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딘지도 모르는 먼 행성까지 와버렸지만 서로가 서로의 다리가 되어 경계 너머로 향하고 있다.》
2020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수상작.
개인적으로 몆년 동안
무슨 수상작에 감명을 받은 적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취향의 문제인데^^
그래서 언젠가부터 문학상 수상작을 애써서 찾아보지는 않게 됐다.
그러던 내게 오랫만에 찾아든 소설작품.
파키스탄 훈자에서
한국인 여행자 5인이 만났다.
28세 김설, 32세 남하나
40세 최낙형, 22세 전나은, 29세 오후.
이야기는 이들의 몇 달을 그린다.
낯설었던 파키스탄 훈자라는 곳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일품 이다.
그곳의 공기, 냄새 같은 것들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곤
이렇게 묘사할 수 없으리라.
티없이 맑은 아이들에 대한 서술이 특히 와닿았다.
훈자가 툭하면 정전이 되고 인터넷에 제약이 있지만
인생에 지쳐 도망하듯 떠나온 이들에겐 더 없는 휴식처인 이유를 독자인 나도 차츰 알게 됐다.
각자의 캐릭터의 차별점이 뚜렷하다.
22년 인생이든 마흔살 '어른'이든
5명 인물들은 모두 아픈 상처가 하나씩 있었다.
다섯 파트가
각자의 1인칭 시점이면서
그 스토리 속에 5명이 섞여 드는 방식이 무척 세련되었다.
가독성이 높아서 훌쩍 읽게 된 300여 페이지.
시종 헤시시라는 마약이 주요한 소재로 나오는 건 좀 불편했다. 내가 보수적인 건가 ^^;
설이가 먼저 후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굉장히 용감해 보였고, 심쿵 했다.
다섯 명 중에 또 만나고 싶은 스토리를 꼽으라면
그래서 김설 !
끝에 수록한 작가의 말이
근래 읽은 작가의 글 중 제일 멋졌다.
《독자는 외계인 만큼 멀고 낯선 이름이지만
마침내 닿고 싶은 세계다.
멈추지 않고 네게로 향하겠다.》
p.59 일단 게임 이름은 '외계인 게임'이야. 우리 중에 있는 외계인을 찾는 거지.
p.60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리 없을 법한 사건 하나를 던져서, 지금 당장 그 일이 일어난다고 상상해 보는 거야.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p.60 소수 의견을 낸 사람이 외계인이 되는 거구나?
<외계인 게임>이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 소수의 선택을 한 쪽이 외계인이 되는 게임.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이 돌아가면서 던지는 질문들과 대답은 등장인물들의 성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장치이다. 중학교 국어 교사 김설, 영상 번역가 남하나, 소설가 최낙현, 대학생 전나은, 여행자 오후. 나이대도 다르고 직업과 가치관도 다른 이들이 '훈자' 지역의 도미토리에서 만난다. 무엇인가로부터 떠나거나 무엇인가를 찾고 싶은 것이 여행인지라 그들의 사연을 들으면선 나의 삶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의 매력 세 가지를 꼽아보자면, 먼저 실제로 있을 법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들이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여행의 설레임, 세 번째는 수려한 문장들이다.
매력 포인트 1. 살아 있는 캐릭터들.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읽다보면,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그런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가장 대입이 많이 되었던 캐릭터는 40세 소설가 최낙현이었다. 다른 등장 인물들은 20대나 30대 초반의 미혼인데 이 인물만 나이도 있고, 결혼도 해서 그의 삶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구성원들 가운데 가장 어른이라서 어른스럽게 요리도 나서서 하고 중심을 잡으려고도 하는 상황이 제일 공감이 갔다. 속은 멋지고 평온하거나 지혜롭지 못한 걸 스스로 알지만, 나이가 제일 많기에 다른 이들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또한, 그의 아내의 입장도 공감되는 부분도 많아서 제일 공감간 캐릭터이다.
p.182 훈자에서만큼은 좋은 형과 듬직한 오빠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p.189 책임감을 느끼거나 자책하는 이는 없다. 어른이라는 모두의 이름으로 죄책감을 공평히 나눠 갖는 탓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장에 올라타 있다.
제일 매력적인 인물을 뽑으라면, 아무래도 오후. 계속해서 여행을 해나가는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절로 궁금해진다. 다정하면서도 자유롭고, 그러면서도 아픈 상처가 있으면서도 세상에 중요한 것이 다른 이들과는 다른 인물. 최낙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주인공' 같은 인물이다.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 사연과 분위기가 있다.
p.301 우리는 늘 잃기 전에 미처 내가 잃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때로 경계선을 넘어 다시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하는 거라고. 혼자서 건널 수 있는 세계는 없다.
매력포인트 2. 여행의 그리움
코로나 19로 여행 길들이 막히고,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기가 어려워졌다. 이 책을 읽다보면 예전에 여행을 다닐 때의 기분이 되살아나면서 추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이들도 기억나고 말이다. 그리고 또 반대로 여행의 한계라고 할까? 떠나면 다 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아픔은 또 그대로 남아있던 그런 기분도 다시 떠올랐다.
p. 20 멀리 왔지만 지금도 이별이라는 굴곡 없는 평행선에 서 있는 나라는 것을 안다. 세상의 반대편에 섰다고 해서 고통의 반대편에 당도하는 건 아니었다.
p.225 삶을 살아간다는 건, 모두가 버스에 올라타 함께 목적지로 향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비좁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험한 길을 서로가 서로를 다독이고 견디며 나아간다고.
매력 포인트3. 수려한 문장력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2020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대통령상(대상)을 수상한 작품인 만큼 삶을 예리하고도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그려냈다. 필사한 문장이 많을 정도로 매력적인 문장들이 많았다.
p.31 "요즘 애들 힘들지?" 짜이를 따르며 후가 물었다. "말해 뭐 하니. 한국 중학생들은 악마야." "어른들이 지옥을 만들어 둬서 그런지도 모르지."
p.59 일과 사랑 어떤 꿈을 품고 살든 우리는 결국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니 과정이라도 즐거워 해야 한다는 삶의 법칙에 나도 조금씩 동의하고 있었으니까.
p.80 오히려 서른은 곧은 몸가짐을 넘어 취향과 스타일까지 점검해야 할 때다.
p.302 삶에선 길치이고 방향치인 모두가 털어놓고 내보일 장소를 찾아 이 먼 길을 걸었을 테니까.
우리의 삶에, 마침내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 나는 지금 이곳에 서 있다.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었다.
매력적인 포인트가 많았던 <외계인 게임>. 삶에 대한 고민, 질문 그리고 함께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고 싶어졌다. 훈자라는 도시가. 파키스탄에 있다는 훈자라는 도시가 낯설어 검색을 해본다. 있다. 진짜 있는 동네다. 훈자 마을도 있고 이야기 속에서 다섯 명의 사람들이 이동했던 파수라는 곳도 실제하는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파수도 가고 싶다. 훈자를 가면 같이 갈 수 있을까. 코로나가 없다 하더라도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는 쉽게 그냥 훌쩍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알기에 그래서 더 호기심만 불러 일으키는 곳이 되어 버렸다. 작가님은 이 곳을 다녀오셨을까.
중학교 교사, 영상번역가, 소설가, 대학생 그리고 여행가인 다섯 명의 사람들이 훈자라는 곳에서 만난다. 많은 여행객이 오가는 곳이 아니기에 그들은 여기서 자신들만의 그룹을 만들어서 더욱 친하게 지내게 된다. 달리 특별한 것은 없다. 원래가 그런 동네이고 그들은 장기 여행자인 탓에 그저 하루하루를 편안히 쉬거나 산책을 하거나 평상시와 같은 일과를 보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사인 김설은 먼저 와 있던 그들보다는 나중에 합류한 멤버이다. 방학을 이용해서 여기저기 여행을 하는 그녀는 그렇게 튀는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듯이 순수함을 띤다. 옛날 아이돌 그룹을 소개할 때 무슨 파트를 맡고 있어요 라고 한다면 전 순수를 맡아요 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말이다. 그녀와 함께 도미토리를 쓰는 사람은 번역가인 하나다. 설과는 다르게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그녀다. 먹고 살기 위해서 여러 직업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그녀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낙현은 팔리지 않는 소설가이다. 그가 베스트셀러를 썼더라면 지금 이곳에 그는 없었을 수도 있다. 소설을 써서 자신의 밥벌이가 온전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도 아내가 소개해 준 자리에서 일을 했지만 결국은 그만두게 되고 아내와도 헤어지고 그 결과 지금 이곳이다. 가장 막내인 대학생 나은은 여행가인 오후와 함께 방을 쓰는 룸메이트이다. 그렇다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이상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순전히 여행을 하면서 편리함에 같이 지내는 것 뿐이라고 볼 수 있는 관계다. 아주 조용해 보이지만 나은은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행동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행동이라는 것이다. 여러 번 자해를 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타투를 하고 이제 그녀는 파수로 가서 그곳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계획은 이루어질까.
이 그룹 중에서는 가장 여행 베테랑인 오후. 그는 대마류를 피운다. 그런 그를 걱정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모든 것들도 자유다. 너무 중독만 되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은과 같이 방을 쓰며 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하나와는 한번 잤을 뿐 그냥 친구사이를 유지한다. 이곳에서는 그런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 일상이 아닌 여행지라는 곳이 그렇게 만든다. 그 또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되고, 그러면 또 다른 시대를 황금시대라며 동경하게 되겠죠.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인생이라는 게 본래 불만족스러운 거니까요. (132p)
훈자에서 지내던 그들은 파수로 이동을 하고 그 전날 술을 마시면서 외계인 게임을 한다. 어떤 질문을 하고 두가지로 질문에 대한 답을 할 때 소수인 쪽이 외계인이 되는 그런 게임이다. 어떤 질문을 만드냐에 따라서 대답이 갈릴 수가 있다. 선택의 폭은 딱 두가지로 좁다. 자신이 왜 외계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생각도 알 수가 있는 그런 게임이다. 이 그룹의 다섯 명은 저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를 질문에 녹여서 드러낸다.
우리 중에 외계인은 누구일까. 소수 인원을 나타내는 외계인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견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다수의 의견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는 풍조를 드러내기도 한다. 나와는 다른 사람을 편 가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단어인 외계인. 우리는 나와 다르면 무조건 외계인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구성의 이 이야기는 쉽게 읽히지만 반면 묵직함을 남겨주어 무언가 명치끝에 턱하고 얹혀있는 듯한 느낌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