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뒤마 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그 유명한 『삼총사』와 『몽테스리스토 백작』이다. 물론 다 읽어봤느냐고 묻는다면 일단 생각나는 작품은 『삼총사』다. 아이들이 읽는 축약본으로 여러 번 읽었었지만 정작 제대로 된 판본은 읽지 않았다는 게 조금 민망하긴 하다. 흔히 자주 하는 말처럼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읽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번 작품 『몽테크리스토성의 뒤마』를 읽기 전까지 뒤마 흑인 혼혈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프랑스 작가였다는 것 정도였다. 책을 읽으며 그가 후작인 아버지와 흑인 노예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 속에서 언급하는 게 있다. 뒤마가 마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고 있을 때, 그가 태어난 곳을 이야기했더니 그 곳의 역사를 아주 상세하게 읊고 있었다. 급기야 뒤마의 이름까지 나왔는데 그가 흑인이라고 했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질문에 마부는 한 권의 책을 언급하며 그 곳에 모든 역사가 숨어있다며 달달 외웠다고 했다.
뒤마는 특별히 흑인에 대한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흑인으로 불리고 있었음을 일화처럼 말했을 뿐이었다. 뒤마가 『삼총사』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큰 성공을 거두어 집을 지어 사람들로부터 '몽테크리스토성'이라고 불렸다. 그곳에서 아주 많은 동물들과 함께 기거하게 되는데 그 일화들을 말한 책이다. 몽테크리스토성에 프리차드라는 사냥개가 들어오면서 부터 글이 시작되어 프리차드가 죽을 때까지의 내용이 쓰여진 글이다. 물론 프리차드와 함께 부록처럼 딸려온 이가 있었으니 그의 정원사 미셸이다.
몽테크리스토라는 이름의 집에서 살게 된 나는 방문객이 있긴 했지만 주로 혼자 있었다. 나는 고독을 아주 좋아한다.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 고독은 안주인이 아니라 애인이다. 일을 하는 사람, 특히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고독이다. 사회는 육체를 달래주고, 사랑은 마음을 채워주고, 고독은 영혼의 종교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고독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지상천국의 고독, 다시 말해 동물로 가득 차 있는 고독을 좋아한다. (16페이지)
수많은 동물들이 그의 저택을 점령하지만 그는 관여하지 않았다. 모든 선택을 정원사 미셸의 뜻에 맞췄다. 사냥개 프리차드는 남의 사냥감을 훔치는 게 예사다. 사냥을 좋아했던 뒤마가 사냥 친구들과 함께 프리차드를 데리고 사냥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의 사냥감을 훔쳐 달아난 일화를 말하는데 뒤마는 동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누군가의 손님이 찾아왔을 때도 뒤마는 늘 연재소설을 쓰느라 바빴다. 집안 일의 많은 부분을 아들 알렉상드르에 맡겼고 그는 글을 쓰는 일을 했다. 누군가가 뒤마에게 동물들을 판다면 돈을 주어 구매를 했고, 닭에게 해를 끼쳐도 두고 보자는 주의였으며, 미셸에게 맡겼다.
이웃들에게서 구매한 많은 동물들을 보며 그가 꽤 부유한 생활을 했었다고 생각했었다. 책의 뒷편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니, 단돈 20프랑을 들고 아들의 별장에 찾아와 빈털털이로 사망했다고 하니 그가 경제적으로 상당히 곤란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가끔 미치도록 화나게 만들기는 했지만 프리차드에게 큰 우정을 품고 있었다. 정신력과 애정을 가진 인간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경이로움과 독창력을 가진 유일한 개였다. (348페이지)
말 잘 듣는 하인은 아니었지만 친구 하나를 잃은 것이오....., 그 불쌍한 것을 잘 씻어 천으로 덮어 정원에 묻고 이런 묘비명으로 무덤을 만들어줍시다. (349페이지)
사냥개와 한 집에서 기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 같다. 저택에 찾아온 많은 개와 닭들, 앵무새 등 동물원처럼 많은 동물들과 함께 했던 뒤마의 일상을 알리는 글이었다. 또한 뒤마가 프리차드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 부었던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프리차드가 독수리에 의해 한쪽 눈을 쪼이고, 다리 하나를 잃었던 일, 결국 이웃집 개에 의해 죽자 매우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동물도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면 사람보다 더한 애정을 쏟는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긴 여행이든 짧은 여행이든 여행은 내게 두 가지의 기쁨을 안겨준다. 떠나는 기쁨과 되돌아오는 기쁨. 여행 자체의 기쁨은 언급하지 않겠다. (103페이지)
삽화가 여러 장 들어있다. 한 손엔 원숭이를 다른 한 손엔 앵무새를 들고 있는 그림하며 사냥하는 모습 등 다양한 그림이 실려 있어 에피소드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뒤마의 삶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몽테크리스토성에 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손님은 자주 찾아오지 않아 많은 글을 쓸 수 있었고, 좋아하던 사냥을 할 수 있었던 점, 무엇보다 좋았던 건 많은 동물들과 함께 있었을 때가 아니었을까.
알렉상드르 뒤마. 하면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떠오른다.
작품 속 주인공 이름으로만 알았는데 동명의 성이 실제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이 책을 통해.
뒤마의 가장 전성기에 지어진 성이었고, 엄청난 건축비가 들어간 이 성에서의 삶.
그 자잘한 일상을 매의 눈으로 포착해서 글을 썼다.
이 책은 뒤마의 신문에 실린 글들은 모은 책이다.
뒤마는 흑인 혼혈이었다. 이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 책을 통해.
안다고 했는데 알았던 게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저 작품 몇 개를 읽었을 뿐.
뒤마가 다작가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책은 그런 뒤마를 조금 더 알게 되는 책일 거 같다.
19세기 흑인 혼혈 다작가 뒤마
그럼에도 꼬인데 없이 느긋하고 유쾌했던 그를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프리차드라는 개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각종 사고를 도맡아 일으키고,
알렉시라는 흑인 하인의 당돌함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는데 뒤마가 호인이었는지 호구였는지 나도 헷갈린다.
이 에세이는 뒤마라는 작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글마다 위트가 넘치고, 뛰어난 관찰력 덕분에 그가 사람을 얘기하는 건지 동물에 대해 얘기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동물들의 행동을 빗대어 인간을 설명했는지도 모르겠다.
프리차드가 등장했다. 두 귀가 나란히 바르고 겨자색 눈에다 누리끼리한 털 그리고 꼬리 부분에 멋진 깃털을 달고 있었다. 사실 그 꼬리 깃털 빼고는 못생긴 동물이었다. 그런데 내가 세네카의 『비종교성 작가들 선집』에서 배운바 인간을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되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는 “옷차림새로 사람이 바뀌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이런 판단이 인간에게 적용된다면 개에게도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터.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있어서 그런지 마치 내가 뒤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간혹 사실을 확인하는 듯한 어법 때문에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느낌도 든다.
나는 고독을 아주 좋아한다.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 고독은 안주인이 아니라 애인이다. 일을 하는 사람, 특히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고독이다. 사회는 육체를 달래주고, 사랑은 마음을 달래주고, 고독은 영혼의 종교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고독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지상천국의 고독, 다시 말해 동물로 가득 차 있는 고독을 좋아한다.
짐승은 싫어하지만 동물은 좋아한다는 뒤마.
그래서인지 그의 성은 사람보다 동물이 더 많았다.
원숭이 3마리, 앵무새 2마리, 고양이 한 마리, 꿩 한 마리, 수탉 한 마리, 12마리의 암탉, 독수리 한마디, 다섯 마리의 개들.
조그만 동물 왕국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애도하는 뒤마의 이야기는 짤막한 에피소드와 함께 다채롭게 이어진다.
두께에 비해 가벼운 이 책은 들고 다니며 짬짬이 읽기에 좋다.
명성에 걸맞은 대작들만 남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남긴 뒤마의 모습에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람이 갑자기 가까운 사람이 된듯한 기분이다.
뭔가를 알아가는 게 즐거운 건 당연한 거지만, 몰랐던 누군가를 새롭게 알게 되는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책은 알렉상드르 뒤마를 새롭게 되살려 놓은 책이다.
만약 뒤마가 프랑스에서 태어나지 않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삼총사나 몽테크리스토 백작같은 작품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수다스러운 삼촌의 옛이야기를 남김없이 들어준 조카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