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을 남긴 러시아 문단의 총아 '도스토옙스키'
무명작가를 "제2의 고골"로 거듭나게 해준 등단작
『가난한 사람들』은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시킨'과 고아 소녀 '바르바라 도브로숄로바'가 주고받은 편지를 서간체 형식으로 적은 소설이다. '마카르 제부시킨'과 '바르바라 도브로숄로바'는세상으로부터 일인분의 몫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받으면서 외롭고 비참하게 지낸다는 점이 닮았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은 편지를 통해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에게만은 존재성을 인정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가난하기 짝이 없는 생활 속에서도 서로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 연인 혹은 부녀 같은 사이로 그들의 관계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위하는지 만큼은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선량한 애정은 그러나, 가난을 이유로 번번이 가로막힌다. "불행은 전염병이에요,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져야 해요, 더 심하게 전염되지 않으려면.(134쪽)" '바르바라 도브로숄로바'의 말처럼 그들이 서로를 위할수록 선한 의지는 더없이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아무런 잘못도 없는 선량하고 성실한 이들을 어떻게 하면 구해낼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조바심과 함께 책을 읽어 나갔다.
바튜시카, 먹을 것도 없는 마당에 명예가 무슨 소용입니까. 돈이 중요해요, 바튜시카, 돈이. 그러니 그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세요!(218쪽)
서간체 형식이기 때문인지 소설은 무척 술술 읽혔다.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마카르'와 '바르바라'의 삶을 생각한다면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하루하루를 꾸려나가는 것조차 버거운 삶을 고려하면, 그들에게 있어 소설책은 하나의 사치처럼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바라'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푸쉬킨 전집을 구매한 일이 있었고, 『벨킨 이야기』는 '바르바라'와 '마카르'를 하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마카르'와 '바르바라' 같은 인물이 가난하고 비참한 상황 속에서 바라는 것은 돈 어마어마한 양의 재산이 아니다. "돈 버는 능력(89쪽)"만이 칭송받는 세상에서 그들은 자신의 명예, 품위와 체면, 또는 읽고 쓰는 행위를 보장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동등한 위치에서 악수를 나누는 행위가 그들을 살게 하고,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수군거림과 조소와 농담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돈에 쫓기는 처지를 생각한다면 명예나 품위 등은 군더더기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가난하고 불행했지만 '마카르'와 '바르바라'는 서로 밖에 기댈 데가 없었다. 벗어날 길이 없어 운명처럼 여기며 받아들이고자 했던 가난과 불행을 때로는 외면하고, 혹은 이겨낼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던 이유는 역시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틋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서로라는 유일한 희망 안에서 어떤 기적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가장 절실한 요소였던 '돈 버는 능력'을 신은 끝내 그들에게 주지 않았다. 누군가의 은총으로 굴곡진 삶을 간신히 넘어서도 불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의 기쁨을 잡아채 갔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쩌면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불행할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을 읽노라면 삶은 부정할 만한 일 투성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47세의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시킨과 17세의 고아 아가씨 바르바라가 주고받은 54통의 편지로 구성돼 있다.
4월 8일
더 없이 귀한 나의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
어제 난 행복했어요, 극도로 행복했어요,
더없이 행복했어요!
책을 다 읽고 다시 돌아와 이 첫 편지의 시작을 보자니 더없이 가슴이 아프다. 이것이 이 남자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읽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라 그것을 표현하기가 내겐 매우 어렵다.
그가 바란 행복은 오직 바르바라를 도우며 행복을 바라는 것 뿐이었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앉아서 일할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잠에서 깰 때도 나는 알 수가 있지요. 그곳에서 당신이 날 생각하고 날 기억하고, 또 당신이 건강하고 즐겁다는 것을.
누군가를 향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했을 때에 우리는 사랑이라고 답하게 된다.
먼 친척이라서 돌본다지만 특별한 애정이다. 중년이 넘은 남자와 이제 곧 여인이 될 소녀이기에 서로에게 누가 되지 않기위해 가까운 거리이지만 편지로 주고 받은 54통의 편지로 이 소설이 이렇게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이 놀라웠다.
바르바라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은 마카르 제부스킨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된다. 바르바나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극도로 행복했다.
그렇게 봄에 시작한 편지는 질은 가을로 넘어가며 좌절과 절망을 얘기해야 했다.
부성애적인 사랑으로 끝없이 서로를 걱정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에 반해서 지독하게 가난한 현실은 아프다. 가난한 사람들이 당하는 수모와 수치는 참 이상하다.
바르바나 역시 그저 살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맡아 열심히 해야했지만 몸이 점점 약해져서 일마저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진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까?
누구의 잘못 입니까?
돈은 대체 무엇입니까?
누가 우릴 귀히 여겨주고
존중이란걸 해준단 말입니까?
200년이 지난 현대의 우리의 모습과도 멀지 않은 익숙함이 올라와 책을 읽는 나는 아직도 슬프다.
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라는 권유에, 차도 못마실 형편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것을 죄스럽게 스끼는 어느 장면이 있는데,
자신에게 베인 가난의 찌질함을 미안해 하는 인물의 모습이 너무 아팠다.
마카르 제부스킨은 자기가 이미 절박한 순간임에도 더 절박해보이는 그를 도우려 자기가 가진 적은 돈이지만 전부를 주고 만다.
서로의 위기에 도움이 되었던 사람역시 형편이 더 나아서 돕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가난이 주는 질병까지 늘 함께 하여서 점점 약해지는 몸과 야윈 모습으로 그려질 때는 그 가난이 가슴을 찢고 들어왔다.
18세기, 페스트에서 보았던 광경들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축축하고 눅눅한 거리에서 옷은 헤어져 여기 저기 덧대어져 있고 부츠도 밑창이 훤히 뚫여 살이 드러나고 진창에 굴러 더러워진 채로 마지막 자존심과 체면을 잃지 않으려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연민과 사랑이 이 소설을 고전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게 깊은 한숨을 남겨버린 가난한 사람들은 그 내용에 관해서라면 무수히 많은 글이 있으니 생략하더라도 문장이 준 가난의 묘사를 만나고 나면 좀 달리 보이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쉽게 걸리는 감기로 잃는 사람들을 보며 그 절망감이 또 온 도시를 뒤덮고 있음에 무거웠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해한 거에요.
내가 뭘 원했는지,
내 가슴이 뭘 원했는지!
p 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백치,
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시키의 책을 시작하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정이 생기는 책이고 오래전 읽은 죄와 벌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p 134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편지에 쓰시기를 저한테 털어놓는게 겁이 났다고, 다 말해버리면 저와의 우정을 잃을까 봐 겁이 났고, 제가 병중에 있을 때는 도울 방법이 없어 절망스러웠고, 저를 보살피시려고, 병원에 안 보내시려고 가진 걸 전부 팔았으며, 돈도 빌릴 수 있는 대로 빌리셨고, 주인 여자와는 매일 껄끄러운 일을 겪으신다고 하셨죠.
하지만 이 모든 걸 숨기신 것이야말로 최악의 선택이었어요. 이젠 제가 다 알아버렸으니까요. 당신은 양심상 제가 알도록 할 순 없으셨던 거예요. 당신이 처한 불행한 상황의 원인이 저라는것을요. 그런데 이젠 당신의 행동이 저를 갑절로 더 힘들게하고 있어요. 저는 정말 충격에 빠졌어요, 마카르 알렉세예비치.
아아, 나의 친구님!
불행은 전염병이에요.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져야 해요,
더 심하게 전염되지 않으려면!
예전에 홀로 소박하게 사실 땐 겪지 않았던 불행을 제가 가지고 온 거예요. 이 모든 것이 저를 죽도록 괴롭게 합니다.
가난이 전염병이니 자기에게서 멀어지라고 말하는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가난이 사슬이 되고, 바다의 이안류를 만난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다로 끌려 들어가 는 위험에 처하는 모습들이 책에 가득하지만 그 안에서도 연민과 동정 사랑을 베푸는 사람 이 있어 왠일인지 아름답다.
자존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가 지키고 싶은 마지막 자존심은 바로 인권이자 인간애라고 생각하며 다시 복기해 본다.
p 144 축약
가난한 사람들은 까탈스러워요
가난한 사람은 걸레보다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존중이란 걸 받을 수 없어요
가난한 사람들은 전부 까발겨지고
감춰야 할 게 있어도 안되고
자존심 같은 것도 절대 안돼요
가난한 사람들은 왜 이걸 알고 있고
이런 것만 생각할까요?
왜? 그렇겠어요?
겪어봤거든요!
p 144
좋은 사람들은
황폐함 속에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행복이 절로 붙어다니는
이런 일이 왜 생기는 걸까요?
p 187
p 194
지금은 우울감이 심하게 들어서
내 생각에 깊은 연민을 끼고 있어요.
비록, 이기씨, 이런 연민으로 극복될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내 친근한 사람아,
인간은 아무 이유도 없이
자꾸만 저 자신을 망가뜨리고,
한낯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고,
무슨 나무 쪼가리보다 못한 존재로
자신을 등급 매기잖아요.
비교해서 표현을 해보자면,
나한테 구걸하던 그 가엾은 소년처럼
아마 나 자신도 겁에 질리고 내몰려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나도 중년이 되어 읽어보는 가난한 사람들은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pay it forward를 보게했다. 도움의 크기나 경중은 돈에 달린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 절명의 순간에 그가 위기에서 건져지는 것은 생명이 건져지는 것과도 같았다.
p 206. 위기의 순간의 도움
아기씨. 내 말 잘 들어봐요, 아기씨.
맹세컨대, 비록 내가 불행의 혹독한 날들 속에서 당신과 당신의 재앙,
또 나 자신과 내 굴욕, 내 무능력을 보며 정신적인 고통으로 죽어갔어도,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맹세컨대,
100루블은 그리 귀하지 않아요.
각하께서 친히 이 지푸라기 같은 놈,
주정뱅이의 미천한 손을 잡고 악수해주신 것에 비하면요!
그로써 그분은 나를 나 자신으로 되돌려 놓으셨어요.
그 행동으로 내 영혼을 부활시키셨고,
내 인생을 영원토록 달콤하게 만드셨어요.
난 굳게 믿어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앞에서
내 죄가 아무리 크다 해도
각하의 행복과 행운을 비는 기도는
하느님의 보좌에 상달될 겁니다...!
그분은 나를 나자신으로 돌려 놓으셨어요.
그 행동으로 내 영혼을 부활시켰고,
내 인생을 엉원토록
달콤하게 만드셨어요.
p 207
<가난한 사람들>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감사히 일고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첫 소설이자 출세작인 이 작품은 가난한 중년의 남자와 고아 소녀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큰 줄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도, 애끓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돈이 없어 벼랑 끝에 내몰린 '인간'을 들여다 본다.
두 남녀의 편지로 시작되는 소설은 바르바라의 과거를 서술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서간문 형식이다. 도입부부터 작가는 마카르의 편지를 통해 당시 러시아 하층민의 생활 환경을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그들의 삶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도스토옙스키가 가난과 사람을 분리해 놓고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의 궁핍한 모습을 그려냈다기보다는 돈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그로인해 달라지는 모습들을 말하고자 했던게 아닐까싶었다.
일단 마카르는 30년 근속에 행실이 바르고 성실한 하급관리다. 법규를 어겼다거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적이 없으며 누구에게 비난받을 만큼 큰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벌이가 넉넉해 여유로운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먹고 사는 데에 큰 문제가 없는, 그야말로 사회 구성원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는 인물상이다. 그런데 먼 친척뻘 고아 아가씨를 보고 사랑하게 되면서 헌신적으로 그녀를 돌봐준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카르가 바르바라에게 제 분수를 넘어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도 본인은 하숙비도 내지 못하고, 심지어 가불과 빚까지 얻어 요즘으로 치자면 파산할 형편에 놓인다. 이떄부터 마카르의 모습은 눈에 띄게 황폐해지고 자괴감에 빠진다.
마카르는 푸시킨의 <역참지기>를 읽고 너무나 현실적이고 살아있는 이야기라고 하면서 마치 자신의 얘기인 양 이입된다. 가난한 이들의 암울한 삶,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그들 방식대로의 비극을 안고 사는 귀족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저마다 불행을 안고 산다고 말하는 마카르를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자기가 쓰는 바로 이 소설 <가난한 사람들>이 지극히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하고자함은 아니었을까.
마카르의 처지를 대변하며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단추다. 실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마카르의 단추가 하필이면 상관 앞에서 뜯어져 나가고, 쉽사리 잡히지 않는 굴러가는 단추를 집기 위해 그 뒤를 쫓는 마카르의 모습은 돈을 구하기 위해 상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세상사 새옹지마라고 결국 이 난처한 상황이 그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그렇다면 마카르에게 헌신적인 사랑과 도움을 받는 바르바라의 상황은 어떤가? 그녀는 마카르가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록 말로는 돈을 아껴쓰라고 얘기하지만 그가 하는대로 다 따르며 호의를 다 받아들인다. 바르바라는 마카르가 파산에 가까운 상황에 처하자 그제서야 그를 호되게 나무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를 안심시켜 달라고 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대놓고 돈을 융통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재미있는 점은 그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다. 마카라는 바르바라를 아기씨, 선녀님, 내 비둘기, 내 천사님 등으로 부르고, 바르바라는 마카라를 주로 친구님이라고 부른다. 편지의 내용상 분위기도 마카라는 바르바라를 연인보다는 숭배하는 느낌이 크고, 바르바라는 사랑과 우정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듯 느껴진다. 마카라는 바르바라를 사랑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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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썼듯, 소설은 '가난'으로 인해 달라지는 인물들의 모습을 면밀하게 보여준다.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처세에 실패하고 경쟁에서 밀려나면 무능력한 스스로를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고 성격이 거칠어지며 자포자기하듯 건강을 돌보지 않는다. 사회 안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돈이 없으니 아파도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 어렵고, 마치 기다렸다는듯 죽음을 받아들인다.
마카르의 동료 예스타피 이바노비치는 시민의로서의 가장 큰 덕목은 '돈 버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궁핍한 사람에게 도덕은 그저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야망이 없는 것은 무능력을 넘어서 죄로 취급된다. 바르바라는 마카르에게 가난은 죄가 아니니 절망할 필요가 없으며 고상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가난은 유죄다. 헌신으로 포장된 두 사람조차 경제적인 상황이 몰리자 슬슬 서로를 원망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편지는 어느 순간부터 신세 타령으로 바뀌지 않았나.
다른 관점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르바라와 마카르의 대화에서 나오는 '쓸모'다. 바르바라는 연약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이기에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마카르는 떠나겠다는 그녀를 만류하기 위해 그녀의 '쓸모'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지만, 정작 그 역시 직장에서는 '쓸모'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는 간혹 인간의 존엄성을 들어 존재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인간을 '쓸모'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한다. 그런데 노년기에 접어든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자신이 사회 구성원으로 쓸모가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라고 한다. 이는 바꿔말하면 존재감이다. 마카르는 바르바라에게는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도 본인은 하숙비도 내지 못하고 이후에는 더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는 처지가 된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사랑 때문만일까? 이 사랑을 통해 마카르는 자신의 쓸모, 즉 존재의 이유를 찾았던 것은 아닐까.
이 소설에서 거의 유일한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안나 표도로브나. 그녀는 내켜하지 않는 바르바라 모녀를 집요하게 설득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후 그들이 의지할 데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임을 확인한 후 노골적으로 악담을 퍼붓고 모욕을 주며 혐오감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면서 그집을 방문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자비심과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모녀를 거둬줬노라고 자신의 선행을 강조했다. 그녀는 바르바라의 죽은 아버지를 비난하고 모녀를 괴롭히면서 왜 굳이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것일까? 또한 바르바라가 그 집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바르바라를 괴롭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안나와 바르바라와의 별다른 서사를 설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독자는 안나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 짐작해볼만한 점은 그녀가 바르바라를 괴롭힘으로써 마카르까지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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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할 정도로 헌신하는 마카르를 보면서 이후에 탄생할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 밑바탕에 자리한 것이 존재감이든 사랑이든 자존심이든, 무엇이든 간에 작가는 젊은 시절부터 숭고한 인류애를 열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족.
1. 마카르도 역시 수다스럽다.
2. 독서모임 중 한 팀의 1월 도서다. 어떤 얘기들이 나올지 무척 궁금하네. 마카르와 바르바라에 대해서는 다양한 얘기들이 나올 것 같아.
※ 출판사 지원도서
마카르 알렉세예비치와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는 좁은 마당을 사이에 둔 각기 다른 건물에 살면서 서로에게 편지로 자신들의 일상과 마음을 주고받는다.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아 신세가 되었고, 먼 친척 사이라는 마카르 알렉세예비치가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 그녀를 보호하고 보살펴 준다. 마카르 알렉세예비치는 자신의 적은 월급을 아끼고 쪼개어 자신에게 들어가는 생활비와 물품은 최대한 절약하며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가 원하는 것이나 필요한 것들을 사주며 도움이 되고자 했다.
이에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도움을 주었던 친척 안나 표도로브나가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에 대해 묻고 다니며 마카르 알렉세예비치는 그녀의 친척이 아니고 자신이 가까운 친척이라며,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가 자신이 베푼 은혜도 모르고 품위도 지키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는 건강이 좋지 못하여 자주 앓아누웠고, 마카르 알렉세예비치는 비록 자신은 잘 먹지 못하고 힘든 생활을 하더라도 그녀를 위해 자신의 돈의 대부분과 모자란 부분은 새 제복을 팔아 돈을 마련해 그녀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해 돈과 함께 그녀에게 보낸다. 이에 바렌카는 감사와 걱정을 표하며 마카르 알렉세예비치가 그녀의 집에 자주 방문해도 된다고 편지에 적어 보내지만, 마카르 알렉세예비치는 벌써 자기 하숙집에 그녀와 자신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돈다며 조심스러워하며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의 몸이 회복되면 밖에서 만나자고 말한다.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마카르 알렉세예비치의 호의에 답하기 위해 그가 이전에 알고 싶어 했던 그녀의 어릴 적 기록이 담긴 노트를 찾아 편지와 함께 보낸다.
그 노트에는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살던 시골에서의 이야기부터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후 안나 표도로브나의 집에 들어가 살던 시기에 포크롭스키와의 만남과 다툼, 우정과 사랑, 이별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그녀 곁에 마지막 남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암시하는 이야기까지 적혀있었다.
마카르 알렉세예비치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를 위해 봉급을 가불하고 자신의 옷을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그녀에게 옷과 내의, 모자 그리고 그녀가 부탁하는 물건들을 사주고 그녀를 극장에 데려가는 등 아낌없는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는 더욱 경제적 곤란을 겪게 되는데…….
이 소설은 나이 많은 하급관리인 마카르 알렉세예비치와 어린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가 주고받는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비참하고 가난한 삶에 대해 서로에게 소상히 적고 있다. 그들은 편지를 통해 서로의 삶을 위로해 주고 서로에게 살아가는 목표가 된다.
물론 그들은 가난하여 많이 배우지 못해 고상한 말을 쓰는 것은 아니다.
마카르 알렉세예비치는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를 만나기 전까지 세상에 혼자라고 느꼈다. 세상에서 온갖 설움과 무시를 당하던 그는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를 만나면서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며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낙을 느낀다.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는 그의 인생을 밝히고 가슴과 영혼을 밝히고 평화를 주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못한 게 아니고 충분히 존중받고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느끼게 해 준 존재가 바로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였던 것이다.
마카르 알렉세예비치는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고생하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들에게 가난은 집요하게 들러붙었다. 가난은 죄가 아니었지만 가난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무시와 경멸과 조롱 속에 살아가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의 불행 속에서 결국은 낙담해버리고 방황하는 영혼이 되어버린 마카르 알렉세예비치.
그는 가난으로 인해 극도로 겁에 질리고 극한으로 내몰려 술에 기대기도 한다. 노력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희망이 없는 삶에 낙담해버려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만 무너져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난으로 인한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심을 잃고 추락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따뜻하여 자신보다 어렵고 인생이 꼬여있는 같은 하숙집에 사는 고르시코프를 불쌍하게 여겨 자신도 돈이 궁핍함에도 불구하고 돈을 빌려준다. 그리고 그 사람을 따뜻하게 격려해 준다.
뜻하지 않게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가 마카르 알렉세예비치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되었음에도 마카르 알렉세예비치는 여전히 그녀로 인해 살아간다.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가 기쁨을 느끼는 것을 삶의 희망으로 삼아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가 당한 재앙과 불행 때문에 늘 우울하고 아파한다.
그런 그들에게 계속 불행에 불행만 덮친다. 둘은 서로의 비참하고 가난한 삶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가난과 고난과 불행을 막아줄 수 있는 현실을 택하게 되는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며 그녀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마카르 알렉세예비치.
그들은 그들이 바라는 행복을 찾았을까?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만 행복하다면 자신도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순수한 영혼의 마카르 알렉세예비치를 보며 순수하고 뜨겁고 진실한 사랑의 공명을 느꼈다.
마카르 알렉세예비치는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를 빛처럼 자신의 친딸처럼 가슴을 다 바쳐 사랑했다. 그녀의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만 살았다.
과연 그들의 사랑이 소설 속에서 주위 사람들이 비난했던 것 같은 남녀 간의 사랑이었을까?
이 소설을 통해 당시 러시아의 가난한 하층민들의 삶과 그들에게 결코 허용되지 않았던 자유사상과 신분제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 표출 등을 보며 그들이 느꼈을 수치심이나 외로움, 분노, 아픔 같은 감정들에 공감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