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us :: John Fowles
이제는 거의 명사화가 되버린 '초식남' 이란 단어는 그 만큼 많은 남성들이 초식남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반(게이)는 아니면서 이성 교제보단 자기 취미 생활을 더 좋아하는 남성들을 일컫는 '초식남' 은 요즘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닌 것 같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의 주인공 니컬러스 어프도 초식남의 원형을 띄고 있는 것 같아서다. 주인공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성을 사귀면서도 연애보단 섹스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상대와 얽히기라도 하면 매우 귀찮아 하면서 쉽게 관계를 단절하고 자기만의 생활을 즐기는 개인주의자다. '초식남' 으로서의 장점보단 단점을 더 많이 내보이는 존재인 것이다.
여성을 보호하려 들거나 지배하려 들려는 '마초' 는 아닌데, 여성들에게 신의를 쉽게 얻지 못하는 이유는 연애에서 여성이 바라는 것을 잘 모르거나 전혀 생각치 않고 어떻게든 자기 편한 쪽으로만 도망치는 이기주의자여서가 아닐까. 오죽하면 '초식남' 과의 관계에 대한 여성들의 리서치도 '친구로서는 좋지만 연애나 결혼 대상으로는 싫다' 는 의견이 우세할까. (나에게도 '초식남' 의 지인이 두어명 있지만 친구로서 장점만 볼 뿐, 어떻게 보면 이반 친구보다 더 이성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여자로서 이성에게 '당연히' 요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또 다른 이기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초식남' 의 번성은 나를 비롯해 그런 여자들이 태반인 탓도 있을 것이다. )
아무튼 착하고 괜찮은 초식남들마저 오해하게 만드는 주인공이 여자들을 쉽게 매료 시키고 즐기면서 그 어떤 것도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탓에 책을 읽어 내리는 동안 내내 공감보단 반감이 일어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은 짧게 요약하자면 '철없는 바람둥이 남자를 골탕 먹이는 여자들의 복수극' 이라고도 할 수 있어 마지막 반전에 이르러서는 나도 모르게 '그거 쌤통이다' 고 유쾌해 했다. 물론 작가인 존 파울즈가 이 소설을 통해 보이고자 한 주제는 좀더 심오한 것이지만, 주인공보다 그를 갖고 노는(?) 여자들에게 더 공감한 탓에 작가에게 송구스럽게도 내 멋대로 오독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 남성들이 이 책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적어도 같은 남성인 작가 존 파울즈는 그래도 자기 작품의 주인공이다 보니 그를 사정없이 몰아치면서도 연민을 갖고 편을 들어준 것 같다. 그의 심리를 되도록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서 그 나름의 고충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개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반영 되었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은 그의 곁을 맴도는 여자들보다 그녀들을 조종하는 또 다른 남성이자 마법사The Magus인 콘키스 라는 존재다. 그는, 개인주의자다 보니 무료함이 자주 찾아오는 주인공 니컬러스에게 흥미거리를 던져 낚은 다음 거짓인지 진실인지 모를 이야기들로 니컬러스를 혼란케 한다. 마침내 진실한 사랑에 빠져 '그녀' 를 콘키스의 마수에서 구해 내겠다며 초식남의 아이덴티티를 던져 버리고(?) 용감무쌍한 남성으로 돌변하지만, 그것마저 그의 착각과 오만일 뿐이라는 결과에 비참해지고 만다.
여기서 주인공은 실상 니컬러스가 아니라 '마법사' 라 자칭하는 콘키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문득 영화 [매트릭스] 가 생각 난다. 인간을 조종하는 기계들의 수장 '아키텍트' 가 주인공 네오를 비롯해 인간들에게 현실과 꿈을 혼동시켜 놨듯이, 콘키스 역시 니컬러스를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 가둬놓고 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한 상황에 빠진 것은 니컬러스가 처음이 아니라 이미 전임자가 있었다는 부분도 [매트릭스] 의 설정과 비슷하다. 다만, 네오처럼 니컬러스도 진정한 진실을 알고자 하지만 깨우침의 양상이 다르다. 네오는 진실한 사랑을 찾고 인류를 위해 순교한 것에 반해, 니컬러스에게 돌아온 것은 '자기 기만' 의 현실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니컬라스의 경우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작가 존 파울즈는 특유의 메타포를 통해 역설한다.
제목은 '마법사' 지만 사실상 콘키스는 자신을 '신' 의 자리에 위치해 놓고 모든 상황을 연출했다. (파울즈가 처음 고려했던 제목도 '신의 유희' 였다고 한다.) 그의 놀음에 빠져 부처의 손바닥 위에서 헤매는 손오공처럼 진정한 진실을 모르고 제멋대로 해석하여 자기만의 합리로 결론 짓는 니컬러스의 모습은 그 만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 아닐까. 파울즈가 장장 15년 동안 구상하고 개작하는 데 바친 이 작품의 제목을 결국 [마법사] 로 붙힌 것은 신의 존재조차 진실인지 아닌지 확언할 수 없는 작가의 고심일런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저마다 믿는 종교가 다를 뿐더러 특히 배경이 되는 그리스는 그 어디보다 많은 '신' 을 갖고 있는 곳이어서 더더욱 '진짜' 를 가려내기가 어렵다.
아마도, 인간의 삶은 인간 그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착각을 하도록 누군가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조종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아 '마법사' 로 통칭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자유를 누리고 싶어도 결국 그 개인만의 것일 뿐이라는 암시가 담긴 제목과 파울즈가 주제 삼는 바는 외로운 자기 모습을 비춰 보게 만들면서도 신중한 겸허함을 깨우치게 한다. 파울즈야 말로 읽는 이의 마음을 조종하는 '마법사' 가 아닐까.