까? 도가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노자》는 겉으로는 탈속을 강조하지만 진정한 목적은 세속의 정치를 향하고 있다. 반면 《장자》는 어떨까? 《장자》 역시 정치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노자》와는 다르게 개인의 탈속과 세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노자》가 정치적이고 세속을 추구한다면, 《장자》는 정치를 추구하면서도 개인의 자율과 해탈 역시 강조하고 있다. 이는 외편 리뷰에서도 밝혔듯 통행본 《장자》가 형성된 위진남북조 시대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흔적으로 보인다. 세속으로부터의 격리, 그리고 개인의 해탈과 자유를 추구하는 점은 불교 철학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정리해 보자면 유교가 철저하게 현실을 추구한다면 도교는 현실과 세속을 넘나들며 융통적인 여지를 남기고 있다. 불교는 철저하게 세속의 가치를 부정한다. 즉 도교는 이질적인 유교와 불교의 접점을 이루고 있는데, 외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를 중국인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이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전에도 《장자》를 읽었지만, 이번에 홍익에서 번역된 《장자》 시리즈를 읽으면서 새삼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독성이 좋은 고전 번역, 생동감 있는 고전 번역서가 나오는 것 같아 매우 고무적이다. 널리 알려진 고전이더라도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인상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익숙한 고전들을 원전의 범위를 해치지 않는 점에서 더욱 친숙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롭게 번역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친절하고 생기 있는 번역 덕분에 《장자》라는 열매를 좀 더 풍성하고 넉넉하게 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