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가장 위대한 페미니스트 지젤 알리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여성의 대의>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젠더 이슈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들이 점차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활동하며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나 또한 이런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모르는 것이 많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인데,
그래서인지 반갑게 읽을 수 있었던 안타레스 출판사의 신간이었다.
누군가가 짤막한 서평을 물어본다면 '지젤 알리미'라는 사람을 알아갈 수 있는 책.
한 개인의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사회적이고 시대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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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페미니즘 운동가이자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던 멋진 이의 대표작을
2021년도인 현재라도 알게되고 읽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하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제서야 출간 되었나 싶은 아쉬움을 먼저 느껴야하는지
오묘하게 반가움과 아쉬움의 감정을 모두 느껴가면서 읽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튀니지에서 1927년도에 태어난 저자 지젤 알리미.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남아선호사상 덕분에 과외까지 받았던 오빠의 상황을 보았지만
딸들에게는 연필과 책도 사주지 않을 것임을 아는 상황임을 일찍이 깨닫고서 혼자의 노력으로 학업을 이어갔다.
이후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프랑스 대학으로 진학하고 변호사가 된 후
시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생각해봄직한 큰 줄기의 사건과 활동을 이어나간다.
튀니지에서의 유년시절은 ( 프랑스로 대학 진학을 하기 전까지의 이야기 ) 어딘가 우리나라의 유교 남아선호사상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흥미로웠는데, 나라와 문화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암묵적으로 비슷하게 작용되어왔던 차별의 모습이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나아가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인권운동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쉽게 접하지 못할 수 있었던 이야기들.
저자가 생각해왔던 주제와 경험해왔던 상황에 대한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접할 수 있는데,
특히 이러한 부분과 연결지어 사례와 자료가 필요했던 분들이라면 유익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의 페미니스트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여성인 나에게 던지는 많은 내용들.
한동안은 이 책에서 담은 문장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보내는 나날이 될 것 같다.
성별 간의 갈등이 정말 심해지고 있는 요즘 이다. 그냥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느끼지만, 특히 온라인에서는 너무너무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콘텐츠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는데, 콘텐츠에서 조금이라도 민감한 내용이 나오면 정말 혐오 발언이 넘쳐서 댓글창을 보기 힘들어질 정도이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한 해석으로 많은 책들에서 언급을 하고 있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 여성들도, 남성들도 건강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성별 간 갈등이나 편가르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서로의 권리를 모두 존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지젤 알리미라는 인물에 대한 책이다. 페미니스트 누군가를 특정지어 알아볼 기회는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튀니지 출신의 지젤 알리미의 인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젤 알리미가 변호사로 활동하며 겪은 사례들은 정말 내가 책으로 읽어도 분하고 끔찍한 일들이었다.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남자가 문제야.' 라던가 '사회에서 남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라는 생각을 갖지 않고 개개인의 문제로 보기 위해 노력할 때가 많지만, 책에서의 사례들은 정말 사회 구조나 집단 문화에서 발생하는 명백한 성별 간 힘과 권리 차이에 의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보비니 재판, 자밀라 부파차 사건 등) 이런 일들이 생겼을 때 지젤 알리미는 살해 위협을 받는 위험에 처했음에도 용기있게 변호하고 나섰다. 어려서부터,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으로써 차별받아온 그녀가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런 그녀가 있었기에 현재 프랑스에는 여성의 권리 신장이 상당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지젤의 발자취를 보며 목숨을 걸며 여성 교육에 힘쓰는 10대 소녀 말랄라 유세프자이가 생각이 났다. 목숨보다 신념과 좀 더 나은 세상에 가치를 두는 멋진 여성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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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성의대의 #지젤알리미 #이재형 #안타레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980년 12월 23일. 프랑스에서 '성폭행 및 사회도덕을 저해하는 행위에 관한 법률'이 발표되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성폭행으로 일상이 망가지며 죽을 때까지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폭행을 가한 가해자들은 법망을 피해 가기 일쑤였다. 그런 가해자들을 재판으로 회부시키고 앞선 법률을 통해 성폭행이 범죄로 명시되기 위해 오랜 싸움을 이어나간 것은 그 누구도 아닌 페미니스트들이었다.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성폭행이 범죄로 여겨지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일명 '보쌈' 혹은 '보쌈하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표현했던 적이 있었다. 혼인을 하고 싶은 남자가 여성을 보(천)로 싸매어 납치해서 아내로 삼는다는 표현으로 쓰인다. 과거 여성은 순결을 잃으면 그 남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었다. 실제로 성폭행을 당한 여성에게 가해 남성과 이왕 이렇게 된 거 결혼하라고 재판에서 이야기하는 판사가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고 여성에게 유리한 사회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도 많지만 여전히 여성은 성범죄에 있어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도서 여성의 대의에서는 여성 인권 문제와 더불어 여성과 남성의 정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일생을 살았던 '지젤 알리미'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여성의 몸은 공공재?
'아이를 낳는 사람은 애국자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개인의 사정 등으로 인해 아이를 낳는 가정이 줄자 한국에서도 위와 같이 말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임신한 여성의 몸이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버린다. 강국을 만들기 위해 인구를 늘려야 하며 국력 강화를 위해 아이를 낳는 사람은 곧 애국자라는 이 말은 굉장히 위험하다. 여성의 몸은 국가의 인구를 늘리기 위해 존재하는 기계도 가축도 아니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2016년 대한민국 행정자치부에서는 지역별 임신이 가능한 가임기 여성의 인구수를 파악하여 친절하게 컬러로 출산 지도를 공개한 적이 있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체감하는 시대의 변화는 없었다.
'낙태'는 살인죄
낙태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낙태는 생명을 살인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으로 존재가 인정받는 기준은 '자율성'의 여부에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자율성은 생물학적 자율성으로 태야 스스로 영양을 섭취하고 배설할 수 있느냐의 기준이다. 태아가 위와 같은 자율성을 갖는 시기는 26주 이후부터라고 한다. 하여 임신 24주에서 26주 이전에는 이 자율성이 존재하지 않기에 인간의 생명이 자리 잡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전 세계 모든 생명과학 분야 학자들은 태아가 자신의 신체 기관을
통해 호흡, 순환, 배설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임신 24주에서 26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에 동의한다.'
- 페이지 227
그렇다면 낙태 반대자들의 주장은 무엇일까?
태아는 임산부. 임신과 동시에 인간(임산부) 과의 관계가 형성되어 인간관계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가톨릭교회가 낙태를 거부하고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는 까닭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라는 계명 때문이다. (참고로 로마 가톨릭(천주교)는 종교 재판으로 5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죽였던 역사가 있다. 또한 히틀러와 나치 일당과 손을 잡고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 학살 역사도 갖고 있다)
저자는 남성은 억압자인 동시에 남성과 여성의 억압적 관계에 묶여 있기에 남성과 여성이 온전한 권리와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남자답게'라는 굴레를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국민을 억압하는 나라는 '자유 국가'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도서에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여성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 동시에 남성을 해방시키는 일이 되고 이는 모두를 해방시키는 일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자유를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관계로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는 말도 된다. 하여 서로가 서로의 지지자가 되어 똑같은 권리와 자유를 가지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공평하게 나눠 가져 서로를 존중하는 날이 하루빨리 도래되길 바라본다.
『여성의 대의』의 저자 지젤 알리미. 지난 2020년 7월 28일 작고한 그녀는 20세기 최고의 페미니즘 활동가로 불린다. 변호사이며 페미니스트이자 정치가인 지젤 알리미가 프랑스의 여성 운동에 대해 남긴 이력은 화려하다.
<여성의 대의를 선택하다> 협회 설립해 조직적으로 여성을 지원하고
낙태로 기소된 여성을 변호한 보비니 재판에서 승리한 변호사로 3년 후 '자발적 임신 중단에 관한 법률' 제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1980년 '성폭행 및 사회 도덕을 저해하는 행위에 관한 법률' 제정의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여성의 대의』는 페미니즘의 한 획을 그은 지젤 알리미의 대표작이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녀의 첫 작품이다.
우리 세대에게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온갖 차별을 당할 인류의 절반이 된다는 의미였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말이다.
여성이 된다는 것은 열등감과 무책임이 주어진다는 뜻이었다.
지젤 알리미는 여성이 출생과 동시에 차별을 안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먼저 확실히 한다.
가부장제로 점철되어진 사회에서 남성은 출생부터 우월한 특권을 인정받는 데 비해 여성은 차별을 감당해야 할 존재로 인식된다. 이 성의 차별 위에 인종, 피부색, 계급 차별 등이 덧붙여진다. 가장 먼저 주어지는 차별. 그건 바로 성차별이다. 슬프게도 지젤 알리미는 자신의 출생을 예로 들어 독자에게 설명한다. 어머니가 지젤 알리미, 즉 딸을 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저자의 아버지가 실망해서 지인들에게 딸의 출생을 말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1남 2녀인 우리 가족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빠는 1남 1녀가 있어 마지막으로 아들을 기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막내가 딸이라는 말을 듣자 섭섭함에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셨다. 아들이 있음에도 또 아들을 바라는 가부장제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공통되는 제도라는 걸 말해주는 듯 하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억압은
그것에 희생당하는 이들의 암묵적 동의를 수반한다.
한편으로는 억압에 대해 희생자들이
불안감을 덜 느끼려고 해서일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참고 견디면서 스스로 격려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암묵적 동의... 나는 이 '암묵적 동의'라는 구절에서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딸이였기에 학업도 포기해야 했고 집안에 떠밀려 결혼해야했다. 결혼하셔도 여성의 굴레는 엄마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러함에도 엄마는 엄마와 같은 길을 나와 동생에게 요구하셨다. 학업을 포기하지 않게 한 것을 제외하고 엄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며 우리를 본인과 같은 삶의 테두리 속에서 살기를 종용하셨다. 결혼 후 이 제도가 여성에게 얼마나 불리한 제도인가를 알게 된 이후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여성에게 결혼 후의 삶이 훨씬 힘들 걸 알면서도 선택을 주지 않고 강제하셨나 생각하곤했다. 그게 바로 지젤 알리미가 말한 '암묵적 동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이 암묵적 동의도 다른 선택이 있다는 걸, 저항할 수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암묵적 동의'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지젤 알리미는 분명히 말한다. 낙태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하지만 여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임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정부에서 피임법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무성의로 인해 수많은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의 피해가 됨을 지적한다. 섹스를 출산의 도구로만 장려하기에 피임법을 알리는데 소극적이고 낙태를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이 현실에 지젤 알리미는 분노한다. 그리고 그 불리한 환경에 있는 여성들을 변호해나간다.
프랑스 식민지 튀니지 출생으로 프랑스 본토의 여자에 대한 차별과 식민지 차별을 모두 감내해 온 지젤 알리미. 그녀의 행보 하나 하나마다 여성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여성의 차별은 아무리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뿌리가 깊으며 어디서나 공통되는 현상이고 이 뿌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함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지젤 알리미는 여성들에게 남편에게서의 경제적 독립을 강력하게 제안한다. 경제적으로 독립되지 않는 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버지니아 울프 또한 경제력과 자기만의 방의 필요성을 말했듯 경제력이 없는 한 여성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육아 등 여성에게 현실적인 제약이 많은 사실을 떠올릴 때 과연 이게 최선일까라는 생각 또한 들며 더욱 많은 토론이 필요할 듯 하다.
이제서라도 지젤 알리미라는 이름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이 작품이 국내에 첫 소개되었는데 저자의 다른 책이 있다면 또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