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소위 지구의 반은 남자, 나머지 반은 여자라고들 한다. 헌데 절반의 남자가 절반의 여자를 수 세기 동안 자신들의 소유물로 착취하고 억압하며 중세 후기에는 마녀사냥을 정당화시켜 고문과 화형에 이르는 역사를 갖고 있다. 과거 '여성은 열등함을 타고난 존재'였고, 그것을 증명하고 법제화하기 위해 수많은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들이 발벗고 주장하고 나섰다. 기독교는 신학적인 이유까지 더해 여인들을 사냥했고 사냥 성공에 비례해 재산을 축적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과거에 비하면 눈부신 평등을 이뤄냈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성을 향한 멸시와 편견은 여전하다.
2002년 나이지리아에서는, 혼외정사로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머리가 깨질 때까지 돌을 맞는 투석형 판결을 받았고, 영국 벨파스트에서는 아내 학대가 일상적이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할례는 아프리카 이슬람 국가들에서 통상적인 일로 여겨지고 아라비아 반도와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과거 여인들이 마녀사냥이 된 이유는, 남성이 여인을 욕망하는 요인을 유혹한 여성의 탓으로 돌린 데 있다. 남자가 여자를 강간하면 그러한 행동을 벌인 남자는 죄가 없고, 그 남자에게 욕망을 부채질 한 여자만 죽일 X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여성이 화장하는 것과 예쁜 옷이나 장식을 금했다. 4세기 말, 재능과 지성에서 동시대 모든 철학자를 능가했던 여성 히파티아는 이단 사냥꾼이자 유대인 혐오자인 키릴로스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된 최초의 마녀사냥 희생자였고 그때부터 여성들은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하기 시작한다.
원죄 교리는 그리스 철학의 플라톤 주의와 유대교의 가부장적 일신교, 그리스도가 하나임의 아들이며 육신을 입고 인간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기독교의 계시로 합쳐진 결과물이다. 이는 원죄로 인해 임신 자체가 죄악시 되었음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거의 등장도 하지 않는 마리아는, 서기 431년 신(예수)의 어머니라는 이유로(특히 가톨릭 교회에서) 원죄로 더럽혀지지 않은 영원한 '동정녀'의 지위로 격상된 이후 지금까지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신격화 된 여성이 된다. 이렇듯 여성의 미화와 악마화라는 모순된 두 가지 과정은 성관계 유무에 초점이 맞춰져 천 년 동안 동시 진행을 거듭됐다. 그 결과, 수녀원와 수도원이 유럽 전역에 세워졌고 14세기 후반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종교적 히스테리의 희생양으로 수많은 여성이 마녀사냥을 당했다. 교회는 교황을 통해 유대인에게 과거의 반유대주의를 사과했지만, 수많은 여성들에게 마녀라는 무고를 씌운 것에 대해서는 그들이 무고했음을 아직도 시인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잔 다르크만이 마녀로 판정되었다가 교회가 훗날 명예를 회복시키고 성인으로 추대한 유일한 인물일 뿐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이성이 진보하고 민주적인 생각이 탄생하고 개인을 중심에 둔 철학이 발전해도 여혐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인 클레망 마로와 벤 존슨, 셰익스피어의 문학 속에서도 여혐이 대거 출판됐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동시에 여험이 분출됐다. 특히 존 윌멋은 여성의 생식기를 하수구에 비유했다. 19세기 교회는 출산의 고통을 덜기 위해 클로로포름을 사용하는 데 반대했고, 20세기에는 보수적인 가톨릭교도와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개신교도들은 폭력까지 동원해 피임과 임신 중단 반대 운동을 벌였다. 여성 혐오는 언제나 이중적이고 모순되는 관점을 취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형태만 바뀌었을 뿐 다르게 진화했으며 종교적 흐름에 따라 강약을 거듭했다. 시대를 대표하던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 열등론에 과학적 정당성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플라톤 이래 여성 혐오를 지지하는 철학자 항상 넘쳐났다. 칸트를 추종했던 쇼펜하우어는 여성은 종의 번식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믿었고, 니체는 남성의 행복은 '내가 원한다'에 있지만, 여자의 행복은 '그가 원한다'는 데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적인 여성상은 경박하고 어리숙하며 순진함과 무지함이 결합된 형태였고 이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이 지향한 '가정의 천사'였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혐오자는 다섯 명의 매춘부를 신체 훼손한 현대적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다. 19세기 철학자인 프로이트, 찰스 다윈, 카를 마르크스는 20세기 시대에 여성을 보는 관점에 기여했고 그 영향력이 중대했다. 여성의 권리 신장은 과거에도 그랬듯 언제나 반발을 불러왔고, 그것은 과학, 철학,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나타났다. 유대-기독교 전통과 그리스 철학 사상을 원천으로 삼아 내려온 여성 경멸의 사상적 물줄기는 여성 해방-매춘-유대인으로 연결돼 청년 히틀러에게 깊은 울림과 함께 20세기를 피로 물들였다.
인류가 쏟은 노력으로 다른 영역의 발전은 빨랐으나 여성을 위한 진전으로 연결되기에는 유리천장이 너무 높았다. 돌이켜 보면, 여성 혐오의 역사는 철학자와 성직자가 견인해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는 포르노 제작자보다 여성에게 더 큰 해를 입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성과 같은 출발선상에 있는 여성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억척같이 노력해야만 그들과 동등한 지위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여혐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2016년에 벌어졌던 강남역 살인사건만 해도 그렇다. 하지만 여성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계속 마주한 어려움은 권리 확대에 가장 소리 높여 반대하는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필리프 아돌프 폰 에렌베르크는 1628년에서 1631년 사이에 어린아이 여러 명을 포함해 여성 9백 명을 불태워 죽였다. 이 무렵에 독일에서 서너 살 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이 악마와 섹스를 했다며 고발당했다. 부모와 함께 마녀의 집회에 참석했다고 유죄 판결을 받은 아이는 부모가 불에 타는 동안 화형대 앞에서 채찍질을 당했다.
p157-158
18세기에 퍼진 신조인 평등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미국 헌법에 고이 보존되었으며, 여성이 여전히 겪는 정치적, 사회적 차별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일 때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성 차별의 근원인 전통적인 여성 혐오의 신념들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여성 혐오는 지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p240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착한 여성은 성욕에서 배제된 존재며 여성의 성욕은 질병의 징후라고 보았기에 성기 절제는 자위, 히스테리, 색정증과 여러 여성 질환의 치료 수단이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혐오 관점에서 매춘은 경제적인 절박함 때문이 아니라 억제할 수 없는 성욕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었고 따라서 매춘부는 흔히 타락한 여인이나 쾌락의 딸이라고 불렸다.
p248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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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이 책은
이 책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인 여성혐오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그런 편견에 대하여 종언을 고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잭 홀런드(Jack Holland), <저널리스트, 작가. 특히 북아일랜드 정치와 테러, ‘북아일랜드 분쟁(The Troubles)’에 관한 해설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벨파스트에서 자랐고 [BBC벨파스트]의 시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제레미 팩스맨을 비롯한 뛰어난 저널리스트들과 함께 일했으며, 뉴욕대 언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2004년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를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으로 사망했으니, 이 책이 그의 마지막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요즈음도 문제가 되고 있는, 여성혐오 소위 ‘여혐’이란 말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리나라가 문제가 아니다. 이는 세계 역사에서 거의 역사 시작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그것을 추적한다. 대체 여성혐오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그 것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혀놓고 있다.
여성 혐오의 시작은, 그리스와 이스라엘에서 시작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판도라라는 여인이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온 것으로 되어 있다.
여성인 판도라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이 세상에 온갖 재앙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유대의 경전인 『성경』에 의하면, 인류의 타락은 여성인 하와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따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권해, 결국 낙원에서 쫒겨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신화는 여성혐오의 기원이 된다.
그 뒤로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부지런히 그런 여성혐오에 철학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그리스의 철학을 하나의 이론적 바탕으로 활용해 그것을 집대성하는 수준에 이른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기독교 교리인 원죄론에 철학적 바탕을 제공한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는 임신 자체를 신의 완전함에서 멀어져서 고통과 죽음으로 가득찬 현상 세계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데아론은 판도라와 인류의 타락을 그린 알레고리에도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타락하기 전에 남성들은 신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그들이 신에게서 멀어진 것은 언제나 그렇듯 여성이 개입했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남성은 완전히 좋은 것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50쪽)
그 뒤로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여성혐오는 그 이론적 토대를 갖추고, 실제적 시스템을 갖춘 가운데 여성을 질곡의 현장으로 몰아넣는다
이 책은 그런 상황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탐사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 이런 글도 있으니, 읽고 새겨두자.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남편의 재산을 물려받거나 관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원전 4세기 무렵 스파르타 땅의 5분의 2가 여성 소유였다. 결과는 표면상 역설로 보인다. 여성은 민주주의의 고향인 아테네에서보다 군국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자유와 높은 지위를 누렸다. (54쪽)
저자는 스파르타 - 우리가 알기는 전혀 민주주의 체계가 아닌 -에서 오히려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는 것을 통해서 정치 사회 시스템이 우월하거나 인간의 의식이 발전했다고 해서 여성혐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역사의 진행에 따라 여성혐오는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되었을까
기독교에서 여성혐오는 인류의 타락에 단초를 제공한 원인자로 보고, 여성을 질곡으로 몰아냈으며, 그후로 기독교가 이 세상의 대세 그룹이 되었을 때는 마녀 사냥이란 황당한 일이 몇 세기 동안 있었다는 것, 이건 도저히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라, 광기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지역만 그랬을까
이슬람이 통치하던 지역은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여성 할례라는 희한한 풍습과 일부다처제, 그리고 밖으로 나들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히잡과 부르카를 쓰게 하는 등, 과연 그러한 것들이 알라신이 원하신 것일까
이런 것 읽어보자, 얼마나 황당한 인간들인가
카불을 점령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1996년 9월에 탈레반은 부르카의 눈 위치에 난 구멍이 너무 크지 않은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310쪽)
셰익스피어는 과연 여성혐오자였나
또한 인간들은 여성혐오를 혐오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역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쓴다. 문학이란 방편도 그 중 하나인데. 그렇게 역할을 했다고 의심받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가 여성혐오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180쪽에서 189쪽에 이르기까지 상당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중 몇 가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셰익스피어 과연 여성혐오자인가? [1]
-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여성혐오라고요
http://blog.yes24.com/document/14820334
셰익스피어 과연 여성혐오자인가? [2]
- 셰익스피어가 희극에서 창조한 여성상
http://blog.yes24.com/document/14858816
셰익스피어 과연 여성혐오자인가? [3]
- 셰익스피어의 여성혐오 드디어 시작되는가
http://blog.yes24.com/document/14859146
그런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
임신 중단 반대 운동을 정당화한 이념 뒤에는 기독교의 여성 혐오 전통과 함께 여성이 인류의 타락을 불러온 죄를 신이 심판했기 때문에 여성이 종속된 위치에 놓였으며 열등하다고 보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가 있다. (292쪽)
여러 국가에서 여성의 선택권을 옹호하는 결정이 내려졌는데, 미국에서는 개신교 근본주의자와 보수적인 가톨릭 양측의 맹렬하고 광신적인 저항에 부딪혔다. (293쪽)
그래서 이런 결론이 나온다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여성 혐오는 “사회에서 받아들인 상식”의 일부였다. (319쪽)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본다.
321쪽에 있는 글이다.
여성 혐오에 대한 역사의 가르침은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만연해 있고 끈질기며 유해하고 변화무쌍하다. 바퀴가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남자는 여성 혐오를 발명했다. 그러나 바퀴가 화성에서 굴러다니는 오늘날에도 여성 혐오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 다른 어떤 편견도 이토록 끈질기게 계속되지 않으며 이토록 극단적인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인종도 그렇게 오랜 기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 어떤 특성을 가진 집단도 그렇게 전 세계적 규모로 차별받지 않았다. 어떤 편견도 그렇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여성 혐오는 때로는 사회의 승인을 받은 사회적, 정치적 차별로 나타나고, 때로는 개인적 증오로 가득 찬 망상의 승인만을 받은 사이코패스의 뒤틀린 마음속에 솟아오른다. 게다가 어떤 편견도 그렇게 파괴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여성 혐오를 두드러지게 했어야 할 특징들이 이상하게도 여성 혐오를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다. 여성 혐오와 관련해서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했다. |
이에 대하여는 조지 오웰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새겨보면 좋을 것이다.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320쪽)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똑바로 보기 위해서다.
여성을 바로 본다는 것은 세계를 바르게 보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런 첫걸음 걷지 않고 다른 것을 바르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가치, 세상을 바로보게 하는 큰 가치가 있는 책이다.
고백하건데, 저는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이라면 당연히 여성이 썼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여성 혐오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이 남성인 경우를 주변에서 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역시 세상은 넓고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네요. 작가가 여성 혐오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하면, 당연히 여성 혐오를 정당화할 거라고 지레 짐작을 하며 말없이 윙크를 보내거나 고개를 끄덕였던 수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제발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별과 편견은 자각과 반성 없이는 결코 무너지는 법이 없으니까요.
여성 혐오의 기원을 파헤치고, 그게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뭐가 중요할까요? 저는 그 이유가 역사와 문화라는 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게, 공기처럼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완전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한국이 이렇구나, 나는 이렇구나, 하는 것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을 보고서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생각해보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서 말이에요. 딛고 선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보면 정말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을지 막막해집니다. 여성 혐오는 인종 차별보다도 훨씬 더 자각하거나 인지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다못해 신화나 종교 속에서도 온갖 방법으로 여성을 하등하고 미천한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잖아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살펴보면 '태초에 판도라가 있었다'나 마찬가지죠.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서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다줬다 이겁니다. 기독교를 보면 '하와가 아담을 타락시켰다' 하는 버전이 있고요. 기독교뿐만 아니라 같은 뿌리를 둔 유대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반대로 완벽한 성녀를 내세워 실존하는 모든 여성을 모두 비하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처럼요. 저는 성당에 다녔으면서도 성모 마리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신의 어머니'의 위치를 차지했는지 전혀 몰랐지 뭐예요. 마리아가 처녀인지 아닌지, 언제 어떤 순간에도 존재했던 신의 어머니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모두 높으신 주교님들의 종교 회의를 거쳐 결정되었다는 거~ 만약 거기서 성모 반대론자 힘이 더 강했으면 지금쯤 마리아라는 '원죄 없이 태어난 유일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
그리스-로마를 거쳐 기독교-중세-마녀사냥을 짚어보고, 문학과 철학에서 내재화된 여성 혐오를 들여다보면서 그에 영향을 받고 자란 온갖 독재자들이 여성을 어떻게 자궁 취급했는지를 연결시키는 솜씨가 정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놀라울 지경입니다. 게다가 이런 끔찍한 역사가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 중 하나인 여성의 '신체적 선택권', 즉 낙태에 대한 이슈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볼 수 있어요. 한마디로, 지금 낙태 논쟁은 생명에 대한 논쟁이 전혀 아닌 거죠. 낙태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대로 이게 생명에 대한 이슈가 되려면, 그들이 잉태중인 태아 이외에 다른 생명을 똑같이 존중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증거들이 눈만 돌리면 쏟아져 나오잖아요. 막상 태어나 존재하는 생명은 전혀 존중하지 않지만, 여성의 몸 안에 있을 때의 생명만은 존중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 어휴.
혐오와 차별과 편견의 역사는,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인식하고 분쇄하기 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고대부터 굴려온 여성 혐오의 눈덩이가 엄청난 크기로 불어나 우리를 덮치고 있어요. 사실 읽고 나면 좀 막막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촘촘하게 짜여진, 고대 신화부터 일상의 종교까지 온갖 곳을 파고든 여성 혐오를 어떻게 벗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거든요. 책을 읽기 전에도 알긴 했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야 잘 봐봐 이건 이런 줄기에서 이렇게 생긴 차별이야, 이걸 극복하려면 인식 자체를 바꿔야 돼, 하고 짚어주는 거랑 그 무게감이 달라요ㅠ 뭐 계속해서 차별해봐라 인류 다함께 멸절밖에 더 하겠냐 싶은 생각도 들지만요ㅋㅋㅋ
지금 이 후기를 쓰고 있는 순간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해버렸네요.. 책 속에 묘사된 탈레반의 정책과 사상을 되짚어봅니다. 그 사상이 탄생하게 된 과정도요.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제발 무사하기를, 살아남기를,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현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 빌어 먹을 여성 혐오로부터 우리 모두가 탈출할 수 있기를. 부디.
이 책의 표지 글에 시선을 멈춘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여성 혐오의 역사라니, 문득 인류 역사에서 여성 혐오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이제야 궁금해졌다. 그런데 띠지에 보니 '여성 혐오는 기원전 8세기 지중해에서 탄생했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 그 역사에 대해서는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으니 호기심이 생겼다.
풍부한 문헌과 사례를 바탕으로 판도라 신화가 탄생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여성 혐오 역사를 파헤치다! (책 뒤표지 중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서 이 책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잭 홀런드. 저널리스트, 작가. 특히 북아일랜드 정치와 테러, '북아일랜드 분쟁'에 관한 해설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주로 북아일랜드 정치와 테러리즘에 관한 논픽션 일곱 편을 출간했다. 2004년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를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으로 사망했다. (책날개 발췌)
살림하고 애 키우고 임금 노동을 하자면 읽기도 버거운 이 대작들을 누가 어떻게 썼을까? 유사 이래 철학, 역사, 종교, 예술 등 인류의 정신을 직조하는 일은 남성의 몫이었다. 여성은 배움에서 배제되고 폭력에 저당 잡힌 '가정의 천사' 자리에 배정되었다. 인류의 기획은 끈질기고 공공연했다. 그래서 여성이 '감히' 생각하는 주체로 살고자 할 때 중력을 거스르는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나니 온갖 의문이 풀린다. 바퀴의 역사보다 오래된 여성 혐오의 역사, "인류의 절반을 비인간화"해온 인식의 지층을 정교하게 '탐침해' 들어가는 이 책의 저자도, 남성이다.
_은유 《있지만 없는 아이들》 저자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된다. 1장 '판도라의 딸들', 2장 '고대 로마의 여성 혐오와 로마 여성들의 반격', 3장 '기독교 시대의 도래와 배신', 4장 '하늘의 여왕, 또는 악마와 결탁한 마녀', 5장 '문학 속 여성 혐오', 6장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비밀 생활', 7장 '20세기가 펼친 악몽 속 여성 혐오', 8장 '여성의 몸이란 전장', 9장 '결론: 여성 혐오 한층 더 깊게 파고들기'로 나뉜다.
어렸을 적 주일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 떠오른다. 나름 충격적이었기에 똑똑히 기억이 난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몇 명을 먹이셨냐는 퀴즈를 푸는데, 남자 수만 오천 명이라는 게 정답이었다. 어린 나이에는 그게 엄청 큰 충격이었다. 그때 처음, 여자는 사람 수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선거권이라든가 사회적 차별에 대한 인식마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했든 간에 아주 오래된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성 혐오의 역사를 살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인식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을 통해 생소한 것부터 예측하지 못했던 것까지 하나씩 알게 되었다. 루소가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을 없애는 데 활용해야 할 이성을 들먹이며 여성이 "복종해야 하는 성"이라는 믿음을 정당화했다(200쪽) 거나,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그려낸 여성은 성인 모습을 한 아이며 발달이 멈춘 생물이고 남성을 돌보는 데에만 적합하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여성은 종의 번식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니체에게까지 이어졌다.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동안 나의 기준과 잣대로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이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 그리고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철학자들이 경멸의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았고 때로는 편집증에 가까운 불신을 가지고 여성을 대했다. 그리스 고전 시대에 아테네 여성들은 삶의 대부분을 집 안에서 보내야만 했고 중세 말기에 여성들은 마녀로 몰려서 산 채로 화형당했다. 이렇게 두 사회에 여성을 폄하하고 악마화하던 오랜 역사가 있었지만, 그들이 겪었던 일은 여성에 대한 편견이 불러온 결과로 여겨지지 않았다. 편견은 이름이 붙기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319쪽)
편견은 이름이 붙기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 그 말이 마음에 와서 박힌다. 어쩌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 이외에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상당히 많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 것들을 하나둘 극복해나가기 위해 일단 아는 것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그 첫걸음을 이 책과 함께 해본다. 다소 난해한 느낌이 드는 책이지만 그만큼 존재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곧 50대를 바라보는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명절이면 집안에선 장자인 사촌 오빠 위주로 식단이 짜여졌고 학교에서도 너무 당연한 듯 남자 아이들과 비교당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내 아이들, 딸들이 자라는 시대에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이런 차별은 여전하다. 남자 아이들 대부분은 오히려 여자 아이들의 힘이 더 세다며 아니라고 부정할지 몰라도 중학교만 올라가도 선생님들에 의해 이런 차별은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그런데도 요즘 젊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는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도대체 여성 혐오는 언제부터, 왜 시작된 것일까.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에서는 그 시작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인 잭 홀런드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지금껏 다양한 분야의 정치와 테러리즘에 관한 논픽션을 출간해 왔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유작으로 사망 직전, 침대에서까지 이 작품의 교정을 봤다고 한다. 이후 아내와 딸에 의해 빛을 보게 된 이 책은 그야말로 방대하다. 양에서뿐만 아니라 책 속 근거가 되는 수많은 사례가 그렇다. 서문에서부터 읽기 시작하고 본문에 들어가면 이 책이 그저 한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가 평생을 생각해 온, 그리고 꼭 내놓았어야 한 일종의 논문이다.
잭 홀런드는 여성 혐오의 시작이 기원전 8세기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이른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다.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온 것은 무지하고 참지 못하는 호기심을 가진 판도라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많은 철학자들(소크라테스를 포함해서)과 로마 정치가들이 여성 혐오를 조장하며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역사는 계속되고 이 여성 혐오는 중세 시대 마녀사냥으로 정점을 찍는다.
책은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방대한 자료로 가득하다. 역사 속에서 어떤 식으로 여성 혐오가 나타나는지를 열거하고 있는데, 정말 끝이 없다. 여성으로서 이 자료를 읽고 있자니 계속해서 우울해질 정도이다. 역사 속에서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지금껏 이름이 알려진 너무나 많은 위인(이제 그들을 위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여성 혐오를 강조했는지!
근대에 와서 여성들의 인권을 조금씩 찾아가는 여정도 전혀 쉽지 않았음을, 특히 당연한 인권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이조차 정치로 이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찾고 싶다.
"최근 역사에서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을 배워야만 한다.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다.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외교 정책은 인류의 절반을 비인간화하게 된다."...315p
"여성 혐오에 대한 역사의 가르침은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만연해 있고 끈질기며 유해하고 변화무쌍하다."...321p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진정한 넘녀 평등을 이루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잭 홀런드의 말처럼 여성 혐오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내가 한창 공부하던 시절 알았던 페미니즘의 정의가 바뀔 정도로. 많은 공부를 하지도 않고 인터넷에서 얻은 조각짜리 지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여성도 남성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뒤편 이라영님의 서평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이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한 개인의 주장이 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주장을 위해 뒷받침 된 수많은 실례들, 문학 속에서 드러난 여성 혐오 예시들은 충분히 우리에게 직접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히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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