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게으름 _ 김남준 / 13,000원
예쁘지 않은 산, 아무도 돌보지 않은 무덤들. 작은 비석 하나. 곧 쓰러질 듯 기울어져 있다.
어이쿠! 이런, 내 무덤의 비석이구나! 뭐라고 쓰여있나?
' 사람으로 태어나 그냥 있다가 죽었다.'
- 본문 중 -
뜻있는 인생을 살고 싶으면 부지런해야 함을.
뭐든지 제대로 전투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함을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매 순간 주신 삶을 감사하며 부지런하게 살아가야 함을 한 번 더 깨닫게 해준 책.
p.31_ 참된 사랑 대신 헛된 욕망으로 향했다. 영원한 것 대신에 시간적인 것을 향해 살게 되었다. 삿된 욕망을 따르려고 정해진 질서를 뒤집었다. 창조하신 분은 아래 두고 피조물인 자기는 위에 두었다. 거기서 인간의 불행이 시작된 거다.
: 아멘! 창조하신 분은 아래 두고 피조물인 본인으로 위에 두었기 때문에 인간의 불행이 시작됨을. 참된 소망과 헛된 욕망으로 영원한 것이 아닌 잠시 잠깐 이 땅의 부귀영화를 위해 그것을 따르고 살아가고 있음을.
그게 어떠한 것이든 땅의 것을 꿈꾸고 향해 사는 것이 아닌 일분 일 초도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게 없음을 인정하며 매 순간 전심을 다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살아가는 내가 되길 소망한다.
p.33_ 진리는 부지런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갖게 한다. 참으로 진리를 알면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말씀이 진리다. 그걸 주신 분, 알고자 하는 자에게 보이신다.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게 사람의 본분이다.
: 하나님을 아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니 그분을 알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사랑과 진리를 널리 전파하는 것이 나에 삶의 목표!
좀 더 눕고 좀 더 자자하며 게으름을 피울 때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나는 무조건 열심히 최선을 다해 부지런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나 하나님께 먼저 사랑받은 자로써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다.
p.78_ 하나님을 사랑함. 그게 지혜의 근본이란다. 지혜는 마땅한 질서를 아는 거란다. 진리는 그걸 알려주는 데 그 가치가 있단다.
진리의 가치는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거다. 하나님 사랑하면 그분 정하신 질서를 받아들이나니, 그것은 당신 안에서 만물을 복되게 하시는 질서다. 조화, 절제, 균정. 말문은 그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 하나님 안에서 왜 평화와 안식을 얻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곁에서 그분의 질서로 살아가니 너무 당연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어리석게도 우린 그 지혜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먼저 고백해 본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음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주님께 고백했다.
p.88_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어디서든지 그분을 뵙기에 감독하는 이 없어도 섬긴다. 자기 사랑하는 사람 감독하고 감시하는 자 없으면 섬기지 않는단다. 왜? 힘들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자를 찾으시며 대견히 여기신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이 부분은 참 많은 것들을 묵상하게 했다. 감독하고 감시하는 자 없으면 섬기지 않는 그리스도인. 누구를 위한 감독과 감시일까. 혹은 이것이 훈련인 것일까. 다른 이가 유사 그리스도인 인지 그리스도인 인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적용했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찾으시는 충성스러운 자인가.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중심 두고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되길 다짐한다.
p.116_ 은혜는 사랑의 감화다. 하나님 사랑에 감화를 받으면 열심히 생긴다. 아무것에도 열렬해지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삶이 지루한 건 끌리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사랑해도 그렇게 열렬할 수 있는데 그분을 사랑하면서 어찌 가슴으로 하고 싶은 게 없을까?
: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구.
세상을 사랑해도 그렇게 열렬할 수 있는 그분을 사랑하면서 어찌 가슴으로 하고 싶은 게 없을까
열정이 있게 하심에 감사
많은 비전들을 허락하 시사 늘 무언가를 끊임없이 도전하게 하심에 감사.
그 마음들이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열렬할 수 있었음을 알려주심에 감사.
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그 은혜로 내가 매일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하심에 감사.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많은 감사들이 흘러넘치며 오늘 남은 하루도 내일 그 시작도
모든 하루하루를 더 은혜롭게 사랑스럽게 활기차게 보내게 하실 것임을 믿게 하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평소 믿고 읽는 김남준 목사님의 신간책이라서 더욱 반가웠다. 그런데 책 제목을 보니 게으름. 수년전에 쓰신 게으름이 표지와 글을 조금 개정되어서 나왔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보니 책제목에 게으름 앞에 두글자가 더 붙어 있었다. 다시 라는 말이다. 그래서 책 제목은 <다시, 게으름> 이었다. 지금도 책장 한켠에 꼽혀두고 내가 게으를때마다 한번씩 다시 읽어서 한 3번이상은 읽은것 같은 <게으름> 책이 보였다. 게으름을 단지 나의 성향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게으름이 바로 죄이며, 또 신앙생활에서 정말 고질적으로 신앙을 방해하는 큰 죄라는 것. 또 이것의 뿌리는 자기사랑이라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예전의 경험도 떠올랐다. 그래서 더 읽고 싶었고, 책 표지부터 요즘 왜 유행하는지 모르지만 보라색으로 깔끔하게 보였다.
책을 받고서 앞표지의 동그란 거울이 먼저 특이하게 보였다. 그냥 넣어놓은것은 아닐테고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라는생각에 책을 통해 나의 게으름을 거울을 보듯이 보라는 의미로 생각했다. 그리고 책 제목인 다시 게으름 이라는 말. 게으름이 죄이기에 죄는 반복적으로 짓는 특성을 가지고 계속 그 죄에서 이기기위해 분투하지 않으며 마음놓았을때 어느새 다시 그 죄의 굴레속에 빠진 나를 발견할때가 많았다. 그래! 나는 지금 게으른가? 정말 주님오실날이 멀지 않았는데 세월을 아끼며 주님앞에 신실하게 충실한 종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글의 형태가 특이했다. 왜냐면 전작 게으름은 성경강해형식을 빌렸는데 이 책은 처음에는 마치 김남준 목사님께서 시를 읊으시듯이 글을 적으셨다. 책의 앞머리를 이렇게 시작하나 싶었는데 전체가 그런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새롭게 다가왔다. 왜냐면 전작의 목사님의 책을 여러권보았는데 내가 읽은 책 중에는 그런 책이 없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강해형식도 아니고 그냥 여러가지 인용구와 좀처럼 집중하기 힘든점도 있었는데 한구절 한문단 한편씩 읽고 나자 내안에 무엇보다 뚜렷하게 다가오는것들이 많았다. 마치 강해형식의 글은 머리에 쌓이는 지식같은 느낌이 강한데 시형식은 내 마음을 울리는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이 책을 통해서 목사님께서 이때까지 얼마나 많은 책을 섭렵하시고 점점 믿음을 잃어가고 세상에 눈을 흘기는 한국교회 성도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주님 오실날이 멀지 않았는데 지금 나는 어디에 시간과 물즐을 사용하고 있는가? 어디에 내 인생을 드리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우선 게으름으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게으름이 죄라는 인식을 가지지 못하는 이들이 읽고 게으름이 죄라는것을 다시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전작 게으름을 읽은 사람은 무조건 읽기를 추천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적으로 부지런하게 사는것 역시 하나님 보시기는 게으름이라고, 실제로는 게으름보다 더 악한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해야지만 그 방향도 역시 말씀을 향해 있어야 함이 중요하다는것이다.
게으름.
내가 요즘 빼먹지 않는 기도 제목 중 하나가 게으름에 관한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때 너무 태만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시작된 건지 모르겠는 영적 나태함 때문에 괴롭다가,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게으름만큼 무서운 적이 있을까. 먹고 사는 일에는 물론이고 신앙생활을 할 때 너무 큰 방해가 되는 것이 게으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영적 게으름에 관해서는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거 같다. 내 얘기다.
수년 전에 김남준 목사님의 <게으름>을 읽었다. 고백하자면 내용 자체는 잘 기억이 안 난다(변명하자면 2003년도에 출간된 책이다). 다만 내용이 어렵네 라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다시, 게으름>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아, 이 책도 그때처럼 어려운 책 아닐까? 했지만 문체가 한결 가벼웠다. 그렇다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가볍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간결한 문체가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묵직한 한방을 날리기도 하는 법이니 말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이렇게 게으를 수 없다. 예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 불평하고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지쳤을까. 대단한 일을 하고 사는 것도 아닌데 입에 피곤하다는 말이 붙었다. 다른 사람에게 티는 안 내려고 노력하는데, 아마 티가 났겠지.
희안한 것이 쉬자, 쉬자, 할수록 더 게을러지는 거 같다. 물론 ‘쉼’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쉼’과 ‘게으름’은 그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마냥 게으를 수 없다고 김남준 목사님이 써놓으셨다.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일에는 열심이다. 내 취미 생활 실컷 즐긴다. 잠도 잘 잔다. 그런데 예배와 봉사는 즐기지 못할 때가 많다. 벼락 맞을까봐 예배드릴 때도 있고, 사람과의 약속, 나와의 약속 때문에 자리를 지킬 때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덜 기뻐하실 거 같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르겠으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내 중심은 지금 어떤 모양일까 생각하니 두렵네.
이 땅에 태어나서 사는 이유를 재정립할 때다. 왜 태어나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가.
오직 하나님을 알며, 예배하며 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나. 게으름에 굴복해서 허송세월 보내다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낯부끄러워 고개 들지 못하는 내가 되지 않도록 바짝 정신 차리자. 진짜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