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사전이라는 말에는 뜻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 사전(辭典)이다.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
또다른 하나는 사전(事典)이다.
여러 가지 사항을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고 그 각각에 해설을 붙인 책.
이 책은 그래서 위의 두 가지 의미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그것도 백과사전(百科事典)이니 그 내용의 다양함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바로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다.
맨처음 『개미』를 읽기 시작했을 때, 다른 책과 다르게, 줄거리 중간 중간에 뭔가 색다른 것이 삽입되어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겼었다.
바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란 항목으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그러면서 줄거리 이해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개미 2권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또 당신인가
그렇다면 당신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내 책의 두 번째 권을 발견했다는 얘기가 된다. 첫 번째 권은 지하 사원의 보면대 위에 눈에 잘 띄게 놓여있었을 테지만, 이 두 번째 책을 발견하기는 그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어쨌든 경하할 일이다. (『개미』 2권, 25쪽)
이렇게 시작한 '사전 삽입'이란 소설 기법은 그 뒤로도 죽 이어졌다.
그가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하여 쓴 책 『신』에서도 그 작업은 이어진다.
5권 109쪽에는 22 백과사전이란 항목하에 '피타고라스'에 대한 사전적 내용을 적어놓고 있다.‘
학교 다닐 때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배운 적이 있다. <직각 삼각형의 한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는 다른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과 같다.> 하지만 이 정리를 처음 증명했다고 알려진 학자는 단순환 수학자를 훨씬 뛰어넘는 인물이었다.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런 내용들을, 한군데 묶어서 책으로 내면 어떨까
그렇게 한 권으로 이헌 내용들을 모아 놓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독자인 내가 했을 정도니까 저자는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저자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베르베르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게다
그뒤로 아니나다를까, 베르베르의 저서 목록에 소설 이외에 ’사전‘도 덧붙기 시작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맨처음 나온 사전은 그야말로 사전이었다. 물론 백과사전이었다.
각양 각색의 신기한 이야기로부터 또한 평범한 이야기까지. 그래서 그 책은 사전이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재미있고 흥미있는 사전인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사전, 이제 완전히 판을 새롭게, 내용도 순서도 그전과는 달리 해서 선을 보인 게 이번 개정판이다.
뭐가 달라졌을까
일단 내용이 달라지고 편집이 달라졌다.
내용은 지금까지 그가 발간한 책들에 등장하는 사전거리들을 총망라해 놓았다.
해서 그전보다 더 풍부한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다.
지금까지 저자가 쓴 책 중에서 사전적 지식이 될만한 것들을 많이 포함시켰다.
『개미』, 『신』, 『제 3인류』, 『죽음』 등에서 보았던 것들이 이제 사전의 반열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 부분 인용한 ’피타고라스‘는 여기에서도 자리를 잡아, 235쪽에서 떡하니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죽음』에서 읽었던 흥미로운 사건들도 여기 다 들어와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중 한 명인 아이스킬로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456년에 황당한 사고로 사망했다. 맹금류 한 마리가 그의 머리를 매끈하고 둥근 돌이라 착각하는 바람에 등딱지를 깨서 먹으려고 살아있는 거북이를 머리에 내리친 것이다. 『죽음』(1), 46쪽)
그렇게 『죽음』에 등장한 이야기가 이 책 17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몇 가지 방식으로 독자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첫째는 지금껏 읽어왔던 베르베르의 책을 다시 한번 새로운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인데, 책을 편집하면서 수록 순서를 작품별로 해 놓아서, 읽었던 작품을 회상하면서 읽어 볼 수가 있다.
둘째는 그러한 기쁨을 한 권으로 모아서 한꺼번에 맛보는 것, 또한 기쁨이다.
셋째는 책 말미에 <항목 찾아보기>를 자세히 만들어 놓아, 해당 사항을 찾기 쉽게 해 놓았다는 점, 역시 기쁨이 된다. <항목 찾아보기>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등재순‘으로 해 놓았고, 다른 하나는 ’가나다순‘으로 해 놓아, 찾아보기가 매우 쉽다.
어떤 책을 보니, 저자가 <찾아보기>를 아주 자세하게 만들어 붙여놓고 이런 당부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이 한 번 읽고 내던지는 책이 아니라 나중에 찾아보기를 참고하여 종종 활용될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찾아보기>를 만들어 놓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자세하게 만들 때에는 다 그런 저자의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이리라.
게다가 이 책은 사전인만큼 종종 다시 읽어보고 할 것이 분명한데, <항목 찾아보기>가 자세하게 두겹으로 되어 있으니, 그만큼 활용도 또한 높을 것이다.
흥미와 재미를 느끼며 거기에 베르베르를 만나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책 읽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어릴 때부터 백과사전 읽기를 좋아했다. 열 권짜리 '컬러학습대백과' 로 시작해서 매우 두툼한 세 권짜리 백과사전, 그리고 브리태니커 사전까지 찾아보고는 했다. 지금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면서 아는 척 할 수 있는 잡식들은 그때 쌓인 것들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쉽게 찾을 수 있던 정보들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찾아보았던 것들에 대한 기록을 쌓아간다면 나만의 백과사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말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Nouvelle encyclope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나는 이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 를 통해 처음 인식했었다. 소설 속에서 곤충학자 에드몽 웰즈라는 인물을 이 책의 저자로 설정하고 여러 지식들을 수록해놨었기 때문이다. 이후 에드몽 웰즈 대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름으로 이 책이 나왔을 때 반가웠던 이유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가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거대한 잡동사니의 창고이면서 그의 보물 상자이기도 한 이 책은 박물학과 형이상학, 공학과 마술, 수학과 신비 신학, 현대의 서사시와 고대의 의례 등을 넘나든다. 그의 시선으로 만나 보는 세상은 새롭고 경이롭게 느껴진다.
1996년 처음 383항목으로 나왔던 이 책은 이제 542항목으로 대폭 늘었다. 그의 소설에서 언급되었던 이 백과사전 속에 반대로 소설 속 내용들이 수록되었다. 소설 「개미」 , 「신」 , 「제3인류」 나 「죽음」 에서 추려낸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의 소설을 읽은 팬들은 소설에서 만났던 내용들에 반가움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5장 신들의 신비, 6장 신들의 숨결, 7장 우리는 신 등 무려 세 장에 걸쳐서 신에 대한 지식들이 정리되어 있는데, 그가 소설 「신」 을 쓰면서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제목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이란 모순적인 표현을 음미해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읽는 이들이 제각기 다른 의미를 발견하고, 스스로의 기억을 적용시켜 이 책을 고쳐 나가는 몫을 맡기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썼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신에 관한 챕터를 읽으면서 함께 읽고 있던 매들린 밀러의 소설 「키르케」 나 「아킬레우스의 노래」 와 연계 독서를 했고, 아이의 기말고사를 도와주며 '토머스 홉스' 에 대해 지식과 더불어 새로운 추억을 덧붙였다.
프롤로그에서 '백과사전을 구성하는 일은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연상' 시킨다라고 운을 떼는 베르베르는 꽃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골라서 자르고 다듬어 어울리게 섞는 플로리스트처럼, 자신이 접한 지식들과 이야기를 엮어 지식모음집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과거 신문이나 잡지를 스크랩 하던 느낌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가 '스크랩' 해놓은 이 지식들을 나는 재미있게 '골라' 읽었다. 그리고 그가 바란 것처럼 나만의 특별한 기억들을 덧붙여 또 다른 나만의 백과사전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42번째인 '한 문명의 절정'편의 이야기를 보면서 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 이야기의 내용 속에는 정치인들, 언론인들, 교육자들, 그리고 경제와 복지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고 있다.
그 한 문장 한 문장들은 우리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왜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쓰이는지에 대한 모든 이의 생각들이 공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종말은 오지 않았다.
리투 - 신간살롱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이세욱·임호경·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하하하.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어떻게 쓸까하고 고민을 살짝 했다.
말하고 싶은 구간구간들의 짧은 단상은 너무 많고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말이다. '쪼개읽기'를 하면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해 올리기도 했지만, 올릴 때마다 여운이 남아 도는 이유는 그가 자신을 위해 남겨 두었던 세상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과연 왜 이걸 꼭 끄적여 두었을까, 뭘 생각했을까, 나도 그의 생각을 꿰뚫어보면 좋겠다라는 느낌과 함께 나도 더 알아가고 싶다라는 질투심이 같이 유발되기 때문일거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더 많은 지구 안에서 인류를 포함한 수많은 종들의 인생을 기억하려면 우리가 보는 눈 말고도 마음의 눈을 천리안처럼 넓고 맑게 지켜내야 한다. 그 힘은 자신의 눈으로 통로를 만들어내는 명견만리의 혜안을 갖는 것이지 않을까.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했다. 따라서 상대성조차도 상대적이라 했다. 따라서 상대적이지 않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 어떤 것이 상대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당연히 절대적이라고 했다. 따라서...... 절대적인 것은 존재한다고 봤다.
절대적인 존재가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그의 단상이 매력적인 이유다. 상대적 존재인 내 안에서 절대적 존재의 깃발을 찾아내야 하는 미션과도 같은 542번의 상대성에 관하여.
이런 말도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전기 작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이다.
미래의 세대들은 실제적인 위업을 무시한다. 중요한 것은 그 위업을 이야기하는 전기 작가의 재능이다.
플라톤이 없었다면 누가 소크라테스를 알겠으며, 사도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의 생애를 제대로 알았겠는가? 미슐레가 상기시킨 잔 다르크의 재발굴, 루이 14세가 정통성 확보를 위해 상기한 앙리 4세. 우리가 무엇을 이루건 그건 우리의 업이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건 우리의 업이 아니라는 사실, 업을 역사로 바꾸는 업은 좋은 전기 작가를 찾아내는 것. 모두를 위한 성취라고 말한다.
마조히즘에 관한 짧은 단상은 또 이렇다.
288번 마조히즘의 기원에는 앞으로 닥쳐올 어떤 고통스러운 사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인간은 시련이 언제 닥칠지 시련의 강도가 어떠할지 몰라서 두려워한다. 마조히스트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무서운 사건을 일으킨다고 한다. 결국 자기 스스로가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일으키는 일을 조절한다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스스로 운명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마조히스트들의 통제력은 범위를 확장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 또한 지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많은 지도자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사생활을 통제하는 데에서 우리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마조히즘의 고통에 대한 숭배는 자기 운명의 지배와 맞물려 반쾌락주의자로 상징된다. 이로써 마조히스트들은 자신들의 쾌락을 원하지 않으며, 오로지 새로운 시련만을 찾아 나선다고 한다. 그 시련 또한 갈수록 혹독하고 고통스렁누 것으로 변질된다고 말한다.
나를 채찍질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발전없이 안주하는 것 같고, 뭔가 끊임없이 나를 향한 분주함을 만들어 놓아야 삶의 이유에 생기가 도는 나를 발견한다면 나는 일벌레, 중독자, 마조히스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엇이 나의 부캐를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지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껴볼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는 총 542가지의 상. 절. 지. 백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나는 368번 타인의 영향과 421번 열한 번째 계명, 그리고 462번 시도에 관한 짧은 단상도 꼭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한한 잠재적 능력을 품고 태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능력을 발화시키는 이는 따로 있다고 한다. 나는 다수 무리의 우리일까, 소수 무리의 따로 있는 이일까.
대답은 노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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