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유독 물건, 집, 장소 등등에 깃든 신?유령?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것 같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향수, 애착, 놓치고 싶지 않은 그 무언가의 염원이 담긴 이야기다.
[스키마와라시]는 오래된 건물을 허물 때 마다 나타나는 신비한 소녀를 지칭한다.
다로와 산타는 형제인데 건축을 하시는 부모님은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다.
다로는 고물상을 하는데 문손잡이에 관심이 많아서 문손잡이 컬렉터다.
산타는 화자이면서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산타는 세번째 라는 의미로 둘 밖에 없는 가정에 의미심장한 의문을 남긴다.
혹시 둘째 딸이 있었던 것일까? 혹시 지로라는 개가 둘째라는 의미?
산타에게는 물건을 만지거나 가까이 하면 그 물건에 얽힌 어떤 현장으로 떨어져 버리는 경험을 한다. 꿈인지? 환상을 보는 것인지?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인지는 처음엔 명확하지 않다.
단 형과 이 모든 것을 공유한다.
어느날 우연히 만지게 된 타일에서 전과는 다른 강렬한 열기와 장면을 느끼고 두 형제는 타일을 찾기 시작한다.
그 타일은 호텔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고 그 때의 타일은 어느 한 공장에서 나온 것이라는 추측을 시작으로 부모님과의 얽힌 사연이 펼쳐진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면, 그 아이는 미래의 씨앗 같은 게 아닐까? 콘크리트 잔해더미 속에서 도움이 될 만한 걸 찾고 있는 거야. 그 아이가 어린아이 모습으로 나타나는 점이 아직 미래가 있다, 장래가 있다고 가르쳐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스키마와라시는 '하나'를 찾고 있다는 목격담이 있다.
왜? 하나를 찾고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걸까?
끝날 때까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잔잔한데도 으스스하기도 하고 흥미진진하면서도 서정적이면서 스러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와 옛걸들에 대한 아련한 냄새가 풍기는 듯한 글이었다.
책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나는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인지도가 있는 작가를 알게 되고 역주행을 하는 경우가 참 많다. 특히 시리즈물의 경우는 마지막 권을 읽고 다시역주행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의 작가인 온다 리쿠 역시 상당히 유명한 작가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만나며 알게 되었는데, 서점 대상과 나오키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데, 온다 리쿠 작가의 경우 동시의 수상을 했다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책 속 주인공의 이름은 산타. 이름이 참 특이했다. 나 역시 산타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산타클로스가 생각났으니 말이다. 근데, 주인공은 이 이름에 상당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특히 이름으로 별명을 지어 부르는데, 일본도 비슷한가 보다. 나 역시 성에 대한 별명이 상당수 있었고, 당시는 너무 싫었다ㅠ) 그래서 그런지 8살 터울의 형 다로는 산타라고 부르기 보다 "동생아"로 부른다. 사실 산타는 일본어로 셋째 아들을 뜻한다고 한다. 근데 산타와 다로는 둘뿐이다. 8살 터울인 둘 사이에 누군가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관계로 답을 알 수 없다. 두 형제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할아버지의 직업은 목수다. 그렇다 보니 창고에 자재와 문고리 등이 상당한데, 형인 다로는 어렸을 때부터 문고리를 좋아하고 지금도 문고리를 비롯한 오래된 쇠 장식을 손질하기를 좋아한다.
언젠가 중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가 산타와 함께한 여자아이를 본 적이 있는데, 산타는 그 아이를 혈연관계로 소개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무 기억이 없던 산타는 형 다로에게 이 이야기를 하게 되고 형은 뭔가에 동요하는 눈빛을 띤다. 그 존재에 대해 형은 스키마와라시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있는 단어는 아니고, 다로가 만든(실제로는 작가가 만든) 단어이다. 스키마와라시는 극간동자. 기억에 깃들어 있는 정령이라 말할 수 있는 존재인데, 그들의 입으로 단어를 뱉은 후, 스키마와라시가 그들의 삶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얼마 후 가게를 찾은 주위 사람들을 통해 들은 스키마와라시의 존재. 건물 철거 현장에 흰색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쓴 여자아이를 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타일, 문고리, 장신구... 오래된 물건에 손을 대면 산타는 뭔가를 보게 된다. 과연 산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 것일까?
사람들은 새 물건,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오래된 것, 허물어져 가는 것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물건에 담겨있는 추억, 기억, 소중했던 감정들이 마치 정령이 되어 깃들여 있는 것처럼 주인공 산타를 통해 그 기억을 조금씩 일깨워준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나 또한 책을 읽으며 추억을 곱씹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는 별명이 정말 잘 어울리는 작가 온다 리쿠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보고 싶다.
나를 일본소설의 세계로 인도한 작가 중 한 명인 온다 리쿠. [밤의 피크닉]을 시작으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 [흑과 다의 환상],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등 그의 작품이라면 닥치는대로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무슨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서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련한 향수같은 것이 느껴진다. 처음 온다 리쿠의 작품이 국내에 알려질 때 그를 향해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는 문구를 사용했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정말 '노스탤지어'로 남게 된 것이다. 다행히 내 책장 한구석에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추억의 작품들.
내가 기억하는 온다 리쿠에 관한 이미지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어쩐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소재를 다루었다는 것. 어쩌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잘 몰랐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온다 리쿠의 작품을 읽을 때만은 메시지에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의 세계에 푹 빠져서, 이번에는 어떤 내용인지 한 번 들어보자!하는, 소설의 바다에 잠겨 있는 듯한 그 느낌이 무척 좋았었다. 담겨 있는 메시지를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그런 작품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 때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난 온다 리쿠의 [스키마와라시]는, 그래서 작가의 예전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비하고 기이한 소재를 다룬다는 점은 예전과 비슷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발판을 두고 있다. 물건이나 장소에서 '그것'을 느끼는 산타와 골동품점을 운영하는 그의 형 다로는 철거되는 장소에 출몰한다는 '스키마와라시'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존재의 정체를 찾아다닌다. 이른바 사람의 기억 사이에 스며든다는 스키마와라시. 산타를 강하게 부르는 어떤 타일과 그 타일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장면들, 그리고 '스키마와라시'라 생각되는 여름 옷을 입고 곤충채집함을 들고 다니는 여자아이. 대체 무슨 조합인가 싶겠지만 이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들이 모여 '한여름밤의 꿈'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아이가 어린이에다 여름옷을 입고 있는 건 '일본의 여름'을 나타낸다는 말도 맞잖아. 일본의 고도 성장기, 한창 발전하는 계절이라는 이미지를 반영해 여름의 아이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식으로 나는 납득했는데."
"그래도 노인이 지혜와 경험을 상징한다면, 아이는 희망을 상징하는 것도 틀리지 않잖아?"
p 300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작가는 지나간 시대와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의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지만 여기에 특유의 '노스탤지어'라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해냈다. 여자아이로 대변되는 과거를 향한 기억은 아쉽고 그리운 것이지만, 그 아이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시공간을 통과해다니는 모습을 통해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팬데믹으로 모두가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서, 작가는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언젠가 이 문도 우리는 통과해 갈 것이라고, 모든 것은 지나간 일이 될 것이라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 이렇게 살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는가 하고.
몽환적이고 신비한 온다 리쿠의 작품에서 으스스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장소들이 주는 특유의 음침함. 하지만 [스키마와라시]에서는 그런 으스스함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밝음이 느껴진다. 곳곳에서 오싹해지는 장면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그리 어둡지 않다.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밝은 표지와 담담하게 진행되는 문체 때문일까. 누구나 겪을 수 없는 그런 소재를 다루고는 있으나 괴이하다거나 무섭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쉬웠으나, 이것은 이것대로 또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애정하는 작가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로 짜잔! 등장해주어 반갑고 기쁘다.
**출판사 <내친구의서재>를 통해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내친구의서재 출판사에서 출판한 온다리쿠 작가님의 스키마와라시를 읽고 작성하는 리뷰 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을 작성하는 리뷰이므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를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100프로 페이백 상품으로 나와서 대여로 읽어봤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고 작가의 필력도 좋아서 술술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