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던 윌리엄 피게라스는 체제의 억압과 정신분열증으로 두배의 고통을 겪는다. 미국에서 살게 되면 혹시나 사는게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로 친척들이 사는 마이애미로 온 그는 곧바로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신세가 된다. 20년만에 처음 그를 본 친척들은 이 애물단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난감해하고, 결국 고모는 윌리엄을 보딩 홈(미국 사설 요양소)에 집어 넣는다. " 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면서...그렇게 해서 그는 내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에 일찌감치 도착하게 된다. 거대 자본 국가 미국의 부유하고 천국같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끔찍하다고 할 수 밖엔 없는 그곳에서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그런 삶에 적응해 간다. 정부와 원생의 친척들에게 돈을 받긴 하지만 최소한의 물자로 보호소를 운영하다보니, 원장은 집을 사고 차를 굴리지만, 원생들은 비참환 환경에 그대로 노출된다. 화장지조차 없는 화장실에, 개밥보다 못한 음식, 강간이 빈발하지만, 그곳외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그 지옥을 견뎌낼 수밖엔 없다. 인생이란 거대한 바다에서 이리저리 표류한 사람들은 마지막 정박지에 모여서도 안정을 찾지 못한다. 그러던중 정신병을 앓고 있는 프란시스가 들어오고, 사랑에 빠진 둘은 새로운 인생 계획을 세우게 된다. 과연 둘의 계획은 그들의 뜻대로 펼쳐질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마지막 희망을 위해 안간힘을 써보는데...
첫문장부터 나를 여지없이 사로잡았다. 이렇게 비참하지만 진실이 담겨있는 문장에서 눈을 떼기란 어려우니 말이다. 실은 너무 진실해서 속이 갑갑해왔다.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외면하고픈 심정이었다.
" 집 바깥에는 <보딩 홈>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나는 이곳에 내 무덤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삶에 절망한 사람들이 흘러드는 변두리의 한 보호소, 대부분이 미친 놈들이었다. 더러는 승자들의 삶을 망치지 말고 외롭게 살다 죽으라며 가족들이 버린 늙은이들도 있었다.
[여기서 잘 지낼 게야.] 고모는 최신형 시보레 운전석에 앉아서 내게 말한다. [더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 너도 이해하게 될 게야.] 나는 이해한다. 고모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때 구정물 찌들어 넝마 더미를 한 점 지고 공원 벤치에서 아무렇게나 먹고 자는 신세를 면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누추한 곳이라도 마련해 주다니." ---8p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경험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죄스런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라면 더 좋은 환경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그건 어렸을 적, 삶이란게 뭔지 몰랐을때 가질만한 나른한 감상이고. 나라도 이 고모처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더는 할 수 있는게 없다는걸, 그리고 그걸 고모 역시 좌절하면서 결론 내렸을 것이라는걸 안다. 어쩌겠는가. 인간은 신이 아니라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 있는 것을. 타인에게서 엄청난 것들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조만간 실망하게 될지니... 해서 모든 것을 이해한 채 저 지옥보다 못한 보딩 홈에 자리를 잡을 수밖엔 없던 작가의 기분이 이해가 되었다. 가장 기초적인 문제조차 해결되지 못하는 곳에서 정신나간 사람들과 비참한 나날들 보내야 했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도 강렬한 문체로 담아 책으로 남겼다. 사설 보호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탁월하다.그곳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절대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겠지. 그 누구도 저런 대접은 받지 않아야 한다고 우린 믿으니 말이다. 19세기 <올리버 트위스트>도 아니고, 20세기에도 인간을 이렇게 비인간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서도...어쩌겠는가. 나 역시도 할 수 있는게 없다. 아마도 그가 머물렀던 그곳이 예외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이나 예나, 그리고 미국이나 우리나라에도. 오히려 이만 못한 곳들이 수두룩 하겠지. 그런것에 생각이 미칠때마다...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걸까? 라는 질문을 요즘 자주 하게 된다. 다들 저렇게 비참하게 살고 싶지는 않지만 정신병이나 기타 질환으로 가족들을 진절머리나게 하는 사람들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내가 그런 입장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역시도 보딩 홈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엔 없지 않을까, 그게 아무리 비참하다고 해도 더는 할 수 있는게 없는 것이니 말이다.
종종 인간이라는 것, 산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가. 때론 죽음보다 비참한 삶이란게 분명이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 작가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책이 성공한 이후에 말이다. 젊은 시절의 이 비참한 삶을 기억한다면, 그가 47년이나 살아남았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처럼 느껴져. 그는 그래도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신---초반 도입부가 강렬하고 독창적이라 눈을 떼기 어렵긴 하지만, 그 뒤로는 내내 표현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습니다. 거칠다고 해야 하나 순화가 덜 되었다고 해야 하나, 자신이 경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줄은 알았는데, 그걸 걸러서 아이러닉하게 표현하는 법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니 몰랐다기 보단, 그럴 만한 정신력이 없었지 않나 싶네요. 경험의 중심의 서 있을때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자체도 대단한 것이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수치심때문에 거기서 벗어나기조차 힘들어 하니까요. 하여간, 재능이 많은 작가인 것 같은데, 이렇게 고생을 많이 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하긴 재능이 있건 없건 간에, 어떤 인간이라도 이런 고생을 하면 안되죠. 부처가 인간이 살아가다보면 생로병사의 고통은 피할길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이럴땐 위로가 됩니다. 나만 그런 것도 너만 그런 것도 아니란 생각에서 말이죠. 하여간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지만, 풀어가는 전개 자체가 그다지 매끄럽지 않다는 점은 알려 드려요. 그래서 애매작입니다. 비슷한 류의 강렬한 수작을 원하신다면 <방문객>--콘라드 죄르지 작--을 권해드려요. 마음 편하게 읽기는 애저녁에 그른 책이지만, 진실에 그토록 가까이 다가간 책도 드무니 말입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수작을 원하신다면,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