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미리보기 공유하기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리뷰 총점 9.7 (19건)
분야
인문 > 글쓰기
파일정보
EPUB(DRM) 92.29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이용안내
TTS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10건) 회원리뷰 이동

종이책 글쓰기의 정석을 배우는 -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평점10점 | h*****7 | 2021.04.18 리뷰제목
여성학자 정희진을 김진애의 『여자의 독서』 읽은 덕분에 만나게 되었다. 그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정희진의 정절과 절개는 그 자체로 너무도 순수하고 또 강력하다. 이때의 열녀란 소신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여자 인간이고, 그의 정절이란 자신의 소신과 철학이고, 그의 절개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확실하게 들이대는 양심의 잣대다.” -김진애의 『여자
리뷰제목

여성학자 정희진을 김진애의 여자의 독서읽은 덕분에 만나게 되었다. 그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정희진의 정절과 절개는 그 자체로 너무도 순수하고 또 강력하다. 이때의 열녀란 소신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여자 인간이고, 그의 정절이란 자신의 소신과 철학이고, 그의 절개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확실하게 들이대는 양심의 잣대다.”

-김진애의 여자의 독서(P225)

 

 

 이렇게 멋진 찬사를 받는 작가라면 한번 알아봐야겠다는 마음에 정희진처럼 읽기로 처음 만났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한 건 정희진 저자가 김진애가 예찬한 정절과 절개로 비유되는 열녀'라는 단어를 과연 좋아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었다. 다시 이 책으로 만난 저자에 대한 느낌은 열녀의 이미지보다는 은장도를 찬 아주 씩씩하고 거침없는 언변의 여장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두루뭉술 넘어가는 무관심한 사안에도 여성학자 특유의 예리한 시선으로 끄집어내어 우리 눈앞에 던져 놓는다. 그리하여 살살 우리의 촉수를 움직이게 하고 후련한 웃음을 웃게 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다시 앞의 책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그 책에는 놀라움을 주는 말이 많았지만, ‘독서는 몸이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는 말에 나는 홀딱 반했다. 얼마나 강력한 인상을 주었던지. 그러므로 독후감은 자기에 대한 서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며 내용 요약으로 절반을 채우는 식의 쓰기는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저자의 책을 읽고 쓰는 서평이기에 어느 때보다 긴장된다. 저자는 원래 전압이 높은, 남들이 잘 안 읽는 불편한 책을 읽는다고 했다. 여기 나오는 스물일곱 편의 책도 그렇다. 하나같이 소수자, 약자, 여성, 흑인, 폭력, 여성차별 등이 주제인 책들이다. 각 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씩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1장 아픔에게 말 걸기몸으로 견디며 쓴다는 부제가 달려있고 주로 통증과 불안, 고통을 주제로 한 8권의 책이 들어있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는 메이 외 공저로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아직은 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고통에 대한 소통이 불가능한 이유를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픈 사람은 건강한 이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접했다.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엔 의아했다. 그런데 저자는 인간의 몸의 개별성을 이야기하면서 누구의 삶을 대신 살 수 없고 대신 아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몸의 단절은 인간의 고유성이기 때문에 몸의 통증은 소통 불가능하다는 말에 금세 수긍하게 된다. 이 얘기는 뒤에 나오는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의 내용에서도 부분적으로 연결이 되는데,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각자의 몸이기에, ‘몸의 통약이 불가능하므로 오히려 안 아픈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문처럼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며 소리를 냄으로써 몸속의 고통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소박한 일상에 감사하듯이 아픈 몸을 치유하는데도 감사하는 마음이 기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p60~61)

고통에 대한 연구는 결국 글쓰기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철학자 김영민의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는 말에 덧붙여  공부는 쓰기 혹은 쓰기의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한다.

 

2장 우리에겐 불편한 언어가 필요하다통념을 부수는 글쓰기라는 부제에 9권의 책이 들어있다.

 

 이 장에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저메인 그리어의 여성, 거세당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정희진은 페미니즘 책 읽기와 쓰기를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쾌락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은 여성주의만이 주는 즐거움이 있는데, ‘여성스러운행복감이 아니라 남성적인 쾌감이라고 했다. 지적이고 깨닫는 쾌락, 분노와 분열과 고통이 주는 쾌락, ‘나쁜 사람을 골탕 먹이는 쾌락,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비웃으며 무시할 수 있는 그런 힘의 느낌이라고 했다. 페미니즘에서 그런 쾌락을 느낄 수 있다니.

 

이 책의 내용은 성별, 남자, 여자, 인간, 자연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전복시키며 정확히 바로잡는 매우 지적이고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좋은 교과서역할을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이 널리 읽혀서 성별, 가족, 섹슈얼리티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집단이 되는 것이 희망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외모나 나이 비하, 지역주의, 학벌주의 등으로 인한 차별이 만연해 있다고 생각한다. 양성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영역의 행동 특성이나 심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면, 어린 학생 때부터 공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

'페미니즘을 '하나'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다. 나는 평소 숱한 사람이 사상가들을 언급할 때 마르크스, 프로이트, 푸코, 루소……그리고 페미니스트 식으로 나열하는데 분노한다. 남성들은 '개인'으로 호명되는데, 어째서 페미니즘은 한 덩어리로 간주되는가? 이는 마르크스 한 사람과 모든 여성이라는 식의 발상이다.'(p150)(왼쪽 페이지)

 

'여성으로서 겪는 공통의 경험은 '적다'. 그러나 한 개인이 여성으로 간주되는 상황 탓에 겪게 되는 고통, 분노, 무기력, 희열, 깨달음, 욕망은 여기 다 적을 수 없는, 그야말로 인류의 역사 그 자체로서 혼돈에 가까운 복잡성을 지닌다. 흔히 말하는 '여성 문제(women's question)'는 실상 사회와 남성의 문제이고 이것이 '여성 문제'의 본질이다.'(P151)(오른쪽 페이지)

 

3장 몸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 질문하고 해체하는 글쓰기라는 부제가 달린 10권의 책이 들어있다.

 

 애그니스 스메들리의 대지의 딸에 대한 서평은 슬픔, 복수(複數)의 젠더(multiple gender), 애그니스 스메들리와 우리의 신여성 허정숙과 김활란, 시몬 드 보부아르까지 세 가지의 키워드로 비교하며 얘기를 풀어놓는다. 저널리스트였던 애그니스 스메들리가 가난, 성차별, 가족의 죽음, 죄책감, 분노, 상처를 안고 조국이었던 미국을 떠난 당시(1920~1930)가 배경인 자전소설이라고 한다. 이 얘기를 통해서 여성으로서 받는 성차별은 세상 어딜 가나 똑같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생각해보면 누구나의 여동생, 누이, 이모, 어머니일 텐데 왜 조화롭게 어울려 지내지 못하는 걸까. 여기서도 정희진은 좋은 독후감에 대한 언급을 강조하고 있다. 독후감은 언제나 자신에게로 회귀해야 하며 성찰적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서평을 쓴 사람은 한 사람의 독자일 뿐이지 모든 독자를 대변하는 길잡이가 아니라고.

 

 이전 책을 읽고 나서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그동안의 나의 독서를 돌아보게 했다. 너무나 읽기 편한 책만 읽지는 않았는지. 물론 개인마다 관심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모든 독자는 편협하다고 했고, 그 말에 위로를 받았었다. 나름 다양한 독서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페미니즘을 비롯한 사회문제를 다룬 책들, 그녀가 말하는 소위 전압이 높은 책은 일부러 찾아 읽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쩌면 불편함을 피하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멀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점을 반성한다. 그래서 여기 나와 있는 책을 모두 읽지 못하지만 적어도 한 권은 꼭 읽어보려고 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2의 성과 더불어 찬사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베티 프리던의 여성성의 신화이다. 이 책은 이론 자체로 내파와 여진 확장과 변태(變態)를 거듭하고 있는 자유주의 사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원한 필독서라고 한다. 자신과 사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녀 불문하고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정희진의 글쓰기시리즈 중 세 번째 책이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인기 있는 저자로 기억된다. 또 저자가 읽고 쓴 27편을 모은 서평집 이기도 하지만 독자에 대해서는 좋은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평범한 글쓰기에서 벗어나 사유하는 글쓰기, 좀 더 성장하고 싶은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3 댓글 12
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치열하게 쓴만큼, 치열하게 읽게 된다. 평점10점 | 9*****6 | 2021.05.02 리뷰제목
정희진 작가는 서문에 ‘전압이 높은 책, 나를 소생시키는 책’을 좋아한다고 썼다. 내게 정희진 작가의 책 대부분이 그런 고압선이자, 심폐소생술기이다. 전압이 높은 만큼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다. 읽고 나면 전과 다르게 살아야 하기에 더 힘들다. 다섯 권으로 예정된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의 세 번째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도 그런 책이다. ‘페미니즘’을
리뷰제목

 

 정희진 작가는 서문에 전압이 높은 책, 나를 소생시키는 책을 좋아한다고 썼다. 내게 정희진 작가의 책 대부분이 그런 고압선이자, 심폐소생술기이다. 전압이 높은 만큼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다. 읽고 나면 전과 다르게 살아야 하기에 더 힘들다. 다섯 권으로 예정된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의 세 번째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도 그런 책이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읽고  치열하게쓴 서평집이다.

책은 아픔으로 말 걸기’, ‘우리에겐 불편한 언어가 필요하다’, ‘몸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이라는 3개의 장으로 나누어지고 있고, 이 세 화두는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첫 장 아픔으로 말 걸기는 몸과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철저하게 개별적인 나의 몸과 내 몸이 겪고 있는 아픔을 바라보는 것,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몸의 이미지와 다른 내 몸을 긍정하고 몸과 자아에 가해지는 고통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들이 소개된다. 자신의 몸을 모르면, 아픔을 설명할 수 없다. ‘아프다고만 하면 어디가, 어떻게아픈지 묻는 질문이 돌아오고 그 말들은 아픈 이에게도, 묻는 이에게도 상처가 된다(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누군가의 폭력으로 아픈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 때 용서는 과연 미덕인가.

 

다만 나는 고통에 대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 고통에 대한 고통이란, 침묵과 망각 외에는 고통에 대처할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용서는 이 문제가 해결된 다음의 이슈여야 한다. p.50. 용서는 분노보다 우월한가?

 

내게 용서는 저절로 잊히는 것이지, 용서를 위해 고민하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내겐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고 참을 수 없는 부정의다.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관련된 사건을 잊는 것이다. 사건을 무시한다(ignore). 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그 일을 잊는다. p.53. 용서는 분노보다 우월한가?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 작가의 지인들이 새벽 세 시의 겪는 아픔들이 와 닿았다. 나 역시 세벽 세시에 깨어 있었던 적이 있어 그럴 것이다. 아픔 때문에 깨어있든, 아픔을 외면하기 위해 깨어있든 새벽 세 시에 아파 본 사람들은 그 아픔의 무게를 알 것이다.

 

두 번째 장에서는 본능, 진화, 관습, 자본주의 등의 이름으로 여성을 불편하게 했던 것들이 이야기 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육아나 가사 활동에 특화되도록 진화해 왔다고 해서, 성별 분업이 당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원래 사실과 가치는 구분되지 않는다. 사실(事實)은 언제나 사실(史實)의 산물이다. p.134. 다윈은 우리 편

 

소개된 책 들 중 호주에서 살고 있는 작가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을 읽게 된 이유는 내게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 역시 너무나 자주, 간절히 했기 때문이다. 외부 노동도 그렇겠지만, 가사노동은 육체적으로 강도 높은 노동은 물론 감정적으로도 강도 높은 노동을 요한다. 잘 해내지 못 하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는 덤도 있다. 외부노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하며 심지어 아프기도 한 내게 아내의 존재는 지금도 절실하다.

 

 마지막 장 몸의 평화의 깨지는 순간은 작가가 글로, 혹은 세상으로 경험한 평화가 깨지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코로나 시국이 이어져서 그런지 이 거리두기, 비대면의 일상 속에서 여성들이 마주하게 되는 또 다른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와 닿았다. 외출을 삼가고,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가정폭력이 더 심각해졌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가지 않아도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집에 머무르고, 노인들을 위한 기관들이 문을 닫으면서 많은 여성들이 돌봄의 역할은 전적으로 맡게 되면서 여성이 집안에서 감당해야 하는 신체적, 정서적 노동은 훨씬 더 늘었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그 어떤 책보다 서평을 쓰기가 어려웠다. 일단 소개된 책들 중 읽은 책이 거의 없어 그 책들을 먼저 찾아 읽느라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그럼에도 몇 권도 채 읽지 못 했다), 글 쓰는 이들 가운데서도 알려진 정희진 작가의 서평을 다시 평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지만 전압 높은 글을 필사적으로 읽으며 조금은 성장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서평은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작성하지 못 해 소개된 책들을 좀 더 읽고 다시 작성할 예정입니다. 

 

 yes24서평단의 자격으로 작성하였으며 작가와 출판사를 응원하며 책은 별도로 구매하였습니다. 

 

1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3 댓글 0
종이책 구매 전압이 높은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l*****j | 2021.05.29 리뷰제목
하루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낄 때마다 느낀다. 멍하니 보낸 시간이 많구나. 뇌 회로가 정해놓은 일상을 보냈구나. 자동화 모드로 살았구나. 반복하는 루틴을 따랐구나. 이런 생각은 혼자 있을 때 반짝 하고 떠올린다. 진짜 내 생각 같은  생각. 일상을 돌아볼 때, 혹은 일상을 더듬어보면서 글을 쓸 때만 하는. 딱 그 순간에만 내 정신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알면서 자주 늪에 빠
리뷰제목

하루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낄 때마다 느낀다. 멍하니 보낸 시간이 많구나. 뇌 회로가 정해놓은 일상을 보냈구나. 자동화 모드로 살았구나. 반복하는 루틴을 따랐구나. 이런 생각은 혼자 있을 때 반짝 하고 떠올린다. 진짜 내 생각 같은  생각. 일상을 돌아볼 때, 혹은 일상을 더듬어보면서 글을 쓸 때만 하는. 딱 그 순간에만 내 정신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알면서 자주 늪에 빠진다.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의식이 의미를 두고 있는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 허무함이 몰려온다. 마음 먹은 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꾸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도돌이표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자고 결의에 차서 하는 일이 있다. 글쓰기. 글을 쓸 때만 내 정신인 것 같기 때문이다. 자주 쓰면서 나와 일상을 돌아본다. 그게 생각처럼 안 될 때도 있다. 분주함이 나를 감싸고 있을 때다. 한 순간이라도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기 어렵다. 아주 잠깐만 시간 투자를 해도 되는 일인데. 글쓰기에 대한 의욕마저 사라질 때도 있다. 알고보면 매사에 의욕이 없을 때다. 요즘이 그렇다. 읽기, 쓰기 모두에 선뜻 의욕이 안 생긴다.

 

자동 모드만 가동하며 산다는 이야기다. 자극이 필요할 때다. 어떤 책을 가지고 다녀볼까 고심하다 고른 책이 정희진의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다. 언제나 그랬듯, 머리에 스파크가 일어나고 읽고 나면 읽고 쓰기의 방향을 잡게 된다. 나는 작가의 이 말을 좋아한다. '나는 전압이 높은 책, 나를 소생시키는 책을 좋아하지만'(11쪽). 별 감응없이 의무감에 책을 읽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일상에 무기력함이 찾아들 때 어떤 책을 골라 읽을지 혜안을 갖게 한다. 전압이 높아서 몸과 마음에 불꽃이 튀는 책이어야 한다는 것.

 

독자가 책을 선택할 수 없는 온라인 서점 시대에는 상업성을 고려해 유명 필자의 이름을 걸고 '기획'된 책, 쉬운 책, '위로'가 되는 책에 대한 대중의 강력한 요구가 있다. 이는 기후 위기만큼이나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모든 것이 양극화되는 시대에 생각하는 능력, 지성의 양극화는 절망적이다.(12쪽)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작가가 읽은 책을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실상 작가 자신의 생각으로 도배된 책이다. 그래서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를 좋아한다. 전압이 높은 책, 읽는 이를 소생시키는 책을 좋아하는 작가의 글 역시 전압이 높다. 작가의 관심 분야를 접해보지 못했던 독자 머릿속 뇌회로가 새로운 분야로 연결될 기회를 준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작가의 글은 지루하지가 않다. 그래서 내 글을 쓰기 전에 작가의 책을 먼저 펼쳐본다. 스파크가 일어나는 글을 읽고 나면 글을 쓸 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계몽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나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지식인의 사명'은 동시에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179쪽)

 

멍하게 살면 정해진 루틴을 반복한다.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그렇게 주입된 생각에만 영향을 받는다. 깜짝 놀랄 만한 자극이 필요할 때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이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라고 일깨워주는 자극 말이다. 물론 단 한번의 자극이 사람을 바꿔놓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려면 환경이 바뀌거나 만나는 사람이 바뀌어야 된다고들 한다. 근데 그게 안 되면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다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쓰기'다. 정희진 작가처럼 뚜렷한 생각을 갖고 사는 게 아니라 그렇다. 시작, 시도, 행동, 실천은 늘 과제다.

1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0 댓글 2
종이책 사회적 연대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 평점9점 | 이달의 사락 s*****l | 2023.01.15 리뷰제목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단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단어를 남발하는 사람도 물론 가까이하지 않는다. 예컨대 공정, 정의, 자유, 객관적, 상식, 용서 등 우리가 사는 인간 사회에서는 결코 구현할 수 없는 이상적인 낱말들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철저한 자기반성 대신에 구체성도 없는 과대망상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단어
리뷰제목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단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단어를 남발하는 사람도 물론 가까이하지 않는다. 예컨대 공정, 정의, 자유, 객관적, 상식, 용서 등 우리가 사는 인간 사회에서는 결코 구현할 수 없는 이상적인 낱말들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철저한 자기반성 대신에 구체성도 없는 과대망상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어떤 이에 대하여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분별한 믿음을 표출하도록 유도한다. 그(또는 그녀)가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증거를 제시한 것도 아닌데, 그(또는 그녀)가 마치 정의의 화신인 양 인간 양심의 정수인 양 대우하는 것이다. 이런 몰상식한 처사가 선거판이나 특정인의 강연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만 한정하여 일어나는 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일상 다반사에서 늘 있는 일이다.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글은 '감정적'이고 사적인 글이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줄거리가 없는 서평일 것이다. 이 글이 일반적인 형식의 해제인지 추천사인지 독후감인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고통에 대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 고통에 대한 고통이란, 침묵과 망각 외에는 고통에 대처할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용서'는 이 문제가 해결된 다음이어야 한다."  (p.50)

 

정희진 작가의 저서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지극히 사적이며 주관적인 글의 모음이다. 그래서 더 깊이 읽게 되는 책이다. 인간은 누구나 개별적이며 완벽한 객관에 이른다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제되는 건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게 개별적인 타인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며 그것에 대해 지루해하거나 죽을 때까지 그와 같은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의 세 번째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정희진 개인의 생각들을 쏟아낸 책이며 그래서 더 값지고 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에 실린 27편의 글은 모두 정희진의 생각일 뿐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나 창작을 적당히 모방하거나 답습한 글은 단 한 편도 없다. 정희진의 덕후가 탄생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 글은 <대지의 딸>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고 있다. 좋은 서평은 결국 좋은 독후감이다. 독서 감상문은 쓰는 이 자신에게로 회귀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성찰적이어야 한다. 독후감은 개인의 맥락에서 읽혀야 한다. 다시 말해 서평을 쓴 사람은 한 사람의 독자일 뿐 독자를 대변하는 길잡이가 아니다."  (p.220)

 

작가는 자신이 '페미니즘'이라는 특정한 사고방식에 집중하는 필자이자, 고통과 몸, 권력과 지식, 젠더와 관계 등 논쟁적인 주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고백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리영희의 저서 <대화>에 대한 서평에서는 리영희에 대한 인간적 감정과 남자라는 사회적 우월성을 배제한 채 행복한 근대인으로서의 리영희, 권력의 주조 방식을 넘어서는 지성과 인식의 소유자, 한 개인이 특정한 시대에 어느 정도까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최대치를 보여준 인물로서 존경의 마음을 내비친다.

 

"결국 나는 이 분열에 대해 쓴다. 모든 의미는 차이의 산물이며, 앎은 경계를 인식하는 데서 가능하다는 '진리'가 내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만용을 주었다. 텍스트와의 대화는 독자와 저자 간 갈등의 의미를 정치화함으로써 텍스트를 소통 가능한 역사 속에 위치시키는 것(mapping)이다."  (p.176)

 

나는 자신이 하는 모든 연설에서 자유를 강조하고 입만 벌리면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는 어느 정치인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어느 당은 당원 전체가 그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종종 전해 듣곤 한다. 그러나 이상적인 낱말들을 나열하는 그의 연설 자체가 사기인 것처럼 당원들 모두가 그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것도 사기에 가깝다. 로봇이 아닌 이상,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하는 인간이 어떻게 로봇처럼 일괄적인 대오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와 같이 선전하는 정당은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괴멸한 것처럼 말이다. 정희진의 글이 이 시대에 귀하게 읽히는 까닭은 작금의 대한민국의 정치와 언론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과거로의 퇴행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은 너와 다르고 너의 생각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 탐구하는 것, 사회적 결합과 연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작가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9 댓글 0
종이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삶의 힘이 되는 페미니즘 책읽기 평점10점 | a*******5 | 2021.04.27 리뷰제목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내 시간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 강의를 주로 듣는 두 아이가 학교가 아니라 집에 주로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틈틈이 이어온 독서가 유일한 위로이자 해방구다. 특히 페미니즘 책읽기는 전 지구적 혼란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힘이 되고 있다.    몇 년 전 페미니즘 책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리뷰제목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내 시간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 강의를 주로 듣는 두 아이가 학교가 아니라 집에 주로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틈틈이 이어온 독서가 유일한 위로이자 해방구다. 특히 페미니즘 책읽기는 전 지구적 혼란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힘이 되고 있다.

 

 몇 년 전 페미니즘 책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그전까지는 몰랐던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와 성차별과 불평등을 깨닫고 분노하고 흥분했다.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은 나와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 속에서도 내 위치에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바꾸려고 실천하고 있다. 그 첫 실천이 가정에서 내 목소리를 서서히 높이기다. 내향적인 데다 수동적으로 살아온 탓에 시끄러움을 싫어하던 예전의 나는 참는 미덕(?)을 발휘하며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려 했으나 참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 우리 가정의 불평등을 심각하게 깨닫고 가정에서 내 목소리를 높이는 쪽으로 바꾸면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동시에 아이들의 발언권을 키워주면서 가장인 남편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아지게 되었고, 우리 가정은 좀 더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바뀌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는 걸 실감한다. 내게 페미니즘 책읽기는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험한 세상을 나답게 살아가게 하는 무기다. 

 

  수 년 전 저자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페미니즘 세계관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후로 만난 <정희진처럼 읽기>와 <아주 친밀한 폭력>, <혼자서 본 영화> 등으로 우리 사회와 나 자신에 대한 앎과 깨달음으로 나를 이끌고 있으니 저자는 내게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앞서 출간된 두 권의 책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와 <나를 알기위해서 쓴다>에 이은 세 번째 독후감이자 서평이다. 앞서 <정희진처럼 읽기>를 통해 페미니즘적 사유를 통과한 신선하고 통찰력 있는 독후감의 세계를 제시한 저자는 이번에 인연이 닿은 27권의 책을 통해 여성주의 세계관으로 파악한 남성중심 사회와 역사, 권력과 인간관계, 약자의 고통, 진화생물학의 문제, 위안부 문제의 본질 등 전방위적인 치열한 사유와 독서,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준다. 사실 저자의 인식을 따라갈 만큼 페미니즘 공부와 깊이가 부족한 나로서는 읽고 또 읽어도 매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놀란다.  

 

 재미 여성주의 역사학자 여지연 교수의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군인 아내들의 이야기>에 대한 서평, '여성도 한국인도 아닌'이란 제목의 글을 읽다가 문득 국민학교 시절 헤어진 단짝 친구가 떠올랐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친구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엄마와 함께 아빠의 나라로 간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의 외모는 우리 사회가 말하는 '혼혈아'인데 당시에는 딱히 의식하지 못했다. 서글서글한 성격에다 우리 말을 잘했고 갈색 눈과 갈색 머리를 하고 있어서 그녀의 오똑한 서구적 외모가 그다지 의식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저자에 의하면 "1970,1980년대에도 해마다 약 4천 명의 한국 여성이 군인 아내로서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친구의 아버지도 미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6·25 이후 해마다 수천 명의 한국여성들이 미군과 결혼해 떠났다는 사실이 놀라운데다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이들의 존재가 비가시화된 것은 명백한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지금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우파 세력 일부에서는 일제시대 위안부가 알선업자를 통한 자발적 성매매였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한국 여성 성착취를 합리화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강제성 담론은 여성 인권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게 만드는 '맥거핀'이"라 비판한다. 교육수준이 세계 최고인 현재도 한국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고, 여성은 언제까지 성적 대상화가 되어야 하는지 '리얼 돌'까지 수입한 우리 사회의 수준이 실망스럽다. 이에 대해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의 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깨우침을 주는 부분을 만났다. '군 위안부 운동의 '희비극''이란 글에서다.

 

 이처럼 알선업자, 대리상이 취급하는 대상은 상품이나 인간의 노동력(용역)이지, 인간 자체가 아니다. 성매매가 노동이냐 폭력의 한 형태냐는 논쟁에도 가장 중요한 이슈가 삭제되어 있다. 이것은 여성이 인간이 아니라 상품이라는 현실을 당연시하는 사고방식이다. 성매매에서 거래되는 것은 여성의 노동이 아니라 여성의 몸 그 자체다. 강제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돈을 벌러 갔다"는 입장을 강조하는 것은 군 '위안부'에 대한 다양한 이론(異論)이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성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성매매, 성폭력 제도의 본질적 공통점은 남성의 성은 남성의 몸에서 분리되지 않지만 여성의 성은 여성의 몸에서 분리된다는 점이다. 남성의 성은 개인의 몸에 소속되어 있다. 여성의 성은 여성 자신의 것이 아니라 국가, 가족, 그리고 그녀의 소유자인 남성의 자원이거나 상징이다. 남성의 성과 달리 여성의 성은 대상화된다. 유통, 기부, 거래, 순환 등 교환 가치를 지닌다. 남성 간 정치의 매개물이 되거나 강자들의 싸움터(battle ground)로 제공된다. 우리가 성 상품화, 여성의 대상화라고 부르는 현실이 이것이다. 내가 스스로 팔든 남에게 팔리든, 성매매는 여성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물건(object)이 됨을 의미한다.  (170쪽)

 

 얼마 전 우리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그간 변희수 하사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변 하사가 입학을 희망한 여대의 페미니즘 동아리 회원들이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반대한 행동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언제나 성역할과 시민권 사이에서 갈등했고, <여성성의 신화>는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신자유주의는 인류 최초로 가부장제를 이긴 체제다. 신자유주의는 페미니즘을 일정 정도 허용했다. 남성의 성역할과 시민권, 노동권은 대립하지 않지만 여성이 성역할 담당자 대신 개인이 되려면 언제나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여성에게도 개인화, 시민권을 허용했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여성 운동의 '대중화'이다. 현재 한국 여성 운동의 일부가 유례없이 동성애, 트랜스젠더, 난민 혐오적 경향을 보이는 것은 당대 페미니즘이 사회 정의와 연대로서 페미니즘이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118-119쪽)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여성주의 관점과 인문학적으로 깨달은 점이 많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 부분은 약자의 '말하기'다. 이 부분은 아직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약자에게 억울한 경험은 있는데 그 경험을 표현할 자신의 언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강자 중심의 현실을 극복하는 데 꼭 필요하다.

다시 요약하면 사회가 고통을 다루는 첫 번째 단계는 말하기인데, 이것은 실제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언어가 없는 사람에게는 국가보안법 같은 법적 검열이나 사회문화적 검열이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 더 강력한 방벽이 있기 때문이다. 약자의 경험은 강자의 시각에서 해석된다. 그리고 각성하기 전의 약자는 강자의 시각에서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자신의 경험, 노동, 고통, 시간을 지배자가 빼앗아 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다른 삶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삶은 이전과는 다르다. (91쪽)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댓글 0

한줄평 (9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9.6점 9.6 / 1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