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다. 따뜻하고 담백한 에세이.박서보라는 화가의 아내, 윤명숙. 당신도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이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렇게 가족의 일에 집중한 삶을 꾸려온 세월이 60년이 넘은 80대 여인의 이야기.상상하기 힘든 그 세월과 화가의 아내라는 포지션 그리고 부담스럽게 고급스러운 책의 장정까지. 뭔가 독서를 시작하기 전부터 조금 주눅이 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참 좋다. 따뜻하고 담백한 에세이. 박서보라는 화가의 아내, 윤명숙. 당신도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이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렇게 가족의 일에 집중한 삶을 꾸려온 세월이 60년이 넘은 80대 여인의 이야기. 상상하기 힘든 그 세월과 화가의 아내라는 포지션 그리고 부담스럽게 고급스러운 책의 장정까지. 뭔가 독서를 시작하기 전부터 조금 주눅이 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표지를 넘겨 만난, 속표지의 손글씨부터 분위기 대반전. 이게 별 일이냐는 듯 무심하게 풀어 놓는 작가의 이야기는 진정 내공이 물씬 느껴졌다. 구글맵으로 새로운 동네를 익히고, 손녀의 스펙에 대해 이야기하며, 노트북을 들고 나와 카페에서 글을 쓰시는 할머니라니!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 시간 감각이 흐려질 찰나, 들려오는 625 전쟁 이야기는 낯설면서 그 시간을 견뎌낸 작가와 작가의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느 시간에도 삶이 있고, 그 시간을 쌓고 겪어온 분들의 이야기에는 힘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 작가는 대단한 이야기를 힘을 빼고 편하게, 거기에 유머까지 담뿍 실어 풀어내 주시니 책장이 후루룩 숨가쁘게 넘어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