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에 학원물이라고 했다. 내가 선택하기에는 좀 애매한 취향. 하지만 이 낯선 조합이 왠지 매력적으로 보였던 이유는 뭐였던가.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읽기 시작했는데, 와우. 재밌다. 늦은 밤에 읽기 시작해서 거의 날을 새다시피 다 읽었다. 마치 내가 그 좀비에게 팔을 물려 벌벌 떨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실 내 팔에 빨갛게 물린 자국은 아파트 6층까지 올라온 모기 때문이었다는 건 안 비밀)
특이하게도 이 책의 배경은 1989년이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서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은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이 배경이 되었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설정에, 지금 봐도 다르지 않을 인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전한다.
안면도의 어느 학교에 열여덟 청소년의 캠프가 열렸다. 무려 1,000명이다. 이 캠프를 주관한 이는 다음 대선의 유력한 후보인 국회의장이었다. 그가 대선에 출마할 무렵 지금 열여덟의 청소년은 유권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청소년의 정치 관심을 일으키려는 목적이지만, 속세로는 자기 이름을 알리는 미리 선거운동이나 다름없다. 알게 모르게 캠프 인원을 채우려 여러 곳에서 동원되기도 했고, 몇몇 아이들은 부모님의 등쌀에 못 이겨 참가했다. 석영은 오토바이를 훔치고 아버지에게 떠밀려서 왔다. 미친놈으로 불리던 상훈과 함께 캠프 버스에 올랐다. 충청도에서 온 현웅은 어머니의 바람을 저버릴 수 없어서 참가했다. 국회의장의 쌍둥이 자녀 충걸과 유선도 함께했다.
이게 무슨 좀비물인가 싶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정치 캠프에 참가하고, 어쨌거나 시간만 보내고 돌아가면 그만이다. 특히 청소년의 반항하는 모습을 비춰주기에 이놈들 여기서라도 좀 정신 차리고 가면 좋으련만, 하고 혀를 차려던 찰나에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다. 권력자인 아버지를 배우고 작은 권력자가 되어가는 아들의 미래가 보였다. 그 권력의 부패를 미리 알고 돌려놓으려고 애쓰는 딸의 투쟁도 보였다. 무엇보다 세상의 축소판인, 권력에 휘둘리고 위계가 생기는 모습 그대로 캠프에서도 작용했다. 아이들은 힘 있는 자를 무서워했고, 힘을 가지려고 발버둥 쳤다. 힘을 가진 아이는 그 힘을 이용해서 권력의 제일 꼭대기에 서려고 했다. 아, 여기서도 똑같네. 이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면 배울 것을 미리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굳이 이 정치 캠프가 아니었어도 이미 충분하게 학교생활에서 겪었을 테지만, 여기까지 와서 세상의 쓴맛을 미리 보고 있다니. 거기에 더해진, 권력을 만드는 큰 사건은 이제 시작이었다.
학교에서 미친놈으로 불리던 상훈은 한 가지 실험을 계획하고 캠프에 참가한다. 집을 떠난 아버지의 기록, 기생충으로 인간의 뇌를 조종해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의 가벼운 의도와는 다르게 상훈의 계획은 이 캠프를 좀비의 탄생, 살인과 상해를 만든다. 그가 가져온 기생충 캡슐은 또 다른 아이들의 나쁜 계획에 쓰이고,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대규모의 살상 무기가 된다. 인간의 뇌를 조종해서 권력 위에 군림하려던 것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잔인한 결과를 낳는다.
이 돌연변이와 같은 기생충은 이제 페로몬 사용법을 알았고 집단이라는 개념도 알았다. 생존에 유리하게 바뀌는 것, 즉 작은 진화가 시작됐다. 현재가 처음 퍼트린 심상의 냄새는 아이들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감염된 아이들은 현재가 느긋하게 식사하도록 둘러싸고 보호했다. 마치 여왕개미를 보호하듯이……. (165~166페이지)
읽는 나도 놀랐지만,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행위였다는 게 더 놀랍다. 처음에는 피식 웃으면서 읽었다. 이놈들 참 꼴통들일세, 어른들 말을 그렇게 안 듣더니 관심도 없는 정치 캠프에 끌려와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겠군, 하고 생각했다. 상훈의 이상한 기생충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이 소설 무슨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SF인가 싶었다. 그러다 점점 일이 꼬이고, 이 기생충은 인간의 피와 뇌를 조종해서 자기 맘대로 지배구도를 만드는 게 놀라웠다. 이런 방식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렇다. 어디를 가도, 어느 시대를 봐도 그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힘의 방식이었다. 힘을 가진 사람은 힘이 없는 사람을 이용하고 때로는 짓밟기까지 한다. 그 권력을 마음껏 이용해서 더 많은 권력을 쌓으려고 애쓴다. 그 힘에 휘둘리는 이들은 점점 힘의 노예가 되어간다. 서글픈 삶의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놓을 수 없는 건 그 힘에 대항하는 또 다른 힘이다. 한 사람, 두 사람, 여러 명이 모이면 그 힘도 커진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이들이 배웠으면 하는 것도 이것일 테다. 연대. 옳은 뜻을 가지고 뭉치는 이들의 힘을 믿게 하는 것.
쌍둥이의 아버지가 차기 대권 주자이고, 어떤 식으로 힘을 쌓고 정치를 해왔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그 아버지의 방식을 아들이 그대로 물려받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배운 것으로 학생 신분에 그대로 이용했다. 그에 대항하는 딸은 언제나 당했고, 힘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 캠프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오히려 딸의 정직함과 정의가 이기고 있었다. 옳은 것을 쫓는 이들이 결국에는 이긴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이들은 무엇을 우선순위에 놓아야 하는지 배워간다. 상훈이 호기심에 기생충으로 권력을 맛보려고 한 건, 그를 외면한 주변의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회복제를 갖추고 기생충을 풀어놨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힘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 힘 위에 군림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상상만 해도 한 여름밤의 공포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바로 내 옆에서, 내가 같이 얘기하고 밥 먹고 했던 친구가 좀비가 되어 나를 물고 있다. 끔찍하지? 어떻게 해서든 그곳을 벗어나고 싶을 텐데, 안타깝게도 섬이었다. 누구라도 탈출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탈출하면 안 되었다. 누가 감염되고 누가 정상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택한 최선은 그 안에서 모두는 구하는 것이었다. 마치 갑작스러운 적의 공격에 지략을 짜듯이 역할을 분담한다. 치료제를 구하고, 만약을 대비해 좀비가 되었을 때 해야 할 방법까지. 혼란스럽지만 일사불란하게 협력한다. 같은 운명을 가진 이들이 같은 목적을 향해 갈 때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겠지. 섬에 갇히고, 도움을 구할 방법은 없고, 어떻게 해서든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로 뜻을 함께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하다. 서로 충돌하고 의견이 달라서 힘겨루기하다가도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마도 어느 시점에 지나면 희망을 버리고 모든 애들이 밖으로 뛰어나가려 할 거야. 우리가 계단을 만들어서 문을 뛰어넘으려 했듯이 아이들도 분명히 그런 시도를 하고야 말 거야. 이 안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니까. 지금 우리는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거야. 그 얼음이 부서지는 순간 우리 손으로 저 정문을 어떻게든 열어 버리겠지. 한두 명으로는 부족하겠지만 수십 명만 연합해도 저 문을 열거나 나갈 방법을 찾지 않을까? (180페이지)
좀비물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이렇게 만난다. 설명을 들으니, 좀비물에도 문법이 있다고 한다. 알 수 없는 과정으로 병원균이 감염되고, 감염된 한 사람으로 점점 주변으로 감염이 퍼지고, 한 번씩 물릴 때마다 좀비가 되는 방식. 세상은 좀비가 가득하고, 몇 명의 고군분투로 이 좀비 사태를 종식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 소설은 이 방식에 정치의 민낯과 1980년이라는 배경, 30년의 틈을 두고 비슷한 경험을 하는 부모 세대와 아이 세대를 이야기한다. 결국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같이 나아가는 것만이 위기 극복의 유일한 답이라는 걸까. 코로나 시국도 그렇게 잘 건너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게 된다.
페이지터너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소설이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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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치캠프는 여당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미래 유권자를 세뇌교육하고픈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그래서 정치캠프에는 이런 저런 학생들이 급조되어 모인 감이 없잖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유 토론이 주된 활동인데 사회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통제와 억압을 숨긴 말뿐인 자유를 내세웠다.
이야기는 의도치 않게, 캠프에 참여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좀비와 같은 상태가 되어버리고 이를 해독할만한 약이 구해질 때까지 좀비가 된 아이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대치한 상황 전개이다. 다만 이때 좀비가 된 아이들은 영원회복 불가 상태가 아니다. 그러므로 과연 좀비로 보고 처치해야 할 상황으로 판단해야 하느냐 아니냐는 인간으로서의 폭력성을 경험하게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치지 않으면 본인이 좀비가 되고 적당히 쳐서는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를 조정할 수 있는 벌레가 존재한다면
작가 <은상>의 추리소설 <선데이, 블러드 선데이 치열하고 찬란했던 그날> (빚은책들 펴냄)는 1989년 여름, 서해 안면도의 가상의 학교에서 열린 '올바른 정치관 확립을 위한' 켐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80년대 어느 정권에서 자행되었던 삼청교육대를 연상케 하는 켐프에 참가한 학생은 1000여명, 그 중 석영은 오토바이를 훔친 행동으로 아버지로부터 참가하도록 강요받았고, 국회의장 쌍둥이 충걸과 유선은 서로 다른 성격의 소유자이며, 켐프를 미래의 선거이용목적으로 주도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참가하게 되었다. 골치거리인 상훈, 충청도에서 주먹으로 유명한 친구까지 이들은 각 조별로 나뉘어 대표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다. 상훈은 아버지가 만든 이상한 약을 이용해 상대방을 복종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하게 되는데 사건의 발단은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상훈이 만든 이상한 약을 복용하게되면 눈이 붉게 변하고 처음 눈을 마주친 사람의 지시에 따르게 되는데, 유선은 자신의 경쟁 상대인 쌍둥이 충걸에게 영양제라 속이고 먹이려 한다. 하지만 실패하고 상훈으로부터 받은 약을 모두 빼앗기게 되는데 충걸을 따라다니던 친구가 설사약으로 오해하고 점심 식사 후 마시는 물통에 이 약을 타게된다. 물을 마신 친구들이 서서히 감염되게 되는데 해독제를 먹으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기억을 못하게 된다. 상훈과 석영, 유선은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게 되고, 사태는 것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상훈이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인가 하는 실험'을 제안한 것이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번진 것이다. 좀비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친구들을 구할 수 있는 해독제는 얼마되지 않는다. 이제 상훈은 해독제를 구하기 위해 이 켐프를 탈출해야만 하는데 높게 둘러싼 담장은 폐쇄된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좀비로 변해버린 친구들은 신선한 피를 필요로 한다. 산소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좀비는 멀쩡한 친구들의 몸을 물어뜯는다. 물린 친구는 좀비로 변하게되고, 통제를 해야하는 어른들은 사태의 본질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모두 좀비로 변하게 되는데, 그 중 국회의장의 참모로서 이 켐프를 제안한 현재는 종비들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변하게 된다.
이 돌연변이와 같은 기생충은 이제 페르몬 사용법을 알았고 집단이란 개념도 알았다. 생존에 유리하게 바뀌는 것, 즉 작은 진화가 시작됐다. 현재가 처음 퍼트린 심상의 맴새는 아이들의 머릿곳으로 파고들어갔다. 감염된 아이들은 현재가 느긋하게 식사하도록 둘러싸고 보호했다. 마치 여왕개미를 보호하듯이 ····· . - 본문 중에서 -
상훈과 석영, 유선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좀비로 변한 친구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충걸 패거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충걸의 패거리는 좀비로 변한 친구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게 된다. 상훈과 석영을 해독제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내보내게 되고, 이젠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변해버린 좀비들은 현재의 지시에 따라 감염되지 않은 친구들을 점점 죄어 오게 되는데, 현재를 없애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점점 옥상문은 무너지게 되고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유선을 제외한 친구 모두를 감염시키고 유선이 눈을 마주쳐 지시를 따르도록 하는 것, 유선은 현재를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감염된 상훈과 감염되지 않은 석영은 해독제를 구하기 위해 안면도 읍에 도착하고, 약국을 찾지만 해독제를 만드는데는 실패하고 경찰에 잡히게 되고, 결국 석영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게된다. 항당한 말을 하는 석영은 아버지에게 자신을 믿어달라고 하고, 아버지는 왜 오토바이를 훔쳤는지 묻는다. 석영은 훔쳤다기보다는 한번 타보고 싶어을 뿐이라고, 그럼 됐다고, 진심을 믿게 되고, 아버지는 과거 자신에게 신세를 졌던 친구 군부대 지휘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민소령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민소령은 군복을 벗을 각오로 석영의 말을 믿고 안면도 진입을 통제하면서 병원을 찾게 되는데, 또 한명의 진심을 믿어주는 의사의 도움으로 동물 구충제를 이용한 해독제를 만들게 된다.
학교안에 갇혀 있던 마지막 감염되지 않은 유선은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스로 감염되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 순간 해독제를 지닌 석영과 상훈, 민소령과 의사가 도착하게 된다. 몇명의 희생이 따랐지만 이들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 이 소란을 해결하게 된다.
1989년도라는 시대를 밝히면서 시작된 소설이 또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었지만 연결고리는 찾지 못했다. 나만 찾지 못한 것일까? 결국 짧은 시간 단위로 촘촘하게 전개되는 좀비물이라는 것, 그 안에서 이어지는 선택의 순간순간에서 발휘되는 그들만의 세상이 어른들과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가 아니었나 한다. 무더운 여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어야만 할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들이 끝까지 흥미를 증폭시켜준다. 지금 이순간 우리는 나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