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 아버지가 가져오신 유럽 화폐 포스터를 방 벽에 붙여놓고 유럽 언어들의 다양성과 유사성을 논하기도 하고, 옆집 아저씨에게 선물 받은 독한 사전, 빌려보게 된 영어사전에서 어원 설명을 읽으면서 언어에 재미를 느꼈던 저자였다. 고등학교 시절 주요 일과가 여러 친구한테 영한사전을 빌려서 비교해 보는 것이었다고 하니, 자칭 언어를 두루 맛보고 즐기는 '어도락가'라고 칭하는 그의 모습은 아주 오래전 부터 시작되었던듯하다.
나는 주로 유럽 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 현재 유럽연합 공용어는 스물네 개인데, 그중 실무 언어에 속하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의 주요 언어를 비롯해 열아홉 개 언어를 번역했다. 유럽연합 공용어에 속하지 않는 유럽 언어도 있고 아시아 언어도 있기에 번역 경험만 따지면 스물다섯 개쯤 된다.-p14
하나의 언어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도 어려운데 스물다섯 개의 번역경험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대학시절 시험, 취직, 진학같은 뚜렷한 목표는 없었지만 하루 하루 공부를 즐기는데 큰 의미를 두었다는 저자가 그렇게 즐기던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는것같다.
여러 언어를 공부하면서 어원 탐구를 통해 뿌리를 캐는 즐거움도 크지만, 하나의 뿌리에서 어떻게 수많은 낱말이 서로 맞닿는지 알아내는 데 쏠쏠한 재미를 느낀다는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있었다. 200권 정도의 종이책 사전과 온라인 사전을 들여다보며 언어의 우주에서 놀며, 어원 탐구를 좋아했던 그에게 번역일은 천직이다싶다. 언어는 나라별로 다르지만 어원이 같은 단어, 어원은 같지만 의미는 조금씩 달라지는 단어. 그런 것을 알고 있을 때 번역에서 오역을 줄일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발 더 나아가 저자는 각 나라의 사투리를 파악함으로써 매끄러운 번역을 하는 예도 보여주었는데, 형식적인 면에서 어원을 안다는 것은 번역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그외, 번역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알 수 있는 부분들을 정리해보았다.
번역은 적어도 두 개의 언어를 비교하여 대조해야한다. 장르나 톤을 따르지 않고 마구잡이로 옮겨서는 곤란하다. 원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원문에서 한량없이 벗어나거나 한껏 윤문하려는 충동도 억제하는 것이 좋다. 번역은 딱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정답 후보군에서 적어도 오답은 고르지 않는 것에 가깝다. 오역은 쉬운 말에서 더 쉽게 생길 위험도 있다.
번역에 있어서 우리 말을 제대로 쓰는 것도 중요할 수 밖에 없기에 한국어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 채식주의자> 에서 '안방'이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로는 침실, 거실로, 영화 기생충에서 '짜파구리'가 ' 람동 ramdon[ramen+udon]' 으로 번역이 되는 과정을 통해서 문화의 이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한국어의 한계도 있고, 아직 어려움이 많지만 우리 문화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기에 앞으로 더 신경써야하지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바램도 가져보았다. 형용사와 동사를 잘못 사용하고,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별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거나하는 맞춤법에 관한 문제, 학술어를 순화하려다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예, 일본어 몰아내기를 강박적으로 하다보니 생기는 문제들등. 꼭 번역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글을 쓸때 제대로 알아야 할 사항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한국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사라져 가는 모어의 어휘나 표현을 되살리고 싶은 일종의 사명감으로 순우리말을 찾아쓰기를 한다는 그의 말에 우리말의 정체성을 살려줄 것같다는 믿음이 갔다.
말과 글을 잘 다루려면 규범언어와 실제언어 사이에서 줄타기도 하고 줄다리기도 해야 한다. 줄타기와 줄다리기를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언어를 잘 다루려면 갖춰야 하는 문법적 지식이 바로 그런 힘이다. 언어 사용을 다스리는 언어 규범의 강제성과 편협함이 싫다고 무조건 거부할 게 아니라 알아야 제대로 된 비판도 나온다.물론 어법, 문법 , 맞춤법이 꼭 우리의 적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지피지기의 자세로 임해야 그것들을 잘 부릴 수 있을 게다.-p 289
그의 직업인 번역가로서의 모습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고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언어를 다룰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궁금증을 다 해소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특별한 노하우는 없었다. 가장 큰 노하우라면 언어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라고 해야할까?
한국외대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면서 포르투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 러시아어, 인도네시아어과 수업을 한 번 이상은 들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본격적으로 라틴어를 공부했고, 중국어는 30대 때부터 시작했다.대전시민대학 외국어 강좌를 통하여 아랍어, 폴란드어, 루마니아어, 페르시아어 등을 번갈아가며 2년쯤 들었다.
구체적인 방법이라고 하면, '문법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우기보다는 기초를 닦고서 바로 텍스트로 들어가 어휘 및 문장과 함께 익히는 편이다. 문법은 어차피 언어를 공부하면서 그때그때 참고해야 되며, 어휘도 그렇듯이 따로 떨어져서 외우면 효과가 덜하기 때문이다.' 는 정도였지만, 여러 언어를 동시에 잘 하기위해서는 번역을 위해서도 그랬지만 어원을 탐구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듯했다. 지금의 나에게는 무리여서 저자의 멋짐으로 남겨두어야 할듯하다.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본어 공부에 도움이 될듯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좋아한다는 괴테의 말, '서두르지 않으나 멈추지 않고'라는 말과 외국어가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일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번역기 있으니 대화는 번역기를 이용하면 되고, 영화는 자막으로, 책은 번역본으로 보면 되는데 무슨 필요가 있냐고. 하지만, 난 몰랐던 것을 하나씩 알아나가는 것이 즐거워서 하고 있다. 저자의 말을 들으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더 즐겁게 해나갈 수 있을것같다. '서두르지 않고 멈추지 않고' 공부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기회를 만날 수도 있고. (희망사항이다)
언어를 즐기고, 즐기던 언어가 직업이 되어 번역가로서 멋지게 일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이어가고 있는 저자는 글에 유쾌한 에너지를 담아냈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러 나라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니 여러 언어에 대한 연관성과 차이점등을 알 수 있는 어원에 관심이 생겼다. '꼰대'와 '라떼'에 대해서도 어원으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번역가로서의 고심하는 흔적들을 보니, 번역본을 읽을 때 어색하다고 투덜댈 것이 아니라 조금 이해하려는 마음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어의 우주에서 유쾌하게 항해하는 법'을 통해 유쾌한 책 읽기를 했던 시간이었다.
YES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두르지 않으나 멈추지 않고, 'Ohne Hast, aber ohne Rast'
◈ 외국어를 잘하겠다면 하나와 사귀는 게 낫겠으나, 외국어와 자라겠다면 여럿과 어울려도 된다.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스와티어, 포르투갈어, 태국어, 말레이시아어... 여러 외국어에 집착하지만 늘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잘하진 못해도 언어와 함께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심어준 문장이다.
◈ 이런 작은 앎의 벽돌을 쌓지 않고서는 큰 지식의 성곽을 지을 수 없다. 오늘도 한 땀 한 땀 지식의 수를 놓으며, 내 삶의 자양분이 되는 언어의 재미와 의미로 나를 채우는 동시에 남들과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한다.
조급함으로 인해 이것저것 다 손대다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전부 놓아버리곤 하는 나에게 큰 조언이 되었다. 작은 앎의 벽돌, 하루에 쌓을 수 있는 벽돌은 결코 많지 않지만 조급해 하지 않고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겠다. 오늘 단 하나라도 쌓지 않으면 성곽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지을 수 없기에. 또한 나만을 위한 지식의 성곽이 아니라, 남들과 나눌 수 있는 배움을 지속하고 싶다.
◈ 그런데 특히 한국과 같은 단일 언어 환경의 담화 단위에서 자연스러운 외국어 억양이 나오기는 매우 힘들다. 우리나라의 외국어 구사자에게 그 이상까지 요구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으니 자신의 억양이 '네이티브틱'하지 않다고 지레 좌절할 건 없다.
결론은 자기에게 잘 맞는 만큼의 외국어를 하면 된다는 얘기다. (...) 굳이 비굴해지지는 말자
어차피 외국어로 자연스러움만을 추구하려는 게 사실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틀린 말을 골라서 할 필요는 없으나, 자연스러움에 너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얽매이지는 않아야 바람직하다.
이 부분은 나에게 큰 위로와 도전이 되었다. 십여년째 영어를 붙들고 있지만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늘 영어에 있어서는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고, 영어를 늘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위로가 되었던 듯하다. 잘하지 못해도 비굴해지지 말자. 자연스러움에 너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얽매이지 말자.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언어에 대한 사유가 굉장히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종종 나오는 언어유희들조차 수준이 높았다.
또한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왜 이 책의 제목을 <언어의 우주에서 유쾌하게 항해하는 법>이라고 지었는지도 절로 공감하게 되었다. '언어의 우주'라는 말도, '유쾌하게'라는 말도, '항해'라는 말도 그 어느 것 하나 이 책에서 넉넉히 설명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단순히 언어를 배움의 대상으로 봐왔던 나와는 달리, 언어를 우주로 보고 정복해야할 행성이 아니라 유쾌하게 항해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신선했고 나도 그런 태도를 배워 언어를 대하고 싶어졌다.
YES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는 일은 습관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얼굴을 씻듯 밥을 먹듯' 새 언어를 공부한다는 저자의 노력이 예사로운 것처럼 표현되어 있어도 곱씹을수록 비범했다. 그 꾸준함이 언어 공부에 있어 가장 큰 비결이자 어려움일 것이다. 앞부분만 닳은 교재 몇 권씩은 다들 가지고 있을테니. 책을 읽기에 앞서 15개 언어를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한국어를 하는 입장에서 영어를 파다가 다른 언어 하나만 더 배우려고 해도 그 세 개를 모두 잃게되는 피해자 모임에 가입된 회원으로써 순수한 의문과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언어를 공부하고도 머리속이 괜찮은건지. 그동안 내가 어렵고 힘들었던건 기분 탓이었던걸까.
외국인을 만나거나, 해외로 여행을 갔을 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세계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성취와 경험만으로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확 달라진다. 어린시절부터 또 학창시절 교과과정에서 대부분 배웠을 영어지만, 보통 실전에서는 기초적인 회화 정도가 가능할 한 가지 외국어를 통해서도 이렇게 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는데, 저자처럼 많은 언어를 알게된다면 물리적인 거리나 생활에서의 이점을 얻게될 뿐 아니라 사고와 지식의 근본적인 구조가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언어의 뿌리를 연결시키는데서 재미를 찾고 워낙 많은 언어를 다루다보니 저자의 눈에 들어오는 세세한 부분(집이 더러운데206)들이 있었다.
6학년 때 땅콩과자 포장지의 외국인 이름의 인종을 살펴보고(115) 중학생 시절 " 1962년판 '엣센스 독한사전'을 보면서 서게르만어군 안에서 여러 언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흥미를(99) " 가진 이력이 있는 저자를 보면서 심리적 거리두기를 떠올렸다. 책을 읽는 일은 저자와 멀어지는 일이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에 대해서 그 전보다 더 알게 되는 일이지만, 거리는 어쩐지 더욱 벌어지고 있는 아득함을 지울수가 없었다. 솔직히 젊은 독자들은 '엣센스사전'이란 말에서도 거리감을 느낄 것 같다. '언어천재'라는 수식을 민망하여 피한다고 하지만 그만한 자신감이 뒷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보일 정도로 확고한 어조가 있었다. 게다가 '유쾌하게' 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나름의 개그코드가 반영되었던 것은 아닐까.
15개 언어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하니 나와는 다를 거라는 걸 충분히 예상하고 읽었음에도 '유쾌'한 부분도 다를 줄은 미처 몰랐다. " 누가 알아주지는 않는 유머의 차원이더라라도, 어찌 됐든 내게는 재미있으면 그만이다.(22) " 는 말은 진심이다. 글쓰기 근육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글을 '머 쓸'까 고민해야 된다는(79) 표현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 과거에서 벗어나우!(162) " 같은 깨알 유희들도 그렇다. 마치 교수님이 전공 수업 때 하는 농담을 외계어같은 전공 지식 속에 유일하게 들리는 반가운 모국어 같은 느낌으로 주워듣는 기분이랄까. 재미는 없는데 암튼 정성에 가산점을 주게 되는, 그런게 있다. 내 수준은 이름과 관련된 구글과의 불화(144) 정도가 재밌는데.
원서로 뭔가를 읽어낼 능력이 없으니 능력자들이 전달해주는 결과물을 고맙게 받아 그런가보다 하고 읽어왔다. 그런데 요즘은 저자의 표현대로 집을 지을 능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볼 줄은 아는 사람들이 많고, 어떤 이들은 지을 능력이 안되는데도 짓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종종 번역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출판물은 논란까지는 아니더라도 출판사별로 번역 스타일을 비교해놓은 콘텐츠들도 많다. 일부 오역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번역에 따라 달라지는 문체로 보고 취향대로 선택하기도 한다. 다만 문제가 두드러지는 분야는 영상 자막인데 특정한 영화에 대해서는 심각한 오역을 반복한 번역가를 보이콧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어머니...!
왜 저자가 '언어의 우주'라는 표현을 썼는지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그가 보여주는 언어의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멀리 떨어져있는 거리감을 갖고 있는 것이, 밤하늘을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했다. 막상 책 안으로 들어가 그가 보여주는 언어의 단편을 나눠받으면서도 그저 막연하다. 솔직히 아침마다 의관을 정제하고 각 언어의 단어 숙어를 100개씩 암송(97)한다고 했을때 그냥 믿었다. 차라리 그게 더 현실성 있을 것 같은데 '그럴리가 없잖아요 하하'하고 웃어넘기는 게 더 멀게 느껴졌다. 다만 전반에 걸쳐 정말 언어에 파고드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서 한다는 게 보인다. 노력하는 게 즐기는 것을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솔직히 처음 시작하는 '어도락가의 길'은 좀 딱딱하다. 아무래도 주관도 확고히 드러나고 전문적인 영역에 대한 설명이 많다. 저자입장에서는 아주 기본적이고 재밌을만한 부분을 고심해서 썼겠지만, 그래도 '나의 삶 나의 언어'로 넘어오면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에피소드들이 좀 더 편하고 재밌게 다가온다.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어떻게 말을 하는지 관찰한 부분도 나름의 방식대로 학구적 관찰 예능을 찍는 느낌이랄까. '언어의 풍경을 바라보며'에서는 포괄적인 언어생활에 대한 내용이라 평소에 생각했던 주제들도 나온다. '너무' 나 '닭도리탕'의 사용 같은 내용이 그렇다. 이와 함께 잃어버린 '짜장면'의 귀환을 되찾은 일도 떠올랐다.
또 하나 반가운 것은 '최근의 글쓰기 열풍(73)'에 대해 저자가 긍정적인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눈에 띄길래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싶었는데 저자의 문제의식(교육 수준에 비해 자국어를 잘 쓰는 사람이 적다/쉬운 글이 언제나 좋은 건 아니다72)과 함께 요즘의 흐름을 보니 그렇구나 싶어졌다. '채식주의자'와 '기생충' 번역에 대해서도 나오지만, 얼마 전에 한 출판사의 신간이 역대 최고 선인세를 받고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글이 세계로 나가는데에 그동안 우리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요인을 두었는데 안방을 어떤 표현으로 바꾸는지에 골몰하기 보다는 안방을 안방으로 알리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라이스케이크보다 떡이 더 먹히는 것처럼, 중국에서 시*이 가벼운 욕으로 쓰이는 것처럼, 그대로.
아주 만족스러운 우주는 아니었어도 괜찮은 선장과 함께 항해한 여정이었다. 실제로 낯선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일이 당분간은 어려워졌으니, 이런 식으로 여행을 떠나봐도 좋을 것 같다.
언어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사람의 말에 대해 사유하는 글이 제일 아닐까 싶다. 신견식이라는 작가는, 고종석 작가님 페이스북을 알게 되었는데, 언어학자로도 알려진 고종석 작가님이 본인보다 훨씬 언어에 있어서 박람강기를 뽐내시는 분이라고 추켜세우셔서, 책을 주문하게 되었다. 책을 일부분 읽어봤는데... 으음.. 고수의 품격이 느껴진다. 즐거운 독서가 기대된다^^
신견식 선생에 대한 소문(?)은 노승영 번역가의 트윗이었나 블로그 글이었나 아무튼 그에게서 접했다. 믿고 읽는 많지 않은 번역가 중 한 분이 노승영 선생이고 그런 그가 혀를 내두르는 언어 괴물이 바로 신견식 선생이라 해서 바로 관심이 갔다.
그의 <콩글리시 찬가>를 읽고 나서 상투적인 비유지만 머리를 한 대 쾅 맞은 느낌이었다. 카프카가 말한 내면의 도끼가 바로 이런거였나 싶었다. 그래서 그의 신작 소식을 접하고 바로 구입해서 아마 거의 한 호흡에 읽었지 싶은데 새 해에도 변함없는 게으름 때문에 이제야 리뷰를 쓴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언어도 모른다"는 괴테의 말이 얼른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거울을 보기 전에는 자기 모습을 알 수 없다"는 것과 통하지 않을까 하는 신견식 선생의 통찰에 정말 그렇겠다는 수긍이 들었다. 이어서 "시대가 바뀌어도 무언가를 배워서 제 것으로 만든 다음에 남한테도 나누어 주는 배움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감탄하며 읽다가 감동도 하게 된 순간이었다.
번역에도 단연 조예가 깊은 그의 번역론은 "원문이라는 집을 무너끄리고 새로 세우는 것일 수도 있고 그 집과는 다른 재료를 써서 그대로 다시 짓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흠집도 생긴다"는 그의 말에 애초에 집을 지을 때도 흠집은 생기기 마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번역본에 대해 전반적으로는 나름의 기준으로 깐깐함을 고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체로 퍽 너그러운 편이다. 심각한 오역이 아니라면 집을 짓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흠집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외국어를 익히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들지만 역시나 또 언제나 마음 뿐이다. 겨우 영어 원서 하나 어찌어찌 꾸역꾸역 읽어내는 수준이기에 신견식 선생이나 노승영 선생 같은 분들은 그저 리스펙일 뿐.
요즘은 신견식 선생이 페이스북 포스팅에 한창인 것 같아 열심히 눈팅만 하며 열렬한 지지와 호응을 보내는 중이다. 그의 포스팅들만 묶어서 다듬어도 또 한 권의 근사한 언어책이 될 것 같다. 올해 그런 그의 신간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